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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전쟁, 그 발화의 책임
만화는 흐른다 05/12/26 08:12 soju
여기, 엄청난 소용돌이의 역사와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이 있다. 그것이 전쟁의 폐혜일 수도 있고, 인간의 힘으로 견뎌낼 수 없는 재해의 현장일 수도 있다. 산사태나 해일이 일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죽거나, 만화 <드래곤 헤드>처럼 세계가 멸망해버렸는데,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몸부림을 처절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가장 끔찍한 현장을 고발할 수 있는 점에서, 일반 재해와 달리 사람들에게 발화해야 할 "역사의 책임”을 갖고 있는 점에서, 대부분은 이것이 어떻게든 전쟁의 폐혜는 다른 그 어떤 재해와 다른 의의를 갖는다.

전쟁에 대한 폐혜. 전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처참함과, 용납될 수 없는 인간의 잔인성, 광끼 등의 전쟁이란 것이 피해자에게 기억되는 것은 전쟁 그 자체, 그리고 전쟁의 피부. 그것을, 10년 후에 기록되던가, 100년 후, 1000년 후에 기록되거나, 수용하는데 있어 전혀 다른 문제인 이유는 이러한 "피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장에 담겨있는 사람들과, 혹은 그 영향력 하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전쟁의 피해라곤 전혀 관계없을 장소에서 적어도 그가 죽을 때까진 전쟁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안정적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르듯.

이러한 전쟁과 역사를 발화해야 하는 자에게 짊어지는 짐은 간단치 않다. 누군가에게 전쟁 혹은 재해등의 역사적 상흔이 여전히 피부라면, 그것은 피부에 남아있는 상처를 상기시킨다. 상처에 대해 말하는 것도, 상처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도, 사건과 기억이 거대한 상흔이라면, 우리는 최대한 상처에 대해 조심하고자 한다. 상처에 대해선 그 누구도 쉽게 말하기를 꺼리며, 기억저편에 묻는다. 상처가 감당하기 힘들면 힘들수록, 망각은 상처를 잊고 치유하는데 그 무엇보다도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사건이 피부-그 자체였던 공간은 사라진다. 망각의 저편으로 날린 사건과 시간은 조각나서 단절되어 버린채, 따로 저장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흔, 상처받은 한 조각만으로. 상처 그 자체만이 표상이 되어버린채, 시간과 공간의 조각은 통째로 단절되고, 잘라진 채 분리되어버린다. 이렇게 하여, 삶과, 맥락, 또다른 모든 것들도 시간의 분절 속으로 사라진 채, 모든 망각된 기억위로 덧씌워진 것은 “새로움” 그 자체로 변환되고, 변환된 새로움만이 오직 현실이 된다. 현실은 역사 위에 씌여진 것이기에는 기억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차기에, 오직 “현실” 그 자체일 뿐이다. 누군가 망각 저편의 것을 끌어올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망각의 것을 끌어올리는 것은 역사가 아닌, 오직 상흔의 표상일 수 밖에 없다. 그곳은 이어지는 시간이 존재하는 곳도, 원인과 결과와 맥락이 존재하는 곳도 아니며, 오직 단절된 상흔 한 조각만 한 곳에 묻혀있을 뿐이다. 상흔이 한 조각이 아니고, 여럿이라면 세계는 통째로 분절투성이가 되어서 묻히고 기억된다.

망각이란 행위는, 상처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라면, 특히 상처를 가한 쪽에게야말로 편리한 방법이다. 상흔 그 자체의 강렬함만으로 분절된 조각은, 어느 순간, 과거와 맥락이 필요해지는 순간, 원인과 결과가 필요해지는 순간-까지 최대한 상기하고 싶지 않는 종류의 것이 된다. 시간을 끌어올리는 것, 되돌리는 것-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상흔이 도사리고 있다면, 그것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오직 “상흔” 그 자체에 대한 발화뿐인 만큼, 분절된 상흔은 이미 역사와 시간을 따로 살고 있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많은 역사와 과거를 기억할 수 없으며, 새로운 삶을, 새로운 현실만을, 새로운 역사만을 만들어내기 바쁘다. 존재하지 않은 역사를 만들어야 하고, 존재하지 않은 과거는 애초부터 상기시킬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남는 것은 소수의 “상흔” 자체에 대해서 발화하는 사람들과, 과거의 시간을 잃어버린 대다수의 사람들 뿐이다.

