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을 위한 12가지 담론 전략 가이드

[주: 이후에 확장판으로 증보한 글.]

!@#… 정치에 대해서, 항상 심심하면 들리는 이야기가 바로 야권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반대세력으로만 보여서 항상 밀린다는 것이다. 그 세부 내역에서는 민주화 담론이 유통기한이 지났다, 다시 서민의 생활 속으로, 보다 선명하고 과격한 진보 표방 등 여러가지가 진단 및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뭐랄까… 큼지막한 정론은 넘치지만 전략으로서의 노하우는 없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던지는 떡밥, 12가지 담론전략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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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만한 실용문을 위한 10가지 팁(2/3): 리뷰

!@#… 호응 폭발은 없었으나 그래도 2탄. 쓸만한 실용문을 위한 가이드, 그 두번째 시간: “리뷰” 편. 가이드의 속성에 대해서는 첫회 ‘소식글’편 참조 요망(클릭). 저널리즘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도 글들을 쏟아낼 수 있는 온라인의 속성상(아니 사실 많은 기관화된 언론들도 언론규범을 좀처럼 안지키고 있지만 OTL), 개개인들이 정제된 스트레이트 기사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소개성 평가를 내리는 글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 중 특히 자신들이 보고 즐긴 작품, 혹은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흔하다. 그럴 때 이것만 따라하면 나도 간지나는 온라인 평론가!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최소한 기본기를 다지고 올바른 방향을 잡는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 리뷰: 감상이 들어가지만, 결국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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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만한 실용문을 위한 10가지 팁(1/3): 소식글

!@#… 말이 되고 쓸모도 있는 실용문을 쓰는 것은 참 쉽지 않다. 뭐, 사실 정식으로 잘 가르쳐주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까. 그나마 잘 쓰는 사람들은 그냥 그럭저럭 짬밥으로 쌓아온 것이거나, 아니면 원래 그쪽으로 재능이 출중하거나. 덕분에, 어느정도 훈련을 받았다는 전문 언론인들의 결과물도 바보같은 수준미달의 지면낭비에 불과한 것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누구나 자기 지면을 꾸리는 시대 아니던가. 물론 멱수함수의 법칙에 의거하여 잉여급 찌질활동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해도, 뭔가 제대로 자신만의 소식과 감상과 주장을 펼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쓸만한 실용문을 작성하기 위한 가이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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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적인 댓글논쟁을 위한 10가지 가이드

!@#… 앗! 하면 바로 개싸움이 되어버리기 쉬운 댓글논쟁에 관한 한두가지 간단한 이야기.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만에 하나 댓글로 격한 논쟁을 주고받는 통에 무언가 아이디어든 뭐든 얻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보고 싶다면 생각해볼만한 몇가지 원칙들이다… 물론 capcold라고 항상 이것들을 다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격적으로 대해라거나 논리적으로 답변하라는 말이야 이미 다른 분들도 많이 하고 계신 만큼, 좀 더 기술적인 차원에서 10가지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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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과 5단계 패닉 방지 방법

!@#… 모기불님의 “멜라민코팅 프라이팬?“에서 트랙백. 그러고보니 멜라민 수지는 중3 당시 기술 시간에 플라스틱의 분류 가운데 열경화성 운운하면서 (추가) 불에 직접 올리는 가열도구에 적합하지 않다고 이미 배운 적 있다(덧글로 알게 되었지만, 테플론도 분류상으로는 열경화성수지에 해당된다고 한다… 의심을 제기하다보면 여러가지를 새로 알게 된다). 그것으로 후라이팬 코팅을 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그렇게 쉽게도 굳게 믿을 수 있다니, 불안해 하고 싶어하는 강렬한 욕망 앞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한가보구나 싶다. 뭐랄까 이런 것에 일일이 낚이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많은 분들이 무언가에 불안해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안해서 못견디는 습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순적이자 중독적이며, 정도에 따라서는 변태적이다(아무리 “가족을 위한 걱정” 운운하며 미화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심지어 나는 당신들보다도 더 불안하다고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습성마저 보인다. 불안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처럼 보인다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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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중단운동에 관한 얍삽한 잡상

