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본 글은 만화언론 '만'과 공동게재되고 있습니다]
!@#... 잊을만 하면 다시 나오는, "한국만화 죽었다" 기사가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망해가는 한국만화계를 분연히 걱정하고 나서는 사람들. 이런 논조, 정겹기까지 하다. 이제는 심지어 만화계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다른 분야에 교훈으로 적용하려는 시도까지. 덕분에 오마이뉴스 사이트에서 무려 대문에 한동안 걸려있기까지 했다고 한다.
!@#... 문제는, 좀 심하게 말하자면 한국만화를 걱정하는 자세 그 자체다. 세상에는, 제발 걱정 좀 안해주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마련이다. 여튼 자세한 팩트 반박은 앞선 글에서 다루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 들어가기 전에 간략하게 몇가지 핵심만 짚고 넘어가도록 해보자.
!@#... 우선 문제의 첫번째 기사.
한국 만화, 어떻게 무너졌는가
[오마이뉴스 2006-02-09 19:35] 유지호 기자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09772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는 한국만화의 황금기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허영만의 <오 한강> <카멜레온의 시>, 박봉성의 <신의 아들>, 이재학의 <검신검귀>, 고행석의 <구영탄 시리즈> 등이 쏟아져 나왔다. 주택가 골목길마다 만화방이 들어서 전국적으로 2만여 개가 넘는 만화방이 있었고, 권당 2~5만부가 유통되던 시기였다...(중략)...서점 마진분이 작가에게 지급되었기에 인세는 책값의 30%나 되었다. 아무튼 좋던 시절이었다...(중략)...하지만 그 잘 나가던 한국만화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만화판 사람들의 표현대로 시장 자체가 없어졌다. 98년 정부가 일본만화의 수입을 허용한 순간 일어난 일이다.
=> 만화방이 만화유통의 중심이며 만화방의 번창이 곧 황금기라는 임의적 개념화. 잡지만화, 단행본 판매 등의 부문을 논외로 돌려버림. 이 역시 만화방 유통이라는 특수성의 과잉일반화. 게다가 공포의 외인구단은 80년대 초. 또한 일본만화 정식 첫 수입은 89년 말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삼국지 부터. 이듬해 드래곤볼을 통해서 주류에서 대성. 한국만화가 잘나가다가 90년대에 일본만화 개방과 함께 급격히 무너졌다는 주장을 하기 위하여 기억은 간단히 왜곡된다.
출판사(자본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본만화 수입에 매달렸다. 곧 일본만화의 붐이 일어났다. 골목마다 들어섰던 만화방이 사라졌고 학교 앞 문방구엔 2000~3000원의 덤핑 가격에 일본만화가 깔렸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등은 수백만부가 팔렸고, 사라진 만화방을 대신하여 등장한 대여점의 책장은 일본만화로 가득 찼다. 일본만화를 수입한 업자들은 돈 방석 위에 앉았다. 이후 그들은 일본만화 수입에 매달렸고 일본 출판사와 수입계약을 맺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만화시장이 개방되고 채 1년도 안 되어 일어난 현상이다...(중략) 그러자 좀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일본 만화 출판사들이 한국만화 살리기 운동에 나선 것이다. 한국만화 시장이 지나치게 축소되면 비난 여론이 일어날 것이고, 자칫 일본만화 개방 정책에 변화가 오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일본만화를 수입할 수 있는 자들의 자격 조건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만화잡지를 일정부수 이상 발행하는 출판사만이 일본만화를 수입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 2-3000원은 덤핑이 아니라 원래 소비자 가격이며 지금도 3500원 선이다(드래곤볼이 코믹스 판형 일본 라이센스 수입을 했을때는 정확히 1500원). 만화시장 개방되고 1년도 안되어 일어난 현상이라는 주장 역시 사실무근. 90년대 초 단행본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던 시기 수년간 잡지 연재분량을 통한 것만이 단행본으로 나왔기 때문에 편수도 분량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그 시기 동일 잡지의 한국만화들 가운데 100만부 클럽 다량 탄생. 또한 일본 출판사의 전략에 대한 과도한 추측도 근거가 부재하다. 실상은 일본 출판사 측에서, 한국서 잡지를 일정부수/종수 발행하는 출판사를 안정적 파트너로 인정했고 대형 히트작의 라이센스를 입찰시킨 것. 해당 국가의 만화시장에서 자국만화 비율은 이들에게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일본만화의 비율이 8-90%대를 넘나든지 오래인 대만의 사례를 참조.
