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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살인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탐정을  꿈꾼다. 절대 유쾌하지 못하고 불길하며, 끔찍하기까지 한 사건-그것도 반드시  살인사건-은 음습한 우리 사회의 암(暗)을 버젓히 드러내 보이며 보는 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소위 탐정 추리물이나 미스테리물에서의 살인을 목도하는 우리의 내면에는 기묘한 짜릿함이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을까. 탐정물은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인 동시에 치밀한추적과 추리를 통해 범인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내는, 범인과 일체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범인과 한 몸이 된다는 기분을 가지지 않으면 당신은 명탐정이 될 수도, 추리물을 재미있게 볼 수도  없다. 그렇기에 탐정물이나 미스테리물을  읽는 심리 근저에는 살인이라는 금압된 행위를 목도하고자 하는, 불순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짜릿한 욕망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지적 유희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활자매체인 정통 탐정 소설에 비해, 시각성이라는 특성을 갖춘 탐정 만화물은 복잡하게 얽힌 알리바이를 풀어나가는 지적 싸움에 못지 않게, 살인  자체의 시각적 스펙터클을 보여주고자 하는 경향도 상대적으로 더 큰 편이다. 살인 사건을 주로 다루는 추리만화 혹은 미스테리 만화라고 불리는 작품  중에서는 오자부로 카나리. 후미야 사토의 '소년탐정 김전일'(원제: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 구락부)과 유마 안도의 '미스테리 극장  에지'가 그 대표격. 이 두 작품은 모두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두 소년 영웅의  일대기인 동시에 살인을 주제로 한 다양한 스펙터클의 연속이다(물론 추리 만화물 하면 아오야마 고쇼의 '명탐정 코난'도 빠질 수 없지만 '코난' 은 이 두 작품에 비해 주인공의  영웅성이나 살인에 대한 스펙터클이 덜한 편이다). 또한 둘 다 미유키와 시마라는 여자 조력자를 곁에 두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 다만 김전일이 철저한 두뇌 게임과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반면, 에지는  직. 간접적인 신체적 접촉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 '사이코 메트리'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점이 차이점이랄까.

그러나 어떤 미스테리 추리 만화를 보며 느껴지는 이 찜찜하기 짝이 없는 불쾌함과 대책 없는 버성김이란 대체 무엇 때문일까. '미스테리 극장 에지' 속에서  살인이란 매회  반복되는 일상적 행사에 불과하지만, 살인의 대상은 언제나 똑같은 여고생, 여고생, 여고생(뭐 간혹 여중생이나 직장여성도 있긴 하고, 남자가 살인대상으로 나오는 때도 가뭄에 콩 나듯 있긴 있다). 여학생 교복과 속옷에 대한 페티시즘이야 숱한 만화에서 보아온 설정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매 회마다 다양한 이유와 다양한 방법으로 죽어나가는 여고생들을  볼 때마다 새삼 놀란다. 왜 이렇게 살인의 대상으로 여고생에 집착하는가? 매 회 계속되는 소녀들에 대한 강간 판타지와 살인 욕구가 너무 현란해 눈이 침침해질 지경.

살인마 '저스티스'는 원조교제를 하는 여학생들의 성적 문란을 '단죄'하기 위해 그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살인마 '뫼비우스' 는 어렸을 때의 심리적 충격으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만을 살해하고 다닌다. '천당 신부' 는 천재 범죄자 아키라의 사주를  받아 미션 스쿨에 다니는 독실한 여학생들만을 골라 살해하며, 아이돌 그룹의 한 매니저는 자신이 키우는 미소녀 가수들을 죽이고  혀를 잘라 가진다. 이쯤 되면 엽기적인 것은 이 살인마들이 아니라 작가 쪽이 아닌가 싶다.