!@#… 방송통신심의위의 광고중단운동 관련 게시물에 대한 결정이 일파만파다(아니 이것도 이제는 과거형이지만 – 삭제당하면 당하는 대로 알아서들 구글doc으로 나갔다). 사실 법조항상의 심의 조건이라는 절차적 문제는 어차피 도구적 사안이고, 소비자 불복종이 위냐 기업활동의 자유가 위냐 하는 기본 가치관이야 결국은 “둘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뻔한 결론 밖에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모든 형태의 불복종을 용인한다고 할 경우 그것을 교묘하게 악용해서 특정 경쟁 기업 말려 죽이기에 동원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불복종을 용인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로서의 가치 자체가 없다. 그렇기에 무언가 움직임을 만들고 싶다면, 그 균형 위에서 얍삽하게 상황을 유리한 쪽으로 가다듬는 것. 우선 그 균형은 어디 있을지, 큰 것부터 좁혀나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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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서의 논문 쓰기에 관한 잡설[서울대 사이버문화 2007-1학기]

!@#… 서울대 정보문화학 연합전공의 2007년 1학기 강좌 ‘사이버문화’에서 학생들이 작성한 영어논문 지도에 참여한 후, 학기말에 제작한 자료집에 간단한 작업소감 겸 덕담(?)을 의뢰받아 쓴 글. 항상 그렇듯, 이런 기회에 나 자신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볼 수 있게 된다. 비단 논문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진지한 사실에 근거한 논설문” 쓰기에 해당될 수 있으리라.

[후기] 소통으로서의 논문 쓰기에 관한 잡설

김낙호 (위스콘신대 언론학과 박사과정 / 영어논문 에디터로 참여)

솔직하게 말해서, 영어로 논문을 쓴다는 것은 참 귀찮은 일이다. 특히 한국의 사례를 연구하는 논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고유명사의 영어 표기 같은 자잘한 문제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국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워 죽겠는데 무려 영어로 옮기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은 거의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왜” 굳이 영어로 써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 그 자체다. 어차피 한국의 사례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보도록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영어로 스스로를 자학하는가. 사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귀찮음이고 당연한 회의적 반응이다. 이런 저런 글을 좀 더 많이 써본 편이고 현재 미국에 유학까지 나온 상태의 필자라고 할지라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뇌리 한 켠에 항상 간직하고 있는 침투적 사고다.

그래도 영어로 쓰는 이유, 영어로 쓰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소통 때문이다. 연구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소통량에 따라서 그 가치가 결정된다. 더 넓고 깊고 다양한 층위와 성향의 동료 연구자들에게 소통이 될수록, 그래서 학문적 지식체계라는 커다란 사회적 집단지성의 연결망 속에 놓여진 보다 크고 강력한 노드가 될 때 연구는 효과적으로 자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즉, 영어로 연구논문을 쓰는 것은 한국학계의 영미권 학문에 대한 종속이나 사대주의적 타협이 아니다. 바로 내 연구가 보다 더 중요한 지식으로 기능하고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는 자발적인 소통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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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논술 근성을 키우기 위해 기억할 것들 5가지.

