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의 오늘을 말한다 [기획회의 339호/특집]

!@#… 지난 기획회의 339호의 커버스토리는 만화 특집이었는데, 여차저차 총론 꼭지를 맡은 바 있다. 무척 커다란 제목인데, 여하튼 필요하다 싶은 이야기를 주욱 개괄.

 

한국만화의 오늘을 말한다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는 ‘원소스멀티유즈’ 원작 산업으로 각광을 받는다. 편견과 달리, 어린이들의 손쉬운 오락 거리를 넘어 진지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기에 인정받고 있는 추세다. 한국의 만화산업은 많은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넘치고, 시장 규모도 OOOO억원으로 세계 *위에 해당될 정도로 크다. 이제 만화에 주목할 때다.

이런 이야기를 최소한, 쥬라기 공원과 현대차의 수익비교 통설로 대표되던 90년대 초반의 문화산업 붐 이래로 주기적으로 듣고 또 들어왔다. 계속 반복되다보니 산업으로서든 문화로서든 만화가 그간 이미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계속 초기화 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그런 이야기 처음 들었다는 듯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매번 적잖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종종 다시 언급하며 만화라는 분야에 대한 홍보작업을 해야겠지만, 웬만하면 그 정도 이야기는 이제는 제발 그냥 전제로 두고 좀 더 구체적인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나을 듯하다. 만화는 원작산업으로 각광을 받는 것 맞고, 여타 양식과 다를 바 없이 예술적 가치가 있기도 하고 그냥 오락성에만 집중하기도 하며, 성인 취향으로도 충분히 좋은 읽을 거리가 많다.

자, 이제 제발 그 다음 이야기를 할 차례다. 바로 오늘날, 인기를 모으는 한국만화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어떤 요인들이 지금의 한국만화 창작/유통/향유 환경에 가장 해결이 필요한 장애물인가. 어떤 전망이 필요한가. 몇몇 내부 업계 종사자들의 좁은 네트워크가 아니라, 좀 더 큰 논의의 장에서 다양한 이슈 지점들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함께 발전시킬 내용들이다.

인기 만화의 기본 조건

한 시기에 어떤 만화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것에는 늘 일정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그런 것이 사전 예측을 하기에는 어렵고 주로 사후분석 차원에서 이뤄지게 되며, 진단이 끝나는 순간 다들 비슷한 공식에 달려들어 애매한 품질의 작품들이 범람한다는 점이 한계지만 말이다. 대단한 비법처럼 포문을 열었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하다 – 바로 내용 측면에서 당대의 넓은 독자층에게 공감대를 끌어내고, 매체 측면에서 그런 독자층이 아직 잠재적 독자일 때부터 이미 손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넓은 독자층을 공감시키는 내용만 있고 매체가 없으면 기회 없이 그냥 처음부터 잊혀지고, 매체는 갖추었는데 공감대의 내용이 좁으면 공개적으로 버림받는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만화 상황을 보기 위한 유용한 열쇠다. 한쪽에서는 만화를 즐긴다고 하면 오타쿠나 매니아라는 말로 특수한 열성적 팬 취급을 하곤 하지만, 한국만화에서 확실하게 히트쳤다고 누구나 쉽게 인정할만한 ‘인기작’은 그런 오타쿠-매니아 취향의 작품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타쿠 팬층의 취향에 맞춘 작품도 종종 대중적 인기작으로 취급받는 일본 만화시장과 달리, 한국은 그쪽 성향의 소비자들의 숫자나 그들이 발휘하는 소비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특히 열성적 팬이라고 해서 같은 책을 열 권 사두거나 열 배 비싼 특별한정판을 기꺼이 소장하고자 하는 식의 문화가 한국 만화에는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활발한 창작-소비 시장을 유지하는 것만도 녹록치 않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 90년대말까지 나름대로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소년만화 전문잡지를 통한 연재물은 00년대 후반을 넘어서면서 출판의 양적 측면으로나 흥미로운 창작을 소화해내는 활력으로나 완연히 쇠퇴했다. 출판시장 전반의 침체와 함께 축소된 측면도 당연히 크지만, 그 과정에 대처하며 점점 학원 코미디와 애매한 수준의 양산형 세계관으로 이뤄진 격투 판타지물 위주로 획일화해가며 오타쿠-매니아 취향에 과몰입한 내용적 측면도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그쪽 취향 계열에서는, 만화의 세부 분야에서의 인기작은 나올 수 있어도 사회적 인기작인데 그것이 만화라는 식의 성공사례는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라이트노벨 형식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만화보다 그쪽으로 수요도 공급도 옮겨가고 있다.

