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만화/애니메이션사의 후반부입니다. 앞서 역사의 전체적 흐름, 시스템적 측면 등을 개괄했다면 이쪽은 그 속에서 세분화되어 나타난 장르별 스토리들입니다. 뭐 아무래도 하드한 구성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이왕 여기까지 읽었는데 마저 읽으셔야죠. 자, 준비되셨습니까?
대충 다 읽었어요...
III. 90년대의 작품 경향
1. 소년만화: 90년대의 축소판
소년 취향의 만화로서 내용이나 장르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들은 50년대에 개별 장르들이 분화된 이래로, 60년대의 <라이파이>, 70년대의 <주먹대장>, 80년대의 <곤충소년>등 사실상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러나 여기에 확고한 작가군과 특유의 생산 시스템, 그리고 소비문화가 더해져서 본격적인 소년만화라는 장르가 형성된 것은 전용 지면이 생겨난 88년 이후로 볼 수 있다. <<아이큐점프>>의 창간과 함께 거물급 대본소 및 기존 잡지 작가들이 소년만화잡지 진출을 시도하였고, 이현세의 <아마게돈>, 이상무의 <제4지대>, 허영만의 <망치>, 황미나의 <슈퍼트리오> 등 다양한 인기작을 남기게 되었다. 이로서 일본식 잡지연재 소년만화의 체계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식되기 시작한 셈이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일본식 잡지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그 내용물은 한국 기성작가들의 만화만으로 채워졌다. 따라서 청소년들을 위한 잡지 연재식 대본소 만화 같은 냄새도 없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만화들은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나름대로 적응에 성공했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이후 세대교체의 바람까지 버티지는 못했다. 세대교체의 첫 번째 시도는 대본소 도제 시스템을 거쳤지만 일반적 연고서열을 깨는 파격 데뷔를 하는 방식으로, 김준범/노진수의 <기계전사 109>등의 사례를 남겼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89년 12월, 일본만화 <드래곤볼>의 연재가 시작하고 폭발적 인기몰이를 하면서 생겨났다. 이로서 한국 소년만화 잡지가 일본만화 연재를 통해 상업적 기반을 확립하는 방법론이 확립되었는데, 91년도 창간된 <<소년챔프>>에서 더욱 세련된 방법으로 승계되었다. 애니메이션 및 아동영화 제작사였던 대원동화가 출판만화시장에 진입했고, 초기의 짧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이내 주류 만화계를 양분하는 서울과 대원의 양강 구도가 명확하게 갖추어졌다.
92~96년은 새로운 작가세대가 속속 데뷔하는 소년만화의 중흥기였다. <어쩐지...저녁>, <협객 붉은매>, <진짜 사나이> 등 일본소년만화의 장르적 법칙들과 어법을 과감하고 태연하게, 마치 밥을 먹고 호흡하듯이 구사하는 작가군이 등장한 것이다.
13) 이들은 대본소의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채 사춘기 시절 자연스럽게 일본만화를 호흡하고 자유롭게 친구들과 만화를 그리고 돌려보던 소년들이었으며, 자신과 비슷한 연령이거나 혹은 약간 더 어린 소비자들의 욕구와 취향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기존 한국만화 장르와의 퓨전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예를 들어 이충호의 <마이러브>는 일본 소년만화풍 캐릭터 러브 코미디로 시작하는 듯 하였으나 결국 명랑만화의 모험 컨벤션을 기반으로 하는 전혀 다른 장르로 전환되어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 가장 두각을 나타낸 장르 가운데 하나는 또래문화를 다루는 학원물이었는데, 기존의 한국식 학원물이 갇혀있던 연애물과 ‘얄개전’류 학교 미담의 틀을 과감하게 깼다. 격투에 의한 세력싸움이라는 조직폭력물의 문법을 학교사회로 적용시킨 작품들이 등장했고, 대결과 성장이라는 모티브 덕분에 동세대 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가상 세계의 대형 서사극 역시 다양하게 고개를 들었다. 장르적 완성도에 대한 요구가 잘 짜여진 치밀한 세계관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고, 장편 이야기가 주는 매력이 여전히 컸기 때문이다. 하나는 톨킨(J.R.R. Tolkien)식 세계관을 응용한 대하 환타지인데, 주역의 8괘 사상을 톨킨식 환타지 세계관과 결합시킨 박성우의 <팔용신전설> 등이 이에 속한다. 무협물 역시 이러한 발전방향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재학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무협만화가 원한과 복수에 의한 인생무상을 다루는 것이었다면, 이 시기의 속칭 신무협은 다양한 캐릭터들의 끝없는 결투와 성장이라는 모티브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소주완/지상월의 <협객 붉은매>, 양재현의 <열혈강호>와 문정후의 <용비불패> 등이 이 경향의 대표적인 주자들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90년대 중반까지를 아우르는 이 시기에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들이 중구난방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롭게 도입되었으며, 그중 상당수가 완성도에 대한 독자들의 수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거꾸로 서영웅의 <굿모닝 티쳐>, 권가야의 <해와 달> 등 장르의 틀에서도 다소 이례적인 방향으로 파격을 시도하는 경우 역시 나타났다.