!@#… 공교육 이야기를 하다가 여차저차 논술의 기초 테크닉(?)을 이야기하게 된 포스팅, 약간의 애프터서비스. 덧글에 기린아님이 달아주셨다시피, 그 어떤 테크닉도 기본적인 의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시험용 논술이든, 블로그의 자기주장 가득한 개인포스팅이든, 뉴스게시판의 개싸움이든, 혹은 진짜 프로로서의 설득적 글쓰기이든지간에 모두 마찬가지로 필요한 하나의 의지, 그것은 바로 내 주장을 납득시키고야 말겠다는 것. 즉, 아예 설득해서 감화시킬수도 있고, 혹은 완전한 입장변화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내 주장이 일리가 있으니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박아넣는 것이다. 그 뜨거운 의지가 없으면 단지 꾸역꾸역 원고 매수 채우는 것에 불과하고, 그 어떤 화려한 논법이라도 테크닉이 구심점을 잃고 은하계를 헤맨다. 그런데 그 의지 – 즉 어떻게든 납득을 시키겠다는 근성도 다른 모든 능력치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재능 + 수련의 결과다. 재능 부분은 뭐 어쩔 수 없고, 논술 근성을 쌓아올리는 방법을 이야기해보자면… 뭐, 근성의 중요성을 항상 인식하고 자신의 근성을 최대한 발휘해보는 방향으로 연습을 할 수 밖에. 하지만 구체적인 트레이닝 스케쥴 같은 것은 온라인 학원이라도 차리기 전까지는 생각없고, 여기서는 그냥 논술 근성을 키우기 위해 기억할 것들 5가지“.

1. 근성은 읽는 이의 눈에는 잘만 보인다. 근성은 마음 속에 있고, 보이는 것은 테크닉이나 글이라는 식의 생각은 금물이다. 의지는 눈에 보인다. 여느 고등학교 수업을 떠올려보라. 누구나 선생이 별로 교재에서 많이 벗어나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데 이상하게 수업내용이 머리에 안들어오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저 자식, 가르칠 마음이 없구나”라고 본능적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당신이 근성이 부족한 논설문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 역시 당신의 글을 보며 “이 자식, 나를 납득시킬 마음이 없구나”라고 판단내린다. 그게 딱 어떤 부분이다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의지’는 모든 문장, 모든 단어, 모든 논법, 모든 사고방식 속에 복합적으로 미묘하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의 눈에는 그게 잘 안보인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글과 의지를 함께 읽어낸다. 그래서 근성을 배양하기 위한 첫번째 요소는 바로 근성은 눈에 보인다는 깨달음 그 자체다. 기의 존재를 믿지 않고 내공수련을 할 수 없듯이 말이다.

2. 무리한 도전은 기본이다. 비단 논술 근성 뿐만 아니라 모든 열혈의 핵심은 무리한 도전의 반복을 통한 지옥훈련이다. 논술 근성 수련을 위한 무리한 도전에 해당되는 것은 바로 자신이 별로 생각해본적 없는 복잡한 세상사의 이슈에 대한 자기 의견을 갖추어 보기. 정보를 모으고 끝이 아니라, 의견을 모아보고 끝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입장을 가져보는 것이다. 내 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것, 너무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져서 별 입장이고 자시고 없을 것 같은 것,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해서 아무도 어차피 해답이 없을 듯 한 것 등 어디로보나 “나에게는 무리”인 듯한 이슈에 대해서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만들어보라. 양비론 양시론 그런 것 말고, “바로 이렇게 해야한다”라는 진짜 입장. 그 과정에서 당연히 무수히 스스로 질문을 할 것이다. “왜?”.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대답하라. 스스로 납득한 바, 그것이 바로 ‘입장’이다. 그런 무리한 수련을 계속 하다보면, 어떤 이슈든지 간에 매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의 일관된 틀이 생겨날 것이다. “내가 잘먹고 잘사는 게 장땡이다”라든지, “세계평화가 최우선이다”라든지 뭐든지 말이다. 자기 입장이 있어야, 그리고 그것이 확고할 수록 입장을 지키고자, 타인에게 납득시키고자 노력하게 된다.

3. 설득은 항상 실전이다. 이것은 연습 설득이고, 다른 기회에 제대로 된 설득을 해볼꺼야, 라고 건방떨지 말자. 머리 속에만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 설득에 연습 따위는 없다. 그냥 덜 정제된 설득과, 세련된 설득이 있을 뿐이다. 블로그에 끄적거린 것이나 논술시험 답안으로 쓴 것이나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나, 모두 독자와의 승부다. 매 순간 각각의 지면, 각각의 독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논술 근성을 수련하고 싶다면, 자신의 모든 설득적 글쓰기 행위 – 그것이 신화와 동방신기 간의 선호에 대한 잡문이라 할지라도 – 를 실전으로 받아들여라.