매체 측면에서 대중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더욱 뼈저린 부분이다. 인기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만화가 실리는 매체를 섭렵하는 이상적 경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애초에 사람들이 작품을 널리 봐야 인기작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개봉관 숫자, 방송에서는 지상파 편성, 대중음악에서는 메이저 기획사 같은 것과 비슷한 문제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의 권력구조를 은유한 스릴러 [이끼](윤태호)는 원래 ‘만끽’이라는 회원 가입형 만화 전문 유료 웹진에서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매체가 따로 가입과 결제를 해야 하는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고 읽을 만한 웹진으로 인정받아 충분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에 실패했다. [이끼]는 연재를 하며 종이 단행본 1권까지 나왔으나, 아는 사람만 아는 연재중단된 컬트작으로 남았다. 그러나 한참 후, [이끼]는 방문자 숫자로 업계 2위인 포털사이트 미디어다음의 웹툰 섹션에서 다시 연재를 시작했고, 이번에는 만화로서의 인기나 영화화 같은 원작 확산 등을 포괄한 대형 히트작이 되었다. 그런데 [이끼]로 인기몰이를 하던 그 시기에도,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종이 만화잡지 ‘팝툰’에 같은 작가가 연재한 또다른 스릴러 [당신은 거기 있었다]는 인지도가 매우 낮다.

최근 수년간, 포털사이트에 연재되는 온라인 열람용으로 제작된 스크롤 형식 만화(속칭 웹툰) 분야에서 인기작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앞선 두 요소들의 교차점이 이곳에서 발생한 덕분이다. 원래부터 만화를 온라인 공간에 정착시키고자 했던 초기의 여러 시도들 가운데 실패에 가까웠던 사례들은 장르잡지에서 경력이 화려한 묵직한 중견 작가들이 기존 팬 기반을 노리고 신작을 내놓은 연합 웹진 같은 것이었고, 성공 사례는 폭넓은 인터넷 사용자들과의 공감대를 최대한 강조한 가벼운 공감 개그나 감성적 메시지를 입혀 넣은 [파페포포 시리즈] 같은 ‘에세이툰’들이었다. 그리고 미디어다음에 연재된 강풀의 ‘순정만화’를 위시한 장편 웹 연재만화들이 큰 호응 속에 독자 흡입력(즉 트래픽)을 증명해내자, 여러 포털사이트들이 서둘러 판을 키워냈다. 그간 매니아화되었던 종이잡지나 종이만화의 스캔본을 서비스하던 속칭 ‘온라인만화방’들과 달리 포털의 웹툰 섹션은 기존 만화팬의 장르 취향에 얽매이지 않고, 인터넷 사용자들의 호응을 잣대로 움직였다. 즉 불황속에 제작이 움츠려들며 특정 장르코드로 매니아화되던 출판만화와 달리, 다양한 소재와 접근을 통해 다시 다양한 관심층을 끌어들이며 확장했던 것이다. 다만 매체의 보편성 문제는 이 안에서도 다시금 엇갈려서, 가장 사용자가 많은 양대 포털서비스가 확고한 인기작의 산실이며 여타 포털들은 작품 인지도 확장 측면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오늘 대중적 인기를 끄는 만화

트렌드를 논하기 전에 이런 기본조건부터 지루하게 늘어놓은 것은, 특정 장르코드가 아니라 당대 대중 일반이 지니는 어떤 관심사를 다뤄내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시기에 가장 쉽게 널리 일상적으로 접하는 매체 공간을 통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가장 전형적인 인기 작품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일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불안한 처지를, 세밀한 디테일과 다소의 유머감각으로 그리며 낙천성과 사람 사이 관계를 밑천으로 삼아 일말의 행복을 찾는 식의 위안을 주는 식일 듯하다. 장르로서의 일상물이 뜬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장르팬이 아닌 평범한 대중이 잘 만든 만화에서 얻고 싶은 위안이 무엇인가로 접근하자면 그렇다.

