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와 저널리즘의 야매성 [차원/2006봄]

!@#… 3월 발간 예정인 서울대 언론학부 학생회 학회지 <차원> 이번 호에 기고한 글(비록 해당 지면의 마감 스케쥴을 완전히 재구축하는 민폐를 끼쳤지만…;;). 이 주제에 대한 논문 프로젝트도 따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가볍지도 아주 학술적이지도 않은 이 정도의 ‘기름진 에세이’ 스타일이 가장 맘편하고 솔직하게 쓸 수 있어서 선호. 내용이야 뭐, 결국 계속 해오던 이야기인 황우석 논문사기 사건과 저널리즘. 일종의 방향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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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언론 사기극으로 저널리즘의 야매성을 돌아보다

 

김낙호
(졸업생, 위스콘신대 언론학과 박사과정)

“저는 줄기세포 배양해본 적도 없고, 줄기세포를 볼 안목도 없었습니다”
(황우석, 2006/01/12 기자회견중 답변)

아아. 지난 5년간 한국인의 민족적 자긍심에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던 생명공학자 황우석의 몰락이자, 동시에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황우석이 커밍아웃하는 순간이었다. 속칭 ‘오랄 사이언스’라는 희대의 유행어를 탄생시킨 과학사기극이 확실한 전환점을 맞이하는 타이밍. 과학적 성과를 과학의 룰에 따라서 하지 않고, 미디어 홍보 전략이라는 룰에 따라서 진행해온 어떤 과학사기단의 모습이다. 미디어 학과들은 어서 황우석씨를 초청강사로 모셔올 것을 추천한다.   

사실, 애초에 이번 사태는 과학적 진위논쟁과 검증과정이라기보다 어디까지나 철저한 미디어 공방이었다. 인터넷의 융성과 함께 나름대로 민주화되었다고 스스로들 자부해오던 미디어 담론 형성 구조가 과연 어디까지 악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디까지 철저하게 너도나도 사이좋게 공범이 될 수 있는지 극명하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는 말이다. 사태 내내, 그리고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상당부분 사람들의 문제제기의 일반적 틀은 세포가 진짜인가, 그리고 황우석씨의 추가적 언론플레이 이후에는 누가 사기를 쳤고 당했나, 라는 지점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흔히 간과되는 사실은, 아무리 늦어도 (어처구니 없게도 모든 음모론이 사실이라고 해도 PD수첩 취재 도중 ‘자체검증 결과’가 나왔다는 11월 중순에라도) 논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 뒤에 한 작업은 사이언스지에 연락해서 논문 철회요청을 하고 실험 데이터를 재점검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 드러눕고, YTN을 청부취재 데려가는 등 총력동원을 해서 피디수첩을 무력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음주운전 단속에 걸릴 것 같으니까 단속하려는 순경을 화끈하게 밟고 지나간 셈이다. 자기 의지로 술을 퍼마셨는지 아니면 누가 몰래 콜라에 소주를 섞었는지 하는 변명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서 명백한 범죄행위 아닌가. 원천기술이 있든 알고 보니 연구원들이 모두 줄기세포에서 탄생한 클론들이든 간에 그것은 국익이니 뭐니 유야무야해서는 안될 움직이지 않는 팩트다. 그리고 그 밟고 지나가기 행위는 돈도 로비도 뭣도 아니라 바로 미디어 전략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정확히는, 피디수첩에 당초 약속한 2차검증용 세포 검사 샘플의 인계를 거부한 2005년 11월의 그 시점부터 이 사건은 과학 사건이 아닌 미디어전이 된 것이다.

막나가는 국익주의니 내재화된 파시즘이니 토론문화의 부재니 참 많은 생각이 가능하고 또 이미 많은 필자들이 지적하고 나섰지만, 이 글은 지면이 지면인 만큼 그 중 저널리즘이라는 영역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겠다. 굳이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야매 뉴스가 야매 담론을 주도하는 야매스러운 풍경”. 뭔가 허우대는 갖춰져 있어 보이면서도 사실 내실은 뭔가 이상한, 그래서 진짜 위기상황이 오면 확연하게 한계를 드러내며 마음껏 부작용을 떨치는 괴이함, 그것이 바로 야매다. 미디어 학문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바로 연구 대상이 되어줘야 하는 것이다.

