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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여점/ 장르의 미래를 위한 몇 가지 원칙들
만화는 흐른다 01/06/24 14:44 halim


[] 이야기 할 것들의 범주에 관해

이런 저런 있음직한 대안들을 주욱 나열하는 것으로 이 글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제시하는 것으로 족하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머리 맞대고 브레인 스토밍 몇번 하면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이 무수하게 나오고 그것을 잘 정리해서 내놓으면 뭐 보기에는 좋다. 하지만 그런 식의 나열은 좀 무책임하지 않을까? 나열만 하고 끝난다면 혹자는 이거야 말로 '탁상공론'이라며 치켜세워 줄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정책대안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것에 관해서는 이후 두고보자가 다른 주체와 연계하여 진행할 이벤트를 통해 세부 분야별로 제시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각론보다는 만화장르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들에 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게임이나 다른 후발 매체들과의 경쟁 속에서 지속적으로 저변을 위협받고 있는 만화판의 각 주체들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입장, 빌려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원칙들, 적절한 결론에 다가가기위한 근거와 논리들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우선 이하의 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사서 보는 것' 내지는 '사서보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빌려보는 입장'은 일단 밀어두려고 한다. 현재의 만화판을 보면 누구나 알 듯이 빌려보기를 통해서 만화를 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빌려보는 행위를 폄하하거나 혹은 빌려보기 문제를 억지로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선적으로 '사서보는 것' 위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빌려보는 행위는 사서보는 행위와 다른 층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사서보는게 아니면 빌려보는 거다 내지 빌려보게 되면 사서보지 않을 것이다 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기존의 대여점 관련 논의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 한가지는 많은 경우에 특별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채 도서대여점이 동일한 시장을 놓고 서점과 경쟁하고 있을 거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진행시켜 버린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그런지는 조금 더 냉정하게 판단해볼 필요가 있고 ... 내가 보기에 도서대여점은 서점이나 극장보다는 비디오방, 비디오대여점, 노래방 등의 공간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할 문제아닐까 싶다. 이 레벨의 소비자입장에서 만화방에 가든 비디오방에 가든 아니면 노래방에 가든 시간이 남으니 가는 것 뿐 장르간의 차별성 같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공간에서 소비되는 돈과 시간은 대여점을 없앤다고 해서 도서구입으로 재분배되지도 않는다.

대여점 고객들이 빌려보지 못하게 되면 서점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여점의 경쟁자는 서점이 아니라 비디오방과 노래방이다. 도서대여점이 없으면 비디오대여점에 가고 그것도 없으면 노래방이나 당구장에 가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 그들은 원래부터 서점같은데는 가지 않는 그런 집단일지도 모른다. 덧붙여 빌려가는 부분을 우선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한가지는 이러한 제로섬 게임적 특성에 있다. 게임산업이 만화의 저변을 위협한다고 말하곤 하지만, 이는 세대적 관점에 기초한 코멘트이지 게임자체가 만화를 배척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게임에 의해 특정만화의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도 있고, 게임을 하던 사람이 게임을 통해 만화를 새로이 접하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문화산업은 여러 장르들이 서로 어울려 시장을 증가시킬 수 있고 이는 기존의 다른 산업과 문화산업을 구별하는 한가지 특징이기도 하다. 반면에 도서대여점과 비디오대여점과 PC방은 한정된 고객의 돈과 시간을 놓고 경쟁하는 단순 서비스업으로서 이러한 상호보완적 특성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다.

어쨌거나 도서대여점의 경쟁자에 관한 위의 언급들은 아직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하고 이 판단에 혹은 판단의 근거에 대해 동의할 사람도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 사안에 관하여 선언적으로 던져놓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이에 관해서는 말미에 다시 재검토 해보기로 하고 일단은 만화장르의 미래를 위해 우선적으로 강조해야할 원칙들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 대중성과 보편성의 문제

한국영화계는 최근 연이어 빅히트작을 내면서 시장점유율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서울 기준으로 97년 21.4%, 98년 27.1%, 99년 35.8%로 급증하고 있지만, 영화시장 자체는 지난 몇 년간 거의 증가하고 있지 않다. [2000년 영화연감]) 지난 수년간 소액 투자자 및 전문 창투사를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투자들이 결실을 거두고 있으며(** 반면에 대기업자본은 IMF 이후 상당부분 철수한 상태이다), 한석규로 대표되는 '시나리오 중시'의 분위기가 영화계 전반적으로 좋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요즈음의 한국영화가 이전에 비해 뛰어난 작품내적 성취를 거두고 있는지, 현재의 흥행호조가 소수의 빅히트작에 의한 것임을 감안할 때 무작정 낙관만 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지 않을지 등에 관해 이론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80년대와 90년대를 지배했던 불안감에서 벗어나 중흥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아 ...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만화독자의 입장에서) 정말 부러운 것은 시장점유율의 증가와 같은 수치적인 상승곡선이 아니다. 단순히 시장규모로 따져봤을 때 만화 및 만화를 기반으로 한 연관산업의 시장규모와 영화 및 파생산업의 시장규모 차이는 그다지 절대적이지 않다.

