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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문하생' - (3) 2002년 9월 28일 토요일 장태관씨 고소인 인터뷰
만화는 흐른다 02/09/28 11:31 두고보자
소년만화 잡지 I에 "아웃복서"를 연재한 인기작가 장태관씨의 문하생들이 장태관씨를 "상습 폭행, 성희롱, 협박, 사기"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2002년 5월의 두 명의 문하생이 장씨를 고소하자, 그 전에 폭력과 성폭력에 못이겨 장태관씨씨 화실을 도망쳐 나온 7명의 문하생이 추가 고소, 현재 고소인은 증인을 합쳐 총 14명이다. 두고보자는, 그 중 가장 먼저 장태관씨를 고소하고 적극적으로 언론과 노동단체에 이 사실을 알려온 K씨와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 장태관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된 경위는?

오래 전부터 만화에 뜻을 두고 있었고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20대 초반이던 때는 공모전이 많지도 않고, 만화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문하생이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23살이 되던 해 11월에 문하생으로 입문을 하였다(고소인은 72년 생). 친구의 이모의 소개로 간 곳이 고 이재학 선생님의 프로덕션이었다. 그곳에서 꽤 오랫동안 펜터치 등을 담당하였지만, 잡지 연재를 원했기 때문에 옮기기로 마음을 먹고 다른 선생님의 화실로 옮겼다.

옮긴 화실은 일을 제대로 주지 않고 대우도 몹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이 소개해 준 곳이 바로 장태관씨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선생님은 내가 나가겠다고 말을 꺼낸 것에 몹시 불만을 가지고, 일부러 장태관씨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었다. 그리고 장태관씨에게 "내가 소개시켜 준 녀석은 버릇 없는 녀석이니 단단히 버릇을 들여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장태관씨에게 직접 들은 사실이다.

* 다른 화실에 비해 대우가 좋아서 장태관씨의 문하생으로 남게 된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재학 프로덕션의 경우 상당히 자유스러운 분위기였고, 고료도 원고를 한 만큼 정당하게 받았다. 하지만 만화가로서 데뷔할 수 있는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만화수업을 위해 들어간 것이었고, 언젠가는 데뷔를 위해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장태관씨과 이야기 했을 때, 상당히 호감을 가졌었다. 자신은 작가주의가 최종 목표이고, (작가주의로 유명한)오세영씨와도 한 그룹이라고 말하였다. 작가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 상당히 끌렸기 때문에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노동법의 보호 밖에 있는 문하생을 위해서, 자신은 퇴직금 제도를 만들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어떤 화실에서도 이야기 하지 않은, 2년 내에 데뷔를 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먼저 꺼낸 것이다. 그 말을 믿고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문하생으로 들어간 후부터 고소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

장태관씨의 화실에는 1998년 가을에 입문하였다. 아웃복서로 유명 작가가 된 장태관씨은 잡지, 신문 등 여러 곳에서 만화를 연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문하생을 두고 분업을 시키고 있었다.

내가 맡은 것은 뎃생이었는데, 처음에는 두 페이지당 1만 8천원을 받았다. 이후 "복서"라는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때가 2000년 2월이었고, 두 페이지에 3만원을 주었다. 장태관씨은 내게 "1년 내 데뷔를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일을 하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제대로 작업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점차 내게 맡기는 작업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연재 종료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자신은 거의 작업에 참여하지 않고, 내가 거의 작업을 떠맡게 되었다.