그리하여 상흔과 상관없이,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역사적 책임과 상관없이,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상흔의 책임속에서 최대한 이데올로기를 거세하여 도피하고자 한다. 도피된 그 곳에서의 시간과 과거의 영화만을, 과거의 매력만을 가져오고자 한다. 이 곳에는 책임이 존재하지 않으며, 맥락이 존재할 수 없다. 도피된 공간, 상흔만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상흔이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에서, 상흔을 말하지 않는 맥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흔없이 상상할 수 없는 그 곳, 전쟁의 피부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은 채 과거의 환경만을 가져오는 것은, 일종의 그 안의 “세계”만으로 완벽한, 판타지의 설정과도 같다. 이 역시 맥락이 존재할 수 없는만큼, 분절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분절된 공간은, 상흔과는 전혀 관계없이 흘러가고, 망각된 상흔의 시간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한다.

이들은 언뜻보면, 책임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이 보인다. 최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흔 자체에 대해 말하는 행위가 가져올 “이데올로기” 여부를 거세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곳은 그저 하나의 도피의 공간이고, 새로운 공간일 뿐이며, 분절된 그냥 또 하나의 세계일 뿐이다. 분절된 또 하나의 공간에 대해 망각한 자와 알지 못하는 자는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듯,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세계-그 자체만으로 말하는 것으로, 그들은 사회적 책임에서 회피하고, 침묵한다.

이렇게 침묵하고, 도피하며, 분절하는 행위. 특히나, 누구나 도피하는 것만이 가장 쉬운 방법임을 알고 있을 때, 모든 이들이 침묵하고 망각하며, 분절시키고 있다면. 상흔에 대해 발화하는 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침묵과 분절이란 상흔을 가진자, 책임이 있는 자 모두를 망각시킨다.

망각시스템. 역사를 분절하고자 하는 시스템은, 도피하면서 그저 발화하기만 하고픈 책임이 없는 자뿐만이 아니라, 상처를 가했던 자의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데에서 1차적으로 잠재적인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을 내제한다. 실제로,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들은 이렇게 철저한 망각과, 망각마저 잃게하는 기억의 완전한 말살을 유도한다. 이는 일본정부만이 아니라, 일본의 대중문화, 매스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마치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은 사실이었던 것처럼.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전쟁으로 인해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그 모든 것에 대해 알 기회자체를 그저 박탈했다.1) 전쟁에서 눈을 피해, 전쟁 기억의 책임에 대한 망각을 유도하며, 이러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근대물은 최대한의 환호를 받는다. 그 안에서 전쟁에 대한 책임만 분절된 채 기억저편으로 묻힐 뿐이다.

발화하는 자는 발화에 대한 영향의 책임을 갖는다. 하물며, 이것이 대중문화일 때, 그 파급력을 고려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바로 이것이 내가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는 <청연>과 <저녁 뜸의 거리>같은 창작물들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이유이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어떤 이데올로기에서 최대한 작품자체가 도피하고 있든, 이 곳에서 시대적 상흔이 배제되었음은 물론이며, 침묵과 분절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악용의 가능성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나, 일본에서 그간 만들어졌던 많은 창작물들, <반딧불의 묘>와 같은 애니메이션 등의 맥락을 고려하면, <저녁 뜸의 거리>는 전형적으로 피해자의 발화만에 철저히 초점을 맞추면서, 역사의 단절과 책임을 유도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문화에서의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고도의 “맥락은 모두 제거한” 피해자적 입장과 접근들은, 일본 문화산업의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의 이미지로, 일본의 전쟁에 대한 기억 “그 자체 이미지”로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생각했을 때, 이 만화가 일본 평론계의 호평을 잔뜩 받은 것도, 해외 수출을 위해서 번역작업이 열심히 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것은 간단히 감정적인 민족주의적 문제나 책임인식만은 아니다. 게다가 이것은 발해가 중국의 역사니 마니 하는 수천년 전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겪여온 삶이며, 아직 내가 살아가고 있는 역사의 일부의 기억을 단절하고 망각시킨다. 나는 설령, 역사적 맥락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도피하는 것만으로 가득차있는 창작물들마저 상흔에 대해 발화해야 하는 이러한 책임의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들이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또한, 상흔에 대해 상처가 났다고 아프다고 말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미 분절되고 조각난 상처로 가득찬 그 시대안에서만이라도 집단적 망각과 분절을 유도하지 말아야 할 책임과, 상흔의 시대를 발화하면서 상흔만 남겨두고 도피한다고, 상흔적 시대를 망각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주 1) 전쟁과 식민지의 전시 : 뮤지움 속의 일본 - 지노 가오리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125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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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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