그런 산업규모의 차이 혹은 사회적 인식의 차이와 조금 다른 측면에서 영화는 만화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보편성'이라고 부르겠다. 대중성이란 표현도 있는데 왜 보편성이냐고? 그 두가지는 어떻게 다르냐고?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친구 보셨습니까?"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은 만화팬들 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과 상관없이) 상당수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기꺼이 6천 원을 지불하고) 보았을 것이다.

만화판에는 그 정도의 히트작이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면 조금 달리해볼 수 도 있다. "올해 들어 극장에 가신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올해 만화책을 구입하신 적이 있습니까?" 라는 말과 등가의 질문이다. 과연 이 두 질문 중 어느 쪽의 긍정적인 대답이 더 많을까? (이 글이 게재된 지면이 만화관련 웹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말이지)

질문을 다시 바꿔보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만약 (만화팬도 영화팬도 아닌) 어떤 사람의 수중에 6천 원이 있고 그가 그것으로 2-3시간 쯤 문화생활을 하길 원한다면 그는 영화관에 갈까 아니면 만화책을 사러 갈까? 6천 원을 지불하고 만화책 두 권을 구입하는 것과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인지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화판에 사서보기의 문화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영화의 경우 특별한 결심없이도 필요에 따라서는 6천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그렇지만 영화팬이라고 할 순 없는) 잠재적이고 두터운 일반대중 & 소비자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만화의 경우 만화팬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특정한 집단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절대로 만화책을 사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이는 충성도 높은 만화팬들의 경우 평균을 크게 넘어서는 수준의 구입량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며 이러한 편차는 출판통계에 나타나는 최종적인 종 당 발행부수만 봐서는 알 수 없다. 1년에 50권의 만화를 사는 사람은 있어도 1년에 1권의 만화를 사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중성과 보편성의 갈림길이 놓여있다. 영화나 만화나 비슷하게 대중문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의 대중을 소구한다. 그렇지만 만화는 영화만큼 보편적이지 않다. 영화를 본다, 만화책을 산다라고 하는 두 행위를 비교할 때는 분명히 그러하며 그 차이는 영화시장과 출판만화시장규모의 수치적인 비교에서 기대되는 것 이상이다. (** 영화시장규모는 1999년 2500억[2000년 영화연감] 내외, 출판만화시장은 같은 해 1200억원, 2000년에 1400억원 [2000년 출판연감] 내외. 물론 여기서 제시하는 시장규모는 영화와 만화 모두 추정치이다. 영화라면 관객수×평균입장료 이며 만화는 종수×부수×평균정가를 의미한다. 만화의 경우 재고, 덤핑판매 등으로 누락되는 부분이 영화보다 많겠지만, 익히 알 듯이 정식 출판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으므로 그냥 저 정도로 추정해 두도록 하자)

단순한 수치상의 비교는 사실 문젯거리가 아니다. 영화뿐 아니라 연간 1천억이 되지 않는(2000년 출판연감) 문학과 비교해서도 만화는 덜 보편적이다. 만화독자는 소설독자만큼 '편만'해 있지 않으며 소설만큼 '많이' 이야기되지도 않는다. 100명의 대중이 있다고 할 때 그중 문학애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누구나 자신의 기호에 맞는 문학작품을 '약간씩'은 향유하고 있다. 한해에 소설을 백 권씩 구입하진 않지만 한 두 권 정도는 누구나 살 수 있으며 현재 그렇게 되고 있다.

작품내용의 대중성과 다른 대중문화장르와 특별한 차이점을 찾기 힘든 시장규모에도 불구하고 향유방식에서 만화는 그다지 보편적이지 못한 문화장르이다. 결과적으로 100권이 팔리는 것은 동일하다고 해도 10명이 10권씩 사는 것과 100명이 한 권씩 사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현재의 출판만화시장에는 매년 3000권씩 구입해주는 소비자(** 이는 물론 대여점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대여점을 유통의 주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여점은 연간 2-3천권의 만화책을 구입하는 가장 열성적인 최종소비자에 불과하며 그들이 구입한 만화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가는 그 다음 단계의 문제이다) 혹은 매년 수십 수 백권을 구입하는 열성독자는 있을지언정 만화팬도 아니고 열심히 만화를 보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가다 한 두권을 구입하는 잠재적인 독자층이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판매패턴이 이런 식으로 고정될 경우 전체적인 시장규모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빅히트작이 나올 수 없다. 100명이 한 권씩 사는 시장에선 50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나올 수 있지만, 10명이 10권을 사는 시장에선 많이 팔려야 10권일 따름이다. (어느 쪽이든 최종적으로 집계되는 종당 평균 발행부수는 비슷하겠지만) 사실 전체만화시장이 크게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고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베스트셀러의 판매부수가 예전보다 줄어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더 철저하게 상업성과 대중성을 추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만화의 향유방식에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천억 이상의 시장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열성독자만 엄청나게 구입하고 관심없는 사람은 일년내 한 권도 사지 않는가.