90년대식 소년만화의 이야기진행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특징은 바로 캐릭터성의 강화다. 즉 드라마를 끌고 가는 두 가지 원동력인 사건 자체의 발생과, 그러한 사건에 대처하는 각 캐릭터들의 반응양식 사이에서 후자의 비중이 이전보다 더 커졌다는 말이다.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 전형성 또는 몰개성을 통해서 독자들의 범용적 이입을 이끌어냈던 이전 시대의 만화와 달리, 자신들의 취향 추구에 솔직해진 90년대 소년들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들의 행동들이 서로 엇갈리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야기의 주요 원동력으로 부각되어 소위 ‘캐릭터 드라마’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이것은 90년대 중반을 넘어서고 세대교체가 완전히 이루어지면서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96년의 <짱>과 92년의 <진짜사나이>의 감수성 차이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90년대의 소년만화는 시각 연출이라는 측면에서 이전 세대와 가장 급격한 차이를 보였다. 미형 캐릭터에 대한 강한 집착, 세밀하고 깔끔한 장면연출 등의 기본적인 요소는 차치하고서라도, 연출의 바탕에 있는 정서적 욕구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다. 90년대의 경험은 소년 독자들이 원하는 것이 단순한 노출이 아닌 성적 상상력에 대한 자극이라는 것을 드러냈고, 단순히 폭력적인 장면이 아닌 화려한 승부묘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따라서 관음증적 시선 연출, 스타일리쉬한 격투 묘사가 크게 발달했다. 특히 다소 고연령층의 소년만화 독자들을 노리고 94년 만들어진 <<영점프>>, <<영챔프>>는 한층 높은 수위의 자극적 표현이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각연출의 완성도를 본격적으로 추구한 형민우의 <프리스트>(<<소년챔프>> 연재), 양경일/윤인완의 <아일랜드> 등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시도는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점차 감소, 뚜렷하게 인기가 검증된 학원폭력물, 퓨전 무협 환타지, 스포츠물 등 일부 장르로 독점현상이 일어났다. 문제는 이러한 장르들이 감수성 면에서 그다지 일본 만화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급진전하다보니 일본만화 수입량의 폭증과 함께 한국 소년만화의 자체적 창작역량이 급격하게 고갈되어 갔다. 나아가 대중 오락문화에 있어서 컴퓨터 게임과의 불리한 경쟁이 확대되면서 소년만화는 장르적 불황에 시달리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김수용의 <힙합>, 임재원의 <짱> 등 대결과 성장의 재미와 동세대 한국 소년들의 현실을 조율해가면서 중용의 미덕으로 히트를 기록한 경우도 끊이지 않았지만, 대세는 기울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또 다른 문제는, 취향 세분화의 과잉이었다. 일본 작품을 위시하여 지나치게 많은 작품과 장르들을 접하면서, 소년만화 작품들의 내용은 지나치게 장르 내적인 클리셰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취향의 매니아화는 신규독자들의 진입을 막는 것은 물론 장르 동종번식을 통하여 점차 부실한 서사구조와 공식화된 캐릭터 구성이라는 폐단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소년만화의 동력을 다른 방식으로 재건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는데, 대본소 만화 특유의 저밀도 전개와 소년만화 문법을 결합시켜서 대여점 중심으로 히트를 기록한 김성모의 <럭키짱> 등의 상업적 성공사례도 남겼다. 다른 방향에서는 동인지 창작 문화를 바탕으로 소년만화 감수성에 익숙해진 여성만화가들의 소년만화계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도 했는데, <굿타임>의 김은정, <천녀강림>의 유현 등이 대표적이다.
만화계 주류로 자리잡은 소년만화의 불황은 한국 만화계 전반의 불황이라는 위기의식으로 연결되었다. 소년만화는 90년대라는 기간동안 생성부터 노쇠까지 모든 단계를 빠르게 거쳐지나간 독특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2. 순정만화의 힘
90년대 초의 순정만화는 대본소용 단행본과 순정만화 잡지라는 두 양식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8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대본소용 단행본은 주로 대하 서사물의 호흡을 가진 장편 연재물이었고, 여기에 잡지만화를 통해서 도입되기 시작한 단편과 옴니버스 구성의 작품들, 특히 학원물이가세한 것이다. 먼저 순정 대하서사물의 경우 드라마틱한 세계관과 주연 캐릭터들 사이의 감성적 관계 진행이 맞물리면서 완성도 높은 서사를 추구했는데, 80년대 후반 동안 축적된 역량이 90년대 초 화려한 전성기로 돌입했다. 하지만 90년대는 순정만화가 대본소에서 잡지로 넘어오는 시기로, 90년 강경옥의 <별빛속에>와 김혜린의 <비천무>, 그리고 뒤이어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가 완간되면서 대본소 작품의 시대가 실질적으로 끝나갔다. 따라서 순정 대하서사물 역시 대본소용의 호흡에서 잡지 연재용 작품의 호흡으로 변화했다. 92년 <<댕기>>에서 연재를 시작한 김혜린의 <불의 검>과 김진의 <바람의 나라>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들이다. 90년대 순정 대하서사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두 작품들은 내용면에서 한국 고대사를 재해석하며 환타지적 요소를 첨가하는 방식을 통해서 80년대 순정 대하서사물이 지향했던 서구적 세계관과 차별점을 나타냈으며, 또한 잡지연재라는 호흡에 맞추어 철저하게 연재 챕터 및 단행본 단위로 극적 전개의 완급 조절을 하는 능란한 구성을 선보였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80년대 데뷔 작가들이 90년대 세대들과의 동세대적 감수성에서 한계를 드러내면서 점차 순정 대하서사만화의 맥이 옅어지게 되었다.