1주일 단위로 단행본 1권 분량을 마감해야 했고, 연재가 끝나던 달에는 440만원어치 정도 그려낼 정도였었다. 이후 작품인 S신문 연재작 "인간시장"에서는 내게 연필터치뿐 아니라 펜터치까지 맡겨져, 하루에 20시간 이상 노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상습적인 폭력을 당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 외의 문하생들, 그러니까 추가 고소인 5명은 그 때도 이미 상습적인 폭행을 당하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한다. 도망가려고 한 여자 문하생을, 장태관씨의 사주를 받은 격의 다른 문하생이, 감금하고 구타하고 협박하여, 그녀는 창을 뛰어넘어 도망쳤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시간대가 다르고, 속해 있는 팀도 달라서 그정도로 심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복서가 끝나던 2001년 3월까지는 작업료를 제대로 받아왔지만, 인간시장의 작업에 들어간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돈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2001년 6월 경부터 폭력이 시작되었는데, 주로 트집을 잡는 것은 "원고를 날려서 대강 그렸다"는 것이었다. 상습적으로 폭력을 저지르면서 원고를 그려내게 하면서도, 원고의 질이 떨어졌기 때문에 원고료를 지불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2001년 겨울, 인간시장의 원고의 질이 떨어졌기 때문에, 자신의 명예와 신뢰도에도 손상을 입었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 대신 1200만원짜리 선지급 영수증을 쓰라고 강요하였다. 즉, 받지 않은 원고료를 선지급 받았다는 거짓 영수증에 도장과 사인을 하게 된 것이다. 법적인 문제에 무지하고, 눈앞에서 위협하는 폭력에 영수증을 써야 했었다. 이것이 나의 발목을 잡아, 이후 어떤 불합리한 조건에서도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너무 힘이 들어서 도망친 적이 있었는데, 장태관씨가 영수증을 빌미로 협박을 하고, 가족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할 것을 암시하여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자 장태관씨은 영수증으로 협박하기도 하고 갖은 감언이설로 나를 구슬리기도 하였다. "이제까지 키워놓은 것이 너이고, 널 믿어 왔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일을 넘긴 것이다. 복서의 단행본을 만들고, 단행본 고료 5000만원을 너에게 주겠다."라는 말을 하여 마음을 돌리고 다시 펜을 잡았다.

그동안 장태관씨은 세 번 화실을 옮겼다. 처음에는 인천에 있다가 안양, 과천, 파주, 평촌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를 계속하였는데, 나에게 원할한 작업을 위해 35평짜리 아파트를 사라고 권유하였다. 그리고 값이 오르기 직전 나에게서 산 후 몇억의 이득을 보고 아파트를 팔아넘겼다.

그리고, 즉 1000만원만 자신이 살 아파트에 투자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까 언급한 복서의 고료 중 320만원과 그때까지 모았던 돈 600만원을 모두 장태관씨에게 주었는데, 나중에 "네가 제 때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았다"라고 이야기하고 투자비도 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장태관씨은 그때의 아파트로 4000만원의 이득을 남긴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 영수증은 2002년 4월에 쓰게 되었다. 1년 가까이 고료를 받지 못하고 모은 돈도 모두 털려서 카드빚이 상당히 쌓여 고민하고 있던 상태였다. 폭행과 체불상태를 참지 못하고, 장태관씨에게 "영수증은 돈을 벌어서 갚을 테니 지금 그만두게 해달라"라고 이야기했다.

장태관씨가 "인간시장의 단행본 팀을 만들어주겠다, 단행본화 하였을 경우 1000만원의 이득이 남는데 나는 이중 200만원만 받겠으니 나머지는 너희가 가져가라"라고 제안하였다. 여기에 단서를 붙여, "단 돈거래에 대한 증거는 있어야 하니 계액서를 쓰도록 하자"라고 말하여, 그가 시키는 대로 5000만원짜리(K씨 3000만원, 고소인 Y씨 2000만원) 약속어음을 쓰게 되었다.

이 약속어음이라는 것은 사실,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행본 팀을 만들어 준다는 약속을 믿었고, 또 이런 어음을 쓴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악랄하게 이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쓰게 되었다.

하지만 2주 지난 후는 태도가 돌변해서 "그 때(어음 쓸 때)는 일부러 잘 해주는 척 한거다. 도망 나간 네가 너무 괘씸해서 그런 어음을 쓰게 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폭언으로 협박을 하였다. "(그런 어음을 쓰다니)너희 바보냐?"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 폭행과 어음을 빌미로 한 협박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한 달에 130만원을 줄 테니 인간시장을 계속 그려내라. 그 130만원 중 30만원은 밥값을 하고, 나머지는 빚, 즉 약속어음을 갚도록 하여라. 단 원고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원고료는 없다"라고 협박하였다.

2002년 5월 초였다. 장태관씨가 아침에 전화를 해서 그날 신문에 난 인간시장을 칭찬한 것이었다. 너무 잘 그렸다고, 훌륭하다고. 내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자세가 돌변하면서, "그런데 왜 이제까지 그렇게 원고를 날렸나, 용서할 수 없다. 다시 5000만원짜리 선지급 영수증을 쓰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라고 협박, 주민등록등본과 도장을 가지고 만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상태 장태관씨를 만날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그대로 도망쳐 나왔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친구에게 찾아가서 의논을 해 보았더니 고소할 것을 권유하였기에, 2002년 5월 말, 함께 문하생 생활을 한 친구 Y와 장태관씨를 고소하게 되었다.