현재의 만화는 충분히 대중적이다. 아니 지나치게 대중적이다. 지나치게 민감하고 고객들의 요구에 너무 쉽게 움직인다. 소수의 열성적인 소비계층(대여점 + 만화매니아)의 '대중적인(?)' 취향에 맞추다보니 만화판 밖에 존재하는 엄청난 규모의 잠재적 고객들의 감수성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현재 한국만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어물쩡 지나오는 사이에 만화판에 목소리를 높이는 매니아와 소위 (출판사에서 염두에 두는) 대중의 취향자체가 일반인의 취향과 전혀 딴판으로 달라져 버렸고, 이 상태를 유지하는 한 한국의 만화시장은 그저 천천히 내리막길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 책을 팔겠다는 의지

보편적인 (혹은 보편적으로 소비되는) 작품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작가가 책임을 느껴야 할까? 작가가 먼저 그런 작품을 내놓아야 해결될 문제일까? 물론 개별적으로 작가 개인들에게 더 좋은 작품의 창작을 요구할 수는 있을 것이고, 작가 스스로는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그것은 만화시장이 원하는 답변이 아니다.

보편적인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보편적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이다. 종당 4천 부밖에 팔아주지 못하는 대여점 + 만화매니아 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은 ... 사실 그 자체로 마케팅이라 불릴 가치도 없거니와 정말로 팔아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는 현실 안주일 뿐이다.

개봉영화의 광고는 일간신문에 실린다. TV광고도 한다. 여기저기에 현수막과 옥외광고가 걸리고, 관련상품을 개발하고, 식당체인과 연계하여 홍보하기도 한다. 새로나온 인기작가의 소설도 신문, 잡지를 비롯하여 가능한 온갖 지면을 통해 홍보된다. 그런데 왜 신간만화는 만화방과 총판에 포스터 몇 장 걸고(그나마 이 정도의 성의라도 보여주는 것은 공장제 만화들이다) 다른 단행본과 잡지 사이에 신간안내를 내는 것으로 끝인가? (** 사실 단행본 뒤에 다른 만화단행본(심지어 잡지)의 광고를 게재하는 행위는 이중의 악덕인데, 우선 이러한 광고는 책을 구입자 1인이 읽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빌려져서 수십 명이 보게 될 거라는 추측을 출판사가 했고, 그런 가정 하에 게재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덕지덕지 붙은 광고는 소장하기 위해 책을 구입한 독자의 불만을 유발하며 덤으로 구매의욕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가령 단행본구입자에게 출판사의 다른 책을 홍보하고 싶다면 책 사이에 팜플렛을 끼워놓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첫 번째 구입자이외에 빌려보는 독자에게는 이 팜플렛의 광고효과라는 것이 없으니까 은근히 대여점을 의식하는 출판사는 광고페이지를 분문 뒤편에 같이 제본하는 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것이다)

현재 나의 가방에 들어있는 책 중에 보르헤스의 단편집 '알렙'이 있다. 전 5권으로 구성된 보르헤스 전집의 세 번째 권이다. 이 책은 1996년 3월에 초판이 나왔는데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은 2000년 11월 15일에 나온 5판이다. 가끔가다 소설을 구입하는 일반인으로선 심상한 일이지만, 만화독자로선 신기하다. 1996년에 초판 나온 책이 아직도 유통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럭저럭 많이 팔린 책이긴 하지만 대단한 히트작은 아니다. 게다가 순문학이다. 만화처럼 대중적이지도 상업적이지도 않은 순문학계열의 단편집이 이미 5판을 내고 있다.

이걸 보면 분노가 치민다. 대체 현재 한국에 존재하고 있는 만화출판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서점에서는 96년은 고사하고 99년에 출간된 책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극소수의 히트작을 제외하면 초판만 내고 그걸로 끝인가?

아마도 일반 문학서적 출판사가 내는 책들 중 일부만 5판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상당수는 초판만 찍고 재고처리 될 것이고, 조금 주목받으면 재판 찍고 더 팔리면 판수가 늘어난다. 이것이 독자와 그리고 시장과의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하지만 만화는 처음에 (기대)수요에 맞추어서 1,2판 찍어놓고 그걸로 끝이다. 더도 말고 1년만 지나면 어디서도 팔지 않는다. 잠재적인 수요를 끌어내기 위한 마케팅을 전개하고 그 수요를 기반으로 재판을 찍는 일 같은 것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장구조 하에선 상식적인 일이지만, 적어도 만화계엔 없는 듯 하다. 물론 이런 악조건에서도 히트를 하여 여러판을 찍는 만화들이 있기는 있다. 그럴 경우에도 이 작품의 히트에 대한 공은 전적으로 작가와 독자들에게 돌려질 일이지 단지 인쇄소 역할 외엔 한 게 없는 만화출판사에 돌려질 것은 없다.

줄거리도 쉽게 안 잡히고 몽환적이어서 졸음오기 딱 좋은 보르헤스 전집이 5판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작품 자체의 팔릴만한 속성과 독자들의 열화같은 성원 이전에 책을 찍어낸 출판사의 꾸준한 홍보와 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푸코와 라캉의 책이 '대중적으로' 팔리는 한국출판시장이 좀 이상하긴 한데 그것마저도 독자의 지적허영심을 잘 자극한 출판사의 마케팅을 칭찬할 일 아닌가.

