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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디만화' - 한국 인디만화의 과거와 그리고...!
만화는 흐른다 01/09/05 11:19 nuf couple


1.들어가며

주류 유통질서가 개별 작품의 내용적 독자성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한국만화현실은 개별작가의 개성적 표현욕구를 막고, 감상자의 다양한 취향과 선택기준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일괄적인 방향으로 몰고가 결국 우리 만화문화를 빈곤하게 만든다. 만화라는 것은 하나의 소비품목이기 이전에 문화이고 더구나 그것이 소수자 문화가 아니라 '대중'예술인 바에야, 빈곤으로 달려가는 이러한 닫힌 구조는 필연적으로 일종의 '독립운동'을 초래하게 될 터, 즉, 인디(독립)만화란 만화를 일괄적인 빈곤함으로 몰고가는 주류 시스템에 대한 독립운동이요 자유선언이다.

90년대 이후로 우리 만화계에 등장한 '인디만화'와 그를 둘러싼 담론들은 지속적으로 있어왔지만 언제나 난상으로 끝났다.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논의들은 인디만화를 몇몇 개별작품과 잡지들의 소재와 주제, 양식, 그리고 유통방식의 공통점으로 파악하는데서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작점은 이 작품들의 공간적 존재상태,분포도를 이야기해줄지는 몰라도 이들이 출현하기까지의 맥락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가령, 현재 대표적인 인디만화로 존재하는 [코믹스]주1) 를 비롯한 몇몇 작품군,작가군이 보여주는 대부분 거칠면서도 자유분방한 그림체나, 일탈적이며, 저항적인 내용등의 공통적 요소는 독자로 하여금 해외 언더그라운드 만화(혹은 판진)와 분명 관련성이 있음직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별로 해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주2) 그렇다면 결국 그 연원을 따져볼 때 개별적인 차원에서의 해외작품과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현실에서 나타난 자생적인 흐름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흐름의 끈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시간축을 지나며 90년대 이후의 '인디만화'작품들과 그전의 만화들을 연결짓게 만드는 공통의 요소는 대체 무엇일까. 그 과거사가 해명되지 않으면, 결국 그 정확한 현재적 모습과 미래에 대해서도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기 마련이다.

역사적 맥락의 부재. 괄호쳐진 그 빈 공간에 우리는 감히 독립만화의 원초적 질문, 개별 작품차원의 표현양식이나 요소보다는 '우리만화계의 지배질서에 대한 독립적이고 대항적인 태도'라는 독립만화 본연의 질문을 넣어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 시스템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80년대의 선구적 사례가 있다. 바로 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순정무크지 '아홉번째 신화'다.


2.. 최초의 문제제기 "아홉번째 신화"

아홉번째 신화는 85년 일군의 기성작가들(황미나,김혜린,김진,신일숙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나인(얼마전 폐간된 서울문화사 순정잡지와 무관)'동인들이 발행한 비정기 비매품 무크지다.

3호까지 출간된 이 무크지의 주목할만한 점은 일단 '순정'잡지 였다는 점이다, 즉 순정만화 작가들만이 참여하여 순정만화만을 실은 잡지로서, (단, 극화 작가 이현세가 객원필자로서 글을 게재했는데, 그 내용은 순정만화가 자신의 극화에 끼친 영향이나 전반적인 만화문화관에 대한 것이었다) 현재처럼 순정만화잡지가 없었던 당시에 그에 대한 갈망의 산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잡지의 두 번째 주목할만한 점은 그것이 작가들의 자비로 직접 만들어졌고, 그 유통방식 역시 전면적으로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동작가들의 대본소용 서적 맨 뒷페이지에 그것이 만들어졌고 비매품임을 알리면서 보고싶은 독자는 참여작가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면 선별(? 선착순?)하여 우편발송할 것임을 내용으로 하는 광고가 실린다.( 그리고 필자 역시 이 광고에 따라 편지를 보내 정확히 우편으로 잡지를 받아보았다.) 이런식으로 기성 작가들이 자비로 잡지를 직접 만들고 그것을 대본소 유통경로가 아니라, 자신의 독자들에게 직접 접촉하여 유포하는 경우는 한국만화사상 이것이 처음이다.

