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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이퍼니레이디'/김지윤 - 로맨스 환타지, 현실에 상륙하다
여성만화프로젝트 - NO.03 05/02/05 11:44 난나
[마이퍼니레이디] (완) / 김지윤
단행본 : 도서출판 대원, 1996
[마이퍼니베이비] (완) / 김지윤
단행본 : 도서출판 대원, 1998



'순정만화다움'의 정체는 아마도 원수연 표의 일러스트로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바비인형과 같은 여성 캐릭터와 이에 못지 않게 날씬하게 잘 차려입은 그녀의 연인. 이들을 감싸는 러브러브 모드♡는 꽃가라가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맑고 투명하며 편안하기까지 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다각 관계의 연애소동이 한편의 일방적인 승리로 귀결되는 일련의 연애과정을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사랑받고 싶다"는 소녀들의 들뜬 욕망을 구성하는 밑그림들이기도 한, 그,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달라는 신호에 장미와 샴페인의 달콤한 선물 공세로 응답되어야 하는 장르가 순정만화라는 건 지나친 비유일까. 장미꽃 위에서 춤추면서 가시를 잊지 말자는 쓴 소리가 실리는 작품들이 순정만화의 주류가 아닌 것은 분명하겠다.

인간보다는 인형을 그리는 순정만화의 미학적인 특성 안에서 비현실적인 로맨스와 인간관계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방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학생의 눈높이로 칠해진 2차원적인 평면 세계로는 환상 역시 얄팍하기 마련이며 심지어는 미학적인 발전마저도 보장될 수 없다. 로맨스 환타지라는 좁은 울타리를 딛고 일어서 여성만화라는 보다 넓은 지평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의미는 그래서 더 각별하달 수 있다. 그러나 로맨스 환타지를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으면서 그에 현실적인 깊이를 부여하는 개량적인 순정만화가 드물다는 사실부터 유감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여성만화는 곧 순정만화라는 현재적인 구도 안에서 힘의 평형을 이루는 중간 지대는 부재하고 있다. 이는 길게 보아 장르 전반의 성숙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순정만화적인 관습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작품으로 출발해 여성(소녀가 아닌!)의 현실과 욕망을 탁월하게 그려낸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혜연이나 김지윤은 그런 의미에서 되새겨 볼만한 작가들. 한혜연이 다소 폐쇄적인 시선으로 일상에 부유하는 여성의 독특한 내면을 섬세하게 사건화한 경우라면 김지윤은 로맨스 환타지가 현실의 질서 안에 편입되는 미묘한 순간을 그리는 작가이다. 만화가에서 이제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한혜연에 비해, 상업적인 인상이 강한 김지윤의 스타일은 담론적인 관심 밖에 위치해 온 편이다. 그러나 1989년 데뷔 이후 지금껏 발랄하면서도 세련된 작풍과 서정적인 내용으로 꾸준한 인기를 끌어온 그녀의 만화들은 로맨스 환타지에 침입한 생생한 현장성을 포착했다는 장점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특히 [마이 퍼니 레이디](도서출판 대원, 1996)와 이의 속편격인 [마이 퍼니 베이비](도서출판 대원, 1998)는 '통순정'으로서의 전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할 줄 아는 김지윤의 솜씨를 증명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시간차를 두고 나온 엄연히 다른 시리즈이지만 신혼 부부가 결혼 구조 안에 재편되면서 빚어내는 소동을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에서 [마이 퍼니 레이디와 베이비]쯤으로 통합될 만 하다.

[마이 퍼니 레이디]는 '김수진'과 '김종민'이라는 두 캐릭터가 캠퍼스의 낭만을 결혼이라는 현실로 무리하게 던져넣는 에피소드로 출발한다. 해피'엔딩'의 지점에서 수진과 종민 커플이 만나게 되는 로맨스의 결과물이란 섹스의 보장과 함께 시댁이라는 이름의, 새롭게 구성된 가족 관계와 관련된 소동들이다. 결혼이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이라! 사건의 밀도나 긴장감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평범한 연애와 결혼을 경험하기 어려운 일반 여성 만화가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소재다. 사실 김지윤은 김동화 문하생이라는 정통적인 수련 과정을 거쳤으면서도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성장과정을 거쳐 결혼과 출산에 이른 작가라는 점에서 어느정도 튀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데뷔작 [프로포즈]부터 이십대 초중반 여성들의 평균치의 학창생활이나 연애사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을 그려왔었다. 이들 작품에서는 이른 나이에 작가 생활을 시작해 평범한 청춘을 차압당한 다른 작가들이 놓쳤던 일상적 가치의 복원이 이루어진다.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나 의상뿐 아니라 대사와 사건 구성, 그리고 로맨스가 진행되는 장소에까지 그녀의 모던한 감각은 아낌없이 발휘되었다. 결혼 후의 공백을 깨고 선보인 [마이 퍼니 레이디] 역시 만화가라는 특수한 환경보다는 결혼 후의 생활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일반적인 생활 풍경들이 탁월하게 만화화된 작품이다.