한국의 만화작가들이 손해를 보는 지점은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대여하고 이에 따른 수익이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상황(자체)에 있지 않다. 대여점에 있는 책이 100번 대여되었는데 작가에겐 300원 밖에 안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버스가 지나가도 한 참 지나간 후에 손 흔드는 것이다. 흔히 말해지는 대여점의 폐해(?)는 많은 과정을 내포한 최종적인 결과,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도출된 결과일 뿐이다. 공들여 만들어낸 작품이 서점을 겨냥하여 마케팅 되지 못하고 대여점으로 나가게 되는 순간 (최종적인 종당 판매부수가 동일하더라도) 이미 작가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의 책임은 다른 어떤 주체보다도 출판사에 물어야 할 것이다.

출판사가 대여점을 염두에 두었으니 대여점에 팔리는 것이고 대여점에 비치되었으니 당연히 빌려가는 것 뿐이다. 여기서 대여점을 욕해야 할까, 사지 않고 빌려가는 독자들을 비난해야 할까? 대여점을 없애면 문제가 해결될까? 대여점에나 비치될만한 수준으로 책을 만들고 대여점에나 겨우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의 기존 유통망에 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여점'만' 없어지면 책이 팔릴까? 정말?

가장 기본적인 진리는 불변이다. 책은 서점에서 팔려나가는 것이다.


[] 작가의 역량에 대한 신뢰

미안하지만 보르헤스 이야기를 한 번 더 인용하자. 민음사는 이 전집을 무려 5판이나 팔아먹었다. 불만스러운가? 그럴 리가 없지. 보르헤스의 단편집은 그 자체로 구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출판사가 한 것은 이 책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충분히 인식시켜준 것 뿐이고 이것은 출판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만화계는 어떤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만화를 출판하는 쪽의 마케팅 노력이 부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누군가 나서서 그러한 마케팅을 전개한다면 거기에 부응하여 팔려나갈 수 있는 작품 혹은 그런 작품을 낼 수 있는 작가가 존재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잘 모르겠다고? 허접한 한국만화를 너무 많이 봐왔다고? 음 ... 그럴지도 모른다. 많은 독자들이 속아왔을 것 같지만, 그런 과거의 경험을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서 두어 가지 변명 혹은 억지(?)를 내놓을 수 있겠다.

우선 한국만화작가들이 팔릴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혹은 그럴 역량이 부족하다라고 가정하는 것은 그 가정 자체로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으나 이 기획기사 혹은 이 글 전체로 판단할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궤변같다고? 마케팅은 팔릴만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만한 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구입한다. 작가는 독자들이 사봐도 아깝다고 여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하에 작품활동을 한다. 마케팅이 '기본기'라면 작품성은 '생명'이다. 작품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 설혹 그런 가정이라도 한다면 이 기획기사의 모든 구절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고 이렇게 길게 써내려 갈 의미가 없을 것이다.

출판사도 평론가도 시장의 어떤 주체도 사기를 쳐서는 안된다(물론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내가 만약 앞에서 떠든 것과 달리 한국만화계에 팔릴만한 작품이 없을 수도 있다고 내심 생각(만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건 없는 것을 부풀려 팔아먹는 사기행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이 글의 모든 논의는 전적으로 한국만화는 살만하다 그럴만한 작품성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적어도 나 자신은 철썩같이 믿고 있다.

덧붙여 변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한국의 만화작가들은 서점에서 (만화독자가 아닌) 일반독자들에게 내보임으로서 자신과 자기 작품의 가치를 입증할 기회를 거의 제공받지 못했다. 대본소와 대여점 연령별 성별로 세분화된 잡지시스템, 총판-대여점 라인만이 존재하는 유통망을 통해서는 입증할 수 없는 가치 말이다. 이는 작가뿐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도 비슷한 딜레마로 다가온다. 만화를 추천하고 리뷰하는 글을 쓸 때 곤혹스러운 점 한가지는 '더 좋은' 작품을 추천하려고 할수록, '살 가치'가 있는 작품일수록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이 서점에서 그것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반비례하여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아는 작품은 굳이 추천할 필요 없지 않은가. 추천이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하지만 서점에가서 물어보면 찾아줄 수 있는 정도의) 작품에 대해 하는 것인데 만화의 유통망엔 그런 작품이 유통될 여지가 '아예' 없다.

그나마 서점용으로 기획되고 유통되었던 만화책들의 대부분이 그다지 대중적이지도 상업적이지도 않아서 많이 팔리기를 기대하기 힘든 책들이었다는 사실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더라도 꽤나 실망스러운 일이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작품일수록 더 넓은 시장을 공략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원칙 아닐까?

자신있게 이야기 하지만 한국만화판에 소수 열성만화독자들의 대중적인 취향(!)에 맞춘 작품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만화에도 보편적인 감수성에 기반하여 일반독자들에게 충분히 읽힐 수 있는 작품이 다수 존재해왔다. 단지 나왔다가도 적절한 마케팅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 묻혀버렸을 뿐이다.