인기작품들 가운데 몇 가지 확실하게 눈에 띄는 흐름들을 해부해보자면, 하나는 바로 회사 생활이라는 소재다. 대중적 호응도 비평 측면에서도 명실상부하게 2012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미생](윤태호)은 상사에 들어가는 바둑인 출신 초보 사회인인 주인공이 회사 조직 속 사무직들의 현실을 배워나가는 내용이다. 회사원들의 일을 존중하고 회사 조직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개개인들의 어려움과 갈등이 탁월한 연출력과 세밀한 디테일로 펼쳐진다. 기업의 사무직 생활담이라면, 이미 샐러리맨인 사람들도 취직을 지망하는 이들도 공감대로 끌어들이기 좋다. 사무직 지망생과 기타 여러 방식으로 일자리를 찾는 동료들의 생활을 그리는 [무한동력](주호민) 같은 작품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디테일이 좋다는 것은 꼭 현실적 다큐로 가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광고회사를 무대로 하되 강력한 과장으로 황당한 코미디 효과를 내는 [질풍기획](이현민)이나, 직장 내 인간관계와 원래 원하던 일의 꿈을 상기해보는 내용이되 때밀이라는 직종을 통해 그려내서 유머를 만드는 [목욕의 신](하일권) 등의 인기작도 존재한다. 소믈리에나 바리스타 같은 특이하고 잘나가는 단독 전문직의 세계로 흥미를 끌어들이려는 방식의 만화들보다, 오늘날 한국만화에서는 이런 쪽이 더 인기작으로 부각되고 있다.

직장 생활이 아니라도, 오늘날 한국 현실 일반의 불안과 희망들을 정밀하게 반영하는 것도 현재의 대형 히트작들이 지니는 흐름이다. 어떤 장르와 소재에 접목시키더라도, 장르코드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주제에 대한 공감대로 끌어낼 수 있다. 대부분의 연재작이 큰 호응을 얻는 만화작가 강풀의 경우, [이웃사람] 같은 연쇄살인마 스릴러에서도 한국식 아파트 문화의 거리감을, [당신의 모든 순간]이라는 좀비 스릴러에서조차 오늘날 한국 가족의 모습들을 다룬다. 저승세계와 전통신화의 신들을 다루는 [신과 함께](주호민)은 현대 한국 현실을 반영하는 저승의 모습은 물론이고, 결국 신화 자체까지도 현실에 대한 은유를 듬뿍 부어서 슬쩍 다시 써내려간다. 3부에 이르러서는 아예 “옛날 이야기”를 만화로 연재하는데, 어린이 학습만화도 아니고 파격적인 반전으로 수놓은 새로운 캐릭터 설정이 아닌데도 대형 히트작이 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다. 폭발적 호응을 얻었던 또 다른 방식의 작품인 [다이어터](캐러맬, 네온비)는 비만 여성의 다이어트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데, 경쾌한 유머감각과 세밀한 훈련과정 묘사가 갖춰진 것 외에도 당장 오늘날 한국에서 깡마르지 않은 젊은 여성이 겪게 되는 모멸적 시선을 날카롭게 펼쳐놓는다.

일상적 생활 풍경에서 공감을 자아내고자 하는 방식의 만화들 역시, 감성적 포근함으로 인기작이 되던 00년대 중반까지의 모습과 오늘날은 다소 달라졌다. 젊은 부부의 결혼 생활을 그리며 인기작이 된 [마조와 새디](정철연), [결혼해도 똑같네](네온비), [어쿠스틱 라이프](난다) 등은 모두 낭만적 사랑을 포장하는 것 이상으로, 생활의 현실을 듬뿍 담아낸다. 부부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부분이야 기본이고, 양가 친척들과의 미묘한 관계, 일의 분담, 2세에 대한 주변인들의 오지랖, 돈을 벌고 집을 구하는 것의 문제 등의 디테일이 각각의 방식으로 뚜렷하게 들어간다. 도피성 위안이 아닌, 현실의 난맥상들을 그대로 반영하여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위안인 것이다.

한국 현실의 공감대를 극대화해서 인기작이 되는 경우가 가장 성공사례들이 돋보이지만, 그렇다고 그 쪽이 전부는 아니다. 장르코드를 더 중시하는 전쟁사극이나 판타지 등에서도 여전히 분전하는 작품들이 있다. 캐릭터 간 화려한 필살기 격투나 배신 등이 핵심이고 세계관은 적당히 덤으로 끼워 맞춰온 많은 ‘양산형 판타지’ 작품들과 달리, [신의 탑](SIU), [쿠베라](카레곰) 등은 정교하게 설계된 세계관 설정을 매력으로 내세워 탄탄한 팬층을 모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도, 몽골제국의 지배자 징기스칸의 일대기를 그려내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허영만)은 호쾌한 극 전개를 구사하는 동시에 당시의 풍속이나 전투의 디테일을 세밀하게 살려내고 있다. 현실의 공감대라는 부분은 약하지만, 그 대신 디테일을 통한 몰입이라는 부분은 다른 방식으로 대신 살려내는 셈이다.