어쨌든 이 덕분에 대본소 만화시절 유명 만화가에게 고용되어 남의 그림을 그려주던 만화가들이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는데...(중략)...지금 한국에선 대부분의 만화잡지는 사라졌고, 과거 20~30만부씩 발행되던 어린이 만화잡지들도 겨우 2~3만부가 팔린다고 한다.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한 몇몇 순정만화 잡지와 스포츠신문 만화 시장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89년 아이큐점프에서 김준범 작가가 데뷔한 것은 어떨까. 90년 소년챔프에서 현역 고등학생 작가 이명진이 데뷔한 것은 어떨까. 그리고 "남의 그림 그려주다가" 작가로 데뷔하는 경우가 이 당시의 새로 생겨난 전통인양 이야기하는 것은 대본소 만화 장르만 기준으로 보더라도 어이없는 주장이다. 또한 일본만화의 비중을 절반 가량까지 높이고도 여러 소년만화 잡지들이 부진을 면치못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잡지 독자층의 감소를 기계적으로 시장개방으로 돌리는 것은 대단히 근거 희박한 주장이다.
만일 스크린쿼터가 없어진다면 만화계에서 일어난 일이 영화에서 똑같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간단한 이치이다. 문화산업의 자본은 문화의 논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 투자했던 삼성, 대우, 엘지 등의 대기업들이 몇몇 작품에서 손해를 보자 주저 없이 빠져나간 것이 자본의 논리다.
=> 만화계 역시 일본만화 개방 이전부터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여왔다. 합동의 대본소 유통망 독점 같은 역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어떤 장르보다 대중적 호소력을 최우선시했던 만화장르를 비교대상으로 드는 것은 대단한 무리수다.
미국이 스크린쿼터 문제를 이토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단지 돈의 논리만이 아니다. 문화는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라는 당의정 속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침입하는 미국의 논리가 배어 있다. 사르트르가 "인류가 역사를 통해 쌓아놓은 문명적 가치와 도덕을 한순간에 야만으로 돌려버린 전쟁"이라고 말했던, 300만의 베트남 민중이 희생되었던 베트남 전쟁의 만행을 미화하고 포장한 <람보>를 보며 환호했던 80년대 초의 암울했던 시기로 되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 미국은 돈 논리 맞다. 돈의 논리가 바로 미국의 논리다. 미국은 진보 이데올로기도 상업성만 있다면 언제든지 상업화한다. 아 그리고 사르트르 이야기 나와서 말인데, 이 사람 프랑스에서 50년대에 만화 탄압에 앞장섰던 사람 중 하나다(미국서 만화탄압의 바이블로 사용된 '순결의 유혹' 불어판 번역자).