4.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아라. 입장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자료라도 동원하라. 무조건 많이 동원하라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런 걸 누가 읽겠나), 도구에 제한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내 입장의 전파에 도움이 되는 구석이다면 나와 정반대 입장에 있는 자들의 논리든, 동네 유치원생의 순박한 주장이든 얼마든지 끌어들여라.

5. 합리적 근거에 따라 의견을 수정하는 것이 대인이다. 확고한 입장이라고 해서, 바꾸지 말아야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자신의 입장과 다른 충분히 합리적인 근거가 나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수용하라. 그리고 그렇게 수정된 내용으로 또다시 확고한 입장을 다져라. ‘확고한 입장’이라는 것은 매사에 뚜렷한 판단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에나 중요한 것이다. 근거가 뻔히 나와있는데도 똥고집을 부린다면 그것은 새로운 맥락에 따른 판단을 거부하고 가만히 앉아있겠다는 바보짓일 뿐이다.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소인배들이나 할 짓이다. 자신의 과거 입장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면 나는 끝장이라는 식의 두려움에 벌벌 떨며 아집의 방벽을 쌓아올리는 송사리들은 그 어느 누구도 납득시키지 못한다 (잡배들끼리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자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수정하는 것이 줏대 없는 것이 아니라, 수정 못하는 것이 쫌스러운 것이다. 얼마든지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수정할 수 있는 강철같은 열린 사고를 연마하라.

!@#… 이런 식으로 해서 누구든 성공사례가 나오면 필히 알려주시길. 뭐, 이것도 나름대로 야매처방이니까.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논술 쌩쑈 단상 + 논술을 위한 5가지 팁

!@#… 논술쌩쑈의 뜨거운 불길이, 수능이 끝나자 한층 더 후끈하다. 누구나 말로는 떠들고 있듯, 필요한 것은 모범답안을 따라잡는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만드는 훈련인데… 판박이 답안을 쓰지 않도록 가이드해준다는 책조차 결국 모범답안을 열심히 정리해서 던져주고 있는 판.

여튼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기사, 서강대 논술에서 3700명 가운데 2000명이 학원의 모범답안을 쫒다가 피봤다는 소식. 사람들의 상상력이 어쩌네 하기 전에, 그렇게 실력없는 학원강사들에게 돈을 꼴아박아넣는다는 것 자체부터가 안습이라서 잠시 웃음. 세상에, 양시론을 모범답안이랍시고 내놓다니… 쌍팔년도인가. 근거에 기반한 자기 관점 주장과 타 관점 비판, 그리고 토론과 의견 수정을 위한 열린 자세가 논술은 물론, 대부분의 주장형 글질 행위의 핵심인데 말이다. 기사에 같이 소개된 성균관대 문제의 아도르노의 하위문화 관련 주제는 왠만한 명문대생들이나 대학원생들도 비틀거릴 문제이긴 하지만, 여튼 학원강사의 ‘모범’답안이 너무나 가관이다. 클래식 공연 많이가니까 고급문화의 힘이 어쩌고… 이 사람들, 정말이지 공부 안하고 그냥 날로 먹고 살았구나. 하위문화를 받아들임에 있어서의 주체성과 피동성을 논하라는 문제지, 클래식 가니까 나도 고급이야 라는 70년대틱한 대중/고급의 얄팍한 구분이 아니라고. 그 고연봉 강남 학원강사라는 사람들이 실력이 그따구로 개판일 줄이야. 덕분에 누구나 황금어장 논술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듯 하니(논술학원의 돈을 받아서 운영하면서도 입시논술을 거부하는 듯한 이미지를 취한다든지), 이번 기회에 capcold도 온라인 논술과외 학원이나 열어서 돈벌이나 좀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중.

