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이 OO하는 OO 5가지”식 기사가 저지르는 흔한 문제 5가지

!@#… 공유하며 눈길 끌기 좋아서 요새 부쩍 유행하는 목록형 기사 작성법(당연하게도, c모도 오래전부터 종종 애용하고 있다), 속칭 ‘리스티클(listicle)’들이 흔히 저지르는 문제를 추려본다. 이 5가지만 잘 피하면 더 좋은 리스티클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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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쉬워진 세상, 더욱 어려워진 글쓰기: 21세기 글쓰기의 변화 [기획회의 263호]

!@#… 완소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신년 첫 호의 2000년대 출판계 결산 특집(2) 중, 글쓰기의 변화라는 토픽으로 쓴 꼭지.전체 특집에 대한 소개는 여기로.

 

글쓰기 쉬워진 세상, 더욱 어려워진 글쓰기: 21세기 글쓰기의 변화

김낙호(미디어연구가)

21세기 글쓰기의 변화를 논할 때 손쉽게 “다소 매체 환경의 변화는 있지만, 글쓰기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으니 필자분들은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계속 하던대로 글을 써주시길 바랍니다”라는 훈훈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매체 환경의 변화는 급격했고, 그 속에서 글이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했다. 단문메시지와 채팅 등 실시간 문자 소통 속에 말과 글의 경계선은 한없이 희미해졌고, 각종 쌍방향 기술의 도입으로 필자와 독자의 사이에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그 이상으로 글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마저 이전과 같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글쟁이로서 글을 쓰는 작업에 변화가 미미한 것에 그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글쓰기’를 변화시킨 요소들과 그 속에서 적응하기 위한 몇 가지 방향성을 생각나는 대로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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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서의 논문 쓰기에 관한 잡설[서울대 사이버문화 2007-1학기]

!@#… 서울대 정보문화학 연합전공의 2007년 1학기 강좌 ‘사이버문화’에서 학생들이 작성한 영어논문 지도에 참여한 후, 학기말에 제작한 자료집에 간단한 작업소감 겸 덕담(?)을 의뢰받아 쓴 글. 항상 그렇듯, 이런 기회에 나 자신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볼 수 있게 된다. 비단 논문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진지한 사실에 근거한 논설문” 쓰기에 해당될 수 있으리라.

[후기] 소통으로서의 논문 쓰기에 관한 잡설

김낙호 (위스콘신대 언론학과 박사과정 / 영어논문 에디터로 참여)

솔직하게 말해서, 영어로 논문을 쓴다는 것은 참 귀찮은 일이다. 특히 한국의 사례를 연구하는 논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고유명사의 영어 표기 같은 자잘한 문제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국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워 죽겠는데 무려 영어로 옮기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은 거의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왜” 굳이 영어로 써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 그 자체다. 어차피 한국의 사례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보도록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영어로 스스로를 자학하는가. 사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귀찮음이고 당연한 회의적 반응이다. 이런 저런 글을 좀 더 많이 써본 편이고 현재 미국에 유학까지 나온 상태의 필자라고 할지라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뇌리 한 켠에 항상 간직하고 있는 침투적 사고다.

그래도 영어로 쓰는 이유, 영어로 쓰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소통 때문이다. 연구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소통량에 따라서 그 가치가 결정된다. 더 넓고 깊고 다양한 층위와 성향의 동료 연구자들에게 소통이 될수록, 그래서 학문적 지식체계라는 커다란 사회적 집단지성의 연결망 속에 놓여진 보다 크고 강력한 노드가 될 때 연구는 효과적으로 자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즉, 영어로 연구논문을 쓰는 것은 한국학계의 영미권 학문에 대한 종속이나 사대주의적 타협이 아니다. 바로 내 연구가 보다 더 중요한 지식으로 기능하고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는 자발적인 소통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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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푸념.

!@#… 글쓰기 잡상. 요새, 가면 갈수록 서면 인터뷰 혹은 리플/트랙백 식의 대담식 글쓰기가 편해진다. 귀찮고 에너지가 떨어지니까. 왜냐하면, 문제설정 자체를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는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째로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문제는 있는데, 자 capcold라면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것만 스윽 내밀어주면 되니까.

!@#… 특히 문제설정에 대해서 이미 오래 전부터 질리도록 이야기하다가 지쳐서, 굳이 다시 꺼내기가 너무너무 귀찮아질때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어차피 ‘맥락’, 즉 과거에 어떤 식의 논의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을 굳이 다시 찾아보는 수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 자기네들이 처음 봤으면 그건 그냥 처음 생겨난 거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런 꼴을 보면 참 피곤해진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들을 새롭게 설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면 모를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스스로를 여론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단순한 의견배설에 쾌감을 느낄 뿐인” 사람들에게 굳이 할당할 에너지 따위는 없다. 사실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도 못하는 인간들까지 일일이 상대해서, 어느 세월에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냔 말이지.

