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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서구만화/ 프랑스 만화 '이비쿠스' - 형식의 자율성
만화는 흐른다 00/11/08 12:01 유달리

이 글은 <이비쿠스>라는 4부작 장편만화 중에서 국내에 번역 출판된 1권만을 텍스트로 삼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2000년 앙굴렘 국제만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이비쿠스 2권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해서 다루지 못한다.) 1권은 9개의 장으로 나뉘어있고, 「페트로 그라드 1917년 2월」이라는 제목 하에 1에서 5까지의 장이 포함되고, 「1917년 10월」이라는 제목 하에 6에서 9까지의 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비쿠스>는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이지만, 시대물엔 관심 없는 독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만화 뿐 아니라 러시아 문학, 러시아 혁명사, 영화 등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더욱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이 작품이 소구하는 독자층이 넓다는 말이 되겠는데, 그 점은 취향과 장르가 자꾸자꾸 잘게 나뉘는 현재의 경향에 비교할 때 <이비쿠스>가 가지는 힘이 될 것이다(물론 그러한 분화가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분화가 상업화되어 얼마나 자주 소통보다는 단절의 수단이 되는가 생각해보자.).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시기에 활동한 작가인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똘스또이(1883-1945)(주1) 의 동명소설이 이 작품의 원작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에는 혁명기의 러시아의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신문을 싣거나, 러시아어 간판의 카페를 그리거나 혹은 당시 러시아의 문예조류 중 하나였던 미래주의(주2)에 관해 언급하는 것 등을 통해 작가가 상당히 원작의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제목이 되고 있는 '1917년 2월'의 혁명을 통해,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끝을 맞이했고, '1917년 10월'의 혁명을 통해 러시아는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3장의 시작은 러시아 2월 혁명을 실은 신문기사로 시작하고 있어서 특히 인상적인데,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독자에겐 잘 전달되지 못한 거 같아서 아쉽다. 러시아어나 불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를 위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어로 된 원작을 프랑스 작가가 만화화해서 생긴 오류인지, 혹은 우리 나라에서 번역 출판하는 중에 생긴 오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러시아어를 한글로 표기하는데 있어서의 실수도 상당부분 눈에 띈다.

달리는 모름지기 만화란 펜으로 그린 것이라고 생각해왔나 보다. 그래서 선이 없이 흑백의 명암을 통해 표현되는 <이비쿠스>의 그림은 새로웠다. <이비쿠스>는 그림이라는 '형식'이 내러티브라는 '내용'을 뛰어넘어 그것을 규정하기도 통제하기도 할 수 있다는 점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이비쿠스>의 그림은 표현적이어서 그림 자체가 독자에게 말을 건다고 할까. 조금 과장하자면, 대사가 없었을지라도 우리는 어쩌면 이 작품의 내용을 따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실제로 2편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한 파스칼 라바테는 영화적인 이야기 전개 기법을 만화에 자연스럽게 적용하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위선적이기도 하고, 소심하기도 하고 혹은 비열하기도 한 한 소시민이 꾸는 하나의 악몽과 같다. 꿈을 칼라로 인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듯이, 이 작품은 흑백과 수많은 회색들 말고는 색을 쓰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던 대로 윤곽선이 없기 때문에 명확한 경계 없이 서로 겹치고 침투하는 대상들은 몽환적인 꿈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딱 보통 사람만큼의 결단력과 선악을 가진 주인공이 듣는 예언은 바로 그가 이비쿠스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비쿠스 즉 '말하는 해골'이 자주 언급되기도 하려니와,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해골'의 이미지가 쉽게 겹쳐진다. 생명이 잘 느껴지지 않는 지나치게 왜곡된 길다란 신체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특징이다. 그것은 혁명기의 불안과 공포를 숨죽이며 참아내는 등장인물들의 비인간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말하는 해골로 변해 가는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 속의 공간이자, 혁명의 공간이기도 한 페트로 그라드나 모스크바도 불모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차갑고, 휘몰아치는 무언가에 곧 휩쓸려 들어갈 듯한 거리에는 그나마 까마귀 떼나 검은 고양이만이 생명을 느끼게 해 준다. 걸핏하면 총성이 들리고, 집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혁명의 와중에, 사람들의 표정에 작가는 두려움과 욕망이 배어들어 있다는 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구멍은 조그맣고 눈꼬리가 올라간 눈을 하는 인간들의 모습에는 어느 정도의 악마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



앞서 인간의 악마성이라는 표현을 내가 사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작품이 종교적인 상징을 통해 주제의 많은 부분을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기독교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다음 그림을 눈여겨볼 만하다. 주인공의 연인은 다음과 같은 물고기 모양의 상자에 마약을 넣고, 상자는 '요술상자'라고, 마약은 '정령'이라고 부른다. 그리고는 마약이 '이 세상의 어떤 빵보다도 더 좋은 거'라고 주인공을 유혹한다. 물고기는 초기 기독교에서는 기독교도임을 상징하는 표시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한편 왜 그녀는 '유혹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원형적 이미지를 띄고 등장하는 것일까? 이러한 종교적 상징이 작품 전체에서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비쿠스>가 2·3·4권 모두 국내에서 출판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작품 표지에서 살펴볼 수 있듯, 옷을 벗은 남녀가 초록색의 사과를 사이에 두고 입맞추고 있는 모습은 성경의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다음 그림을 보자. 하급 회계원에서 우연하게 귀족으로 신분상승을 한 주인공을, 화가인 여자친구는 마치 종교화의 예수처럼 그려놓고 있다.

주인공 시메온은 영국인 골동품상의 죽음을 방기함으로써 이비쿠스로서의 운명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이러하다. 운명에 따르면 그는 부자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때는 "이 세상이 불과 피 속에서 무너질 때, 전쟁이 집안으로 번질 때, 형제가 형제를 죽일 때"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희생 대신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택한 셈인데, 그러한 그가 예수로 그려지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해골이 된다는 것, 생명이 없다는 것, 그것은 곧 마비가 아닐까. 주인공 시메온은 말은 할 수 있지만 해골인 이비쿠스가 되었다. 그는 귀족이 되어서 최상의 생활을 누리지만, 감정과 윤리는 마비상태가 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에 대한 우화. 이를 작가는 인류를 구원하기보다는 자신을 구하기로 결심한 예수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161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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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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