!@#… 그런데 솔직히, 이미 입시과정을 뒤로 한지 오래 지난 capcold로서는 입시논술이 어쩌느니 하는 것은 심정적으로는 별반 관심없다. 오히려 관심 있는 것은 그 과정을 거쳐온 사람들이 그 따위 교육밖에 못받고는, 엘리트니 지식인이니 하면서 나중에 이 사회의 담론과 지식을 한껏 개판으로 만들어버릴 것에 대한 공포다. 이 세대 이전에도 그런 자의식 과잉의 바보들이 항상 넘쳐났기 때문에 어찌보면 별반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황우석 사기 사건 당시 화려하게 망가진 수많은 ‘지식인’들과 일반인들을 기억해보자), 스스로를 ‘논리’로 포장하고 바보짓을 해서 그럴듯하게 보이기까지 한다면 더 큰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별반 입시에 직접 관여된 것도 아니지만 공교육을 걱정할 수 밖에.

!@#… 사실 모범답안 따라잡기가 아니라 자신의 길을 만들고 관철시키기 위해서 결국 필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안목인데, 그것은 결국 세상의 다른 아이디어들과 균형을 맞춰가며 자신의 의지를 끌고 나가는 능력이다. 그것을 ‘육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다양한 종류의 아이들을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만들며 여러 종류의 다양한 해결과제를 주고 서로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게 만드는 훈련뿐. 아하, 바로 공교육의 학교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손을 놓아버린지 오래인 바로 그 부분이다. 학교가 개인의 학력발전을 해준답시고 꼴깝치면 당연히 될리도 없고, 사교육과 경쟁도 될리가 있나. 학교에서 전인적 인격교육을 해야겠다고? 바랄 것을 바래라. 아니면 학교와 보육원을 하나로 합쳐서 부모 역할까지 다 하든지. 즉, 공교육 학교에서 해야하는 것이자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양한 사회장면의 의도적 연출이다. 그 사회 장면 속의 상황들에 대해서, 지식 공급이 뒷받침해주는 합리적 해결과 발전방식을 최대한 체험시켜주는 것. 그리고 그 체험이 바로 애초부터 논술의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었을 터이다. 논리 교육이나 얄팍한 지식 몇줄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가 돌아가는 패턴에 대한 경험치로 인한 식견이 바로 논술의 진짜 핵심 실력이다. 게다가 무슨 입시 시험 논술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 살아나가는 방식의 핵심이기도 하고.

다시 말해, 공교육이 정상적이고 고등한 ‘교육’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황금의 기회인 ‘논술’의 진짜 열쇠는 애초부터 학교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냥 놓고 방치한 것 뿐이다. 94년 수능과 함께 첫 도입된 이후 12년이나 그냥 교육붕괴니 어쩌니 칭얼거리기만 한거다. 그동안 별 이상한 약장수들이 이거만 하면 만점이다 라고 야매 처방으로 사교육 시장을 부풀렸고.

!@#… 뭐 그런데 이제와서 싸그리 바꾸라고 한다고 해서 바뀔 교육계도 아니고, 여기가 뭐 대단한 영향력이 넘치는 지면도 아니지. 게다가 당장 시험은 봐야해서 발등이 불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학교교육의 본질이니 어쩌니 운운하는 것도 웃기고. 그저, 아직도 논술시험이 학교교육을 망친다느니, 학교는 전인교육을 행해야 한다느니, 사교육과의 경쟁력을 키우자느니 하는 식으로 엉뚱한 방향의 삽질을 거듭하는 교육공무원들이 그냥 이런 가장 근본적인 발상부터 좀 다시 점검하고 갔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 뿐.

!@#… 그래도 뭐 대충 패배주의적으로 이야기를 끝내기는 아쉬우니, 그냥 당장 논술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부록으로 간단한 조언 5가지만.