'에지'에서 남자 독자들을 위한 풍부한 서비스 컷들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쯤이야 (물론 나야 별로 즐거울 것이 없지만) 이런  만화에서 기본적인 애교인 만큼 왈가왈부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히치콕 영화 속에서 여자들이 공공연한 관음증 또는 살인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했다는 일련 비판들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살인의 대상으로 여고생에 강한 집착을 가지는  것은 찜찜하면서도 한편으로 재미있는 현상이다.

작품 속에서 에지와 친구 강천은 부근 건달들의 우두머리 격으로 초인적으로 싸움을 잘하며 의리도 있는 '진짜 남자들' 로 등장한다.그리고 마약사건이나 깡패들끼리의 알력 경쟁 등 때문에 일상적으로 에지와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폭력의 축제는 살인 사건들과 더불어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큰 축을 이룰 만큼 비중이 크다. 대개 싸움의 동기는 결국 친구와의 의리때문인 것으로 귀결되지만, 폭력을 앞세운 이들 의리의 잔혹성에 현실적인 정당성을 묻는 것은 바보짓. 이들의 소위 의리라는 것이 어리석은 치기나 자기 과시욕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는 차치해 두고라도, 이 '의리'의 강도만큼 배타성은 배가되고, 이 배타성이 얼마나 잔혹한 폭력이 되어 타인에게 나타나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렇게 보면 모을 것은 다 모아 놓은 듯 싶다. 여자의 육체에 대한 훔쳐보기와 환상, 피비린내 나는 범죄와 살인, 엄혹한 폭력과 이에 꼭 뒤따라야 하는 '남자의' 의리. 하드 보일드한 분위기 등 싸나이들을 위한 매력적인 클리셰들. 

결과적으로, 피 튀기는 폭력의 잔혹성을 어설프게 봉합하는 '멋진 의리파' 류의 신화와 수많은 서비스 컷들, 그리고 빈번히 등장하는 강간 판타지까지, '미스테리 극장 에지' 의 여고생들이 늘 잔혹하게 학대받는 이유는 결국 이 작품 속에서 출렁거리는 남성들의  마초적 욕구, 물리적/성적 과시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여고생이나 미소녀는 이들에게 있어 철저한 타자이자 환상어린 동경의 대상이기 마련이고,타자의 고통은 쉽사리  공감되지 않는 법이다. 요컨대 만화에서 이들을 강간. 살해하는 것은 성적, 물리적 폭력을 통해 독자의 마초적 과시욕과 권력욕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성적 카타르시스도 안겨주는 손쉬운 방법인 셈이다.

만화계처럼 성별에 따른 수용자층과 시장이 분명하게 갈려 있는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고로 생산자와 독자층의 대다수가 여자인 순정 만화에 특유의 클리셰와 정해진 룰이 존재하듯, 남자들이 만들고 남자들이 주 독자가 되는 만화에는 그 나름대로의 정해진 컨벤션이 존재하는 것이 또 당연하다. 그러나 한 수용자층을 위한 만화라고 해서 다른 수용자층에게 비판의 여지가 주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흔히 순정 만화에 대해 느끼는 남자 독자들의 거부감이 비현실적인 상황설정과 인체 묘사,혹은 축축 늘어지는 사랑타령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소위 '남자 만화'에서 여자 독자들이 느끼는 불쾌감은 남자 만화 특유의 공격성이 구체적으로 바로 자신 '여자들'을 향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누구 말마따나 오늘 나를 깡패로부터 지켜 주는 믿음직스런 힘이 내일 나를 때리는 폭력으로 돌변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처럼.

 김전일 - 요자부로 카나리, 후미야 사토 외

 미스터리 극장 에지 - 안도 유마 / 아사키 마사시

 명탐정 코난 - 아오야마 고쇼

레이디X - 아키 모리노

여검시관 히카루 - 고다 마모라

지뢰진 - 다카하시 츠토무

Q.E.D 증명종료 - 카토우 모모히로

 너버스 브레이크 다운 - 타가미 요시히사

사이코 닥터 - 아지 타카시 / 마토바 켄

법의관 사요코 - 타카시 야스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