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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슈 장' - 30대, 성숙해지기
이 만화 봤어? 06/12/28 07:07 capcold
원래 남자라는 존재는, 성숙이 좀 늦어서 손해를 보곤 한다. 여자들보다 사춘기가 몇 년씩 늦게 오는 탓에 또래 여자들에게 업신여김 당하기 일쑤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남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로 인하여 허세를 부리며 애써 어른인 척까지 하기란 정말 힘들다. 그러다가 서른 즈음이 되면, 도대체 인생의 목표가 뭐였는지,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제대로 정리해본 적도 없이 세상 틈바구니에서 수년 정도 끌려 다니다가 이제 그것마저 익숙해져서 다시 스스로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상이 사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약간의 소중한 물건들, 속 썩이는 친구, 일 관련으로 맺어졌으나 좀 더 개인적이 되어버린 다소 귀찮은 인간관계,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우연하고도 어색한 대면, 시끄러운 이웃 같은 귀찮은 일들... 게다가 아직 미혼이라면,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압박도 슬슬 들어온다. 누군가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자신에게만큼은 인생 그 자체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무슈 장』시리즈 (뒤피 & 베베리안 / 세미콜론 / 3권 발매중)는 파리에 사는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한 독신 남자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 남자, 소설도 쓰고, 번역일도 좀 하는 그리 잘나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명도 아닌 작가다. 즉 화려한 프로도, 궁상을 떠는 가난한 예술가도 아닌 셈이다. 그다지 쿨한 독신주의자는 아니고 사랑을 갈구하며 스스로를 자학하는 낭만가도 아닌 적당한 수준의 사고방식으로 산다. 다소 구식취향이라서 빌리 할리데이의 음반을 모으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음악 수집가도 아니다. 구차하거나 비루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어중간한 인생인 것이다. 그런데 직업 자체가 조직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그 어중간함을 극복해볼까 하는 마음 역시 주변의 외압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의지에서 나와 주어야 한다. 하기야 ‘장’이라는 이름 자체가 한국으로 따지자면 철수 정도에 해당하는 평범무쌍한 이름일 만큼, 평범한 어중간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근간이다. 벌어지는 사건들 역시 그냥 평범한 것들로, 성질 고약한 아파트 관리인 아주머니와 싸운다든지, 만성적인 불면증에 걸린다든지, 빈대 기질 다분한 친구가 애를 맡겨놓는다든지, 헤어진 여자친구와 다시 만난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작가들의 실력은 무척 뛰어난 편이라서 그 평범한 사건 들 속에 담기는 다양한 인생의 아이러니들이 세심하게 배치되고, 덕분에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에피소드들이 되어주곤 한다. 장을 보러 갔다가 지갑을 잊어버리고 상품 계산이 잘못되어 음식이 너무 많아져서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는 소소하면서도 낙천적인 진행은 정말 작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일상을 사랑해본 경험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경지의 짜임새다.

그런데 단순히 평범하다고 해서 독자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작품 속 공감의 코드라는 것은 스스로가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능이 있어야만 호소력이 생기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사가 아마도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있는 듯 한 (즉 보도자료에서 대단히 강조를 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전문직 여성들의 독립적 생활에 대한 동경 속에서 젊은 성인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에 성공한 것과는 달리, 『무슈 장』이 지니는 공감의 코드는 바로 ‘성숙의 속도’다. 작품의 주인공 ‘장’은 특별히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 같은 존재가 아니라, 주변의 설레발이 없을 때 평범한 남자가 성숙해질 수 있는 보통의 속도로 성숙해져가는 존재일 뿐이다. 너무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마냥 느긋하지도 않게 말이다. 느리지만 자신의 페이스로 성숙해지고 있는 ‘장’씨의 생활을 보며, 독자들은 사회적 압박과 자신의 성숙 사이의 괴리 사이에서 자신의 내면이 지니는 진짜 성장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셈이다.

열린 선 위주의 둥근 그림체, 부담스럽지 않은 색상, 남용되지 않는 대사는 작품 내용의 매력과 만화적 표현의 우수함 사이에 좋은 조화를 이루게 한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예술적 자의식 가득한 표현으로 가득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었던 여느 유럽 예술 지향 만화들이나 장르에 대한 거부감을 주기 십상인 딱딱한 유럽식 극화체와 달리,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는 편한 그림체를 구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장 자크 쌍페의 작품들에서 검증되었다시피, 도시 공간을 차가운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라 도회적이면서도 어딘가 여유로운 매력이 있는 사람 사는 공간으로 묘사하는 접근 역시 이러한 필치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나곤 한다. 형식이 주가 되는 작품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무리겠지만, 형식과 내용의 이러한 조화가 있기에 지금의 매력을 지니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매력을 잘 살려주기 위해서 국내판의 출판 품질 역시 선도 색상도 뭉개지지 않은 성의가 돋보이는 편이다. 나아가 번역도 다소의 번역체가 눈에 들어오기는 해도, 크게 독서에 방해되지 않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주석들이 돋보이는 성의 있는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한 번에 책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현재까지 한국에 출판된 분량이 프랑스에서 나온 것은 약 10여년에 걸쳐서 천천히 진행되었다. 한마디로, 독자들 역시 장과 같은 속도로 성숙해간 셈이다. 한꺼번에 봐도 성숙의 속도가 아주 느긋한 정도인데,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면 오죽할까. 사랑을 고민하고, 옛 애인과 재결합하기도 하고, 애도 낳고. 그 모든 과정이 천천히, 실시간으로 독자의 성숙 속도와 발맞추어 진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데없이 커다란 깨달음이 생기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젊은 방황과 지금의 무력함이 대비되는 것도 아니다. 즉 이 작품은 현재 자신으로 이어져오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식의 성장물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현재진행형으로 조금씩 성숙해지는 식이다. 커다란 스케일의 세상사들을 밀린 숙제 풀듯이 압축해서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것이 즐거운 작품들도 물론 많지만, 가끔은 이렇게 딱 같은 속도의 걸음걸이를 걸어주는 작품을 읽는 것이 무척 즐겁다. 저 위 어딘가에 놓여있을 위대한 걸작이 반열이 아닌, 날마다 한 번씩 쳐다보면서 미소를 한번 지어볼 수 있는 수작, 바로 욕실에 걸어놓은 거울 같은 존재로 말이다. 일상 속, 천천히 진행되는 성숙의 과정은 소중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즐겁다.


(출판 전문저널 '기획회의' 게재)

무슈 장 1
필립 뒤피 외 지음, 황혜영 옮김/세미콜론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184 (copy)
PATTERN DESIGN BY STORE NORSKE DESIGN KOMPAGNI
SKIN BY WHANGUN
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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