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적 재미가 넘치기에 고전이다 – 주먹대장 [기획회의 343호]

!@#… 이미 재평가도 많이 된 작품이지만, 이번 기회에 내 방식의 평가도 한마디 남겨둘 필요가 있어서.

 

현재적 재미가 넘치기에 고전이다 – [주먹대장]

김낙호(만화연구가)


만들어진지 시간이 상당히 지난 만화를 회상하며 호평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향수에 기대는 것이다. 어릴 때 즐겨 읽었다, 나에게 소중했다 같은 접근법인데,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정직하게 반영되지만 정작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만화는 워낙 대중문화 중 대중문화로서 사랑을 받아왔기에, 열렬한 향수의 대상이 되기에 바빠서 그 이상의 것으로 평가받는 것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감이 있다. ‘맞아 그 작품을 그 때 즐겼지, 재미 있었어, 좋을 때였지’라는 기분 좋은 향수에 젖느라 ‘어라, 지금 다시 보니 그 작품이 그렇게 대단했던 것이었구나!’라는 부분에 초점이 할애되지 못하는 셈이다.

후자가 바로 ‘고전’의 영역이다. 만들어진 후 긴 시간동안 평가받아오고, 무엇보다 그 후에도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지속적으로 평가를 할 만한 가치를 인정받는 그런 측면들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7-80년대를 호령하던 최고 인기 장르 가운데 하나였던 명랑만화가 90년대의 트렌드 속에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맥이 거의 말라버렸던 실태를 상기해볼 때, 고전이란 지금 봐도 무언가 이어져있다는 느낌보다는 예전에는 대단한 작품이었다고 꼽으며 역사 사료로 만들어버리는 식이 되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어떤 예전 작품에 오늘날도 사람들이 매우 재미있어하는 어떤 요소들의 원형이 담겨 있음을 발굴하여 지금의 재미와 맥락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끊임 없이 현재적 재미 요소에 대해 재발굴되곤 하는 고전만화가 바로 얼마 전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화잡지 ‘어깨동무’ 판본을 양장본으로 복간한 [주먹대장](김원빈 /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다. ‘주먹대장’의 지속성은 작품 자체의 실제 창작이 이뤄져온 세월만으로도 이미 대단하다.1958년에 처음 만화대본소 단행본으로 등장하여, 작가에 의해 여러 차례 새로 그려지며 90년대 초반에도 다시금 연재되었다.

[주먹대장]의 줄거리는 사극형 모험활극의 모범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로 슈퍼히어로물의 요소가 강하다(여기에 관해서는 장상용 기자가 주먹대장 캐릭터를 ‘엑스맨’ 등장인물인 울버린에 비견한 글이 무척 흥미롭다). 조선 시대 어느 집안에서 한 아기가 탄생하는데, 한쪽 선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런 특출함을 재능으로 여기기보다는 재앙으로 여기며, 온 마을의 또래 꼬마들은 병신이라며 따돌린다. 아무리 그 힘으로 마을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한다 한들, 주민들은 고마워하기보다는 더 두려워하거나 따돌린다. 하지만 한 선인을 만나고, 특히 다른 식으로 특별한 모습과 그에 따른 힘을 가졌으나(발이 크다) 그것을 이미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맨발장군을 보며 그 힘을 의롭게 써야함을 깨우친다. 그리고 그는 여러 모험에 나서며 추적자들을 따돌리며 악인들을 물리치며 사람들을 구하고 소년영웅 주먹대장이 되어나간다.

[주먹대장]은 민담의 요소들을 모험활극 형식으로 풀어냈다거나 슈퍼히어로의 코드를 적절하게 녹여낸 재미에 대해서는 별로 크지도 않은 만화 평단에서 이미 적지 않은 평가가 이뤄져온 작품이다. 특이한 출신, 하지만 그로 인한 불우하고 오해받는 성장과정, 능력을 올바른 길로 사용할 결심을 하게 되는 인연의 전환점, 그리고 다른 능력자들과의 대결과 협력을 통한 모험의 과정과 결국 얻어내는 영웅의 위치라는 기본적 재미의 구조에 맞물려 함께 살펴볼만한 내용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이런 모든 재미는 단지 이야기에 소재로서 동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각적 표현과 연출, 잘 다듬어진 대사로 만들어진 만화로서 탁월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완성도야말로 이 작품을 다른 수많은 훌륭한 고전만화 가운데에서도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예를 들어, 현재의 장르만화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캐릭터들이 상당한 미형이다. 당대 어린이 만화들이 살인적인 원고 제작량이나 인쇄 기술의 한계, 그림 도구와 표현 기법의 제한 등의 이유로 인해 해학적 단순화나 극화풍의 거칠음으로 상당부분 치우친 감이 있었다면, [주먹대장]은 캐릭터들을 미형으로 묘사하는 것에 공을 들였다. 단순히 그림체가 둥근 눈이라는 것이 아니라, 정갈한 표정 묘사와 역동적이면서도 정확한 인체구도 등이 돋보인다. 투박하고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미형 캐릭터의 시각적 매력을 극대화하는 접근을 취한다.

캐릭터의 시각적 매력은 기본적 디자인에서도 빛을 발한다. 주인공의 비대칭 모습이 가장 좋은 예다. 작가가 영감을 얻었다는 어떤 갑각류의 모습처럼, 한 쪽 주먹만 확실하게 커다랗게 묘사되는데, 작품 속에서는 그것이 징그럽게 받아들여지지만 독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다른 누구보다도 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다른 팔보다도 큰 주먹은 한 눈에 봐도 초월적으로 강한 힘을 나타내준다. 그 큰 주먹을 휘두를 때 느껴지는 쾌감이란, 설정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능력들과 달리 시각적으로 호쾌하다. 맨발장군 등 다른 특출한 능력의 소유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능력이 곧바로 보이도록 만들어져있다. 이런 식의 캐릭터 디자인은 현재에 와서는 하나의 표준 기법처럼 되었는데, 거의 원형적 모습이자 대단히 효과적으로 구현했던 모습을 바로 이 고전 작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시각적 표현의 뛰어남은 주인공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배경 묘사, 사건 전개 전반에서 오밀조밀함을 통해 발휘된다. 애초에 모든 전개가 비약적으로 생략하고 과감하게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닌, 정밀하게 채워 넣는 방식이다 보니, 주먹대장의 탄생 과정을 묘사하는 설화풍 만담의 구수한 분절이 되었든 개별 싸움 장면이 되었든 장면 하나하나를 깊숙이 음미하게 만든다. 처음 읽을 때 자연스럽고, 다시 읽을 때 절묘했던 부분을 하나씩 다시 찾아낼 수 있게 만드는 연출이 적지 않다. 향수가 아니라 고전이 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 바로 다시 찾아볼수록 재미있다는 것을 만화 특유의 매력인 시각적 표현력의 이야기 전개에서 탁월하게 구현해낸다.

옛 시절의 향수가 아니라 지금의 재미로서, 역사 사료가 아닌 여전히 다시 들춰보게 만드는 고전으로서 [주먹대장]은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작품이다. 옛 만화를(사실 따지고 보면 소설이나 영화 등 여타 서사문화에서도 항상 마찬가지다) 읽을 때 보통 조금씩 거슬리는 다소의 옛스런 말투나 고풍스러운 전개 정도는 사극이라는 설정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책을 펼치면, 추억이나 만화사적 의미 같은 것은 다 차치하고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이야기가 멋지고 재미있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주먹대장 1
김원빈 지음/한국만화영상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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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그러니까 지금 발간호): I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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