왜 그랬을까,혹은 그래야만 했을까. 그 의문은 세 번째 주목할만한 점, 즉 잡지의 내용과 관련되어있다. 잡지의 주된 내용은 *편의 단편작품들과 한국만화사총론, 이현세의 순정만화관, 아홉번째신화 동인지가 주최하는 신인공모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일종의 '기획'적 성격을 가지고 통일되어 구성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아홉번째 신화'라는 잡지 제목은 서구에서 제9의예술로 일컬어지는 만화쟝르 자체의 예술적 가능성과 그에 대한 의지표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에 따라 나머지 글들 역시 만화라는 장르가 단지 1회적 소비오락용품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임을 분명히 하는 주제의식으로 기획되고 씌어져있다. (특히 당시의 일반 소녀독자들이 접하지 못했던 한국만화사를 실은 것은 이 주제의식이 나름대로 학술적이기까지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잡지에 실린 작품들은 죄다 단편인데, 그것은 잡지가 무크지였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당시 대본소시장에선 '단편'이라는 형식을 수용할 수 없었다는 상황에 대비되어 특징적이다.  또 이 작품들은 순정만화에 고전적으로 따라붙던 로맨스니 연애담, 미남,미녀캐릭터등이 최소화되고 반면에 극히 사회적인 소재, 혹은 철학적 소재,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sf적 소재, 동양적인 소재등을 담아내고 있었다. 즉 이 작품들은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당시 '시장'의 상품으로는 적절치 못한 창작품들이었고, 이 시장의 논리와 요구사항에 대해 스스로의 창작욕과 그것의 정당성을 일군의 작가들이 모여 선언하고 실현한 '만화독립운동' 잡지였던 것이다.

'운동' 은 동지들을 필요로 하고 그 동조자를 확대하는 것을 첫번째 목적으로 한다. '아홉번째 신화'는 일종의 운동 기관지라고나 할까, 이 잡지와 그 속의 내용은 팔리고 감상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당시로서 그럴 수도 없었겠지만) 이 잡지가 배달되고 유통되는 그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만화세대를 각성시키고 연결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나인 동인은 이러한 목적의식에 가장 철저하게 조응하는 출판,유통방식을 택했고, 그것이 바로 비매품 무크지 [아홉번째신화]의 의미다.

그것이 불러일으킨 반향은 조용하지만 급속했다. 그 바로 몇해 뒤 최초의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가 발간되고, 그 전부터 산개해있던 순정만화동호회가 전국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며, 자신의 동호회, 혹은 자신이 흠모하는  가의 영향을 받은 자생적(!) 신인들이 속속 출현하기 시 했다. 대본소가 주도하던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순정만화계를 벗어난 곳에서조차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만화광장]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아홉번째 신화]가 부르짖던 만화의 예술로서의 위치에 대한 진지한 재고를 하고 있었고 일회성을 벗어나는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고자 분투한 잡지였다. 만화비평과 함께 학계에서 만화장르의 학술적 면모에 눈을 돌리기 시작 했고, 이 와중에 발굴된 리얼리즘 작가군과 함께 [만화와 시대][만화창작]등의 주목할만한 무크지가 나타나기도 했다.


3. 풍요속의 빈곤, 만화잡지 시스템

'아홉번째 신화'의 흐름은 차후 순정만화잡지의 중요작가들과 그 원형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잡지 시스템에 반영되어 해소되었다. [아홉번째 신화]의 발간이 멈추면서 그 안의 몇작가와 또 다른 신진작가들이 또다른 무크지 [뭐]주3) 를 몇차례 발간했지만, 그것은 [아홉번째신화]만큼 절박한 상황의 운동적 산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홉번째 신화'에서 제기된 문제가 새로운 잡지중심 시스템을 통해 완전히 지속적으로 다 해소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만화광장]은 폐간되었고, [만화창작][만화와시대]는 단명했다. 이들이 경쟁에서 탈락된 채 잡지시스템이 안정된 경쟁체제로 돌입하고 있던 90년대 들어서, 일본형 만화잡지 시스템(주간, 격주간을 중심으로 빠른 연재를 통해 감상자를 길들이는)과 일본에서 개가를 올린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하여 승부수로 활용하고 있던 한국만화잡지들은 결국 그리 차별적이지 못하면서, 세대별, 성별로 소비층을 정해놓고, 그 층위에서 팔릴 만화만을 양산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를 벗어나는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박탈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는 수많은 만화잡지들 속에서 일시적 풍요를 만끽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비슷비슷한 만화들의 범람속에서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허전함을 채워주는 것은 단지 몇 안되는 인기작품들과 양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인 일본만화들뿐이다. 대본소 만화라는 낡은 시스템에서 잡지 시스템으로 시스템의 혁신이 한국만화계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문화적 성숙은 이루어지지 못했다.현재의 만화잡지는 10대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프로그램된 대중가요프로그램과 다를 것이 없다. 아니 그보다 못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10대들을 충분히 휘어잡고 있는 댄싱가수그룹들과 달리, 한국만화잡지의 만화는 그만한 메가히트작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한국만화의 현재 시스템은 또 하나의 한계에 부딪혀 있다. 일본의 잡지시스템을 도입하였지만, 잡지시스템을 받쳐줄 단행본 판매 부분은 대본소, 대여점이라는 또 다른 전통시스템과의 병존을 하는 이유로, 부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작가주의 순정무크지라는 면에서 [아홉번째 신화]와 맥을 같이 하는 'MIX'가 나왔다. MIX 또한 기성작가(상당한 신인들이지만)들이 작가주의적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실험을 하였는데, 이것이 '나인'(서울문화사)이라는 새로운 만화잡지의 전신 역할을 하였지만, 잡지시스템 자체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운그레이드 '나인' 그리고 결국 '나인' 폐간이라는 종결로 인해, 90년대 '아홉번째 신화'의 신화는 재현되지 못하였다.