종합하자면, 회사 생활의 쓴 맛 같은 가장 보편적 대중들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한국 현실의 불안과 희망을 장르적 재미에 접목시키기, 일상만화의 디테일에도 현실의 난관을 제대로 직면하기 등이 인기작들에서 자주 보이는 트렌드다. 좀 더 장르코드 자체로 승부하는 경우, 세계관의 디테일이 인기의 필수조건처럼 된 상태지만 역시 현실 반영 공감대보다는 인기작으로서 덜 부각되고 있다(물론 이것은 극만화 위주의 언급이고, 작품 자체보다 시기적 맥락이 종종 더 크게 작용하는 학습/교양만화나 시사만화 등 별개의 흐름은 논외로 한다).

지금 만화산업에 필요한 것

높은 품질의 만화 작품들이 무관심과 망각으로 빠지지 않고 더욱 많이 인기작으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가능한 물리적 환경을 한층 발전시켜야 한다. 즉 만화산업의 발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해결해두면 좋을 과제들은 당연히 매우 많다. 불법복제의 효과적 단속, 청소년보호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며 지나치게 자주 기준이 바뀌는 검열의 칼날을 법적으로 방지해내기, 미진한 신간 홍보 루트를 업계가 연대하여 확대하기, 우수 작품에 대해 도서관 구매를 통한 기본 물량 소화 정책 등, 짧은 총론 칼럼이 아니라 두꺼운 보고서 책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필요한 것 하나를 꼽자면, 안정적 창작 노동 환경을 얻어내기 위한 창작자들의 조직화를 지목하고 싶다.

앞서 제시한 인기작 사례들의 태반이 대형 포털에서 ‘웹툰’ 형식으로 연재되고 종이책으로도 이식되어 출판된 경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위축되는 종이 출판 속에서 더욱 좁은 폭의 장르팬들에게 의지하며 더 소구대상을 줄이는 악순환에 빠졌던 종이잡지들과 달리, 포털은 개별 장르 코드보다 폭넓은 호소력을 선호했다. 그런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유통 비용이 종이만큼 들지 않으며, 또한 수많은 잠재 독자층을 만날 가능성 때문에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도전 게시판 등에서 서로 경쟁하며 사전에 인기와 품질을 검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화산업을 이루는 여러 영역 가운데 여전히 고전하는 종이출판의 시장 난맥상과 종이 만화잡지의 쇠퇴는 명백하지만, 작가를 데뷔시키고 작품을 폭넓은 대중에게 평가받게 하는 기제로 볼 때는 오히려 창작 공급이 더욱 풍부해졌다. 종이잡지 연재일 때 더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 양식들이나 세부 장르들에 대한 아쉬움은 적지 않지만, 전체로 볼 때는 그렇다.

그런데 이런 창작 공급의 호황이기에 더욱 간단하게 잊혀지는 부분이 바로, 창작 노동에 대한 정당한 처우다. 예술분야가 흔히 그렇듯 노동 댓가에 대한 뚜렷한 하한선은 늘 미비하고, 노동에 대한 상한선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대형 성공사례가 있으나 다수의 창작자는 저임금과 격무에 시달리면서 그 격차를 열정으로 봉합할 따름이다. 당신이 성공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된다는 성공신화 주입은 손쉬운 문제 회피 방법일 뿐이고, 결국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타 예술 분야 창작인들이 서서히 논의에 나서고 있듯(예를 들어 인디음악인 위주로 거론되고 있는 ‘음악유니온’ 등), 기초 노동권을 지켜낼 조직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존 만화가 단체들이 그런 부분을 수행하도록 임무와 조직을 개편하든 새로 어떤 단체를 만들든, 모든 실행력은 조직화에서 나온다. 즉 노동조합의 역할을 하는 만화창작인 길드 같은 것을 통해서 최소 원고료 기준, 기초 복지, 수익분배 협상 등 여러 가지를 공개적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권을 중심에 놓고 조직화를 시도할 때 한국에서 거의 예외 없이 대다수 분야에서 그랬듯, 험난한 가시밭길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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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oughts on “한국만화의 오늘을 말한다 [기획회의 339호/특집]