* 추가 고소인들은 어떻게 고소하게 된 것인가?

장태관씨를 고소한 직후, 그 전에 도망친 문하생들과 연대할 생각으로 카클에서 그들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내었다. 처음에 연락하자 장태관씨의 프락치라고 생각하는지,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공중전화로만 통화하고, 연락처도 밝히지 않으려고 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실명을 밝히고 동참을 요청하자, 추가로 고소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화실에서 도망친 3년전에 이미 고소장을 준비해 놓고 있었고, 당시 폭력으로 부상을 입었을 때 받아놓은 진단서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검찰에 증거자료로 제시해 놓은 상태이다.

* 처음 협박당했을 때 어째서 고소하지 않았는가.

문하생들은 장시간을 혼자서 일하기 때문에 다른 정보를 접할 기회가 적다. 그래서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무지할 뿐 아니라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 영수증을 미끼로 깡패를 동원하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이나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칠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 등도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넓은 인맥을 이용하여 내가 작가로 데뷔할 길을 막아버리겠다는 협박이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 2001년 3월부터 고료를 전혀 받지 못했는데, 당시에는 영수증으로 협박당하지 않았는데도 어째서 그 오랜 기간을 버텼는가.

만화가로서 데뷔하기 위해서이다. 데뷔한다는 희망 하에 그 힘든 일도, 폭력도 참고 견뎌 왔다.

현재 만화시장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어서 만화가가 되는 길이 몹시 좁은데, 그래도 그나마 가장 쉬운 길이라면, 역시 문하생이라고 생각한다. 유명 작가는 작품으로 다져진 인맥이 있기 때문에 그의 문하생은 그만큼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역으로 만화작가에게 한 번 밉보이면, 만화계에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사라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하생들이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조금 전 언급하였듯 장태관씨를 신뢰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료를 제대로 지급하였고, 좋은 말로 신뢰를 쌓아 놓았기 때문에 나역시 그때까지 내가 쌓아온 경력을 함부로 버리고 뛰쳐나갈 수 없었다. 특히 원고 작업을 총괄 하는 팀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재학 프로덕션에서보다 훨씬 주도적인 위치에서 만화를 만들어내었다. 그래서 이재학 프로덕션보다는 만화가에로의 길에 더욱 접근하였다고 생각하고 버텨나갔다.

* 폭력에 노출되면서도 대항하지 못한 것에 대해 좀더 자세한 이유를 듣고 싶다. 장태관씨은 K씨와 나이가 비슷한 것으로 아는데?

장태관씨은 단지 힘만 센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쪽이 돈도 권력도 쥐고 있고, 만화가로의 데뷔의 길까지 쥐고 있다. 불공평한 위치 때문에 대항할 수도 없다. 달변가인데다가 복싱까지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한꺼번에 묘한 굴욕적인 위치에 놓는 것에 능하다.

(이후 K씨는 현장에서 벌어지던 폭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장태관씨의 욕설과 협박의 녹취기록도 들려주었다.)

계약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 장태관씨의 말 한마디에 우리의 작업에 대한 모든 평가가 내려진다. 그가 "(원고를) 날렸다"라고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그래내었어도 날린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날렸기 때문에 폭력을, 원고 체불을 하는 것이 정당화 되는 것이다.

* 자신이 폭력을 당하기 전에도 다른 문하생들은 상습적인 폭행을 당해왔다고 하였는데, 같은 화실에서 지내면서 그 사실을 몰랐는가?

가끔 보기는 하였지만, 내가 직접 당하기 전까지는, 상습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이 달랐고, 나중에 내가 아예 숙식을 화실에서 하게 되었을 때도 방이 달랐기 때문에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팀도 달랐고.

장태관씨은 주로 내가 퇴근 한 후나, 화실의 작업감독 J씨의 자취방에서 폭행을 행사하였다. 나중에 여자 문하생들이 도망간 후, 장태관씨가 나를 불러서, "믿던 아이들이었는데, 일이 힘들다고 나가버렸다. 너무한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장태관씨를 신뢰하였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그 말을 믿고, 그만둔 그쪽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 그렇다면 화실 밖의 친구들과 이 문제에 대해 상담하지도 않았는가?

그다지 하지 않았다. 하루에 스무 시간씩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없었고, 협박이 무섭기도 하였다.