또 한동안 붐을 이루었던 성인만화잡지 시장에서 독보적으로 걸죽한 한국작가 신인들을 발굴해내고 수준높은 작품들을 다량 싣고 있던 [미스터 블루]는 결국 한국만화환경의 고질적 문제-청보법과 음란물 혐의 사태-로 말미암아 사그러든다. 주4)


4. 언더 그룹들의 발생과 활동

90년대 만화문화의 양정팽창에 힘입어, 대본소체제의 잡지시스템으로의 전화, 그리고 그 주변에서 벌어진 기성 작가들의 독립적인 시도들이 커다란 축을 이루는 그 외곽 에서도 어떤 독립적인 움직임이 있어왔다.

'네모라미', '화끈', '일군의 한겨레 아카데미 작가들', '코믹스 그룹' . 사실 인디만화니 언더만화니 하는 개념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들 그룹들의 활동이 점차 눈에 띄이면서이다. '언더'라는 말의 뉘앙스가 풍기듯, 이들은 '기성' 혹은 주류만화시스템속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은 작가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된 사정에 관하여 혹자는 이 작품군들의 일반적인 경향성, 혹은 공통요소로서 거칠고 투박한 부분, 난독성 등을 지적하며, 만화로서의 정체성과 완성도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는 분명 개별 작품에 있어 타당한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각개 작품의 개별적 평가 이전에 일정한 만화관을 공유한 경향그룹으로서 평가할 때(사실 많은 이들이 이들 작품들을 개별작품의 제목보다 그것들이 실린 잡지제목,혹은 그룹제목으로 기억하지 않는가) ,이들의 정체성은 [아홉번째 신화]의 정치적 태도와 만화관을 견지한 만화운동 그룹들로 판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성 주류만화시스템에서 스스로의 표현방식과 정체성을 통제받기 보다는 차라리 독자적인 출판,유통 경로를 모색하고 있고 그러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기존질서에서 배제된채 '언더'-즉 뜨지 못한 작가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앞 글에서 언급했듯이 오버냐 언더냐, 떴느냐 뜨지 못했느냐는 인디-독립이냐 아니냐의 판단기준과는 범주가 틀린 문제다. 그들은 90년대 중후반에 등장해 이미 만화동네 한켠에 안정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인디 만화진영이다. 그러므로 이들 개별 그룹은 표현양식이나 주제상의 공통요소보다도 그 활동상과 목적에 의해 구분될 필요가 있다,



A. 네모라미 그룹

'네모라미'는 홍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만화동아리로 알려져있다. 2기 회지 (박명천,이우일등 포함) 에서부터 눈에 뜨이기 시작한 '네모라미'의 만화는, 주류만화의 전통적 요소인 인물과 극에의 몰입보다는 화면전체의 '시각'적, 혹은 '디자인적' 효과를 중시하고 해체적인 극 구성과 대사운용이라는 특징을 전반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 동 회지에 실린 포스트모더니즘에 관련된 수필(?)적 글들을 싣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가치의 권위에 대한 해체적,도전적 성격을 보여준 네모라미의 작품들은 일부 독자들과 만화가지망생들을 신선한 충격으로 몰아넣었는데, 그것은 당연하게도 당시 주류시스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작품들이었다.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만화가로 명백히 규정짓지는 않고 출발하고 있었고, 결국 개별 성원들은 여러 분야(광고, 신문,디자인,웹)로 흡수되었다. 그중 일부 (예를 들어 이우일)는 본격적 만화의 길로 들어섰는데, 일간지에서 활동하므로서 일단 논외가 된다. 그들이 기성권위에 도전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시스템보다 먼저 기성 만화양식에 대한 것이었다.