이 시기의 순정만화 잡지는 연령별 세분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동호회와 매니아층을 노린 <<펜팬>> 등 세부 취향 잡지도 시도되었다. 순정만화잡지의 본격적인 90년대적 구도는 93년 <<터치>>와 <윙크>>의 창간에서 확립되었는데, 이후 세대가 이전 세대를 완전히 밀어내다시피 한 소년만화의 90년대와는 차이점이 확연했다. 대원의 <<터치>>는 소년만화잡지 <<소년챔프>>의 경험을 계승하여 <아기와 나>, <내 사랑 앨리스> 등 유명 일본 소녀만화와 신인작가들로 승부수를 던진 반면 서울문화사의 <<윙크>>는 이은혜의 <BLUE>, 신일숙의 <리니지>, 강경옥의 <노말 시티> 등 지명도 높은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간판으로 걸었는데, 커뮤니티 충성도가 높았던 순정만화 독자들은 <<윙크>>지에 더 좋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94년 <<르네상스>>가 기존 작가진의 이탈을 견디지 못하고 폐간되면서 잡지구도의 백가쟁명은 사실상 잦아들었다. 96년 <<댕기>>의 폐간은 이러한 흐름에 있어서 확인사살에 불과했다.
90년대에는 또래의 동세대적 생활을 공감할 수 있도록 묘사한 학원물이 부흥했는데, 잡지연재가 주도적인 형식이 되면서 여학생들의 순정만화 독서공간은 대본소가 아닌 학교, 집 등 사적 공간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잡지의 넓어진 데뷔경로를 통해서 순정만화계에서도 새로운 감수성의 신인 작가군이 급부상하게 되었고, 하나의 주류를 형성했다. 특히 93년도에 <<윙크>>에서 데뷔한 나예리, 박희정, 유시진 등이 대표적인 경우로, 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자기성찰적 작품들을 구사했다. 나예리의 <네멋대로 해라>(93), 유시진의 <쿨핫>(96)은 학원물의 형식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지닌 서로 섞이지 못하는 강한 자의식 사이의 거리감을 묘사하고 있으며,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95) 역시 친절하지만 주변에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신비한 캐릭터들의 서로 다가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러한 감수성은 90년대 순정만화 독자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여 탄탄한 팬층을 구축하도록 해주었다. 96년 발표된 천계영의 <언플러그드보이> 또한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감수성을 이야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0대들의 즉흥적이고 일상적인 문화적 감수성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지나친 자의식의 고민보다는 멋있는 캐릭터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법론을 구사했던 것이다. 후속작 <오디션>은 이 방법론을 한층 더 세련화시켜서 당대 순정만화계의 최고 히트작으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순정만화의 연출경향에 있어서 90년대적 변화는 더욱 감각적인 이야기진행과 시각구성을 의미했다. 수려한 문체와 주관적 정서의 흐름을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한 80년대 데뷔 작가들 특유의 대하서사 작품들과는 달리, 90년대 데뷔 작가들은 세밀한 배경묘사와 화려하고 감각적인 칸 편집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또한 이전 순정만화의 대표적 이미지인 과장된 포즈의 호리호리함보다는, 전체적으로 스타일리쉬한 분위기가 풍기는 쪽이 큰 인기를 끌었다. 전혀 다른 필체에도 불구하고 이은혜의 <BLUE>와 천계영의 <오디션>의 성공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이러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극 진행 역시 중추적 서사보다는 개성적이고 자의식 강한 캐릭터들의 조합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상을 전개하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97년 잡지 <<나인>>의 창간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나인>>은 이미 순정만화의 문법에 익숙한 채로 성장한 성인 여성층
14)을 타겟으로 삼으며 주류와 비주류, 신인과 중견을 아우르는 고품질 지면을 지향했다. 잡지 <<MiX>> 등을 통해서 페미니즘적 자의식을 드러낸 바 있는 이진경, 이애림 등의 작가는 물론, 이강주, 한혜연, 문흥미 등 90년대 중반을 관통하는 쿨한 감수성의 작품들을 발표한 작가들 역시 여기에서 빛을 발했다. 나아가 최인선, 이향우 등 비주류적 감성의 소유자들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 이진경의 <사춘기>, 이강주의 <캥거루를 위하여> 등 이 시기 한국 순정만화의 대표작들을 상당수 배출했다.
이외에도 90년대 말에는 김미영, 석동연 등 유희 능력을 강화한 작가들이나 권교정, 박은아, 서문다미 등 서사 화법을 다시 강화한 세대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나인>>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말 순정만화 전반의 흐름은 저연령화로 가고 있었으며, 순정만화가 소녀들의 문화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순정만화의 장르적 취향에 대한 강한 충성을 보이는, 속칭 야오이물 등으로 대표되는 매니아 지향 문화가 새롭게 부각되며 90년대가 저물었다.