예컨대 김세영 글 허영만 그림의 '사랑해' 같은 작품을 예로 들 수도 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다. 같은 지면에 연재되는 같은 작가의 '타짜'가 더 주목받는 히트작 아니냐고. 이 쪽이 더 희망적인 사례 아니냐고. 글쎄 ...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은 아마도 평소에 만화 좀 보는 편인 성실한 만화독자 일거라고 추측해보는데 어떤지? '타짜'는 물론 재미있는 작품이다. 신문에 연재되면서 많이 화젯거리가 되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만화독자들 사이에서만.

물론 이렇게 말하면 '타짜'는 무척 억울할 것이다. 소년지에 연재되고 허접하게 (작품내용이 아니라 책이) 단행본화 되고 그리고 대여점으로 직행하는 기존의 '인기만화'에 비하면 타짜는 비교할 수 없는 넓은 소구대상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판매부수가 더 많을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짜는 만화를 많이 읽어온 사람일수록 더 재미있게 받아들임직한 만화문법을 구사하고 있으며, 정교한 극화체와 치밀한 설정을 토대로 한 그러면서도 만화스러운 이야기전개는 기존의 만화독자들 이외의 일반 독자들을 배쳑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 점에서 '사랑해'는 확실히 조금 다른 색깔의 작품이다. 기존 장르만화의 관습이야 어찌되었던 상관없다. 장르만화의 관습에서 자유롭다고 해서 난해한 형식상의 실험을 추구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아무나 읽어도 좋을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을 뿐이다. 60년대 팝음악에 심취했을 독자들도 즐겁게 읽을 것이고, 문학소년 시절을 보낸 독자들, 바둑을 좋아하는 애기가들도 이 작품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지적 허영을 즐기는 독자들은 작중에 인용되는 무수한 싯구와 명언들을 재음미할 수 도 있고, 골치아픈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가벼운 에세이 삼아 시간 날 때 조금씩 읽어보고 잠시 웃어보기에도 충분하다.

하여간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좁디 좁은 기존의 만화독자층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집계되는 판매부수는 동일하다고 할 지라도 한국만화계가 장기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이러한 종류의 보편성이다.

불행히도 이 작품은 묻혀지고 있다. 만화출판사와 열성적인 만화독자들(과 대여점과 총판들)이 타짜를 더 강력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묻혀지고 있고, 출판사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일반' 독자들에게 이 책의 가치를 제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 구석에서 푸대접받고 있다.

이 작품에 적절한 마케팅을 가하여 대형서점의 비소설 부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리는 것은 사기도 아니고 과분한 평가도 아니다. 작품이 가진 내적인 가치에 주어져야 할 응당한 댓가이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있는 것은 출판사와 열성독자들이다.

조금 다른 경우로 이향우의 '은복이'나 'One Thousand Mile'은 어떤가? 3,000원의 가격에 엽서 판형으로 출간된 이 책은 여성들의 핸드백이나 웬만한 주머니에는 그냥 쏙 들어간다. 게다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빌려보기에는 부적합하다. 만약 출판사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팬시화 작업을 수행하고 캐릭터 마케팅을 병행했더라면 기존의 만화독자와 무관한 전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소 황당한 발상 같지만 이 책을 학교 앞이나 번화가의 팬시점에서 팔 수는 없었을까?

단지 허접한 종이질과 제본과 생각없는 북디자인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용까지도 도매금으로) 싸구려임을 입증하는 가격이 독자의 책구입을 막고 있을 뿐 사서볼 가치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한국만화의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서점에 비치되어 있지도 않지만.


[] 빌려보는 문화 어떤 식으로 극복할 것인가

[ 2001년 6월 둘째 주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



첫 번째는 교보문고의 주간베스트셀러 목록이고 두 번째는 만화총판 중 하나인 코믹스21 (http://www.kcomic.co.kr)의 주간베스트셀러 목록이다. 코믹스21은 주로 만화방 및 대여점에 내보내는 물량을 취급하지만 일반 소매도 겸하고 있다. (**아직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독자라면 3주 동안 리스트에 오르내린 40종의 만화중 한국만화가 몇 권인지 세보는 것도 괜찮겠다. 한국만화는 검은색, 일본만화는 회색으로 표시하였다)