B.'화끈' 그룹

'화끈'은 개별작가들의 상업잡지에서 강요하는 일괄기준에 대한 저항적 성향이 굉장히 강하고, 수준높은 작품과 작가가 많지만 동시에 작품들 사이의 수준 편차도 크다.그들중 몇몇은 (김경호등) 주류잡지로 진출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개성적 표현양식을 안정적으로 지원해줄 주류잡지는 아직 없다고 보인다. 그래서 첫 출발당시 이 잡지는 독자적 시장과 유통경로를 창출하는데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곧 오프라인을 폐간하게 되고 웹진으로 변화되었다 다시 오프라인 재창간, 그리고 다시 정간되기까지 가장 큰 문제점은 재정이었겠지만,(당연하게도!) 그 사이에 새로 발굴되거나 결합된 수준높은 작가들은 거의 없으며, 안정적인 원고수집도 힘들었던 것이다. 즉, 이들 작가군이 가령 코믹스그룹처럼 주류잡지에 대한 거취와 태도문제를 명확히 하는 집단적 정체성으로 통합되어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C. '한겨레 아카데미'그룹

'일군의 한겨레 아카데미 작가들'이라고 칭한 측은 참으로 다종다양한데, '오즈'의 작가군을 비롯한 한겨레 아카데미(우만련이 진행하고 있는)의 교육을 통해 배출된 작가들이다. 지금은 폐간된 월간 '오즈'의 게재물 일부와, 대다수 한겨레 아카데미 졸업작품집이나 그 출신의 회지등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이들의 작품들은, 주류만화에 대한 독립적 성향이 강한 작품들을 많이 포함하지만, 작품과 인식 양자가 모두 수준편차가 심하고, 아마츄어적 적인 면모가 많으며, 주류만화적 취향 또한 상당히 많기에, 이들을 한 흐름으로 보기에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품활동 계기와 경로는 한겨레아카데미라는 공통의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묶여있기 때문에 편의상 이렇게 묶어놓는다. 교육기관이라는 공통의 출발점은 애초부터 ' 앞으로 어떻게 데뷔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들의 목적과 방향성을 규정짓게 한다. 그러나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명백한 정치적, 집단적 인식과 대응을 모색하기보다는 단지 스스로의 습작활동에 강제성과 규칙성을 부여하고,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집단적으로 찾는데 골몰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이들이 중심이 된 메가툰 같은 웹공간은 완성된 잡지라기보다는 졸업작품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D. 'comix' 그룹

'코믹스'는 초기에 조악한 만화라고 많은 혹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끈질기게 작품활동을 하며 발전하는 명백한 인디그룹으로, 언어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강령적 수위의 강력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진 흐름(이것은 이들이 항상 특별한 테마를 가지고 작품집을 낸다는 것으로만 보아도 알 수 있다.)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작가, 작품에 대한 개별적 평가를 떠나 이 집단 자체를 주목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데, 그 출발점은 무크지 [봄]으로 나타난다. 일부 네모라미 작가들과 공동으로 창간한 [봄]에서 선언한 바, 편집장 신일섭은 '상품이기를 거부하는 만화'를 명백히 천명하고 이후 이어지는 [히스테리][버전업 히스테리][코믹스]그리고 새로 창간된 [월간 코믹스]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관점을 더 단단히 다져오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상품이기를 거부하는 만화' 가 어떻게 만화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이들이 거부하는 상품은 '주류시장'의 상품이다. 주류시장에 포섭되지 않은 취향과 개성이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의 개척. 이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이러한 확실한 태도는 이들의 활동을 기존 주류시장의 비판과 더불어 자신들과 함께 문화적 취향을 공유하는 풀의 확대를 향하도록 한다. 아주 작은 틈새지만 그것이 제대로 충만되면서 장기간 지켜질 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코믹스 그룹은 이러한 태도와 전략을 지속적으로 지켜왔고 가능한 모든 기회에 선언해왔으며, 심지어는 각종 전시회와 이벤트를 통해 선전까지 해왔다. 즉 글자그대로 시장을 개척해왔고 그안에 신진 작가들이 계속 충원되어왔다. 이제 그 성과로 만들어진 이 새로운 시장안에 월간지를 내보낼 때가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코믹스 그룹의 활동방식은 두가지 문제점을 시사한다. 하나는 그들의 전략 자체인데, 이전 [아홉번째 신화]의 잡지를 통한 네트워킹 방식이 잘 활용된 예일 수도 있다. 그간 지속적으로 내온 그들의 잡지가 새로운 작가들과 독자들을 발굴해냈고 모아냈다. 한편 코믹스 그룹은 자신들만의 공통된 문화적 취향을 중요한 토대로 가지고 있다. 딱히 펑크적이라고 할 것은 없겠지만 저속함 혹은 저급함의 취향,키취등의 개념에 대해 신일섭 편집장의 표현으로 대표되는 그것은 주류시장에 대한 비판과 함께 코믹스 그룹의 강력한 결합력의 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취향에는 공감하지 않는 다른 독립작가들이 코믹스그룹에 합류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 결국 이들 다른 취향의 독립작가들은 또하나의 자신의 취향그룹과 소규모 취향시장을 개척해야 하게 된다는 걸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문제는 아마도 '연대'가 될 것이다. 코믹스그룹의 일관된 정치적 태도는 또 한번 버전업해서 이 연대의 전략에 대한 태도도 명확히 해야할 것이다. 물론 연대할 다른 집단,혹은 흐름,혹은 개인의 너무나 미미하고 산개한 상태라 역시 아직은 애미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연대의 제안과 '길'이 그들을 자극하고 조직하는 자극제이자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 개인 독립 작가군