3. 성인만화의 분투
성인만화는 그간 이 장르를 지탱해주었던 대본소의 점차적 쇠락과 함께 90년대를 맞이했다. 박봉성에서 개화하고 이현세가 제패한 80년대식 대본소 극화의 특징은 비극적인 영웅의 비장미였는데, 8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같은 캐릭터, 같은 이야기구조로 소재만 바꾸어나가는 노쇠현상이 뚜렷했다. 오혜성-마동탁-엄지의 삼각관계가 스포츠, 기업경영, 조직폭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없이 반복되었고, 종국에는 SF를 표방한 오컬트 소재까지 다루었으나 여전히 장르적 완성도보다는 단순한 소재차용에 그쳤다. 이러한 환경에서 80년대를 지탱한 두 거목 가운데 한명인 이현세는 <엔젤 딕>, <남벌> 등을 통해서 기존의 작품 정서에 90년대적 취향의 에피소드들을 삽입하며 적응을 꽤했고, 허영만은 대본소용 만화생산을 접고 소재면에서도 비장한 비극보다는 트렌디 드라마 방향으로 전업하여 <아스팔트 사나이>, <미스터큐>, <비트> 등 새로운 성공을 거두었다. 고전적 영웅담이 가장 잘 통용되는 장르인 무협물 이외에는 박봉성 등 극히 소수의 작가들만이 대본소용 만화를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 다가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외로 신문지면이 성인만화의 새로운 수용공간이 되어주었다. 90년 스포츠조선의 창간과 함께 신문들은 이현세, 허영만, 이두호 등 대본소와 잡지계의 인기 작가들을 유치하여 경쟁구도에 들어갔는데, 이들의 작품은 일반 도서 4-6개 페이지씩 추려서 신문지면에 펼쳐놓는 방식으로 개제되었다. 덕분에 90년대 초반의 스포츠신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고 다양한 형식과 장르의 만화들이 겸비되었다. 이두호의 <임꺽정>, 허영만의 <아스팔트 사나이>,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 등 성인 남성 취향의 선 굵은 영웅 드라마들이 가장 큰 인기를 모았고, 배금택, 강철수, 고우영 등 성인 해학의 대가들이 펼치는 소소한 인간사에 대한 관찰이 굳건하게 기반을 다져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으로 인하여 성과 폭력의 표현수위가 상승,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부작용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과 전면전을 벌인다는 내용으로 공격적 민족주의의 정서를 담은 이현세/야설록의 <남벌>의 대성공으로 상징되듯이, 신문연재 성인만화는 확실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15)
대본소 의존에서 벗어난 성인만화의 90년대 체질변환은 성인만화잡지 <<미스터블루>>의 창간으로 완연한 성공을 자축했다. 이 잡지는 <<만화광장>>의 폐간 이후 뜸했던 성인잡지의 인기를 부활시키고자 이현세, 이상세, 허영만, 황미나 등 성인 만화의 주요 명망가들이 투자하여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중견들의 잡지 연재공간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인 취향 만화를 그리고자 하는 신인들의 등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90년대 최고의 섹스코미디물로 인정받는 양영순의 <누들누드> 등을 발굴했다. 또한 이들의 자부심 역시 대단해서, 소년만화를 통해서 메이저로 올라섰던 서울문화사와 대원이 비슷한 시기에 각각 창간했던 <<빅점프>>와 <<트웬티세븐>>과 달리, 당시 만화잡지운영의 기본모델로 굳어져있던 일본만화 라이센스 연재라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이 당시의 성인만화는 성과 폭력에 대한 말초적 자극에 의존하는 단계를 벗어나 다양한 성인적 관심사를 반영하는 세부 장르취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윤태호의 <연씨별곡>의 해학과 양영순의 <누들누드>의 기발한 은유능력은 성애와 해학의 결합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으며, 허영만의 <닭 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의 사례처럼 일인 영웅체제에서 벗어나 복잡한 권력관계를 다루는 정치극화와 조직폭력물이 점차 세련된 위용을 드러냈다. 또한 성인 직장인들의 일상적 생활과 스트레스를 다루거나, 가족 관계에서 오는 마찰을 코믹하게 다루는 트렌디 드라마 만화들도 유행했으며, 한편에서는 대본소의 종주분야인 무협물 장르가 이재학의 일본 잡지 연재작 <용음봉명>에서 볼 수 있듯 세부 연출테크닉을 한층 가다듬고 있었다. 주제의 깊이 면에서도 발전이 확연했는데, 예를 들어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사극의 형식을 빌려서 구도라는 주제를 탐구했으며, 김동화 역시 <기생이야기>를 통해서 속 깊은 서정성을 발견했다. 이들은 그간 소년만화와 순정만화계를 휩쓸어버린 미형 캐릭터와 화려한 시각연출의 물결과는 명백한 격차가 있었지만, 90년대 성인 독자들의 안목에 맞는 양질의 문화적 효용감을 준 것이다. 나아가 순정만화계에서도 97년 성인 독자층을 노린 잡지 <<나인>>이 창간, 성인만화계에 신선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90년대 후반은 대중오락으로서도, 표현예술로서도 성인만화가 완연한 경지에 도달하고자 움직였던 시기인 셈이다.
그러나 검찰이 주도한 97년도의 만화탄압사태는 성인만화의 발전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잡지는 폐간되고 작품들은 도덕적 비난을 뒤집어쓰고 작가들은 기소되었다. 또한 청소년보호법의 발효는 시장의 활력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이러한 환경에서 오히려 어느 정도의 호흡을 유지한 것은 한참 위축되어가고 있던 대본소였다. 그간 주요 장르의 노쇠화에 시달리던 대본소 만화는 판형면에서 기존 대본소용 만화보다 제작 품질 및 작품 내용의 밀도를 높인 속칭 ‘성인만화 판형’을 개발했다. 이 판형의 도입으로 이전 시대의 성인만화 명작들을 다시 소개하는 것은 물론, 박봉성의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시리즈의 경우처럼 신문연재를 거친 성인극화 역시 무리없이 대본소에 공급되도록 하였다. 장르면에서도 조성빈의 토속성애만화 시리즈를 위시한 에로만화 분야가 새롭게 개척되었다. 하지만 성애장르의 제한된 상상력 및 오늘날 에로 대중문화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미미함을 고려할 때, 이것은 임시 자구책의 성격이 강하여 성인만화 침체라는 현상을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90년대말 성인만화의 침체는 2000년대에 새로운 트렌드의 신문 연재 만화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희망이 던져질 때 까지 계속되었다.