 

야매 보도를 만드는 3대 왜곡 신기

한국에서 저널리즘을 야매스럽게 만들어버리는 요소로서 기자 전문성이니, 드라마적 보도 패턴의 문제니 하는 이미 지난 세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 하지만 아무도 실효적인 개선 노력에 성공하지 못했던 – 문제제기들은 여기서는 과감하게 생략하자. 사실 과학기자들이라는 족속들이 쇠고기(업계 속어로 속칭 ‘우석갈비’로 불려왔다고 한다) 받아먹고 보도자료 베껴 써왔다는 가공할만한 야매스러움 앞에서는 어떤 다른 이야기도 필요 없을 듯 싶지만, 그래도 이왕 자판을 꺼냈으니 뭔가 더 이야기를 해야겠지. 이 기회에, 황우석 사태에서 드러난 특징적인 패턴, 특히 자의적 왜곡을 담아낸 세 가지 필살기를 소개하도록 한다.

1) 소스의 왜곡: 근거를 확인하지 않고 미확인 소문을 그대로 내보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굳이 인용 내용을 팩트로서 보도할 때는 “두개 이상의 독립 소스로 같은 내용인지 상호 대조한 후 보도”해야 한다는 이미 깨진지 오래된 저널리즘 규범을 들먹일 수준까지도 가지 않는다. 뉴스는 정보고, 정보는 정보의 출처가 있다. 그리고 이미 이쪽 학문 분야의 핵심 연구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소스 신뢰성 아닌가. 그런데 그 신뢰성을 구체적으로 확보하기보다, 적당한 수준으로 얼버무리는 방식이 무척 애용되었다. 서울대 관계자, 검찰 관계자, 과학계, 국민, 네티즌 등등. 즉 확인 불가능한 애매한 집단이 무려 정보 소스로 제시되었거나 심지어 많은 경우 그나마 아예 제시되지도 않았다. 아예 인용 보도를 하면서 한국어 특유의 도치에 의한 주어 생략이라는 기법을 통해서, 주관적 견해를 객관적 사실로 만들어내는 사례도 빈번했다. 그 대표적인 기법이 바로 “드러났다”, “밝혀졌다” 등의 용어다. 예를 들어 황우석측 강성근 교수가 피디수첩의 검증이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를 살짝 틀어주면 “피디수첩, 비과학적 실험을 한 것으로 밝혀지다”가 되는 것이다. 혹은 최악의 경우에는 기자의 ‘상식’이라는 궁극으로 애매한 정보소스가 제시되었는데(“..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법 말이다), 그 상식이라는 녀석은 하필이면 알고 보니 장난이 아닌 야매였다는 것이 문제다. 과학의 룰에 무지하고, 국익이라는 꿈에 도취되어 이성이 마비되고, 진실보다 거짓 희망이 무조건 우선한다는 유치한 발상에 사로잡혀있고, 그런 절대 정의를 추구하는 자신들이기에 무슨 짓이라도 용납된다는 발상 말이다.

그런데 소스를 왜곡해서 얻는 효과는 극명하다. 정보를 분명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주장했는데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하고 사실 아직 검증은 안됐다고 기사를 쓰면 독자는 헷갈린다. 그보다 사실은 이렇다고 딱부러지게 잘라주는 것이 아무래도 더 맛있는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객관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상은 바로 근거 없음 그 자체. 확실한 야매다.