개인 독립 작가들의 경우, 어떤 매체를 내거나, 그룹화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주류시스템과는 무관하거나, 아니면 그 시스템의 한계를 정면돌파하는 작가들이 여기에 속한다.(가장 대표적인 작가는 프린세스 안나와 같은 잡지만화의 이단아를 만든 변병준이 있고, 대표적인 작가주의 만화가 박흥용이나, 얼마전 연재없이 몇 년을 준비하여 한꺼번에 단행본을 출판한 [빠담빠담], 작품의 자율성을 위해 잡지[나인]에서 나와 웹진에 [사춘기]를 연재하고 있는 이진경등.) 이들 작가들의 활동은 그 자체로서는 주류 질서가 가하는 제약에 대해 자유를 분명히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한 그 시스템하의 출판을 포기하는것도 불사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질서에 대한 독립을 명백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주류질서의 돌파구,혹은 대안이 되기 힘들다는 면에서 '운동'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이들 작품들은 때로는 공공 공모전을 통해, 때로는 주류잡지의 '구색 맞추기'용으로 빛을 보기도 하지만, 이것이 주류질서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일반적인 만화독자들에게 충분히 '보여지고' 또 익숙해져서 선호되는데 이르기까지 살아남는데 필요한 시간과 행운은 너무 많다. 게다가 그들은 창작과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여지게끔 설득,교섭작업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개인 독립작가의 매니저가 모색되거나, 개별 독립작가들을 모아 매니지먼트할 단체나 기획회사가 개발되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빠담빠담]의 경우에는 두 작가중 한명이 전적으로 이 원고의 출판을 위해 출판사들을 대쉬하고 이곳 저곳의 만화계에 원고를 소개하면서 출판기회를 만들었다. 또는 코믹스그룹과는 틀리게 다양한 취향의 작품이 공존하는 독립만화잡지를 스스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혼자서는 한계가 있으며 이경우에도 집단적 조직화, 흐름의 창출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작가가 '먹고살기 위해서', 하지만 '만화의 자유를 희생하고싶지는 않아서''과외로' 딴짓-학습만화나 삽화 등 아르바이트에 귀중한 창작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길 바라는 것은 우리만이 아닐 것이다.


5. 맺으며

운동으로서의 인디는 주류에 대한 반정립이자 새로운 권력을 지향한다.