4. 인디/언더 만화: 장르화에 대한 반발
‘인디 예술’은 시스템화된 생산체계로부터 독립하여 작가 자신의 표현욕구를 우선시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즉 이것이 성립되려면 우선 그 예술양식의 주류 생산방식 자체가 먼저 산업적 효용성을 기치로 하는 시스템화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만화의 경우 전술하였듯이 90년대 들어서 그러한 현상이 본격적으로 정립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인디만화라는 개념이 주창되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85년도의 <<아홉번째 신화>>가 이미 충분히 인디만화의 초기 시도이며 상당수의 기타 동호회들도 이 범주로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인디만화로서의 자의식을 스스로 주창하고 나선 작가군과 운동체가 나타난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는 한국만화잡지의 여러 대안들이 사라지고 상업적 성공 효율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일본식 물량 및 경쟁체계라는 방식으로 수렴되었고, 각각 세대별, 성별 소비층의 주류 취향이라는 것을 상정하여 그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만을 다루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주류와 다른 감수성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며, 그것을 통해서 대안적인 만화 방식을 설파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들 인디만화다. 그렇다고 해서 인디적인 시도들과 주류 만화계가 접점이 없는 평행선인 것은 아닌데, 예를 들어 97년 창간된 <<MIX>>의 경우, 80년대 <<아홉번째 신화>>의 경우처럼 순정무크지를 표방하며 창간되었다. 이들은 기존 잡지지면에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기성작가와 신인들의 대담한 표현을 통해서 좀 더 강렬한 취향의 순정독자들을 만족시켰는데, 결국 이 잡지의 작가진과 편집방향은 같은 해 서울문화사에서 창간된 성인 순정만화잡지 <<나인>>으로 고스란히 이전했고 주류 만화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다.
하지만 더 특화된 취향의 비주류적 만화방식에 대한 욕구가 90년대 중반 무렵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이들이 보통 언더그라운드 만화라고 칭해지는 부류다. 이 작품군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경향으로 거칠고 투박한 표현, 난독성 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이들을 인디만화라는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기성 주류만화시스템에서 스스로의 표현방식과 정체성을 통제받기 보다는 독자적인 출판, 유통 경로를 모색하고 있고 그러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6) . 이들은 비록 주류적인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거나 대상 독자층과 확고한 소통을 통해서 매니아 세력화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90년대 및 그 이후 만화계에 대안적 모델과 작가주의적 전통을 구성한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중 가장 선명하게 부각되었던 그룹들은 ‘네모라미’, '화끈', '히스테리' 등이었다. 우선 네모라미는 홍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만화동아리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주목하게 만든 2기 회지에는 90년대 후반 포스트모던 계열 광고영상으로 유명세를 떨친 CF감독 박명천, 다양한 화풍의 일러스트로 출판계의 스타로 떠오른 이우일 등이 포함되었는데, 주류만화의 전통적 요소인 인물과 극 전개에 대한 몰입보다는 화면 전체의 디자인적 효과를 중시하고 해체적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90년대의 인디/언더 만화계를 대표한 양대 기둥은 화끈과 히스테리다. 모해규를 편집장으로 하여 96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만화잡지 <<화끈>>을 통해서 결속한 일련의 작가군은 저항적 성향이 강하고 이야기 만화에 대한 인식을 일정부분 지녔다. 우만연과 연계된 민예총 만화 아카데미 출신 작가들이 다수 포함되었던 이들은, 무엇보다 잡지 자체를 독자적 시장과 유통경로로 만들어 나갔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재정난과 이에 따른 작가 수급 난맥으로 인하여 이후에 웹진으로, 종이잡지 재창간으로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이보다 앞선 95년에 <<만화실험 봄>>이라는 무크지를 통해서 먼저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 바로 ‘히스테리’ 그룹이었다. 이후 <<히스테리>>라는 정기간행 잡지를 내다가, 몇 번 다시 이름을 바꾸어 98년 이후로는 <<COMIX>>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신일섭을 편집장으로 하는 이 잡지의 작가군은 강력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진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의 언더성향 정체성을 공개적인 선언을 통해서 천명하고 나섰다. 이들은 의도적인 저속함, 키취 취향을 표방하여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또한 당시 부각되고 있던 언더성향 문화 일반인 펑크락 음악, 길거리 미술 등 여러 인근 장르와의 연대를 실천하고자 하여 각종 전시 이벤트, ‘이발쑈 포르노씨’라는 락밴드 등 다방면의 활동이 이어졌다. 이들 역시 대중적 성공을 배재하여 얻게 된 재정난으로 웹진 전환, 기습적인 잡지 재발간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외에도 한겨레 아카데미 출신 작가들 역시 90년대 인디만화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98년 창간되어 고급 비평담론과 인디성향 만화들을 묶어낸 잡지인 <<월간 오즈>>, 동인회지 <<바카스>> 등에서 이들은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은 운동체로서의 정체성이 희박한 편이며 성향의 편차가 극심하여 하나의 집단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다만 작가적 자세라는 측면에서 주류화된 잡지시스템에 대한 편입을 거부한다는 견지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사실 명백한 인디만화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인디적인 취향을 선보이는 개인 작가들 역시 90년대에는 다수 부각되었다. 변병준, 박흥용, 이진경 등 주류 잡지만화계에서 활동하면서도 작품 내용이나 발표방식에서 비주류적인 방식을 고수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5. 신문/시사만화의 진화