2) ‘우리 편’ 기사 쓰기: 기사가 “나는 우리 편이야!”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방식이다. 불편부당성 원칙을 버렸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기를 쓰며 남을 공격하고 나서는 방식 – 마치 일제시대에 조선인 순사가 더 악랄하게 굴었듯이 – 말이다. 특히 조선일보가 아주 극명하게 두드러졌는데, 피디수첩 취재 때문에 연구가 방해받고 있는 동안 일본이 원숭이 복제에 먼저 성공해버렸다는 다분히 의도적인 오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패턴은 사실의 검증보다는 정서적 울림을 목표로 할 수 밖에 없는데, 즉 정보제공보다는 입장 호응에 목숨을 건다는 말이다. 옳다/그르다의 잣대가 아니라, 누구 편인가의 잣대로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우리 편’이 이번에는 적어도 사태 초기에는 워낙 절대적이었으니까, 큰 망설임 없이 저널리즘도 너도나도 엄지세우고 달라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피디수첩 이전에 제보를 먼저 받았었다는 모 신문사도, ‘별도의 자체 검증’에 동원된 YTN도 전혀 망설임도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검증의 책임을 간단히 손 털어버리고, 손을 털지 않은 피디수첩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우리편/적 구도를 이해하면서 우리 편이 정의의 편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설득력있는 멋진 드라마틱한 구도가 필요하다. 우리 편이 절대악의 결사라면 솔직히 좀 찝찝하지 않은가. 그래서 주류 저널리즘, 그리고 그것에 동조하는 많은 일반인들은 당시의 구도를 언론이라는 절대 권력의 구태적인 횡포에 핍박 받는 순수한 국민 과학자라는 식으로 설정했다. 아 그래, 국민의 힘을 모아 정의를 위해 싸워보자,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 사실은 물론 정부와 정치계와 학계와 일반 여론 대다수가 황우석의 기반세력이었고, 피디수첩은 황당한 도전자였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힘들여 사실을 하나씩 검증하기보다는 대다수 주류 언론은 안전하게, ‘우리편’에 붙는 것을 선택했다. 언론사들이, 불경스러운 그 거대언론과는 달리 우리는 우리편이라고 강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MBC를 절대악으로서, 완전소중 황사마로 대표되는 ‘국익’을 저해하는 반민족적 구태로서 열심히 밟아주면 된다. 물론 평소에 MBC와 미디어 산업적으로 경쟁관계에 있어서 이번 기회를 잘 살려보고자 하는 정치경제학적 의도 역시 결코 가볍게 볼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연히 이런 행보는 ‘우리 편’이라는 니름의 연대 의식을 만들어낼 뿐, 상황을 바라보는 것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 특히 우리 편이 사실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당연한 성찰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홍혜걸 전문기자가 100분토론에 나와서 진실보다 국익이 먼저한다는 발언이나, KBS 추적60분 담당 전용기 피디의 “맹목적 팩트주의를 경계하자”라는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발언들이 그런 심경을 핵심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국익, 즉 우리편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정서적으로 결합하고자 하는 나머지, 국익의 실체도 검증하지 않고, 더 나은 진실에 대한 도전은 불경한 것으로 몰아가는 기법이다. 그 극단적인 결과가 바로 필자가 “간첩 저널리즘”이라고 명명한 보도패턴이다. ‘우리 편’이 절대적인 명제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내부 고발은 진실을 밝히는 용기있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들’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틀거리에서, 언론에서 수도 없이 제기한 “내부고발자가 누군지 궁금하다”라는 질문은 자동적으로 꽤 한국 현대사에서 친숙한 다른 명제로 치환되어 버린다: “간첩을 색출하자”. 간첩을 잡은 사람에게는 훈장과 포상이 내려지며, 모범적인 ‘우리 편’으로 인정받는 영광이 주어진다. 정보의 전달을 가장하지만, 실상 우리 편에 안전하게 소속되는 것에 오매불망 집중하는 것, 바로 야매 되겠다.

3) 뉴스의 양적 난립: 지나치게 많은 뉴스가 쏟아져 나온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의도적인 사실 왜곡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인터넷을 매개로 하자 더욱 더 가관이었는데, 쿠키뉴스라는 자사의 인터넷 뉴스 공급 루트를 활용해서 같은 보도를 항상 두 배로 늘려서 포털에 뿌려댄 국민일보가 극명한 사례다. 또한 연합뉴스 역시 통신사로서가 아니라 수용자에게 직접 뉴스를 제공하는 덕분에, 사람들은 연합뉴스의 직통 기사와 그것을 받아서 공급해주는 각 언론사 기사까지 같이 보느라 엄청난 정보 수용의 낭비를 경험했다. 나아가 특종경쟁의 와중에서, 하나의 새로운 내용이 담겨져있는 뉴스가 나오면 너도나도 검증 없이 인용해서 퍼부으면서 언론계를 한 바퀴 돌았다. 이런 뉴스들의 상당수는 상식적으로는 신문지면에 오를 수 없는 수준의 것들이었지만, 종이와는 달리 인터넷은 무한의 공간 아니던가.

