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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친절한 헤교씨' - 일반 성인 대상의 보편적 오락성
이 만화 봤어? 06/06/17 05:53 capcold
오늘날 한국에서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트렌디물이 가장 선호하는 장치들은 무엇일까. 즉 장르 영화나 드라마, 장르 소설, 만화의 인기작들에 응당 들어있기 마련인 어떤 소재들의 경향 말이다. 우선 간단히 떠오르는 것은 세 가지 정도다. 첫째는 ‘조직폭력’. 조폭 장르가 인기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연애가 핵심인 드라마에서마저도 조폭 또는 사실상 조폭을 연상시키는 구도가 꽤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조폭은 상처받은 거친 남성, 비합리적인 위계로 꽉 짜인 사회구도, 비열한 현실감이 넘치는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기 좋은 소재로, 어두운 면모를 간직한 매력적인 남자캐릭터를 만들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전문성.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 내용이 들어 있어 줘야 이 복잡하고 전문적으로 분업화된 세상 속에서 일종의 극적 현실감을 확보한다. 카지노 딜러의 세계든, 과자 제빵 장인의 세계든, 조선시대 여형사든, 한쪽 세계의 전문성이 가져오는 낯설음이 오히려 몰입을 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뭐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멜로 코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끌려서, 사귀든지 헤어지든지 여하튼 인간적 애정으로 움직여주며 극의 뼈대를 생성해 주는 것이다. 조폭 코드도 전문성 코드도, 결국 이 멜로라는 핵심 뼈대 위에 발라지는 살과도 같다. 여하튼 이러한 장치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구사하는가에 따라서 대중 오락물로서의 호소력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코드들을 능란하게 균형 잡아가면서 구사함으로써 결국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주로 저녁시간대 TV 드라마였다. TV라는 형식 덕분에 넓은 향유층을 거느릴 수 있으며 연속극이라는 형식 덕분에 충분한 방영시간과 연재가 주는 지연효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연재만화는 어떨까. 매니아 지향 만화잡지가 아니라, 신문이나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는 만화라면 성인 대중 일반이라는 향유층 확보가 수월하다. 그리고 연재를 통한 관심끌기라면 만화 또한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아주 조폭 장르물로 가거나, 아주 전문분야 정보전달에 쏠리거나, 아주 멜로물로만 가버린 경우들이 대부분이라서 강력한 성공사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불친절한 헤교씨』(박기홍 글, 김선희 그림 / 작은책방/ 2권 발행중)는 연재만화에서도 그러한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지면이 사라지면 작품도 중단되는 연재 만화의 일반적 사례와는 달리, 이 작품은 처음에는 지하철 무가지 <굿모닝서울>에서 연재를 시작했다가, 포털 사이트 <엠파스>로 자리를 옮겼다가, 그 곳 지면이 사라진 후에는 또 다른 포털 사이트인 <파란>으로 다시 둥지를 옮겨서 연재를 지속해온 특이한 경우다. 그 작품이 이번에는 종이 단행본으로 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대단히 유능하지만 오히려 그 유능함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30세 여자주인공 소헤교가 게임회사에 취직하여 커리어를 추구하는 이야기다. 이 와중에서 사채업자인 그녀의 아버지가 조폭과 금융사기 등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축을 이루고, 회사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가 여러 층으로 겹겹이 쌓여간다. 반은 조폭물, 반은 게임회사 커리어물로 이루어진 기묘한 균형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코믹한 티격태격과 진지한 가족사 문제를 오가는 여러 트렌디 멜로의 구도와 에피소드들을 섞어 넣으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을 섞으면서, 작품은 꽤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조폭과 사기가 난무하는 이야기축에서는 비열한 정치적 관계들을 거침없이 묘사하여 극적 재미를 부여하고, 동시에 게임회사 이야기로 나타나는 전문 영역의 분야는 게임업계의 실제 모습들과 여러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확실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그러면서도 콩가루 가족의 한 쌓인 관계, 남녀간 애정 구도가 들어있는 (비록 특이하게도 정작 여자주인공은 특별히 연애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멜로의 뼈대로 구심점을 부여한다. 이렇듯 열심히 섞이지만,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게 독자들을 뛰어난 오락성의 바다로 몰입시킨다. 여기에 남성 위주의 가족과 사회현실 속 유능한 여성의 수난이라는 주제 의식이 지니는 동시대성 역시 작품을 더욱 호소력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특별히 교훈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진취적인 주제의식을 넣어줌으로써 향유자들로 하여금 죄책감 없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남성 글 작가와 여성 그림 작가라는 조합 역시 작품의 보편적 호소력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둘이 부부지간이라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강력한 정치적 드라마 부분과, 여성들에게 호소력 강한 섬세한 인간관계와 심경변화라는 부분을 잘 녹여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순정만화 특유의 그림체와 연출방식이 일반 성인 남성 독자들에게 주곤 하는 거리감 또는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남성극화에 가까운 직선적 사건 중심의 연출 역시 이러한 조합이 영향을 주었으리라 본다. 물론 거꾸로 보자면 각각 장르의 코어 팬들에게는 외면 받을 이유가 되지만, 적당한 정도의 취향을 지니는 일반 성인들에게는 그 정도가 좋은 균형이다.

어디로 보나,『불친절한 헤교씨』는 잘 만들어진 연재 오락물이며 일반 성인 독자층에게 보편적 호소력을 가지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은 연재 지면이 여러 번 바뀌어 온 것이 독자의 꾸준한 확보에는 감점요소가 되었으며, 흑백 극화의 형식이기에 종이가 아닌 웹 연재로서는 그 호소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바 있다. 이번에 출시된 단행본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까? 사실 이 작품은 단행본보다는 연재로 한편씩 보며 그 다음을 기다리는 형식에 더 어울린다. 게다가 소장하고 두고두고 곱씹어보는 장르라기보다는, 실시간으로 웃고 울며 즐겨야 재미있는 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행본에는 연재에서 공개한 바 없던 내용들을 더 넣는다고 하니 한번 두고 보며 즐겨볼 일이다. 단행본으로 완결이 나면 연재 당시보다도 더욱 재미있는 작품으로 완성되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 게재)


!@#… 굿모닝서울에서 시작해서 엠파스를 거쳐서 결국 파란에서 완결짓고 만, 근성의 연재작. 매체의 독자층으로 볼 때는 사실 맨 처음의 지하철 무가지 쪽이 더 적합했을터인데, 여하튼 포털에서 둥지를 틀 수 밖에 없었던 경우. 좀 더 본격적으로 들어가줬으면 하는 부분들이 참 많았는데, 그래도 완결을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연재만화에서 작품의 최종분량에 대한 사전합의 등 쌍방 합의 연재 조건 도입의 필요성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더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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