!@#… 여튼 그게 요새 글쓸 때 가장 고민하는 문제다. 그래서, 항상 맨 처음 문단 – 즉 문제설정 부분이 가장 안써진다. 이런 뻔한 문제제기를 또 제기해야 하나, 그냥 “요새 생각하고 있는 해결책”들을 다루고 있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면 안될까 하는 욕심. 하지만 문제의식 따위 계속 다시 반복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굳이 기억 따위 못한다는 것이 현실. 게다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독자를 대상으로 쓸 것인가도 큰 문제다. 우매한 대중따위 그냥 버려버리고 그냥 ‘선수용’ 글에 집중할까, 아니면 그래도 역시 대중적인 글쓰기는 필요하니까 노력을 기울일까.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결국은 그 대중 속에서 새로운 선수들도 나오기 마련이니 낚시질을 계속 해야하고. 만화에 대한 글이든, 인터넷 문화에 관한 글이든, 기타 미디어에 대한 글이든 사회에 대한 글이든, 심지어 그냥 개그든(대중들을 포섭하는 개그를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껏 매니악한 개그를 할 것인가…)  마찬가지 고민이다.

!@#… 한국에서는 각종 글들 – 블로그에 한정짓는 게 아니라 기획서든 보고서든 다 포함 – 을 기계처럼 뱉어내야하던 입장에서, 지금은 다시 머리속에 자료를 ‘입력’해야 하는 환경으로 바뀌다 보니 자꾸 성찰을 하게 된다(이러다가 진짜, 일기 만화라도 연재하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뭐 여튼 그냥 잡념.

페르세폴리스, 그리고 만화번역 잡설(2)

!@#… <페르세폴리스>가 출간될 때 날렸던 만화번역에 대한 단상글에 대해서, 꽤 진지한 반론을 제시하시는 분이 있어서 답변을 좀 해오다가, 여차저차 길어져서 그냥 아예 새로 들고 오기로 한다. 초점이 뚜렷한, 잘 정리된 논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뭐 충분히 나올법한 이야기. 뭐 여하튼 capcold의 문제설정이나 글쓰기 맥락에 대한 약간의 참조도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한번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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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광  번역은 주인장 말씀대로 누가 번역하느냐의 차이가 있겠지요. 그 차이는 어느정도 ‘창작의 영역’에 걸쳐있는 ‘번역의 영역’아닐지요. “내가 했더라면….”은 듣기 민망하군요. 작품의 감상은 ‘독자의 영역’에 걸쳐있는 ‘역자의 입장’이기도 함을 이해하실줄 압니다. 오역이라면 이해하지만, 어투의 문제라…어린 아이의 말투로는 주인장의 말씀대로 쿨~한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저 뿐만일까요.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을 찾다가 들러서 쳐진 댓글 남기고 가서 죄송합니다. 2005/10/30 00:39  
 
 캡콜드  !@#… 김태광님/ 댓글의견이야 항상 대환영이죠. 하지만 정확히 어떤 지점을 지적하시고 싶으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1) 번역이 또다른 창작이라는 말은 물론 동의합니다만, 그 ‘창작’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가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번역자의 자의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작이 원작의 독자들에게 주었던 원래의 의미와 뉘앙스를 다른 문화권의 독자들에게도 가장 온전하게 느끼게 해주기 위한 재해석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리메이크와 번역의 차이죠. 번역가는 자의식 과잉으로 리메이크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2) 어떤 부분을 그렇게 “민망하게”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다시피 제 번역스타일을 예로 든 것은 번역자의 어투가 번역물의 문체에 반영되는 것에 대해서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가상 사례에 불과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어투는 이야기의 풍부한 감성과 의미를 담아내는 중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니까요.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어, 라는 식의 무슨 유치원생 허풍떠는 이야기가 아니죠. 이왕이면 한번 찬찬히 다시 읽고 민망해 하시길 바랍니다.

3) “쿨~한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말쓴드리자면,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위화감’이라는 것은 독자의 독서에서 느껴질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원작과 번역본의 사이에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전체 내용을 모두 텔레토비 대사로 바꿔도 나름대로 위화감없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 원작과의 위화감은 엄청나겠죠. 다시금, 본문을 찬찬히 다시 읽고 설명 부탁드립니다. 2005/10/30 02:43  
 