한국에서 신문과 만화는, 이미 근대 신문 개념의 탄생과 함께 첫 근접조우를 가졌다. 이 당시 이후로 계속 고정된 신문 속 만화의 역할은 전통적은 만평과 시사 4칸만화였다. 물론 70년대부터 스포츠 신문의 영역에서는 극화풍 연재만화가 히트를 쳤지만, 소위 종합일간지로 불리우는 신문들에서 만평과 시사 4칸만화로서의 만화의 역할은 90년대 중반까지 그대로였다. 미국의 신문연재 생활 코미디를 특약 연재한 <블론디>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90년대의 시사만화는 이전보다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양상 몇가지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시초는 가운데 하나는 88년 데뷔한 박재동의 <한겨레 그림판>으로, 정치인들의 권력다툼이라는 이슈에 함몰되어 있던 기존 1칸 시사만화의 의제 설정틀을 넘어 여성차별, 환경문제, 문화현상 등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정해진 1칸 공간을 다시 서사적 필요에 따라서 쪼개는 다양한 칸 분할 방식, 캐리커쳐에 머물지 않는 다양한 시각적 은유를 통한 폭넓은 인물표현 등으로 시사만화의 표현력을 혁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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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분기점인 <경향만평>의 김상택은 정치인들의 권력다툼을 다루되 거의 전통 민담 내지 궁중 사극 스타일의 해학과 직설화법으로 풀어나가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중앙일보로 이적하면서 급격하게 논조가 우경화되기 전까지는 박재동과 함께 90년대 시사만화의 대표작가로 평가받았다. 또한 잔선이 많고 형상이 이그러지는 그림체를 도입, 시사만화 화풍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데 일조했다. 또한 시사만화 일반에 대한 관심 역시 진행되어 시사만화계 전반을 다루는 잡지 <<시사만평>>이 91년 창간, 1년여간 발간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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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환경에 힘입어 90년대에는 보다 다양하고 효과적인 표현과 의제설정을 갖춘 젊은 시사만화가들이 속속들이 부상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작가들의 성향별 조직화 역시 진척되어, 보수 성향 시사만화가들을 위주로 하는 단체인 한국시사만화가회가 95년 창립되었고, 이와 반대 성향을 가진 젊은 작가들 역시 90년대에 점차 결집하여 2000년 1월에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를 출범시켰다.
이 시기 시사만화의 또 다른 혁신은 주간지용 시사만화의 등장이다. 주간조선에 연재된 이원복의 <현대문명진단>, 한겨레21에 연재된 조남준의 <시사SF> 등이 대표적이다. 두 페이지에 걸친 칸 전개라는 서사적 구성을 통해서 시사적 이슈에 대한 한층 세밀한 접근이 가능해진 것이다. <현대문명진단>의 경우 작가의 나레이션을 따라가며 칸 단위의 설명을 읽어내는 강연식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시사SF>는 시사적 이슈를 비유적이며 종종 상상적인 상황으로 치환하여 한편의 해학적인 꽁트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문이라는 매체에서 시사만화 이외의 분야를 접목시키고자 하는 시도 역시 가속화되었다. 그중 한가지는 스포츠신문이 아닌 속칭 ‘종합일간지’에서도 회당 여러 페이지로 구성된 연재 극화를 개제하는 것이었다. 95년 말 경향신문에서 이현세의 <러브컬렉션>을 연재한 것이 시초인데,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1년 이내로 다시 만화지면이 사라지게 되었다. 오히려 돌파구는 다른 곳에서 나왔는데, 조선일보는 97년에 정사각형의 공간에 컬러로 짤막한 에피소드를 담은 <광수생각>이라는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메이져 일간지인 조선일보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는데, 감상주의적 색채와 둥글둥글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소위 에세이툰이라는 취향장르의 화려한 신호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여타 신문에서도 비슷한 컨셉의 작품들을 유치하기 시작했고, 제한적인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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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90년대 애니메이션의 장르 성향
90년대 애니메이션의 내용적 경향에 있어서 후기로 갈수록 뚜렷해지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바로 드라마의 퇴조와 세계 설정의 강조다. 극장판과 TV시리즈 모두 시기가 지날수록 현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인간 드라마 위주의 전개가 점차 쇠퇴해 나아간 것이다. 이것은 제작단계에서 독특한 세계관과 그것을 구현해내는 화려한 비주얼로 우선 눈길을 끌어냄으로서 각종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90년대 특유의 문화산업 붐과 연관이 있었다. 또한 디즈니로 대표되는 대자본 블록버스터 작품들이나, 드라마의 빈약함을 화려한 캐릭터들의 스펙터클로 대체하기 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향성과 경쟁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이행된 현상이라는 측면도 있다. 특히 이것은 볼거리가 중요한 극장용 작품에서 극명하게 드러나서, SF, 환타지 등 특이한 세계관과 그에 따른 비주얼을 제공할 수 있는 작품이 강조되었다. 90년대 중반기 최고의 관심을 일으켰던 <아마게돈>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80년대 제작된 TV판 <아기공룡 둘리>가 가족적인 아기자기함을 강조한 작품이었다면, 90년대의 극장 개봉작 <얼음별 대모험>은 스펙타클한 모험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도 특기할 만 하다. 단지 TV와 극장판의 차이라기보다는, 같은 작품 에서도 장르적 성향이 바뀐 것이다. 나아가 비주얼을 강조하는 이러한 경향은 작품을 캐릭터 프랜차이즈를 위한 전방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게돈>, <철인사천왕>이나 TV 시리즈 <영혼기병 라젠카>, <녹색전차 해모수> 등의 실패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주얼에 집중하다가 스토리 전개의 원활함을 놓치고, 특이한 세계관에 매달리다가 정작 설득력 있는 행동을 통해서 축적되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잃어버리는 시행착오를 많은 경우 겪어야만 했다.
