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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소년탐구생활' - 그 소년들은 지금
이 만화 봤어? 07/03/01 04:01 capcold
자신이 몸담았던 과거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과거 아름다웠던 자기 생활을 기억하며 재충전을 하는 쪽이든, 우울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그래도 지금은 더 나아졌다고 자기위안을 하는 쪽이든 마찬가지로 바로 ‘현재의 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보통은 그 때의 나, 그 때 내가 살았던 시절은 지금보다 덜 애매했다. 실제로 더 어린 나이, 특히 소년소녀 시절 정도에는 삶의 폭이 더 좁고 단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온 경험이기에 전지적 시점에서 반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들을 지금은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지금의 나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소년 시절의 경험담을 담아내는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작품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 시대의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사한 경험을 같이 투사해가며 과거의 자기 모습을 탐구하고,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도를 걸어가는 회상체의 작품이라면 무릇 ‘생활’에 대한 ‘탐구’여야 한다.

『소년탐구생활』(김홍모 / 길찾기)은 80년대 초중반을 무대로 하는 ‘소년’들의 생활에 대한 탐구다. 즉 한 시대를 뚫고 지나가는 성장담도, 대단한 위기와 모험으로 가득한 특이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어쩌다보니 그 시대에 살고 나름대로 생활하며 조금씩 시간의 속도만큼만 성장해간 소년, 일상의 생활 속에서 대단한 위기와 모험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하루하루를 보낸 소년의 이야기다. 특이한 환경에 처한 것도 아니라, 적당히 도시이면서도 적당히 자연이 있는, 얼음 깨고 놀면서도 동시에 TV나 극장 만화영화도 보면서 살아온 소년생활이다. 빈민의 아들도 갑부의 아들도 아니며, 열혈 민주 투사 가족환경도 그렇다고 전두환 만세를 부르짖는 세뇌된 바보 가족도 아닌 평범한 환경의 여느 소년이다. 그 평범한 소년은 당시 만화만으로 전화번호부 두께를 가득 채운 한국 최초의 만화잡지 ‘보물섬’을 또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아꼈고, 밤서리를 하고, 얼음 깨서 강건너기 놀이를 하며, 평화의 댐 운동에 뭔가 가슴이 뭉클했고, 태권브이 얼굴을 그리면서 흐뭇해했다. 그 생활 속에는 즐거움도 치사함도 우매함도 의외의 현명함도 세상사에 대한 작은 교훈도 모두 들어있었다. 그 것을 회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때는 다 얻지 못한 감동과 교훈을 이제라도 느껴보는 것 만으로도 현재의 나는 더욱 풍족해진다.

소년들은 공부의 압박이야 어떻든 간에, 주로 놀이와 친했다. 하지만 시대로부터 소외당하고 외로워서 도피하듯 대중문화와 놀이에 매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바로 소년들이 자신들의 세상 속에서 소통하는 방식이고, 성장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작품의 세대적 공감대라는 것은 주로 소재를 통해서 구심점을 이루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80년대 소년생활의 놀이 아이템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보물섬, 똘이장군, 태권브이, 밤서리, 강건너기... 하지만 이 작품의 의도는 80년대 소년들은 ‘보물섬’을 즐겼다는 그 자체를 민속역사 기록 마냥 펼치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핵심은 바로 그 보물섬을 보기 위해서, 이빨 빠지지 않고 전권을 구비해놓고 흡족해하기 위하여 때로는 치사해지기도 하고 친구를 등쳐먹기도 하는 그 소년들의 생활이다. 똘이장군과 평화의 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통해서 영향을 받는 소년들, 그리고 그런 소년스러운 마음들이 이용당하곤 했던 한 시대의 희극적 풍경 속에서 자라온 우리들 자신에 대한 반추가 핵심이다. 성인이 되어 돌아온 고향의 한탄강이 더 이상 얼어붙지 않음에 아쉬워하는 것은 단순히 뻔한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자연보호 캠페인이 아니다. 얼음을 타고 커다란 강을 여행한 소년들의 작은 모험의 시절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상념,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당시의 마음을 더욱 소중하게 간직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마음의 표시가 같이 담겨있다. 밤 서리를 하러 왔다가 주인 아저씨에게 걸린 후 노동을 하고 그 댓가로 밤을 한 아름 얻어온 일화 역시,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얻었던 어떤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에 그 교훈을 깨달았던 것이 아니었어도 상관없다. 지금 이 작품을 읽고 그때 그 교훈을 사실은 얻었던 것이구나, 라고 반추하여 현재의 내가 깨달음을 얻으면 된다. 세대적 동질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모두 그런 경험이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그 세대의 소년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삶을 즐기던 방식,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나라는 그 공감이 중요한 것이다.

한 시대의 풍광에 대한 디테일은 이런 공감을 위한 강력한 도구인데,『소년탐구생활』의 80년대 소년 생활에 대한 풍부한 디테일과 정감어린 시각연출은 이런 목표들을 충실히 달성시켜주고 있다. 특히 동양화풍의 붓선을 활용하되 지나치게 민속화 느낌으로 빠지지 않은 화풍의 조율은 이 모든 것을 한결 부드럽게 묶어주고 있다. 작가의 필치로 재구성된 보물섬 표지 같은 추억 소품에 대한 세부묘사부터 아련한 기억속의 추상적 감정으로 그려진 듯한 느낌의 멋드러진 한탄강 풍경까지 (혹은 그 동네에 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당시 자신들의 동네 근처에 있었을 개울이나 호수, 하다못해 한강이라도 떠올랐을 것이다). 사라진 자기 만화책을 찾기 위한 온갖 의심과 모략(?), 그리고 결국 타협까지 이르는 지극히 현실적인 에피소드에서, 눈 길 위를 걸으며 발자국으로 당시의 그 ‘소년’이 생각하기에 가장 멋진 영웅의 그림을 바닥에 거대하게 그려 넣는 꿈같이 감상적인 마무리까지. 그렇게, 소년들의 생활은 현실적이자 감상적이었다.

에피소드들 사이에 짜임새의 기복이 다소 있다거나, 좀 더 파고 들어갔으면 재미있었을 몇몇 주변 인물들에게 별도의 관심이 할애되지 않고 있다거나 하는 등 몇 가지 아쉬움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소년탐구생활』은 오랜만에 만난, 우울한 성장드라마도 격정의 시대극도 아니라 담백하게 한 세대의 소년 생활 그 자체를 탐구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귀중한 작품이다. 80년대 초반에 소년시절을 보낸 지금의 30대들이 가장 추천 대상이지만, 그보다 최소한 십년 터울이라도 공감에 지장 없을 것이다. 소년 생활의 본질은 꽤 보편적이니까.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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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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