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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프랭크 밀러 만화의 세계
만화는 흐른다 07/04/05 08:37 capcold
죄악의 도시에서 거친 삶을 불사르는 마초들의 이야기에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가. 300명 병사로 백만대군에 맞서는 거침없는 그리스 세계 전사의 열혈을 보고 싶은가. 상대가 슈퍼맨이라도 맞짱을 뜨고 마는 거친 중년 배트맨이 궁금한가. 프랭크 밀러 만화의 하드보일드 세계에 환영한다. 소재나 줄거리의 차용이 아니라 전례 없이 만화의 화면을 하나하나 그대로 차용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씬시티』나 『300』의 원작으로서가 아니라, 그 감독들마저도 굳건한 팬으로 누리고 있는 강렬한 작품으로서의 프랭크 밀러 만화들을 바라볼 때다.

키워드 1. 하드보일드

하드보일드는 기본적으로 폭력, 섹스에 대한 탐닉으로 무장된 범죄를 중심소재로 다루는 장르다. 그런데 범죄에 대한 단순한 공포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나름의 정의를 관철시키며 살아가는 우직한 밑바닥 인생들의 폼 나는 모습들을 다룬다. 세상은 험하고, 정의의 주인공도 나쁜 놈들 마냥 거칠기는 매한가지다. 법은 멀고 총은 가깝다. 아무리 리얼한 배경을 무대로 표방하더라도, 장르 자체가 범죄를 소재로 하고 힘을 주원료로 삼는 ‘환타지’다.

프랭크 밀러의 만화들은 어느 소재를 다루든 간에 하드보일드를 향해서 수렴된다. 그를 미국 만화계에서 처음 주목받도록 했던 것은 데어데블 시리즈의 재해석이었다. 밀러는 숙적 슈퍼악당들과 싸우던 세계관을 완전히 하드보일드 풍으로 바꾸어, 킹핀 휘하의 조직 범죄와 몸으로 부딪히며 싸우는 히어로의 이야기로 바꿨다. 필름 느와르와 일본 사극만화의 영향이 고르게 섞여들어간 출세작 『로닌』 역시 느와르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미래 세계에 낭인 무사가 등장하여 벌이는 모험담이다. 프랭크 밀러라는 이름을 만화사에 길이 남게 한 걸작 『어둠의 기사의 귀환』은 또 어떤가. 은퇴한 중년 브루스 웨인이, 자기 터전을 지키기 위해 다시 배트맨으로 복귀하는 이 작품에서 고담시는 하드보일드 도시다. 브루스 웨인 역시 늘씬한 백만장자가 아니라, 험한 성격의 중년이다.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하드보일드의 정수 『씬시티』는 물론, 스파르타를 무대로 하는 『300』마저도 배경만 과거일 뿐 기본 뼈대는 하드보일드다. 거친 세상을 향한 냉소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시적 독백은 기본.

키워드2. 자경단

하드보일드가 프랭크 밀러 만화의 장르적 핵심이라면, 세계관 측면의 핵심은 바로 ‘자경단’이다. 즉 자기 터전은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지켜줄 수 없고, 스스로 나서서 지켜야한다는 정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고집스럽고 강한 성격은 물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해야 한다. 자기 힘으로 자기 터전을 지키는 행위가 밀러의 하드보일드 세계에서 최고의 미덕이다. 조직화된 범죄, 관료 기관의 부패, 즉 모든 측면에서 사면초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단련한 압도적인 힘으로 분연히 싸워나간다. 타협 따위는 없다. 그렇기에 밀러의 배트맨은 연방정부의 하수인 슈퍼맨의 회유를 거부하고 스스로 청년들을 긁어모아 자경단을 조직한다. 씬시티 홍등가의 여성들은 조직화해서 침입자를 힘으로 물리친다. 그들의 일원인 여자 닌자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단합된 팀웍의 자경단 정신이 바로 스스로를 지켜준다. 그렇다면 자경단의 이상향, 근원을 찾는다면? 고대 그리스 세계의 한 도시국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온 시민을 태어나자마자 전사로 단련시키는 곳, 바로 스파르타다. 『300』에서 묘사되는 스파르타는 자경단 훈련소이며, 300명의 전사들은 물론 스파르타 시민 전원이 대원들이다. 테르모필레 전투가 지니는 동서 문명 개념은 밀러에게 있어서 솔직히 안중에도 없다. 핵심은 바로 자기 동네를 지킨다는 숭고한 목표를 위해서 목숨 걸고 분연히 싸운 전사들, 그리고 사회 전체가 그들을 뒷받침해주는 굳건한 자경단 육성 체제로 되어있는 스파르타에 대한 경외심이다.