이 시기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장 긍정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는 장편 시리즈물의 제작으로, 13화 완결이라는 짧은 호흡을 강요받았던 이전의 TV시리즈 제작관행에서 벗어나 인기 있는 작품은 13화 단위로 속편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옛날옛적에>가 3개 시즌, <날아라 슈퍼보드>가 4시즌까지 제작되는 등 작품 컨셉에 걸맞는 서사구조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90년대 말을 향하면서 처음부터 20화 이상으로 기획되는 경우도 생겨나, 99년에 전 26화 짜리 <레스톨 특수구조대>라는 예상치 않았던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장편 시리즈로 갈수록 방영시간대, 투자자의 성향 등과 맞물려서 TV시리즈의 인기를 좌우하는 청중은 주로 아동층으로 한정되었고, 따라서 주류 작품들의 장르 취향 역시 아동 모험물 위주로 발달하게 되었다.
90년대에는 작가주의적 시도 또한 확고하게 자리잡아갔다. 교육기관의 증가와 함께 독립성향 단편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증가했고, 특히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소규모 인원 내지 1인 제작이 한층 수월해졌다. 특이한 경우는 98년도 MBC 뉴스에 삽입되었던 <시사애니메이션>인데, <한겨레 그림판> 박재동의 오돌또기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단편 시리즈물이었다. 내용은 마치 박재동의 신문 시사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듯한 감수성으로, 근엄함의 정서가 지배적인 TV뉴스방송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나아가 의외로 주류 장르물에서 작가주의적 시도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즉 감독의 개성이 실제로 작품에 명확하게 반영되어 관객들도 느낄 수 있도록 하거나, 아예 감독을 스타로 만드는 것을 이야기한다. 단편 <덤불속의 재>로 시적인 부드러움을 독특한 필치로 담아냈고 극장용 장편 <마리이야기> 제작에 착수한 이성강, <원더풀데이즈>라는 데모영상에서 2D와 3D가 조화를 이룬 강력한 스펙터클을 창조해낸 김문생 등이 기대주로 부상했다.
20) 이것은 물론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상업적 성공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다양한 세부 취향의 분화에 도움이 되어주었다.
IV. 새로운 방향성의 예고
1. 만화/애니메이션계의 환경변화
2000년대를 목전에 두고 있던 무렵의 한국 만화계는 위기론이 지배했다. 편집부 시스템의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본식 잡지모델을 지속하는 것의 한계가 드러났고, 단행본 물량공세 위주의 산업 시스템은 시장포화점을 넘어섰으며, 출판계 전반의 불황은 주류 만화계에서 일거에 위기의식을 지폈다. 나아가 인터넷 보급의 폭발적 증가와 맞물린 컴퓨터 게임의 강세, 영화산업의 부흥 등 오락문화 영역에서 만화의 지분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끝물을 노리고 앞다투어 주류시장에 진입 및 잡지창간을 했다가 곧바로 쓰러지는 출판사들도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이미 관성화되어 버린 시스템을 개혁하기에는 추동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역시 90년대에 축적된 거듭된 상업적 실패로 인하여 투자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덕분에 제작 체계가 튼튼하지 못했던 <오돌또기>등의 프로젝트들은 물론이고, <하얀 마음 백구> 등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프로젝트들까지도 완성 스케쥴 지연 또는 개점휴업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2000년대에도 계속되어 고질적 문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주류 만화계가 자폐적인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에도 만화라는 양식 자체는 아직 활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미술계에서는 <아토마우스> 연작의 이동기의 경우처럼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만화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었으며, 방송이나 영화에서도 만화의 화법 및 원작을 차용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또한 만화출판이라는 측면에서도 오히려 호황을 구가하는 분야가 새롭게 시선을 집중시켰는데, 바로 정보/학습 만화의 영역이었다. 정보 및 학습만화는 픽션에 의한 서사보다는 정보 전달 자체에 집중하는 만화 일반을 칭하는 것인데, 작품성의 성취도보다 정보 효용성이라는 측면이 강조되는 기획물이다 보니 만화의 창작예술 속성을 강조하는 작가 및 주류 만화출판계에서는 일종의 번외구역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주류 잡지에서 명랑만화가 거의 멸종해버린 90년대 후반 이후에 아동독자들의 대부분을 흡수한 것은 물론, 복잡해진 세상 속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손쉬운 상식정보 습득에도 지극히 효과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 결과 상업적인 성장 및 이에 따른 완성도 측면의 질적인 발전까지도 거듭한 것이다. 90년대 초 이원복/송병락의 신자유주의 찬가 <자본주의 공산주의>가 손쉽게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21), 주기적인 유행에 따라서 도시괴담류 공포만화 등 아동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취향장르가 각광받았다.
90년대가 끝나가는 시기는 이렇듯 양가적인 상황이었다. 이 시기, 만화/애니메이션계가 새로운 돌파구로 여기고 일제히 시선을 집중한 곳이 바로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던 인터넷이었다.
