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카로운신 통찰력과 글 솜씨가 뛰어나신 분이 김전일의 법칙에 대해 글을 올린 것을 우연히 보았다.
정말 그 글에 많은 공감을 받았으며, 마지막에 '나 같으면 김전일을 먼저 죽인다'가 정말 압권이었다.
그리고 김전일의 미스테리에 대한 분석도 절묘하다. '범인 중 지능범이 하나도 없다'라는 주장에 대한 논리적 근거, '김전일의 가증스러운 행동' 묘사는 정말 놀라운 지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이에 대해 '만화를 만화답게 봐라',' 시덥잖은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고 질책할 지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보고 그 대상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 뿐더러 고도의 정신적 사고능력을 요한다.
만화를 본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하나, 이 만화에서 김전일은 주로 범인의 트릭을 밝힘으로서 진범을 밝혀 낸다. 그런데 그 트릭이란 범인이 알리바이를 공작한다거나, 남에게 자신의 죄를 덮어씌운다든가, 공범을 이용, 심리 트릭, 모방 범죄(특히 그 마을이나 그 장소에서의 전설,소문에 기초한) 것이다. 김전일의 모든 사건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범인의 트릭은 진범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닌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 진범이 사용했을 가능성은 100프로이다. 그러나 다른 용의자 중에 그 트릭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왜냐하면 꼭 김전일이 설정한 상황조건의 경우에만 한정해서 트릭에 사용한 도구를 이용했다고는 단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구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그렇다면 다른 용의자들도 누군가가 그 것의 쓰임새에 맞게 상황조건을 설정한다면 그 트릭을 시도한 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트릭으론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러면 김전일의 추리는 틀린건가?
그건 결코 그렇지 않다. 김전일 만화의 우수성은 작가가 그 정도로 단순하게 논리적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에 있어 범죄의 동기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 만화는 실제로 트릭보다 범죄 동기를 밝히는 데 비중이 높다. 그러므로 범죄의 동기를 비추어 보았을 때 용의자는 한 명으로 압축이 된다. 그래서 김전일의 추리는 좀 앞서나간 듯 하나 상당히 논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냐? 는 볼멘소리를 지금쯤 하시는 분도 없지 않겠다.
내가 제기하고 픈 문제는 바로 그것만으로 범죄자에게 무작정 쇠고랑을 채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형사사건은 아쉽게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의한 거대한 국가조직을 배후로 한 검사를 상대로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피고인이 재판에 있어 무기 평등을 구현하여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풀어서 말하면 검사는 유리한 지위에 있고 피고인은 불리한 지위에 있으므로 공정한 게임을 위해 피고인에게 핸디(덤)을 주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 덤 중에 하나가 '물증 '이다.
민사사건 같은 경우 법관은 상황증거와 진술증거를 근거로 삼아 법관의 조리에 의해 판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선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검사는 입증책임을 지며, 꼭 범죄의 구성요건을 확증시킬 물증을 제시해야 보강증거로 인정이 된다. 단순한 전문증거나 진술증거로는 유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전일 만화에서 범인을 특정짓는 방법은 아쉽게도 물증의 제시가 없고, 상황증거나 '누가 그랬더라(전문증거임)' ' 너가 이런 말 했지? 그 말은 앞 뒤가 맞지 않아.' 등으로 말 꼬리를 잡아 범인을 몰아세우는 진술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비판을 고려한 나머지 작가는 일부 사건에선 범죄자가 이에 대한 반박을 하면서 물증제시를 요구한다. 그러면 김전일은 물증제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에서 이러한 절차는 생략되고 있다. 그래서 김전일의 추리가 끝나는 즉시 경찰관은 '서에 가서 이야기 하죠'라고 말하며 쇠고랑을 채운다. 참으로 형사사건의 상식으로 보면 납득이 안 되는 일임에 분명하다.
이에 대해 김전일이 추리를 하면 범인이 스스로 자백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반론을 제기하 실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이면 유죄로 인정이 안되므로 자백만으론 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전일사건에선 다른 여러가지 증거와 함께 자백을 하게 되므로, 유죄가 인정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피의자가 자백을 안하면 유죄가 인정될 수가 없는 것이므로, 피의자의 의사여부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난 그래서 김전일 법칙을 쓴 사람의 말대로 '범죄자 중 지능범은 없다'라는 명제에 쉽게 공감이 간다. 이러한 프로세스에 대한 상식이 있다면 피의자는 자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전일 만화의 범죄자들은 트릭만 할 줄 알지, 처벌을 피하는 방법은 모르는 것이다.(좋게 말하면 심성이 착한거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김전일은 경찰의 원리적인 수사를 어떤 면에선 방해한 행위를 저지르게 된 셈이다. 진짜 그 만화에서 아케치 경감이 한 말대로 아마추어가 프로의 영역에 침범하여 일을 진행한 것이나 다름 없다.
이건 사실 알고보면 중대한 공무집행 방해죄다. 우리나라 법제로 보면 징역 2-3년에 해당하는 중죄다.(물론 이 경우는 수사에 협조를 하려는 목적이었으므로 훈방감이다.)
그리고 정말 어떤 사건은 김전일이 차라리 범인인 것 같다. 김전일이 너무 사건을 상세히 잘 파악하고 있어서 그런건가?.... ㅎㅎㅎㅎ
덧붙여서 이 만화를 보고 내가 이 만화의 범죄자와 같은 극한 상황에 몰렸으면 어찌 했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요이치와 마술사인 그의 어머니의 사건에서와 같이 자신의 부모를 모략해서 살해하고 , 거기다가 그러한 사실을 은폐하면서 인생을 호화스럽게 사는 못된 범죄자들, 그 밖에 자신과 얽혀 소중한 사람을 처참하게 살해한 범죄자들을 단순히 김전일이 말하는 용서와 관용의 자세로 일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물론 나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발생하다면 이 만화에 나오는 방법보다 더 교활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살인계획을 짜고 냉정하게 시행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만화에 나오는 범죄자들 처럼 그러한 살인에 대해 하소연하듯 정당화시키려는 헛된 노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은 그 자체로 정의로울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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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1 Tue 07:4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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