현재 유통시스템의 진짜 폐해가 무엇인지는 위의 만화베스트셀러목록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대여점이 한국만화를 무더기로 대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만화작가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대여점이 한국만화를 대여해서 챙기는 수익은 생각보다 적으며, 그들이 작가로부터 뺏어갈 수 있는 몫은 제한되어 있다. 그보다 이런 유통망아래서는 소수의 읽을만한 한국만화가 무더기로 나오는 일본만화에 묻혀버린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한국만화에 위기가 오는 것은 대여점이 한국만화를 대여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위의 베스트셀러 목록이 보여주는 것 처럼 대여점 기반의 유통라인에서조차 일본만화의 물량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여점 아닌 다른 곳에서 한국만화가 유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점에서 팔려야 할' 한국만화의 유통망과 대여용만화 및 대여를 겨냥하여 출간된 일본만화의 유통망을 분리하지 못한 것은 대여점이나 독자의 책임이라고 하기 힘들다. 엄한 소리지만 이 상황에선 대여점이라도 한국만화를 사가주면 그나마 감지덕지 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사실 대여점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일본작가들이다. 그들이 이 사실을 알는지는 몰라도 ...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만화대여점들은 원래 도서대여점이었다. 언뜻 도서대여업이 상당히 최근에 생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도서대여점 이전(80년대 후반)에도 일반도서를 유료로 대여해주는 서비스가 적지 않게 존재했으며 그것은 보통 소규모 이동식 도서관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주로 병원,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근처에 서점이 없는 주택단지 등을 정기적으로 순회하였고, 아직 만화는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은 만화의 비중이 높아서 그렇지 지금도 도서대여점이긴 마찬가지로, 만화 뿐 아니라 환타지, 무협, 추리, 로맨스 등 대중소설, 서점 판매용 일반소설류, 여성지를 위주로 한 잡지, 에세이와 비소설, 동화 등 빌려감직한 책은 다 들여놓고 대여해 주는 곳이 도서대여점이다. (** 업주들의 거부로 대여도서 목록을 직접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스럽긴 하지만, 여러 대여점 주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해보면 현재 영업중인 대여점의 매출액 중 만화는 절반정도를 차지하며(이 비율이 낮다고 생각된다면 대여점의 취급품목 중 만화의 권당 대여료가 가장 낮음을 상기하라), 무협지, 환타지, 로맨스 소설 등의 비중이 생각보다 높아서 1/3 이상을 점유하고 잡지와 기타 서적이 나머지를 구성한다. 그리고 대여되는 만화 중에서는 일본만화가 70% 한국만화 30% 정도를 차지한다. 결국 대여점 전체 매출액에서 한국만화는 15%정도 만을 차지하며,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도서 구입비는 일본만화와 한국만화가 동일함을 감안할 때 대여점이 한국만화 대여를 통해 얻는 수익이 그다지 많지 않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쨌거나 도서대여점의 이러한 속성은 위에 열거한 교보문고의 소설, 비소설 베스트셀러들을 들여놓고 만화와 동일한 방식으로 대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상당수의 대여점들은 그렇게 하고 있으며, 이는 대여점에 들여놓은 일반서적들을 빌려가는 수요가 분명히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만화는 도서대여점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일반베스트셀러가 도서대여점에 대해 느끼는 위기감이나 피해의식은 이보다 적은 것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 이유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우선 전국의 도서대여점 숫자를 감안할 때 도서대여점이 팔아 줄 수 있는 소설의 종수나 부수는 매우 제한적이며 여전히 전체 판매량의 대부분은 서점을 통해 소화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출판사들은 도서대여점이 주는 피해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 ... 어이 근데 이게 이유가 되나?

아니 ... 음 ... 곰곰히 생각해보면 시실 이것은 이유가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일반서적이 도서대여점에서 대여되는 비중이 적은 실제 이유는 그 책 자체가 대여되기보다는 팔리기에 적합한 서적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팔릴 만한 내용과 장정으로 책을 만들었으며, 도서대여점이 아닌 서점과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대여점에 비치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사려고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쨌든 사갈 거라는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러면 (대여점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만화는 왜 그렇지 않은가? 답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팔리기보다는 대여되기에 적합한 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서점과 일반독자를 위한 마케팅을 하는 대신 그저 대여점에 공급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실제 책 구입자의 대부분이 대여점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나중에 대여점이 독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순서가 거꾸로된 불만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슬슬 마무리해보자. 대여점과 빌려보는 문화는 어떤 식으로 극복되어야 하는가? 빌려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공장제 대여용 만화는 아마도 계속 해서 나올 것이다. 현재도 엄청난 물량으로 쏟아지고 있는 일본만화의 라이센스판도 대여점만을 겨냥해서 나오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모두 부정할 필요도 없고 대여점이 당장 없어져야 할 필요도 없다. 사실 공장제(중견작가 중 한명인 하승남은 인터뷰에서 이것을 '한국형 대본만화를 위한 프로덕션 분업 다각화 시스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작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장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 뿐이며, 이런 것들을 통해서 얻어지는 이익이 어떤 식으로든 만화계의 다른 영역에 재투자 될 수 있다면 나름대로의 순기능을 기대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대여용 만화와 별개로 팔리기에 적합한 판형과 제책과 가격으로 구성된, 그리고 적절한 마케팅의 지원을 받는 '서점용 만화'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대여점이 있어도 서점에서 팔릴건 팔린다 ... ? 어쩌면 너무 간단하고 감상적인 주장처럼 보이겠지만 그렇게 만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서점용 만화'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먼저는 작품 자체가 팔릴만한 작품이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책을 팔릴만하게 만들어낸 후 서점과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전개해야 한다. (** 기획기사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하게 될 것이고, 이후의 다른 논의를 통해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제시될 '제도적인 개선책'들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법안을 상정하여 저작권자에게 대여권을 부여하는 것, 대여료의 일부가 작가 및 출판사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제도적인 개선책'은 말을 달리하면 '인위적인 개입'을 뜻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가장 좋은 것은 인위적인 개입 이전에 시장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틀거리가 잡히는 경우이다)