* 장태관씨 화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한국 만화계에서의 관행인가?

그렇지 않다, 아주 특수한 케이스이다. 작가가 문하생에게 고료 지급을 늦추거나 중단하는 일은 많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출판사로부터 고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장태관씨의 경우 그가 복서를 연재해 오던 만화잡지 H가 폐간될 때까지 고료를 받았고, 부동산 투기 등으로 상당한 자산이 있다고 하면서도 문하생들에게 제대로 돈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작업실에서 숙식하는 문하생들에게서 밥값까지 받아 자신이 챙겼다.

그리고 일반 만화작가들은 장태관씨처럼 상습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장태관씨은 자신의 부인이 임신하였을 때 시중을 들게 하고, 아이를 낳을 때, 산후 조리를 할 때의 잡일까지 우리를 시킬 정도로, 마치 우리를 하인처럼 부렸다. 문하생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만화가는 없다.

* 고소한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해 듣고 싶다.

고소는 5월 말에 하였다. 고소를 결심하고 다시 장태관씨의 화실로 돌아가, 짐을 싸면서 우리에게 하는 협박과 욕설을 녹취하였다.

사실은 영수증과 어음 때문에 두렵기도 하였다. 형사고소나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당할 것도 각오하고 나왔다. 앞서 말한 대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아 고소를 하고, 추가 고소인들도 확보하였다.

경찰에서 조사할 때 여러 차례 대질 심문을 하였는데, 장태관씨 외에도 작업 감독 J씨와 장태관씨 화실에 남은 마지막 문하생 Y씨 등이 위증을 하였다. 문하생들이 장태관씨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본 적이 없다고. 계속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던 장태관씨은 마지막 대질 심문 때 자신이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은 인정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수사권에 검찰로 넘어간 상태이다.

* 힘든 점은 없는가.

마지막 대질 심문 때 장태관씨가 폭력 사실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폭행죄는 성립하는데, 이것을 상습 폭행으로 검찰측에 인식시킬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일반 폭행은 벌금형으로 끝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우리들로서는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검찰에 인식시켜야 한다. 언론이나 네티즌들이 힘을 실어 준다면, 제대로 평결이 날 수 있다고 기대하고 보도자료도 돌리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알리고 있는데,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적다. 만화계 사람들이 힘을 실어주었으면 좋겠다.

또, 문하생들은 계약만 하지 않았지 노동자들과 똑같이 작업장에서 노동을 해서 그에 따른 임금을 지급받는다.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피해를 보상받고자 해도 문하생은커녕 만화가도 노조가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가 없다. 작업장 내 폭행일 경우 일반 폭행과는 다르게 가중처벌이 매겨지기 때문에, 노동부에 고소하였지만 노동부 근로 감독관은 판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하셨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다. 우리는 변호사가 없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친구에게서 모든 조언을 듣고 그것에 따른 대처방안을 정리하고 있다.

* 고소가 마무리 된 후의 계획은?

다시 만화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까지 해온 것이 만화이고, 작가의 꿈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조용해지면 다시 만화를 그릴 생각이다.

3시간동안 진행된 K씨와의 인터뷰는 인터뷰 장소였던 음식점이 영업을 마치면서 끝이 났다.

고소인들이 처음 폭력과 협박을 당했을 때 당장 고소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지 법적인 지식의 부재나 개인적인 우유부단함 때문만은 아니다. 스승과 제자라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 하에서 대학원생이 지도 교수에 의해 노동 착취나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대학에서 비일비재한 것처럼, 무명의 문하생이 자신의 데뷔의 등용문 열쇠를 쥐고 있는 만화가에게 정당한 대우를 요구할 수는 없다. 또한 만화 공정의 특성상, 고립되어 작업하게 되기 때문에 주변과의 커뮤니케이션, 심지어 한 화실에서 일하는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마저 차단되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의 전말이 오프라인 신문인 '문화연대'(전문)에 실린 후, 피고인 장태관씨은 반론을 투고해 왔다. 주 내용은 "폭력도 협박도 없었으며, 믿고 있던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여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였다.

두고보자는 검사가 되어 판결을 내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화계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그것이 작업 환경이던, 만화가와 문하생의 권력 관계가 되었던 간에)가 이 사건이 곪고 곪아 지금 와서 터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확실한 이상, 충분한 공론화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K씨와의 인터뷰도 그 일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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