 김태광  1) 번역이 일정부분 역자의 상상과 분위기를 닮게 되는 점에서 창작에 걸쳐있다고 말씀드린 것이였습니다. 즉, 번역이 가지는 특별한 영역이라는 뜻입니다. 리메이크는 목적이 재구성, 재해석이므로 번역의 그것과는 다르지요. 페르세폴리스의 번역에서, 주인장의 말씀처럼 “김대중(역자)의 목소리”가 우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2) 그 표현은 죄송합니다. 기분이 상하셨을 것 같네요. “민망”했던 이유는 그 표현 자체에 있었습니다. 번역자 김대중씨와의 친분이 있으신 것 같은데(김대중식 어투라고 단정하시니….제 추측인데 맞는지요), 그 어투를 이해하기보다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민망”했는가봅니다. 그러다보니 주인장을 예로 든 것마저 “의심”을 산 것 같네요. 비평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애정’이고, 경계할 것이 ‘비난’이라 배웠습니다. 주인장을 예로 든 것이 “민망”했던 이유는 바로 “애정”이 보이지 않아 오해를 산 것이 아닐지요.

3) 제가 이 책(한국어판)을 읽고 굳이 문체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한다면, 호흡이 짧고 쉽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한 “쿨~”은 이런 점입니다. 주인장 말씀이 원작과 번역본의 사이에 느낄수 있는 “위화감”이라면, 제가 말한 쿨~한 것과는 차이가 있군요. 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김대중(역자)의 목소리”가 “위화감”을 일으키는 목소리라고 이해했었거든요. 이렇게 이해한 것에는 위2)에서 말씀드린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2005/11/01 14:39  
 
 캡콜드  !@#… 우선 본문에서 밝혔듯이, 저는 지리적 사정상 한국어판을 보도자료로 공개되어 있는 한 챕터 이외의 나머지 본문은 (아직도!) 읽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위의 글은 결과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기대와 우려의 글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즉 비평글이 아닌, 말 그대로 단상입니다. 제가 ‘말투’에 대해서 걱정하는 부분은, 번역자분이신 김대중씨의 말투가 과연 제가 영어판(즉, 불어를 못하기 때문에 원본인 불어판로는 즐기지 못했습니다; 이미 상당한 모순이죠. 그래서 저는 엄청난 노력으로 자료와 뉘앙스를 벌충하지 않는 한, 중역은 정말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에서 본 그 소녀의 어투를 잘 살려낼 수 있을까 – 아니 잘 살려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같은 대본을 놓고 연기를 하는 것이라도 배한성의 맥가이버냐, 아니면 신구의 맥가이버냐 하는 차이죠. 혹은 서혜정의 스컬리냐, 아니면 전원주의 스컬리냐 하는 차이이기도 합니다. 1화를 본 결과 한국어판의 문체가 어떤지 감이 잡혔습니다. 그것은 이제 주어진 조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문자 그대로 그것이 전체 부분에 잘 어울려 주고 있을지 어떨지 걱정/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난 것으로 보였다면, 그것은 제가 제목 번역에서부터 이미 의미의 손실이 생겼다는 것을 먼저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상당히 아까운 손실입니다. 그만큼 섬세하고 의미깊은 작품이니까요. 그것이 제가 이 작품 자체에 대해서 가지는 ‘애정’입니다.

!@#… 비평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애정’이라는 것은, 비평글에서 소재로 삼고 있는 특정 작품이나 특정인에 대한 애정이 아닙니다. 그런 주례사에 얽매이면 그건 비평이 아닌 그냥 바보들의 낙서죠. 비평글이 가져야 할 애정이라는 것은, 바로 글이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속해있는 “그 분야 전체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애정입니다. 특정 작가나 작품을 열심히 일방적으로 햝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 정당한 평가를 부여함으로서 만화라는 분야 자체가 얼마나 멋진 담론으로 활성화된 좋은 문화 예술분야, 혹은/또는 문화산업 영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려되는 부분은 우려하고, 재발견해야할 부분은 재발견하고, 심지어 진짜로 비난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확실하게 비난해서 큰 흐름에 기여하는 것이 진짜 비평입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그 길에 충실한지는 항상 모자름을 느끼지만, 최소한 그것이 길이라고는 믿습니다.