!@#... 요약해보자. 우선 기본 전제의 문제. 일본 만화시장 개방이 한국만화판을 망쳤던 것 처럼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국영화를 망칠 것이라는 임의적 주장을 위하여, 무리한 전제를 하고 있다. 작년 제기되었던 만화수입 쿼터제 이야기만 하더라도 영화 쿼터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형 출판사들이 지나치게 종수를 많이 찍어서 (매년 1000여종이 넘는;;) 정상적인 마케팅 기능을 못하는 현상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런데 종수 채우기의 상당부분을 일본 수입만화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고. 그 결과 일본만화 히트작이 한국만화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만화고 한국만화고 상관없이 마케팅 관리 능력 상실로 개별 작품으로서의 시장성이 망가지는 문제를 낳은 것이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하여 수입쿼터제를 둠으로써 전체 종수를 '관리 가능한 범위까지' 줄이게 하자는 것이지, 한국만화의 무슨 민족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발상이 아니다. 만약 영화 쿼터제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이 있다면, 단단한 착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만화에서 쿼터제 도입의 현실적 방법론 등에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기본 취지부터 당장 그렇다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유지호 시민기자의 핵심 오류는, 대본소 만화의 생산체계를 한국만화 전체로 과잉 일반화해서, 무리한 범주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략 90년대의 한국 만화판의 지평과 변화과정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만화는 다양화를 거듭해왔고, 그 와중에서 불안하다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철저한 변화중이다. 명랑만화 중심의 소년소녀 만화지들이 역사의 유물이 되었으며, 대본소 극화가 몰락했다. 하지만 장르 만화의 새로운 세대들이 90년대 급부상 했고, 이들이 다시금 2000년대 인터넷 중심의 신진 작가군들에게 중견 취급을 당하는 입장에 처했다. 수치적으로도 사실 시장규모는 꾸준히 성장세를 거듭해왔을 뿐이다. 큰 판을 보지 않고 특정 영역만을 보며 신세를 한탄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큰 판을 볼 생각은 없으면서 큰 판을 걱정해주는 것은 무수한 오해를 양산해낼 따름이다.
!@#... 자, 두번째 기사. 마찬가지로 오마이뉴스인데, 앞선 기사에 대한 반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쪽 역시 나름의 편견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한국만화가 일본만화 때문에 망했다고?
[반론] 왜 한국만화는 여전히 이현세·허영만인가
2006-02-10 09:56 박형준 기자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09855
...이번에도 거두절미 본문분석부터.
내가 지금까지 소개해온 만화도 대체로 이런 점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었다. '독특함'과 '치밀한 논리', 그리고 '전문성'이라는 3가지 요소를 갖춘 만화하면 그림체가 다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열렬히 환호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만화의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전문성' 부재.
=> 일본만화는 전문성이 있고 한국만화는 전문성 부재한다는 설정은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활용된 논리고, 그것에 꼭 뒤따라오는 것이 편집부의 편집기자 숫자, 시장규모 등의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소재주의 만화를 장르만화의 유일한 잣대로 놓고 사고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레용신짱(짱구는 못말려)>가 과연 소위 '전문성'이 넘쳐나서 엄청난 판매부수와 장기 히트를 기록중인가? 일본 만화의 세계적 유산인 <드래곤볼>은 격투기적 전문성에 얼마나 충실한가? 전문적 소재만화를 표방하면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면 문제지만, 그것이 만화 '전체'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 만화의 몰락이 단순히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에서만 비롯됐을까? 물론 일본 만화 개방의 여파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유지호 시민기자가 <한국 만화, 어떻게 무너졌는가>에서 지적한대로 일본 만화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자금력을 앞세워 영세한 한국 만화출판업계를 유혹하며 물밀 듯이 밀려왔다.
=> 직배사가 유통망을 쥐고 있는 영화업계와는 달리, 일본만화든 한국만화든 만화판에서는 한국 출판사들과 총판들이 유통을 쥐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주류 출판사들이 돈을 더 많이 써서 기자들을 많이 투입해서 만든다는 점에 착안하고 싶은 것인가? 제작비와 흥행이 정적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마케팅 투자에 따른 효과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DHS로 대표되는 대형 만화출판사들은 마케팅과 여전히 무척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도대체 일본 만화계가 무슨 대단한 돈장사를 해서 한국시장에서 무언가 밀어붙였다는 것인지?