인디만화를 해석할 때 소수의 해방구, 아나키한 어떤 것으로 볼 때가 많다. 또는 기존의 시스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설익은 만화들의 대기소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지적은 현재 인디만화로 분류되는 작가, 작품들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지적이지만, 표면적인 지적일 뿐이다.인디라는 것은 고정불변의 어떤 개념이 아니며, 영원한 소수자 또한 아니다.( 특정한 시대에 주류시스템을 한계성을 지적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이자, 다음단계의 양식에 반영이 되는 중핵인 것이다. 인디를 단지 마이너한 것으로, 혹은 특정 소수의 자족적인 양식으로만 생각한다면, 인디의 미래는 없다. 현재 인디는 기존의 지배질서의 한계점을 보다 전면적으로 비판,전복하고 새로운 권력을 획득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그러한 인디를 양식적으로 개념화하여 고정시키는 것은 인디의 생명력을 제거하고, 박제를 만드는 행위에 불과하다. 아홉번째 신화는 80년대 대본소 시스템에 대한 반정립으로서 잡지만화의 모태를 보여줬다. 현재의 인디만화는 굳어진 잡지시스템에 대한 적극적 반정립으로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다. 그것은 혹자가 늘 말하듯,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의 부재, 또는 '열심히 창작하면 되겠지'로 해명되고 개선될 문제가 아니다.  

인디작가-만화계의 독립지사 들이여, 자부심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라. 모여라, 연대하라. 비판하고 개척하라. 당신들의 정당성을 만천하에 선포하라. 주류시스템의 뻔한 요구조건에 작품을 변형시키지 말고, 작품을 존속시킬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한다.(그것이 자비출판이 되건, 스폰서를 구하건, 웹출판이 되건, 직접 단행본 출판이 되건 간에 말이다.) 이런 행동 속에서 당신들의 작품이 빛날 것이고, 더욱 더 현재의 주류시스템의 한계는 폭로될 것이다. 주류시스템에 대한 어떠한 동경도, 유혹도, 동정도 연민도 유혹도 가질 필요없다. 여기 침몰해가는 거대한 난파선이 있다. 그 난파선의 이름은 단지 주류 만화 시스템일 뿐, 만화라는 이름은 아니다. 만화라는 이름은 기울어가는 난파선으로부터 사방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구명정들, 당신들이 지금 저어가고 있는 그 배들의 노에 다름아닌 것이다.

주)--------------------------------------------------------

1) 사실, 90년대 이후로 심심찮게 등장,논의되어온 한국 인디만화에 대한 논의는 그간 몇번 있었지만, 인디만화를 보는 이러한 관점은 인디만화 자체를 그 공간적인 존재상태로서만이 아니라, 그 시간적 존재상태, 즉 그 출발점과 흐름을 쫓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2)(구 히스테리, 대표적이라고 한 이유는 그 스스로 인디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선포하고 있기때문이다)

3) 필자는 인디작가군의 중심작가 중 하나인 신일섭씨와의 인터뷰 속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표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실제적 해외와의 교류, 혹은 해외작품의 참고는 한국의 인디작가군에서 거의 없었다. 물론 '네모라미'같은 경우는 해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이 서구의 이미지에 대한 조류에 밝은 미대생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한국의 인디작가를 대변하는 존재는 아니기에 예외로 한다.

4) 무크지 [뭐]는 만화비평이나 만화장르에 대한 논의는 일단 최소화되고 그보다는 오히려 개별 작가들이 즐기면서 활동하는 동호회 동인지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가령 소설과 함께 삽화를 시도해본다던가,(만화가라고해서 만화만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음악을 소개하고 그에 어울리는 일러스트를 제공한다거나, 하지만 그런면은 월간 르네상스를 비롯하여 다른 순정지들과 또 개별 작가들이 기왕에 활동하던 아마추어 동호회( 이즈음 아마추어 동회회출신 신인작가들이 속속 배출된다. 대표적으로 강경옥등이 그에 속하고, 한편 박연등의 기성 대본소 작가가 아마추어 만화동호회에 들어가서 지속적으로 동시활동을 하는 사례도 있다)속에서 충족될 수 있었고, 그리하여 곧 존재이유를 찾지못한채 해소되버린다. 덧붙여 둘 것은 당시 많은 아마추어 동호회가 회원모집광고에 '프로지향'이라는 단서조항을 넣었다는 사실이다.(!)

5) 사실 [미스터 블루] 폐간의 본질적 문제는 한국만화환경도 문제지만, 이 잡지가 이현세 개인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만일 이 잡지가 표방한 한국 성인 만화의 발굴 육성이라는 대의가 확고히 다른 모든 작가와 만화인들에게 공유되고 그들 전체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면 그리 허망하게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작가들은 자유로운 잡지를 언제든지 필요로 한다. 이현세가 손을 뗐어도 작가들이 인수해 집단경영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은 바보같은 질문일 뿐일까..? 하지만 자비출판으로 대본소시스템에 타격을 가하고 신화가 된 [아홉번째 신화]도 있지않은가..! 무료 원고는 기성작가의 권위와 병존할 수 없는건가?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102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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