!@#… 만약 이야기가 더 길어지면, 덧글이 아닌 새 관련글로 옮기겠습니다. ^^ 2005/11/01 15:47  
 
 김태광  1) 중역에 대한 생각입니다 – 이 작품이 중역을 했다는 것이 사실임을 인정하더라도, 주인장의 말씀은 중역의 한계를 지적할 뿐, 현 번역에 곤란한 점이나 모순이 있다는 근거로는 적절치 않습니다.
2) 비평글과 단상 – 작품에 대한 애정은 비평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더 나아가 주인장께서 일하시는 분야가 혹 관련된 것이라면 관련분야 전체의 발전까지도 염두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들은 사실, ‘페르세폴리스 한글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게 되는대요. 주인장께서 남기신 “단상”을 제가 “비평”이라 여겼기 때문에 범주를 넘어선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평”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작품에 대한 소개와 평가가 전문적인데 비해, 출판물에 대해서는 가벼이 여기시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장의 의도를 비껴나간 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기왕에 주인장께서 정성껏 댓글을 남겨주셨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저 역시 몇 마디 “비평”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겠습니다.
애정을 전제로 한 비평글에는 모든 사물(언어….)에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듯 대상의 양면을 모두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에 대한 찬사가 “양”이요, 출판물에 대한 비난이 “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번역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번 번역의 외적 의의와 내적 성취도를 평가하고, 되도록 분명한 지점을 들어 지적하고 비난하는 것이 “진짜 비평”이 아닐지요. 주인장의 글이 적절한 “비평”이 되기 위해서 부족한 부분이 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상”도 그런 의미에서 이같은 점이 전제가 되길 바랍니다만, 혹 주인장께서 윗 글에 대해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 같다면 죄송합니다.
2005/11/01 18:02  
 
 캡콜드  !@#… 저는 심지어 한국어판이 영어본에서 중역을 했다고 주장한 적도 없습니다(판형 자체부터가 영어판 기준이기 깨문에, 중역을 했으리라 쉽게 추측을 해볼수는 있지만). 애초에, 중역을 했기 때.문.에. 이.책.의.이.번.역.이 곤란하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뉘앙스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면 그때 비로소 곤란한거죠. 그런데 중역은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그런 일이 무척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고. 그 이전에, 중역의 문제는 애초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 자신도 과연 진짜 원작(불어)의 뉘앙스를 영어판만 읽어본 주제에 제대로 이해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자기 회의의 의미로 쓴 것 아닙니까.

!@#… 하지만 전체 번역에 대한 뉘앙스는 어차피 책 전체를 꼼꼼히 읽어본 후 해야할 작업이지, 한 챕터 달랑 읽고는 기껏해야 기대/우려 정도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번역의 외적 의의와 내적 성취도까지 떠들어대면 거짓말장이죠. 이미 공개된 부분, 즉 제목과 한개 챕터 정도에 대해서라면 이미 본문에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시는 듯 하군요. 비평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전체 분량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하지만, 단상이라는 전제하에 한 개 챕터만을 따로 떼어놓고 굳이 평가를 하자면… (1) 주인공 소녀 마르지가 가져야할 ‘조숙하면서, 다소 되바라진 인상을 주기 쉽지만 결국은 꼬마’, (2) 1인칭 나레이터가 가져야할 ‘현재시점의 어른이자, 당시의 어린이로서의 세계관을 같이 겸비하는 느낌에서 오는 유머(‘케빈은 12살’의 배한성과 비슷한 역할)’ 만 우선 놓고 보도록 하죠. 1화의 번역을 놓고 볼 때 나레이터의 유머감각은 ‘쿨한’ 지식인 스타일의 말투 속에서 사실상 거의 사라지다 시피 했습니다. 꼬마 마르지 역시 어른의 어휘를 한두개 주워서 사용하는 꼬마의 언어여야 하는데, 아예 어른의 언어를 구사하는 인상에 가깝습니다.

!@#…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이후 분량에서 이어질 여러 좀 더 복잡한 대화 속에서, 다시금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가능성을 닫아놓을 필요는 물론 없겠죠. 그보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계속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참 뻘쭘한 것이, 이미 서가에 나와있는 책을 가지고 ‘제한적 근거의 평가’를 내리고 앉아있는 것 자체가 사실 굉장히 특수한 경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출판에 대한 단상과, 본격적인 비평의 역할을 혼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만.

!@#… 여하튼,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부분들은 댓글이 아닌 엮인글로 새로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분량이 많은 덧글들은, 보기가 불편하니까요… 특히 네이버는. 2005/11/02 01:41

정신을 집중하자.

!@#… comixpark님 블로그에 올라온 글(http://blog.naver.com/enterani/120015257854) 에 대한 리플 중에서. 예기치 못했던 곳에, capcold 글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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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석 난또 서울 시장 이명~박이 만화 비평서를 낸 줄 알고 순간 움찔~!! 저도 박인하교수님 글은 쉬워서 좋아요. 김낙호 선생님 글도 재미있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읽어야하거든요. ㅎㅎㅎ 2005/07/15 12:10

레오 동감!! 김낙호씨 글은 정신집중해야하고 주모씨글은 읽기는 읽을만 한데 재미가 없고….박인하님의 글이 제일 낫지요. 읽기 쉽고..후후후훗 그런데 아직 그곳에 안가셨사옵니까? 이미 시작했을 터… 2005/07/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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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집중!!!!   OTL 

!@#… 두고보자, 정신산만해도 쏙쏙 들어오는 발랄하고 아름답고 글쓰기를 수련하고 말테다! (불끈)

!@#… 거짓말이지만. (경사로다 경사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