아쉽게도 한국 만화는 여전히 '허영만'과 '이현세'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탄탄한 이야기'와 '전문성'을 추구하는 만화 작가들이 아직은 그들밖에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 90년대 만화계의 역동 과정을 전부 건너 뛰신 분, 여기 한 분 추가. "내가 아직 이현세 허영만 말고는 다른 만화에 재미 못 붙이겠다"는 것과, "한국만화과 그들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주장 사이에는 대략 18327498.34 광년쯤의 거리가 있다. 이 분 역시 대본소 만화와 80년대풍 성인극화라는 장르적 틀을 한국만화 전체로 오해하시는 듯 하다.
사실 나는 오늘 내가 좋아하는 한국만화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했다. 내가 소개하려던 <풍장의 시대>와 <신암행어사> 등은 역사를 소재로 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 일본 만화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만화가 있다면 독자들은 얼마든지 찾는다. 물론 소재도 꼭 역사일 필요도 없다. 일본 만화는 역사는 물론이고 교육, 경제와 함께 심지어 와인과 소년 교도소 문제까지도 그려내고 있다.
=> 그런데 여기서는 또 소년 장르만화를 끄집어내고 계시다. 앞서 밝힌 "소재 전문성" 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가실 뿐.
유지호 기자는 '일본 만화 개방'을 들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만화의 문제는 '일본 만화 개방' 그 자체보다는 '대여점'과 '불법 스캔'과 같이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본만화보다 판이하게 떨어지는 질적인 문제로 몰락했다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 "일본만화보다 판이하게 떨어지는 질적인 문제"라는 대담한 발언의 근거가, 고작 자신이 좋아하는 좁은 취향틀이라면 좀 곤란하다. 한국만화는 그렇게 폭이 좁지도, 만만하지도 않다니까. 그리고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의 결과는 한국만화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일본 수입 만화에도 똑같이 피해를 입힌다. '한국만화 몰락'의 근거가 아니라, 한국에서 만화시장의 몰락'의 근거라면 모를까. 하지만 누차 강조해왔듯, 한국에서 만화시장은 애초에 몰락하지도 않았다!!!
!@#... 재미있는 것은, 유지호 시민기자에게 반론을 가하고자 한 박형준 시민기자도 마찬가지로 한국만화가 망하고 있다는 전제를 아주 당연하게 깔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이런 패망론은 2001년 <고스트 스테이션>에 소개된 한 만화가(속칭 '큼만화가')의 사연을 계기로 붙붙었던 "대여점을 불태우자" 운동에서도 핵심논조였다. 지면이 닿거나 인터뷰를 할 때마다 강조하고는 하지만, 한국만화는 안 망하고 있다. 망하는 것은 자신들이 한국만화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어떤 한 하부 영역일 뿐(4년째 같은 이야기 반복하고 있으려니 지겨워 죽겠다).
물론 각 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르일 뿐이고 그것이 망하면 만화판 전체가 흥하든 어쩌든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 잣대를 일관되게 적용하자면, 굳이 그 사람이 무려 "한국만화가 망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본소극화의 몰락이 한탄스러우면, 대본소 극화의 부흥을 주장하며 운동을 벌이든지. 장르 소년만화잡지의 몰락으로 재미 추구에 지장이 온다면 소년만화잡지 후원회를 벌이든지. 그럴 자신이 없다면, 그냥 차라리 솔직해지면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하위분야만을 살리고 싶은 거라고. 다른 건 그다지 신경 안쓰고 있다고. 만약 정말정말진짜로 "한국만화판 전체"를 걱정해주고 싶다면, 독립만화도 관심 가지고 사보며, 시사만화계의 지면 현실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김성모 만화와 모에 계열 만화를 동등하게 사랑해주기를. 그리고 작가의 권리, 출판사의 권리, 문화적 종다양성의 확보방안에 골머리 썩혀주시기를.
!@#...
