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으로서의 락 음악 – 『창고라이브』[기획회의 070915]

!@#… 난데없이 직장인 락밴드 영화가 두 편이나 동시개봉해서 그저그런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락덕후 몸부림과 좌절의 타이밍에 지난번 원고를 끄집어내고 말았다.

소통으로서의 락 음악 – 『창고라이브』
김낙호(만화연구가)

90년대 초중반 즈음, 한국에서 대중문화 담론이 폭발했을 당시 락 음악은 무슨 대단한 저항정신의 상징이어야만 한다는 듯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거품이 꺼진 후 남은 실상은, 락 음악도 다른 여느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 시작은 기존 다른 장르들에 만족하지 못해서 탄생했고 대중적인 무언가를 두드리며, 때로는 상업성에 찌들기도 하고 때로는 예술성을 꿈꾸기도 하는 또 다른 대중음악이었다. 다만 음악의 형식상 좀 더 원초적으로 열정적이며 강렬하게 내지를 수 있는데(하기야 그런 성향 자체가 이미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반골’이지만 말이다), 예술적 성취에 목숨 거는 다른 온갖 고상한 장르들보다도 훨씬 편하게 소통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원래부터 그렇기에 기타연주 기교와 찰랑거리는 갈기머리 휘두르기, 위악적 무대설정으로 포장된 80년대 주류 락이, 90년대 초에 그저 동네 청년들 같이 차리고 나와서 젊은 세대의 불안과 자조를 거칠게 내지르던 너배나에게 밀려났던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저항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크고 작은 억눌림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의 감성을 솔직하게 락 음악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그저 창고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굉음을 낸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좀 더 솔직하게 우리 이야기를 하겠다는 욕망,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소통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창고라이브 – 다섯 개의 청춘 송가』(지피 작/소민영 옮김/세미콜론)는 십대 청소년들이 만든 아마추어 락 밴드의 이야기다. 수련과 성공의 모험담이기는 커녕, 밴드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그냥 세계 어느 동네에나 하나쯤 있을 법한 동네친구 밴드의 연습기다. 이탈리아 작가의 프랑스어권 만화작품이지만, 약간의 번안만 하면 홍대 앞 여느 펑크밴드의 사연이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줄거리는 크게 복잡하지도, 극적이지도 않다. 동네 소년들이 모여서 밴드를 하고, 그들 중 한 명이 아버지에게 창고를 연습실로 빌린다. 각자의 사정 속에서 락음악을 하는 이 소년들은 자신들의 데모 테이프를 만들려다가 여차저차 사고를 치고, 그 덕분에 결국 그 창고에서 쫒겨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창고라이브』는 밴드가 주인공이 되어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락 음악을 하러 창고에 모인 그 친구들, 그 평범한 청년들이 락으로 내지르고 싶은 그 사연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밴드는 데모테이프를 만들어서 음반을 내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욕망 정도는 있지만, 밴드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야망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아니다. 그저 삶이 있고, 그 삶이 지지부진하고, 그 속에서 응어리진 불안과 불만들을 음악으로 토해내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일 뿐이다. 이 만화는 밴드 배틀에 나가서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삶을 살면서 한 번씩 모여서 연주를 하고 있는 이야기다. 아마투어 밴드의 일상인 셈인데, 야망으로 불타오르는 청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삶의 소소한 단면들 속에서 살아나가며 음악 또한 하나의 일상이 되어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삶의 사연들은 구질구질하면서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그렇다고 해서 공상으로 도피하고 싶을 정도로 지옥 같지도 않은 애매한 구석 투성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온다. 다혈질에 트러블메이커인 보컬 스테파노는 성격이 알고 보니 자기 아버지와 꼭 닮았으며, 어설픈 나치숭배자를 자처하는 드러머 알렉스는 그저 자기에게 없는 아버지상을 갈구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렇듯 각자의 사연을 가진 밴드 멤버 소년들은 점점 밴드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만만한 것은 없으니, 데모테이프를 녹음하려고 할 찰나에 앰프가 망가진다. 그러자 교회 지하실에 있는 밴드 장비에 눈독을 들이고 결국 훔쳐내기에 이른다(주인은 교회밴드일 것이라고 단언했는데 알고보니 데스메탈 밴드라는 아이러니란). 하지만 이 정도의 사건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여전히 성공을 향한 욕망이나 갈등으로 흐르지 않는다. 밴드 멤버들 사이, 그들의 가족들과의 사이의 이야기가 한층 더 강하게 계속될 따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락음악이 있다.

이 작품은 부제에서 시사하듯이 마치 하나의 음반처럼 구성되어 있다. 풀 앨범이라기보다는, 동네 아마투어 밴드가 저렴하게 녹음했을 법한 EP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작품은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데모로 녹음한 곡의 수와 같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는 밴드와 멤버들이 겪는 삶의 단편과 갈등이 제시되다가 말미에는 그 경험들을 녹여내며 창고에서 음악을 하는 (혹은 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모습으로 끝난다. 인쇄매체라서 비록 노래 소리는 직접 들리지 않고 과도한 음성기호로 굉음을 나타내며 독자의 청각적 상상을 자극하지도 않지만, 그들의 연주하는 모습에는 솔직함이 가득하다. 매끄러운 연주와 5옥타브 보컬이 아니라, 다소 미숙하고 거칠지만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락에 도취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드라마틱한 서사 중심이 아니고, 집중하기 좋은 친숙한 미형 캐릭터들의 향연이 아니라는 것은 한국 독자는 물론 만화를 대중오락으로서 편하게 즐기려는 모든 이들에게 그다지 장점이 되어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마치 진짜 아마추어 창고 밴드의 연주마냥 솔직한 열정을 찬미한다. 특히 집중선이나 효과음 등을 배제하고 그저 칸을 부수고 나올 듯한 역동적인 시점연출과 동작 포착으로 연출하는 이들의 연주장면은 에너지가 넘쳐서, 연필스케치와 채도 낮은 수채화풍의 그림이 줄 법한 담담한 서정성과는 다른 뜨거움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알기에, 그리고 그들이 그 이야기를 솔직함으로 연주 속에 풀어나가고 있음을 알기에 이들의 연주장면을 보면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까 하는 단편적 궁금함보다는, 소년들의 감정적 발산과 소통을 하게 된다.

물론 소통되는 내용에 얼마나 공감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단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토막을 열정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독서 경험의 쾌감은 확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창고 라이브』는 락 음악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솔직한 소통 능력을 다루는, 아니 그 소통을 작품 자체에 소화해내는 미덕을 가진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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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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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라이브
– 지피 (잔 알폰조 파치노티) 지음, 소민영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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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소통으로서의 락 음악 – 『창고라이브』[기획회의 070915]

Comments


  1. 저에게는 얘네들이 꽤나 미형이라 책상 앞에 마지막 컷을 붙여놨습니다! ㅋㅋ

  2. !@#… 남자 캐릭터 미형의 기준은, 야오이 동인물이 상상이 가느냐 안가느냐의 차이입니다. (거짓말이지만)

  3. 하하핫 (그런데 생각해보고 다시 보니 상상이 가는데요. 크훼훼) / 카페에 링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