키워드 3. 거칠게, 까칠하게

프랭크 밀러 만화의 주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거칠다. 남녀노소 불문으로 터프함이 전투화 밑창 급이다. 총 한번 제대로 못잡는 캐릭터는 주연은 물론 왠만한 조연을 맡지도 못할 듯한 분위기다. 거친 하드보일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살아남아 왔다면 당연한 결과로 보이는 성격이다. 주연의 경우는 그 거친 성격 속에 한 가닥 순수함이 있어서 순정을 위해 총알 폭풍 속으로 기꺼이 뛰어 들어가고, 악역이나 조연의 경우는 거친 성격 그 자체가 전부이기에 폭력과 광기와 파멸을 불러들인다.

성격은 줄거리를 통해서 묘사되기도 하지만, 프랭크 밀러의 거친 펜선 속에서 확연하게 눈으로 보이게 된다. 거칠고 각진 직선으로 묘사되는 캐릭터들의 생김새는 결연하고 네모난 눈빛으로 세상을 쏘아본다. ‘로닌’이나 ‘배트맨’에서 뚜렷하게 두드러진 화풍은, 아예 회색조 없는 흑백의 세계를 창조한 ‘씬시티’ 연작에서 확실한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정점에 이르게 한 것은 캐릭터의 묘사에 장엄함까지 부여한 『300』이다.

키워드 4. 힘의 화면연출

거친 캐릭터들의 힘이 넘치는 모험담을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것은, 설정이나 화풍만으로는 부족하다. 만화 자체의 화면연출에서 힘이 넘치는 식이 아니면 곤란하다. 격렬하고 힘이 넘치는 동작, 거대하고 위협적인 세계 속에서 굳건하게 자기 고집을 관철시키는 모습에 대한 시각적 형상화가 필요하다. 잭 커비가 완성시킨 미국식 슈퍼히어로물 특유의 과장된 몸 액션연출을 기본으로, 프랭크 밀러는 세상과 부딪히는 강렬함을 더욱 보충해서 그만의 시각연출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씬시티』 연작에서 자주 구사하는 부감샷이나 수평/수직적으로 힘이 작용하는 구도의 표현, 『300』에서 선보이는 정렬된 윤곽선 위주의 안정적인 전투 준비자세 묘사, 흐릿한 악역들의 선과 굳건한 주인공들이 선의 대비 등, 밀러의 주요 작품들은 힘이 넘치는 미장센 연출을 위한 하나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로드리게스나 스나이더 같은 젊고 의욕 있는 영화감독들이 장면 하나하나를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경외를 표시하지 않던가). 이야기 자체의 줄거리만 되뇌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어떻게 멋들어지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즐길 줄 아는 진짜배기 만화독자라면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실력이다.

동전의 양면

어찌 보면, 프랭크 밀러를 규정하는 여러 ‘남성적’ 매력들은 80년대의 이현세 만화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프랭크 밀러의 장점이자, 과도할 경우 언제라도 단점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하드보일드는 지나치면 자기패러디가 되고, 자경단은 ‘자뻑’ 파시즘과 종이 한 장 차이다. 거친 캐릭터와 화면연출은 과도할 경우 스토리에 방해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에 발표한 배트맨 속편 『다크 나이트의 역습』은 과잉으로 인한 재앙에 가까웠다. 컬러링과 화면연출은 혼란스럽고, 스토리는 오리무중이며, 캐릭터들은 자기과신에 빠져서 평단을 좌절로 몰아넣었다. 짐 리가 작화를 맡고 있는 현재 연재작 『올스타: 배트맨과 로빈』도 어디로 튈지 모르고, 작년에는 알카에다를 쳐부수는 배트맨을 그리고 있다는 선언까지 하는 등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프랭크 밀러가 영화에서의 성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식의 평가도 있지만, 영화 쪽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재충전하여 다시 팬들을 감동시킬 명작 만화 작품을 내놓기를 바라는 것이 더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미 많은 명작들이 나와 있고, 그것들을 즐기면서 느긋하게 기다려보아도 될테니까 말이다.

궁금하면 더 찾아가볼 곳:
프랭크 밀러 작품 연보 : http://en.wikipedia.org/wiki/Frank_Miller
세미콜론 출판사 홈페이지 : http://cafe.naver.com/graphicnovel.cafe


!@#... 씨네21의 만화잡지 '팝툰'에 실린 글 (여차저차, 고정 기고하게 될 듯). 궁극의 복근영화 '300'의 화제속 개봉도 있고 해서 한창 부각되는 프랭크 밀러 작품세계 읽기. 분량상 작품연보라든지 세부 설명은 생략, 핵심 키워드만 간추림.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197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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