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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쁜 음식' /채민 - 편리하지 않은 길로 가다
이 만화 봤어? 05/12/14 12:12 깜악귀
채민의 [나쁜 음식]은 나레이션 위주로 독자를 흡입해서 끌고가는 순정만화의 문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물의 대사와 보여줄 것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 것을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할 말을 다 한다. 편리한 진행방식을 거의 채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리한 진행방식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어떤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하드한 스타일을 취했다는 것을 독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게임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만화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일정 정도 무익한 일이다. 그러나 '나쁜 음식'은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어떤 스타일로 그릴지'를 많이 고민한 만화임에 틀림없으며 작가는 그 과정에서 '자기만 아는' 장인정신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나쁜 음식'은 익숙한 장르만화가 아니라는 초기의 선입견을 버리고 나면 능숙하게 독자를 빨아들이는 만화다.

'나쁜 음식'은 남자 친구와 함께 사는 미술 누드모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는 벗어서 먹고 사는 여자다. 그는 나를 벗겨 먹고 사는 남자다"로 시작한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작가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이 놈이 나쁜 놈이다"라고 처음부터 손쉽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인 디테일로 그것을 조망하며 차근차근 보여줄 뿐이다. '설명되지 않은' 부분은 상실된 부분이 아니라 말 못하고 응축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연출의 긴장감이 나온다. 이 남자는 정말 나쁜 놈인가? 바람을 피우나? 여자는 알 게 될 것인가? 여자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여자는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인가?

'성인여성의 현실'을 그려내는 만화는 현재 한국여성만화에서 의외로 전무한 영역이다. 그리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현실성 면에서 실망스러운 수준이 대부분이다. 30살이 넘어서 처녀인 여성이 버진을 때려고 발버둥치는 캐릭터 코미디물은 지금 현실의 여성에게 동감을 얻을 수 있을까? 내게 이런 설정이 마치 순정만화의 현주소를 은유하는 소극 같다. 남성과 연애에 대한 사춘기 환타지를 넘어서지 못하거나 조금 넘어서려다가 손쉽고 적당하게 봉합해버리고 만다. 그 너머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의 손을 잡고 모텔에 가고, 직장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것은 만화의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한국 순정만화의 주류가 10대 중심이 되어 그런 것을 내보일 수 있는 지면이 없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 축에서는, 왠지 이 방면으로 그릴 수 있는 작가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만화가는 현실보다는 환타지를 더 개연성 있게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만화가란 삶의 문제를 투영하는 것보다는 '장르적인 호흡'을 익히고 자신의 필치로 재현하기 위해 시간의 대부분을 투자한다. 이런 것 역시 좋고, 장르만화는 작가주의만화보다 못하다 -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각각에는 각각의 길이 있다. 그러나 모든 만화가들이 너무 쉽게 공상적 영역과 타협하고 장르에 고분고분 순응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게 비록 장르만화라고 해도 말이다. 항상 하는 소리지만 다양성이 부족하다.

이런 뚝심을 보는 것은 분명 오랜만이다. 이 작가를 순정의 영역에서 벗어나 여성만화의 영역에 자신의 성을 마련하려 하는, 이미 역량을 증명한 작가로 여겨도 좋을 듯 하다. 편리하게 보면 채민을 한혜연, 나나난 키리코와 같은 류로 볼 수 있다. 특히 소품의 배치와 활용 등은 한혜연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물론 채민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이를 활용해 나아간다.

여주인공이 생라면을 뜯어먹는 디테일을 언급할 수 있겠다. 남자친구는 여주인공이 좋아하지도 않는 라면을 한 박스나 사서 그 방에 놓고는 며칠째 걸음을 하지 않는다. 그 때 정전이 오고, 다음 장면에서 주인공은 생라면을 뜯어먹는다. 디테일이 말을 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독자로 하여금 손에 잡힐 듯이 그녀를 관찰할 수 있게 한다. 동시에 그녀로부터 완강하게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 캐릭터의 직업이 누드모델인 것이 함의하듯이 이 만화는 '알몸이 되듯이' 우리에게 주인공의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음식]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여타의 다른 작가에 뒤지지 않는 구력을 보여주고 있다. 덧붙여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지금까지 응축된 내용들이 독자에게 누적된 효과를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는가 - 가 이 만화의 급을 좌우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지리멸렬한 사랑 이야기를 즐겁게 지켜볼 일이다.

* '나쁜 음식'은 잡지 Herb에 연재중이다.
단행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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