네번째 단락(작가의 역량에 대한 신뢰)에서 첫 번째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세번째 단락(책을 팔겠다는 의지)에서는 두 번째 조건에 관해 이야기했다. 첫 번째 조건은 이미 충족되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양적으로 부족하다면 이후로 채워나가면 된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은 아직 미흡하다. 거의 되어 있지 않다고 봐도 좋다. 지금처럼 해서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우선 하드웨어적으로 팔릴만한 책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총판에 뿌려지는 그런 수준의 장정과 가격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서점들이 만화책을 취급하지 않는게 그저 청보법 때문에 혹은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저급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재의 만화는 종수 면에서 지나치게 많은 양이 출간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권당 마진은 크지 않다. 소서점들은 소서점대로 중대형 서점은 또 그 나름의 이유로 만화책을 들여놓기가 마땅치 않다. 마진과 매출액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공간을 요구하면서도 서점에 내놓고 팔기에는 가격도 장정도 싸구려틱한게 현재의 만화책 아닌가?

팔리는 만화가 되기 위한 한가지 대책으로 몇 권을 사더라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고, 한 번보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책정을 요구하는 의견들이 있으나 이것은 구입자의 경제적 부담을 약간 덜어준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하기 힘들다. 책의 단가가 낮다는 것은 권당 수익률이 낮음을 의미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작가와 출판사에게 '많이 그리고 많이 찍을 것'을 강제한다. 한마디로 여태까지보다 더 심하게 다량 저가공세를 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런 흐름은 만화책이 일반서점에서 취급되는 것을 점점 힘들게 만들 뿐이다. 사실 한달에 700종 가량이 나오는 지금의 출판량도 '서점에서 취급하기에는' 지나치게 많다. 설사 교보나 영풍정도의 대형 매장이라 할지라도 다 진열할 수 없을 만큼.

오히려 필요한 것은 현재보다 더 비싼, 적어도 일반소설 단행본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하는 현재보다 적은 종수의 양장본들이다. 더불어 종수가 적다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마케팅해야할 상품의 숫자가 적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이러니칼 하지만 소비자입장에서도 '높은 가격'은 사고 싶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값싸게 나오는 (아마 내용마저 싸구려일 듯한) 상품보다는 비싸게 나오는 (아마도 돈값을 하지 않을까 싶은)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마케팅에 공략당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이기도 하니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환경이라든가 가격이라든가 하는 것 이전에 출판사의 의지일 것이다. 현재의 주요 만화 출판사들에게 과연 대여점 중심의 유통망을 벗어나 서점과 일반독자들을 공략할 의도, 그럴 능력이 있을까? 사실 자본력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만화 이외의 모든 일반서적은 출판사 규모에 상관없이 서점을 대상으로 마케팅한다. 일년에 몇 권의 책을 낼뿐인 군소 출판사도 자신의 능력을 다해서 그렇게 한다. 일본만화 라이센스판 찍어내기(& 밀어내기) 로 돈도 웬만큼 벌었겠다. 만화출판사들이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렇게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출판사를 찾을 밖에.


[] 마무리 -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가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대부분 읽어보았겠지만, 이강주의 '캥거루를 위하여'라는 작품이 있다. 만약 나에게 이 작품을 가지고 서점을 공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 권을 두 권으로 묶고 종이질과 장정을 개선한 후 권당 6,000원에 내놓았을 것이다. 7,000원도 괜찮다. 현재 세 권에 10,500원이므로 별로 비싸진 것도 아니다. 그리고 총판-대여점라인에 의존하는 대신 일반서적 유통망을 공략하고, 대형서점의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도록 갖은 애를 쓰고 일간지와 잡지를 통해 광고했을 것이다. 운이 좋다고 할까 이 작품의 판권을 소유한 출판사는 잡지도 어지간히 많이 갖고 있다.

자 이제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 책도 잘 만들어졌고 일반서점과 독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시점에서 대여점에서 사가는 것을 나서서 막을 필요가 있을까 없을까? 시장상황에 대해 자신 있다면, 단순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대여점 두 곳당 한 부씩만 계산해도 3,000천 부를 더 사주겠다는 이야긴데 거절할 필요는 없지' 음 ... 정말?

약속했던 대로 서두에서 언급했던 대여점과 서점의 경쟁 문제를 다시 꺼내보자. 만약 대여점과 서점이 같은 시장과 고객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서점용의 책을 어떻게 만들든지 간에 일단 대여점을 통한 서적대여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하지만 대여점과 서점이 서로 다른 층위에 있어서 대여점은 노래방, 비디오방, 비디오 대여점, PC방 등과 경쟁하는 관계이고 서점은 극장, 음반점 등과 경쟁하는 관계라면 (그렇더라도 대여점제도의 개선책은 마련해나가야겠지만 이것과 별개로) 좋은 책만들기와 마케팅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은 지금으로서는 후자에 가깝지만, 그렇게 단언하기 전에 이 문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두가지의 질문을 던져보자. 우선 첫 번째.