2. 만화의 적극적인 인터넷 문화 수용
만화가 온라인이라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시도는 비교적 일찍부터 있었다. 90년대 중반에 실험적 연구를 하고 후반에 본격화되었던 PC통신 서비스의 온라인 만화방 서비스를 필두로, 인터넷 보편화가 막 이루어지고 있던 99년에 이미 ‘이코믹스’, ‘N4', ’코믹스투데이‘ 등 대형 만화 포털 사이트가 독자몰이에 나섰다. 즉 온라인은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침체된 시장과 유통방식에 활로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받았는데, 사이트와 실물 출판의 결합, 취향별 소량 유통, 종합 서비스를 하는 포털 사이트화 등 다양한 시장모델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화방이라는 표어대로 해당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유료결제를 하면 기존 종이만화의 스캔본을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방식에 그쳤고, 그 결과 일부 성인 에로 만화를 제외하고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인쇄를 전제로 하는 장편 만화 작품들을 모니터 화면으로 온전히 즐기기에는 해상도 문제, 독서 자세의 불편함 등 기술적 난맥상이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로 만화를 본다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소리를 넣거나, 작은 움직임을 부여하는 식의 시도도 일부 있었지만, 만화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온라인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키워준 것은 바로 독자 자신들이었다. 인터넷 메일과 게시판을 통한 소통이 생활화되면서 서로 온라인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만화 작품을 1-2개짜리 첨부 파일로 올려주는 새로운 유행이 생겨난 것이었다. ‘N4'에서 연재되었던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품인 <마시마로 숲 이야기>가 언젠가부터 ’엽기토끼‘라는 별명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신문사의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오는 카툰 연재물 역시 각광받았다.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스노우캣>을 필두로 하는 인터넷 상의 일기체 만화들이 특히 주목을 모았다.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짦막한 이야기를 며칠 간격으로 올리는 방식을 통해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독자층에게 거의 중독적인 흡입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아마추어 만화 작가들이 유사한 작업을 시도했고, 하나의 장르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듯 '펌'과 취향 공유에 기반을 둔 자발적인 확산에 의해서 온라인 만화는 삽시간에 거대한 독자층을 확보해 나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나 돌아다니는 폭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서, 온라인 만화 역시 한층 깊숙하게 독자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이렇듯 90년대 말에 시작한 온라인 만화라는 경향은, 이후 2000년대에는 더욱 더 만화계 전체를 변모시킬 정도의 강력한 움직임이 되었다.
V. 맺음말. 90년대: 체질변환 실험
산업적 체계화라는 움직임은 창작 및 향유 경향성의 흐름 형성과 변화에 이전과는 다른 급박한 속도감을 부여했고, 정치적 민주화의 정착에 따른 문화담론의 증가는 취향문화 개념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 두가지가 결합하여 대중문화로서의 만화/애니메이션에 장르성 공고화와 취향 분화라는 커다란 움직임을 규정지어주었다. 이 와중에서 한국 만화는 소년만화와 순정만화를 양대 주류로 정립시키면서 발전했는데, 이전 시대와 단절하는 완전히 새로운 제작체계 및 창작 경향과 세대가 주목을 받았다가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변화에 직면하는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주류 장르화를 강요하는 시스템에 대한 반발로 제기된 인디만화, 독자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진화를 꿈꾸다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하여 침체로 돌아선 성인만화, 표현형식의 혁신을 보여준 시사만화 등 여러 기타 영역에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만화/애니메이션 분야에서 90년대는 문화산업이라는 담론과 취향이라는 변별자의 힘에 의하여 대단히 역동적이며 유동적으로 움직인 시기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안정화하거나 해소되지 않고 2000년대로 이음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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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3) 이러한 장르적 방향성은 때로는 일본 만화 컨벤션의 지나치게 무비판적인 수용으로 이어져서, <어쩐지...저녁>에서 주인공들이 일본식 찬합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등 문화적 혼란을 야기한 부분도 발생했다. 당연히 이런 지점들은 일본만화에 대한 부정적 편견으로 무장한 학부모 단체들의 즉각적인 공격대상이 되었고, 서울 YWCA 어린이부에서 연 단위로 작성한 <주간 만화잡지 분석보고서>의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았다.
14)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섹슈얼리티에 대한 접근 역시 한층 농밀하게 부각되었는데, 남성향 성인만화가 지니는 육체적 욕망묘사와는 달리 성적 애정과 정체성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더 자세한 논의는 원윤미, <순정만화 장르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와 수용양상에 관한 연구> (2001,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논문)를 참조.
15) 90년대 스포츠신문 만화의 역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이영미, <스포츠신문 연재만화 연구> (2003,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논문) 를 참조.
16) ‘한국 인디만화의 어제, 오늘, 그리고’ (웹진 두고보자 제5호, 2001). 특집코너의 일환으로 한국 인디만화의 계보를 도표화한 자료도 같이 첨부되어 있다.
17) 이 주제에 대해서는 <합당 블루스 - 한겨레 그림판 모음4>(이론과 실천, 1992)에 실린 황지우 시인의 박재동론 <권력에 대한 웃음 - 박재동 만화 아이콘, 분석>을 참조할 것을 권한다. 의제설정, 비유법, 철학 등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서 한국 시사만화에 대한 종합적 평론의 가장 모범적인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18) 손상익 외, <한국만화통사 2> (시공사, 1998) p.172
19)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우일의 <도날드닭>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면구성에서부터 <광수생각>의 히트요인을 기계적으로 모사하고자 했던 신문사의 입장이 엿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전위적인 성향은 <광수생각>의 감상주의나 보수적 가족주의와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지면에서 퇴출당했다.
20) 아이러니컬하게도, 두 작품 모두 작품의 실제 완성과 개봉이 여러 차례 연기되어 여러 해 동안 소문만 무성한 기대작으로 남아있었던 경력이 있다. 96년의 <아마게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투자 지연 등 제작상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최대한 감안하며 개봉 스케쥴을 짜는 기획력이 부족했던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고질적 병폐의 결과였다.
21) 이원복은 고려원에서 출판한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의 상업적 성공에 이어 곧바로 이 책을 성공시킴으로서 정보 학습 만화의 확실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이후 <현대문명진단> 시리즈,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의 각종 속편들 등이 작품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연달아서 히트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