Comments


  1. 안녕하세요. 외계공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앨빈토플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정보를 올리는 일도 돈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만화산업에서 과거 대형출판사의 공모전, 포털에서 만화가지망생에게 지면을 제공함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포털의 웹툰이 ‘한국만화’이며 포털의 웹툰의 연재정책에 따른 웹툰의 대표작으로 ‘한국만화’의 트렌드, 발전을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공공기관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만화가지망생(독자)들에게 지면을 제공하고, 컨텐츠거래소를 설립한 후 중소출판사를 양성함으로서 한국만화의 다양성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고 창작자들의 조직화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 !@#… 외계공간님/ 포털의 웹툰이 한국만화의 현재 중요한 일부이며, 만화 일반이 사회적으로 인식됨에 있어서 트렌드의 큰 부분을 형성하고 있죠.

      공공기관에서 컨텐츠거래소 개념으로 지면을 제공하는 것은 운영 측면에서 경직되어 현실에 뒤떨어지기 쉽고, 그 결과는 이미 수년전 ‘코믹타운’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중소 출판사 양성은 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작품 단위의 출판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이루어져왔고, 새만화책, 길찾기 등의 만화 전문 출판사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2. 캡콜드님,
    현재는 포털웹툰이 한국만화의 일부라기 보다 전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지면 제공’이란 포털웹툰처럼 누구든지 원하는 때에 만화컨텐츠를 제작 후 인터넷에 노출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컨텐츠거래소 개념의 지면 제공을 해도 좋고, 지면 제공 후 컨텐츠거래소를 만들어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박석환님의 ‘코믹타운’은 만화가지망생에게 지면을 제공했다기 보다 원고를 확인 후 연재시켜줬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원종우님의 ‘길찾기’와 새만화책출판사는 지인들의 소개로 작가를 섭외, 컨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출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화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이런 중소출판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실테고, 중소출판사가 포털에 홍보할 수 없습니다. 학습만화 인력시장인 구인구직은 인터넷 만화동호회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바램은 포털의 만화컨셉만 따로 분리한 것과 같은 제2의 만화포털이 있었으면 합니다.

    • !@#… 외계공간님/ 시장의 구성과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저는 여전히 포털을 ‘전체’라고 부르기 힘들기에, 창작 활력 등의 요소 측면에서 ‘큰 부분’으로 칭할 따름입니다.

      코믹타운은 만협-콘진에서 출범시킨 후 한번 한계가 드러난 후 부천센터에서 인계받아 새 버전으로 또 한계가 드러난 케이스였으며, 정규연재 이외에도 초기 서바이벌 공모전 등이 현행 포털들의 도전란과 비슷하게 운영된 바 있습니다. 원래 최종 목표는 아예 누구나 거래하는 마켓플레이스화하는 것이었으나, 거기까지 당연히 못갔습니다. 만화’포털’로서 생각해볼만한 아이디어들은 컨셉에 거의 담겨있었으나, 공공기관(!)에 만협이라는 단체까지 끼니 사업 진행력이 바닥을 달렸습니다. 또 작년에 접힌 iOS용 Manhwa앱 문제는 또 어떻습니까.

      길찾기 등 중소출판사들은 중소출판사이기에 당연히 출판사측에서 작가들을 선정하고 섭외하며 시작했으며, 가지치기를 해나갔죠. 또한 다음 등 포털에서 신간소개가 이뤄지기도 했고, 기획/학습만화 구인구직은 동호회 외에도 학교현장을 매개로 한 포트폴리오, 직접 섭외 등 여러 경로를 통합니다. 제도적 문제로 방해만 받지 않으면, 알아서들 힘껏 길을 찾아나가죠.

      결국 제 요지는 ‘공공기관 지원’의 한계를 오히려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계기가 오겠죠.

  3. 캡콜드님,
    ‘코믹타운’에 그런 문제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허탈합니다.
    네.
    ‘공공기관’, 만협, 작가, 한국만화산업 종사자 모두 알아서 힘껏 길을 찾아가겠죠.
    말씀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 !@#… 외계공간님/ 더 어두운 이야기는 자체검열하기로 하고(핫핫), 뭐 계속 더 바람직한 방향들을 제시해야겠죠 저도.

  4. 우리나라가 너무 경제위주로만 급진적 성장을 하다보니 문화적 측면에 따른 이해도가 경제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한 상황이죠. 이제라도 좀 부가가치 사업이 높은 문화사업에 눈을 돌려야 할 텐데 아직도 잠재적 사회 악으로 규탄받고 있으니… 그저 공부밖에 모르는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