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햇볕정책, 외교의 조건.

!@#… c동호회에서, 최근 북핵문제와 관련해서 햇볕정책에 대한 회의감을 올리신 분의 포스트에 달아 놓은 댓글. 쓰다보니 길어져서 그냥 다시 쓰지 않고 여기에 그대로 퍼옴. 여하튼 내용상으로는 이전 글과 한 세트.

[re] 외교의 조건.

!@#… 외교에서 채찍과 당근이라는 것은 편의상의 비유일 뿐이고, 실제로는 ‘당근‘과 ‘당근 중단‘입니다. 물론 무력침공이라는 채찍이 존재하지만, 그것 이외의 모든 수단이라는 것은 애초에 주어왔던 혜택을 박탈하는 형식으로 밖에 할 수 없죠. 즉 당근으로 중독시키고 의존을 시킨 후 – 즉 국제 질서의 일원으로 타국과의 교역과 외교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후 – 문제를 일으키면 그것을 중단시키겠다고 위협하는 것.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는 아직 중독시키기에 충분한 당근이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북한과 중국은 외교가 아주 약간은 성립됩니다. 여하튼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남한이 햇볕정책의 확실한 성과를 거두고 싶다면, 하다못해 중국보다는 더 많이 지원해주지 않으면 택도 없습니다… OTL 아니면 제2의, 제3의 금강산 특별 관광구역을 자꾸 늘려나가거나. 물론 남한이 지금 대북 물자를 끊으면 좀 더 나라살림이 궁해지기는 하겠고, 수십만명이 더 주린 배를 쥐고 쓰러지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남한과의 고리를 잃고 싶지 않아서 무언가 큰 대가를 내놓을 정도로 아쉽지는 않은거죠. 즉 도저히 ‘외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 그런데, 북한정권도 외교 루트를 원하기는 합니다. 다만 상대들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그들 사이에서 체제를 보장받겠다는 정말 골때리는 순진무구한 발상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게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자기 골방에 틀어박히고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주제에 ‘나 사실 큰일낼 수 있는 놈이야’라고 떠벌리는 것으로 자기 존재를 설파할 수 밖에 없는 악성 히키코모리 같은 짓거리에 심취하는 것. 관계는 싫지만 인정은 받고싶다는 그 모순된 목표가 국가 단위로 나타날 때, 이런 멍청한 짓이 일어나버린 것이죠. 그런 국가단위 히키코모리를 어떻게 갱생시킬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두들겨 패서 억지로 끌고 나온다” 라는 극단적 방법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야하는 것이 다시금 남한의 입장입니다. 방에 처박혀서 동네망신 다 시키는 그 히키코모리가 비록 50년 넘게 웬수처럼 지내왔어도 여하튼 형제니까요. 힘들어도 조금씩 사람들과 관계하게 함으로써 한걸음씩 방에서 끄집어 낸다, 가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전히 모범답안입니다.

!@#… 햇볕정책은 그 자체로는 북한 정권을 뒤엎으려는 것도, 영속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좀 더 외교적 루트와 방법론으로 협상 가능한 상대로 만들어내는 기본 중의 기본 토대 만들기 과정이죠.

PS.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껏 통치의 미명하에 반인륜적 짓거리를 일삼아온 정권 범죄자들을 무사방면해주는 것은 제 정의 개념에는 크게 벗어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상적인 외교의 틀 안에서 하나씩 압박을 넣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북쪽.

!@#… 북쪽 히키코모리 국가의 수괴급 오타쿠, 온 나라의 존립을 걸고 궁극의 레어 아이템을 까다.

!@#… 원래 북한의 외교는 핵 보유 자체가 아니라 핵 보유 여부의 불투명함으로 계속 유리한 플레이를 하려고 해온 것인데, 이제는 카드패를 다 펼쳐서 더 이상 내밀 카드가 없는데 과연 이제부터 어떨지.

!@#… 문뜩 궁금한 것이, 십년전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던 그 많은 사람들은 이따구 사태를 보고 또다시 가슴이 뜨거워졌을까.

!@#… 벌써부터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가장 쉬운 착각이,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 망나니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그보다는,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여기까지 사태가 오게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럼, 남한이 햇볕정책 안했으면 안만들었을까봐?). 아니 오히려 햇볕정책을 일관성있게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정권 교체 후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오히려 불신을 키워서 북한에 대한 남한의 발언력만 더 갉아먹었던 것. 햇볕정책의 핵심은 북한이 남한에게 최소한 중국마냥 상당부분 의존 – 하다못해 의지라도 –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건만, 그 정도 가끔 구름까지 끼는 일조량으로는 택도 없었다.

북한, 결국은 사람 사는 곳 – <남측 손님> [으뜸과 버금 0406]

  90년대 중반, ‘라구요’라는 대중가요가 잔잔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한번쯤 북녘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한숨 쉬시는 아버지 – 여기까지는 단순한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 노래가 특별했던 것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 덕분에 그 노래만은 잘 아는 그런 상황이라는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무슨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란 말인가. 북한이라는 존재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애매할 수 밖에 없다. (일상생활 속으로 완전히 뿌리내린) 뭔지 모를 소위 민족적인 사명이라는 것과, 현실적으로 전혀 다른 낯선 나라라는 두 가치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전후세대의 모습이다.

  오영진의 <남쪽손님>은 북한 생활상에 대한 관찰로 이루어진 만화지만, 사실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 자신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작가가 경수로 건설하러 출장갔던 북한. 작가의 자화상인 오대리에게 북한은 무슨 염원의 땅이 아니다. 그 곳에는 모든 것을 뛰어넘은 뜨거운 동포애가 넘쳐나기보다는, 엄격한 제한사항들에 대한 조심성과 서로에 대한 차이 확인이 자리잡고 있다.  마치 7-80년대의 중동처럼, 이곳 역시 단순한 출장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3국인이 아닌 ‘남쪽 손님’에게 북한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평범할 수 없다. 북쪽과 남쪽의 사람 살아가는 모습들은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기념비부터 세워놓기 좋아하는 습성부터 시멘트 빼돌리기, 막무가내로 자존심 건드린다고 고집부리는 아저씨까지. 심지어 ‘수령님 살아계실 때가 좋았지’라는 북한 주민의 대사와, 당장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박통 때가 좋았지’라는 푸념의 그 섬뜩한 유사성이란! 특히 만화라는 장르의 장점을 듬뿍 살린 낙서체의 열린 선들과 짧은 호흡의 일화들이, 마치 틈틈이 적어놓은 메모장 같은 느낌으로 더욱 그곳에서 겪은 일들의 역설과 희극성을 돋보이게 해준다. 강박적인 민족주의라든지 제대로 소화해내지도 못하는 정치논리 또는 맹목적인 통일 타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신이 보고 겪은 만큼의 북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이사이에 교차하며 등장하는, 전문필자가 집필한 북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설명문 역시 이 책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오랜 시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동질감이니 형재애니 하는 것은 곤란하다.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를 가감없이 서로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 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돼지 김일성이 지배하는 악의 제국이 등장하는 70년대 <똘이장군>의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지만, 그 빈 자리에는 아직 새로 들어선 것이 많지 않다. <남쪽손님>의 오대리처럼 우리들도, 그 곳에 이쪽과 비슷비슷하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씩 배워나가는 세상 – 이천년대 한국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으뜸과 버금 2004. 6.]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