싸움은 길고 관심은 짧다 [한겨레 칼럼/121112]

!@#… 슬슬 본색을 드러내며, 대체로들 별로 재미없어할만한 이야기들을 마구 끄집어내고자 한다. 게재본은 여기로. 물론 지면상 다 못 넣었지만, 이 뒤에는 “그런데 기업화된 신문사 뿐만 아니라, 매체기술로 불특정 다수에게 의견과 정보를 퍼트리는 바로 여러분들 모두가 각각 언론이랍니다. 사회적 역할도 함께 생각해보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언젠가 한번 그쪽으로만 따로 한 회 할당해서 풀어써야할 듯.

 

싸움은 길고 관심은 짧다

김낙호(미디어연구가)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와 딱히 상관 없던 얼마 전의 대형 테러사건의 기억을 자극하여 자국민의 정서적 지지를 얻고, 검증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운운하며 이유를 만들었다. 이런 부당한 명분이 통용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대 대중의 지배적 정서에 편승하느라 사실 확인 같은 것은 뭉개버린 대다수 주류미디어의 적극적 협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딱 그 열광만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부당함이 드러날수록 이라크전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었다.

이런 흐름을 거스른 곳 가운데 하나가 뉴욕타임즈였다. 초기에는 대량살상무기 보도에 편승하여 체면을 구겼지만, 몇 년이 지나도 비싼 유지비용이 드는 바그다드 출장소를 고수했다. 불황 속에 전체 직원의 8%를 감원했던 2008년에도 계속 자국 독자들이 외면하기 좋은, 암울한 전쟁 속 미국의 잘못된 역할 수행 관련 보도에 소중한 지면을 할애했다. 침공 당시 79%의 지지를 보였던 대중여론이 5년여 뒤에는 64%가 “전쟁할 가치가 없었다”고 말하는 쪽으로(03년 CNN, 08년 ABC조사) 바뀐 현상의 배경에는, 이런 끈질긴 이슈 지속 노력이 있었다.

문제적 사안은 종종 오래 지속되며, 지속될수록 더욱 상황이 힘들어진다. 노동자 파업에서 노조측이 지쳐 떨어지기를 바라며 사측이 협상을 질질 끄는 의도적인 것이든, 그저 팽팽한 교착 때문이든 말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여러 정권에 걸쳐서 크레인에 올라가 장기 고공농성을 벌여야 했으며, 콜트/콜텍기타 노동자들 역시 해고 상태에서 오랫동안 여러 법정소송 속에 엇갈린 판결들을 받았다. 정권 친화적 방송을 강제하는 사장단에 반대하며 올해 MBC노조가 파업을 벌였을 때 그 기간은 반년을 넘었다. 법원의 복직 판결에 불복한 사측에 항의하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철탑에 올라간 것도 3주를 넘었다. 쌍용차 사태는 따로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사안이 길어질수록 관심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들의 관심이라는 것은 무슨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닌, 뇌 활동이라는 유한한 자원이다. 한쪽에 할애하면 다른 쪽에 못 쓰는데다가, 지속에는 에너지가 든다. 사안의 해결과정에서 어떤 돌파구가 나왔을 때, 최종적 해결까지 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매듭지어졌다는 안도감을 얻고 급격히 식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문제적 사안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데, 반대로 그 관심을 모으기는 점점 더 힘들다.

이런 지점에서 언론의 사회적 역할, 즉 사회가 언론에 규범으로서 요구하고 산업적 인센티브로 유도해 내야할 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언론 간판을 내걸었으나 그냥 기업 역할(“돈 많이 벌자”)이나 정치행위자 역할(“줄 잘 서자”)에만 몰입하는 자들은 그냥 논외로 하고, ‘권력에 대한 감시견’ 같은 거시적 규범보다 한 단계 구체적 층위로 내려오면, 언론의 사회적 역할은 바로 이슈 지속이라고 생각한다.

장기화된 노동투쟁 등 중요한 사회적 갈등을 담아내고 있지만 단지 오래 지속되느라 관심이 식고 있는 사안들을, 끈질기게 계속 보도하며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현황판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이 이전에 축적된 기록들을 쉽고 간편하게 모아 참조할 수 있게 만들며, 나아가 적절한 타이밍으로 화제성을 재점화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매번 새로운 소재거리로 충격을 던지며 화제를 끄는 것보다는 덜 신나겠지만, 좀 더 쓸만한 세상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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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필진 로테이션. 개인적으로는, 굵은 함의를 지녔되 망각되기 쉬운 사안을 살짝 발랄하게(…뭐 이왕 이런 코너로 배치받았으니) 다시 담론판에 꺼내놓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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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정확히 슬로우 뉴스에 원하는 방향성이었는데 또 그렇지도 않더군요.

    • sfs님/ 저도요저도요;; 편집장과 기자 몇명을 전업으로 박아넣은 수 있어야 기사생산의 양과 질을 지속할 수 있는데, 슬로우뉴스는 전업 담당자가 없는게 현재로서는 가장 치명적 약점입니다. 크라우드펀딩 포함, 몇가지 돌파구를 고민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