따라서 단 한 가지 엉터리 왜곡보도도, 이런 경로를 거치면 대단한 근거고 정보 소스처럼 포장되는 패턴이 발생한다. 그리고 양적으로도 너무 많아서 독자의 입장에서도 하나씩 검증하기보다는 쉽게 참조 근거로서 인정하게 되어버린다. 양적 규모의 과잉은 올바른 독해와 판단을 방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게다가 양적 난립은 개별 기사에 대한 책임 회피에도 큰 도움이 된다. 첫째는 책임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내가 혼자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 보이지 않는가. 사람들은 조선일보를 비난하기 보다는 그냥 ‘한국 언론’을 비난하고 말테니까. 둘째는 하나의 기사에 대한 검증과 평가가 이루어짐으로써 자신들의 과오가 드러나기 전에 새로운 충격으로 덮어버리는 돌려막기 효과다. 일본 원숭이 복제가 사실은 피디수첩 취재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나서 그 모든 것이 조선일보의 악의적인 왜곡보도였음이 드러났을 때에는,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그 다음 사건으로 가 있었다. 사실 이런 돌려막기 패턴은 황우석 연구실에서 연구 성과를 과학의 룰에 따라서 논문과 데이터로 검증받지 않고 후속 연구를 언론 발표하면서 돌려막기한 방식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양으로 질적 문제점들을 커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야매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물론 세 가지 모두 이번 황우석 사태에 집중적으로 나타나서 그렇지, 원래부터 한국 저널리즘이 항상 가지고 있던 만성 지병 같은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 지병이 누구라도 알 수 있듯 확연하게 드러나 주었다. 비유하자면, 평소에는 그냥 가려운 정도의 치질이었다가 어느 날 뭘 잘 못 먹고 나니 확실히 피가 줄줄 흘러서 바지를 적셔주었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런 증세들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차례다.

 

야매의 완성: 알고 보니 브레이크가 없다

앞에서 저널리즘 기법적인 측면을 살펴봤다면, 저널리즘의 사회적, 시스템적 차원에서도 한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그것은 바로 저널리즘 시스템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는 주장 정도가 아니라 아예 “틀린” 주장을 사실인양 유통시켜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넘어간다는 구조가 드러난 것이다. 비유하자면, 빨간 신호등에 건넜는데 경찰이 나와서 잡지 않은 셈이다. 아니, 경찰이 옆에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 더 합당한 표현이겠다. 설상가상으로 너도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호등을 무시한다. 나만 안 건너면 상대적으로 손해 보는 상황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건넌다. 그 결과는 당연히 교통질서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서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대형 교통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수직상승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개별 언론사의 피해 이전에 언론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회적 공신력을 잃어버리고, 담론 형성 구조가 엉망으로 왜곡되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단속’이 필요한데, 그런 단속이 전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저널리즘 규범 같은 도덕적 잣대는 일정부분 자의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피디수첩은 취재과정 문제로 방송폐지 위기에 몰렸으나 청부 취재와 왜곡보도를 일삼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 과정을 보도한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을 고소하기까지한, 우석방송 YTN은 적당히 유야무야시킨 ‘여론’의 힘을 보면 알수 있지 않는가. 가장 일반적인 ‘단속’ 시스템인 언론중재위원회는 사실상, 피해자가 중재를 신청해야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 경우 허위 왜곡보도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워낙 불특정 다수의 독자 일반 또는 ‘사회적 담론 구조 전반’일 때, 아니면 법적 절차를 신청하기에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는 상황의 사람들(예: 피디수첩에 제보를 한 ‘제보자A’)이 허위보도의 피해자일 경우 도저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 방송윤리위원회는 어떨까. 사과방송을 명령해서 사과방송이 몇 번 있기도 했지만, 사과방송의 수 십배에 더 이르는 미확인 허위사실들을 뿌려대는 바람에 사실상 그 처벌효과는 간단하게 상쇄되고도 남는다. 게다가 사과방송에 대한 관심보다는 더 빠르고 새로운 속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언론과 수용자들의 암묵적 합의는 더욱더 처벌효과를 미미하게 만든다. 특히 누구나 다 그러고 있다 보니, 일거에 모두 단속하기도 힘들고 말이다. 이런 요소들이 맞물리니 단속 없는 폭주가 반복되었다. 주류 언론사들의 패턴이 이 정도라면, 더욱 더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인터넷 언론과 커뮤니티들은 더욱 더 가관일 수 밖에 없다. 특히 허위 기사를 날조해서 뿌리는 것을 ‘낚시’라는 명목으로 뿌려대는 행위는 어디로 보나 사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단속효과가 있는 강력한 처벌 없이, 일부 관련단체의 성명서 발표와 학계의 규범론 연구 몇 가지 정도로 이런 상황이 단 1밀리미터라도 개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감히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드려야 한다고 필자는 단언하는 바다. 아무리 개별 구성원들 가운데 뜻깊은 의지로 상황 개선을 부르짖는 분들이 있어도, 강력한 브레이크의 도입 없이는 시스템 자체가 야매성을 벗어날 수 없다.