그렇게 할 의향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망해가는 한국만화'를 걱정한다고 표방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최면에 불과하다. 우선 망해간다는 전제 자체가 팩트보다는 믿음에 가깝고, 그것을 걱정한다는 방식 역시 지극히 허구적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믿음인가. 이쪽 판은 다 망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외부 투자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기 위해서? 설마 아니겠지. 그렇다면 정말로 한국만화계를 돕고 싶어서? 그렇다면 앞서 말했듯 우선 '한국만화'의 넓은 폭부터 인정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발 팩트 관계부터 좀 확인하고...;;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망하는 판을, 나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으며 분연히 일어나 도와주고 싶다"는 자기 확신을 위해서. 애정을 가지고 도와주기 위해서는, 망하고 있어줘야 한다. 엄청나게 잘 나간다면 애초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럭저럭 계속 굴러가고 있기만 하더라도 분연하게 누군가 나서서 도우미 역할을 자처할만한 필요성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다. 도움을 주려면 위기상황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이라도 애써 있는 말 없는 말 동원해서 위기라고 해석을 내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어느틈에, 스스로도 진짜로 위기라고 믿게 된다. 자기실현적 예언, 혹은 자기가 만든 위기론에 대한 피그마리온 현상. 물론 모든 위기의식과 걱정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은 일방적인 위기론들에 대해서 만큼은 이런 느낌 이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즉 위기상황을 스스로 소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개인들이 이렇다면, 언론들이야 뭐 굳이 이야기를 더 꺼낼 필요도 없다. 뉴스가치를 위해서는 행복한 세상보다는 위기감 넘치는 세상이 더 필요하니까. 그럭저럭 살아가는 만화가 사연보다는 노숙하다 얼어죽었다는 식의 사연이 더 강렬하니까. 뉴스 가치를 위해서라면 대박 성공해주거나, 아니면 쪽박 망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런데 성공에 대해서 뻥을 치는 것보다 위기에 대해서 뻥을 치는 것이 훨씬 쉽고 효과적이다. 한마디로, 위기는 참 실용적인 먹거리라는 말이다. 특히 그쪽 판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이 자세한 내막 즉 팩트 관계들을 모를 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쉽고 강렬해진다.
!@#...
위기를 만들어서 소비하는 이런 담론 패턴을 뿌리 뽑는 방법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누군가가 이런 강렬한 위기론을 제시할 때마다 사실관계로서 대응하는 것도 한두번이다. 대응을 하는 사람은 매번 같은 이야기하느라고 결국 지쳐 떨어지지만, 이런 제기를 하는 사람은 종종 새로운 사람이며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어제 인터넷에서 처음 보고 충격 받은 만화계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제기는 그 제기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보다 인기도 높고 수명도 길다.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담론의 양과 질로 철저하게 압도하는 것. 특히 어차피 사람들이 독해력 따위는 대략 200만년전 수준으로 퇴화한지 오래인 오늘날, '양'이 중요하다. 잘 되고 있는 사례들을 무진장 소개하고, 진짜 팩트 정보들을 펑펑 뿌리는 것(이런 글 보면 좀 열심히 퍼다 날르고 소문 낸다든지 말이다-_-;). 뭐 하지만 이런 방법은 꽤 장기적인 체질개선에 해당하고, 즉효성 있는 방법은 역시 공식적인 항의서한과 반박문 발표, 정정보도 요구, 뭐 그런 것이겠지만. 그런데 그 경우, '누가' 발표하냐에 따라서 또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진다. 작가단체들? 작가단체들이야말로 지난 세월 계속해서 그 위기론을 열심히 소비하고 이용해온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자발적인 독자들의 선언? 각각의 파워, 특히 '전문성의 이미지'가 확실히 부족하다. 뭐랄까 담론 투쟁이라는 것은 이렇듯 무척 골치아픈 일이다. 망치기는 쉽지만 정리하기는 애로사항 만발이다.
!@#... 여튼, 한국만화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의 담론방향이 이런 식으로 쉽게 폭주하는 현실이, 심히 걱정스럽다. 걱정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말하지는 못하겠고(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냥 이왕 걱정하려면 최소한 사실관계 정도는 제대로 파악하고 걱정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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