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전쟁능력시험 – 방과 후 전쟁활동 [씨네21 컬쳐하이웨이/130429]

!@#… 게재본은 여기로. 편집부에서 붙여준 게재 제목 ‘대학전쟁능력시험’이라는 말이 너무나 착착 달라붙는다.

[방과 후 전쟁활동] (하일권)

오늘날 한국에서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는 내용의 작품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세계 열강들의 정치구도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초인적 전투 영웅의 활극을 그려볼 수도 있다. 전쟁의 상흔으로 쓸려나가는 민초들을 구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층 더 오늘날 한국사회라는 특수성을 날 것 그대로 반영하려면, 좀 다른 것이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해소된 적 없는 전쟁 설정 속에서 장기화된 평화적 일상, 그 틈바구니에서 유지된 사병 징병제의 보편성 말이다. 전쟁에 대한 의식보다는 일상의 통과의례처럼(청년이 들어가서 아저씨가 나오는) 되어버렸지만, 배우는 것은 전투수행 기술이고 실제 사태가 터진다면 총을 들고 실전에 투입된다.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방과 후 전쟁활동](하일권)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찔러내는 만화다. 전쟁의 대상은 북한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출몰해서 인류를 살해하는 정체불명의 공 모양 물체들이고, 전투에 내몰린 이들은 특전대가 아니라 대학입학 가산점을 대가로 긴급 징병된 고등학생들이다. 탄피를 회수해야 하는 한국군 방식 기초훈련과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 일상의 기분을 유지하다가도 갑자기 전시상황에 휘말리는 학생들의 혼란, 늘 갑작스러운 위험과 죽음을 목격하며 겪는 패닉 등 현실성 넘치는 묘사로 가득하다. 그러다보니 이 작품은 피상적이고 감상적으로 각자의 기구한 사연과 비극적 묘사 및 그것을 통한 끈적한 반전 메시지를 늘어놓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저 지금의 상황에 어떻게든 적응하며 대처하기에도 바쁘고, 사람들간의 갈등도 협력도 그 안에서 이뤄진다. 만약 이 기조를 결말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다면, SF학원물의 탈을 쓴 가장 현실적인 군대만화 중 하나가 탄생할 조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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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컬쳐하이웨이’. 주기적으로 특정 문화항목을 강조 편집하는데, 만화가 강조되는 주간에 로테이션으로 집필 참여. 가급적 진행중인 작품에 대한 열독 뽐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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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대학전쟁능력시험 – 방과 후 전쟁활동 [씨네21 컬쳐하이웨이/130429]

Comments


  1. 김구래입니다. 기억하실런지? 전에 데즈카 오사무 특별전 한정판 도록(?)에 관심이 있어 여쭤 본 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소개한 만화 제목은 감칠 맛 나네요.^^ 뽐뿌질이 먹힙니다.
    소개한 책인줄 알고 구입하려고 했더니 네이버니 구입할 수가 없겠네요. …
    그리고 글 보고 생각나는 의견이 있어 몇 자 적습니다.
    전쟁 상황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말씀하신대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상적으로 이해합니다. 저도 복무하는 동안에 그랬었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었습니다. 저는 나이를 더 먹고 조금은 현실적으로 전쟁 상황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한 전쟁의 참상은 전투 중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 편을 쏠 수 있고 사실 쏴도 모를 거라는 것, 게임에서 보여주는 헤드샷을 자기도 당할 확률도 높다는 것 등이죠.
    그런데 아마도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보통 군 복무가 끝나면 그 시절은 환타지 영역이 되어서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으니까요. 소개하는 작가에게서 덕후의 냄새가 나는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약간 다른 의미로 진지하니까 전쟁의 참상에 접근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재미난(?) 사실은 고급 지휘관들도 전쟁의 참상에 별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군 구조상 비현실적인 전쟁, 전투보다 평시의 군 유지가 주업무라는 점, 그리고 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대령급 이상 고급 지휘관도 고작 나이가 40대 중후반이라 현재는 60년대생입니다.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전투 경험도 북한 접경지에서 대응이 고작이라 생각보다 피상적으로 전쟁을 봅니다.
    그 사실은 예비군 훈련 때 알아봤습니다.^^ 저는 나름 진지하게 몇 가지 물었더니 “뭘 그런 걸 걱정하나 다 잘 준비하고 있어…” 반응이더군요. 그때 제 생각은 “전쟁나면 승패와 관계없이 여럿 죽겠구나?”와 “위 아래가 별 생각이 없는 게 딱 제1차 세계대전 상황이구나!”였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많이 안 알려졌을 거”란 말씀을 가끔하시는데 그냥 개그죠?^^

    • !@#… 김구래님/ ‘예상대로 많이 안 알려졌을 거’ 라는 말은, 저는 농담으로 던지는데 알고보면 매우 종종 그냥 현실이었더라스러운 결과더군요(핫핫)

  2. 농담이 현실이 되면 그것도 일종의 저주(?) 아닐까요? 농담을 안하시는게 어떻까요.^^~ 그리고 소개하신 만화는 몇 개 봤는데 제 생각과는 달리 시리어스 하지 않더라구요. 그 분야가 꼭 시리어스할 이유가 없기는 하지요. 쓰는 용어는 현재 학생 세대인데 벌어지는 상황은 군입대 이후 가능한 상황이라 그런 부조화에 따른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댓글 길이를 신경썼습니다. 쓰다 보면 흥분해 길게 쓰는 스타일이라 써놓고 보면 동문서답 댓글이 될 때가 있어요.^^ 바로 앞 댓글도 그런 경향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