브레이크 없는 시스템을 지탱해주며 또한 동시에 그 결과이기도 한 것은, 그런 야매스러움을 바라보는 일반 수용자층의 모습, 즉 뉴스 수용에 대한 성찰 부재에 의한 동의의 기조다. 개별 언론이나 언론계에 대한 불신은 이미 넘쳐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비판적 수용을 꾀하기 보다는 단지 욕을 하기만 하고 넘어갈 뿐인 언론 소비 방식 말이다. 사회적 권위로서의 언론에 대한 욕을 할 뿐, 일상화된 뉴스 소비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양적 질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재하는 것이 바로 그 문제점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장과 생각에 유리한 뉴스는 근거 없어도 무비판적으로 흡수하고, ‘우리 편’이 아닌 뉴스는 내용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맹목적으로 언론사의 평소 횡포가 어쩌니 하면서 욕해서 깎아내리는 패턴으로 이어진다 (특히 나름대로 생각 있다고 명성을 지닌 시나리오 작가 송지나씨가 홈페이지에서 밝힌 피디수첩 보도에 대한 비판은 가히 압권이다). 이런 와중에서, 체계적인 기준에 의한 단속과 처벌이라는 브레이크를 도입하는 것은 애시당초 논외의 것이 되어버린다. 뉴스 생산의 규범론 만큼이나, 뉴스 수용의 규범론도 앞으로 널리 발전시켜 봐야할 분야다.

여하튼 요약하자면, 언론의 자유도 모든 자유와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무제한 공급이 아니라 딱 책임을 지는 만큼까지만 주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이 현실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이미 충분히 잘 만들어져있는 윤리강령 같은 규범론 손질하는 것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허위보도, 왜곡보도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처벌 방법을 연구하고 법제화 시키는 것에 총력 질주해야 한다.

 

야매 저널리즘을 넘어서자

두서없이, 이번 황우석 언론 사태를 통해서 저널리즘 영역에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만들어야할 지점들을 마구 나열했다. 어찌 보면 하나하나가 다 수많은 논문 주제들이며 나아가 정책제안 연구, 운동 거리들이다. 이런 귀중한 사건을 실시간으로 겪은 지금의 연구자들과 연구 지망생들은 어찌 보면 대단한 주제/소재 덩어리를 잡은 셈이다. 이것이 보다 나은 언론사회를 위한 건설적 에너지로 작용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또다시 이따위 소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서 기억 정도라도 해주면 다행이다. 어찌되었든, 이번 기회에 드러난 저널리즘 – 생산과 수용 모두를 포괄하는 사회적 저널리즘 시스템 전체 – 의 총체적 야매성에 대해서 ‘아니 이거 좀 고쳐야겠는데’라고 문제의식에 시동이 걸려주기를 바란다. ***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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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http://t.co/L9CAlBPT 대학생 자치매체의 존재감을 강화하자 말했는데, 이번에 쓴 잡스 정리글도 고대문화, 수년전 황우석/저널리즘 문제 정리도 http://t.co/yIDUITnk 차원. 적당히 무겁지만 무게잡지 않기 딱 좋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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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황우석 사태와 저널리즘의 야매성 [차원/2006봄] http://t.co/3t3bKVjR 좀 지나간 이야기지만,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론을 야매로 만든건 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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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C과제와 예절을 논하시는 분의 https://t.co/gxkjDYkh 이름이 친근하여 생각해보니 황우석 줄기세포사기 당시 때로는 국익을 위하여 진실을 덮자던 그 분, http://t.co/yIDQbj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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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이버덧글 백업]
    – 토리실 – 현석이가 총대를 메고 부활시키는 차원 프로젝트이던가요? 완성되면 한 권 받아볼 수 있으려나… 2006/03/08 12:17

    – 한나라 – 저널리즘이 생산과 수용의 관계가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관계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과점인지 독점인지 완전경쟁시장인지는 좀 더 고려를 해봐겠지만, 정보의 상품화가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상품화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은, 댓글 수준에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죠? ^^ 기회되면 한 번 정리해서 올리죠.) 2006/03/12 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