"서점에서 어떤 책을 사려고 마음먹었던 고객이 근처의 대여점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그러면 그는 (서점에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는 대신 빌려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흔히 이야기 하는대로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여 300원이면 볼 수 있는데 3,000원을 낼 사람은 없으니까 어쨌든 소비자들은 대여점을 이용할까? 아무리 자본의 논리가 절대적이라도 불특정 다수 소비자들의 입장을 이런 식으로 일반화 하는 것은 좀 위험하다. 자본의 논리는 생각이상으로 본질적이고 강력하지만, 또 어떤 면(특히 소비자 레벨)에서는 다른 요소에 의해 쉽게 휘둘리기도한다. 사실 300원이면 충분한데 3,000원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자본의 힘이고 마케팅의 힘 아닌가?

또한 '책을 사려고 마음먹었던' 이라는 표현은 '책을 보려고'라는 뜻과 함께 '책을 가지려고(소장하려고)'라는 뜻도 같이 내포하고 있다. 만약 소비자가 '그냥 한 번 봐볼까'라는 정도로 책을 살 생각을 했다면, 대여점이 있을 경우 이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책을 가지고 싶어서' '계속 참고할 필요가 있어서' '살 만한 좋은 책이니까' 정도의 심리가 그 안에 있었다면 대여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책을 살 것이다.

두번째는 기존의 논의과정에서 많이 나왔던 질문.

"어떤 고객이 대여점에서 책을 빌리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책이 없거나 대여점이 없다. 그러면 그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살 것인가? 아니면 대신 비디오방에 가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불특정 다수 소비자집단의 행동패턴에 관한 이런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내기는 꽤나 힘든일이다. 아마도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정도가 최선일지도 모른다. 나의 주위에 '대여점에 책빌리러 갔다가 그책이 없어서 서점에 간 사람이 있었나?' '대여점이 없으면 나는 혹은 내 주위사람들은 어떻게 했던가?' 각자 자문자답해보는 것도 좋겠다.

일단 대여점 고객은 '책을 사려고 하는 고객'과 달리 자신이 빌리려고 하는 책을 미리 정해놓거나 하는 법이 거의 없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그는 일단 근처 대여점에 가서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재미있음직한 책이 있으면 빌려보는 것이다. 이는 '원하는 책이 없으면 서점에 갈 것인가'라고 하는 가정 자체가 대여점이라는 공간에선 잘 성립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만약 '보려는 책이 없는 경우'라도 그것을 아쉬워 하기 보다는 금새 잊어 버리고 차선책을 취하여 다른 아무것이든지 빌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자연스러운 추측일 것이다.

과연 대여점의 존재가 서점의 도서구입고객을 (출판사와 작가에게 타격을 줄 만큼) 뺏아가고 있는가?

판단을 돕기 위해 대여점 자체만 생각해보자. 대여점은 2년전에 비해 약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왜 줄어들었느냐 하면 그건 당연한 얘기로 '장사가 안되서' 혹은 '주위 경쟁자들에게 밀려서' 그런 것이다. (이것은 서두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대여점이 상호보완적인 문화산업이라기 보다는 단순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경쟁자들이라니 대체 누군데?

대여점이 서점과의 경쟁에 밀려서 줄어들은 것이라면 이 사실은 대여점 체제가 서점에 그다지 타격을 주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설혹 과거에 그랬더라도 이후에는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된다. 만약 대여점이 PC방이나 비디오방과의 경쟁에 밀려서 줄어들은 것이라면 (그러니까 이쪽하고 경쟁하는 관계였다면) 대여점이 뺏아간 혹은 뺏긴 고객은 원래 서점의 몫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대여점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자체는 대여점을 겨냥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만화계의 힘을 쏟아부어야 할 당위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만약 한국경제가 97-98년 수준의 경기하락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대여점이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판단된다면 대책 마련의 논리적인 당위는 있을지라도 대여점 문제 자체를 시급한 현안으로 올려놓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만화계가 어디에 힘을 쏟아부어야 할지 잘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대여점을 겨냥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대여를 제한하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미이고, 만화계 뿐 아니라 출판사, 서점, 대여점을 비롯한 관련업계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다. 과연 만화계의 뜻을 관철할 수 있을까? 시일은 얼마나 걸릴까?

단락 처음 부분에서 떠올렸던 행복한 상상으로 돌아가자. 만약 필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캥거루를 위하여' 양장본을 멋지게 만들고, 서점 유통망을 뚫고, 정교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 법률 문구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강주가 야마다 에이미나 요시모토 바나나보다 더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한다. 사쿠라자와 에리카나 야마모토 나오키 정도와는 비교할 필요도 없다. (모쪼록 일본문학에 매료된 독자가 이 글을 보는 일이 없기를 ... )

뭐라고? 맞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캥거루를 위하여'가 적절한 마케팅과 장정으로 서점에 진열되었을 때 야마다 에이미의 '애니멀 로직' (마찬가지로 2권이며 권당 7,500원이다)보다 덜 팔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소리 ...

모르겠으면 시도라도 해보라구!

일단 한 번 팔아보면 알 것 아닌가.

그래서 안 팔리면 내가 나서서 욕을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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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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