[마이 퍼니 레이디]가 마냥 산뜻하지만은 않은 시댁 살이를 그래도 명랑하게 다루고 있다면, [마이퍼니 베이비]는 기혼남녀의 세상 살이를 무겁게 실감할 수 밖에 없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눈앞이 어질어질', '세상이 시커멓게 죽어보이는' 임신 선고. 가늘가늘 마냥 곱기만 하던 천하의 김수진도 쌍둥이의 출산으로 고단한 가사와 육아의 무게에 신음하게 된 것이다. 남편과의 섹스를 마다하고 그저 아기들의 구토나 똥을 치우느라 시달리는 로맨스의 주인공이니 독자에게는 생경하기만 하다. 수진의 미션은 공주가 아닌 어머니로서 자신을 완성하기다. 속도감 있게 연쇄되는 '김수진 어머니로 거듭나기' 에피소드는 무난하며 그만큼 경쾌하다.

위대한 모성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수진이 졸업 후 어렵게 취직한 잡지사는 두번째 임신을 계기로 '가장 소중한 일'이라면 사회적 성공보다 '내 아이들과 놀아주고 적절한 운동과 여가시간을 보내고 가족과 친구들과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3권, 76p)이라는 깨달음을 안겨줄 뿐이란다. 직장일과 CPA 준비를 병행하는 종민의 치열함과 대비되는 안주가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갓난 아이를 안고 기뻐하는 수진과 가족들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마지막 페이지는 해피홈의 신화 하나를 완성한다. 김지윤 특유의, 단순한 사건 전개와 시원시원한 그림체로 쉽게 읽힌다는 장점은, 결혼과 여성과의 관계를 고민하지 않게 만든다. 육아와 일을 모두 끌어안고 쩔쩔매는 아줌마들의 지리멸렬한 대오에서 가뿐히 탈출하는 수진은 로맨스 환타지의 여전한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순정만화 속 여성 캐릭터를 부분적이나마 새롭게 바라보고 그리려던 그녀의 시도가 안이한 추락으로만 머문 것일까. 모성신화의 재생산에나 일조하고 말았다는 비판 속에 방치되어야 하는 것인가. 적어도 전형적인 기호로 그려진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게 이런 건지 몰랐어. 난 그저... 귀여운 아기를 안고 따사로운 봄볕 사이로 산책하는 부부의 행복한 광경만 상상했었"(1권, 76p)다고 한탄하는 장면의 전복성은 무시할 만 한 것이 아니다. 결혼의 쓴 맛에 대해 설득력을 갖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견고한 장르의 법칙을 재질서화하려는 작은 움직임이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 살펴볼만 한 것이다.

김지윤의 대표작은 혹자에 따라 [사이드 스토리]나 [내 그리운 동화]와 같이 청춘의 낭만을 칭송하고 있는 작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순정만화의 외연을 확장한 만화로서 [마이 퍼니 레이디]와 [...베이비] 시리즈를 우선 주목해 보자. 이들 만화야 말로 [두 번째 프로포즈]나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같은 쓸만한 TV 드라마처럼 또래 여성의 욕망과 현실을 거부감 없이 변주해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는 여성 만화가로서 그녀의 후속 작품이 변변치 않은 안타까운 상황에서 힘을 보태기 위해서라도 독자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여성만화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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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목록

[프로포즈], 1989
[Side Stoy], 1990
[남자의 방], 1990
[축제의 날에], 1992
[햇빛속으로], 1994
[내일], 1995
[에덴의 남쪽], 1995
[My funny lady], 1996
[Comic Club], 1996
[Happy bride], 1997
[My funny baby], 1998
[Bueaty space], 2000

○ 작가공식홈페이지

http://eanuya.hihome.com/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21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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