 

[부록] 논술: 논리고 뭐고 다 좋은데 이것 5가지는 기억하라

1) 양시론 양비론은 완벽한 뻘타다. 균형을 이루라느니 하면서 끝나면 모범답안 외웠어요 하는 티가 풀풀 난다. 부탁인데, “너의 의견은 확실히 알고 있지만 역시 나는 이런이런 이유로 인하여 이쪽을 밀겠다” 로 가라. 실생활에서도 그래야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수정하고 발전이 있다. 논술은 설명문이 아닌 논설문이다. 균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장을 합리적으로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주장이 없으면 쓸 필요도 볼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 하자”라고 마지막에 던져 줄 수 없다면 이미 실패한 답안이다. 채점자는 당신의 사상따위 관심 없다. 주장의 합리성만 관심있을 뿐.

2) 주장을 위해서 들어주는 사례는, 확실히 아는 것으로 들어라. 제발 잘 이해도 못한 명언 인용하지 말고, 관념적 개념 마구 끌어써서 부도수표내지 말고. 그냥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주변의 사례 또는 자기 전문 분야에서 의미를 끌어내라. 국가간 힘의 균형과 조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논해야 할 때, 괜히 알지도 못하는 국제정세 요약본 외워서 쓰는 것 보다 차라리 스타크의 계열별 상극관계에서 적절한 비유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을 찌를 수 있다. “이 게임이 큰 인기를 끈 것은 그만큼 현대 사회의 실제 권력관계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비유적 사례가 전체를 바라보기 위한 큰 통찰을 제공하곤 한다” 라는 식으로 잘 수습만 한다면.

3) 모범답안에 나온 사례는 처음부터 피하라. 아마 그 책을 사본 사람들, 그 선생에게 과외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쓸 것이다. 물론 이 충고를 보고 다른 모두들 모범답안을 피해서, 하필 답안 그대로 쓴 당신만 남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 운이라면 차라리 로또를 사라.

4) 키워드, 혹은 키 문장을 잘 뽑아라. 그것이 당신 생각의 핵심이다. 그 한 두 문장 한 두 단어로 전체 글의 이미지를 요약한 엑기스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상대방은 당신의 장문을 읽고 뭔가 이해했다는 만족감을 표할 수 있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이후에 이어질 내용들을 읽을 동기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이 하나의 키 문장 덕분에 백여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당 선언문은 물론, 그 미칠듯이 길고 난해한 자본론까지도 읽었다.

5) 팩트와 추측과 주장은 구분하라. 합리적 판단의 기본이 실제 드러난 ‘팩트’, 팩트가 좀 군데군데 비어서 자기 머리 속에서 적당히 전체 상을 그려본 ‘추측’, 그리고 모든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정말로 관철시키고 싶은 의지인 ‘주장’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추측을 팩트로 착각하지 말고, 추측을 주장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예를 들어보자. 박철수는 고병희랑 잤다 (팩트) -> 뱃속 아기의 아빠는 철수일 것이다 (추측) -> 철수는 병희를 책임져라 (주장). 여기서 추측과 팩트를 혼동하면서 벌어지는 오만 소동이 어떤 것들인지, 추측 자체가 애초부터 틀릴 경우 주장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지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드라마 ‘여** 뭐**’를 다시보기 누르시길. 앞서 말했듯 논술의 최종목적은 결국 ‘주장’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합리적 기반이란 바로 충분한 ‘팩트’, 그리고 팩트관계를 지나치게 넘겨짚지 않으며 동시에 자기 한계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추측’이다. 어차피 완성본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지만, 주장에 눈이 어두워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혼동하면 뭉개진다. 조선일보다.

6) 처음에 다섯가지만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래놓고는 여섯번째를 이야기하면 꽝이다. 논술을 쓸 때, 처음에 다루겠다고 제시한 것 이외의 것들을 뒤에 자꾸자꾸 이어붙이지 말자. 전체논지가 사정없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 아무 생각없이 막 쓰고 있는 것이 곧바로 들통난다. 무슨 무한연속 TV드라마도 아니고.

!@#… 수험생분들, 여하튼 굳럭. 많이 필요할 테니까.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