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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나난 키리코-"딸기쇼트케이크" : 스타일,스타일,스타일,스타일의 힘
여성만화프로젝트 - NO.03 04/10/20 12:19 깜악귀
나나난 키리코는 93년 일본의 인디잡지 [가로]의 단편으로부터 시작해 한 두 권짜리 장편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1년 [호박과 마요네즈]의 해적판이 처음이었다. 이 작품으로 주목을 끈 나나난은 영화로도 제작된 [BLUE]와 단편들 등 거의 전작들이 한국에 소개되며 '만화를 찾아서 보는' 소수의 독자들에게 강한 지명도를 얻었다. 일본에서는 2001년에 발간되고 한국에는 2003년에 소개된 최근작 [딸기쇼트케이크]는 나나난 월드의 종합판으로서, 높은 완성도로서 소수 매니아의 지지를 확신으로 바꾸었다.

나나난 월드에서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남자에 의해 상처받은 여자'이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서, 그에 대한 반복과 변주에 가깝다. 단편 단행본 [어느 여자아이의 사랑]에 수록된 [아픈 사랑 IV]은 장편 [호박과 마요네즈]의 이전 이야기로서 같은 인물(하기오, 미호)을 공유하고 있으면서 [딸기쇼트케이크]의 거식증 모티브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딸기쇼트케이크]의 거식증에 걸린 토우코는 미호와 겹쳐진다. 같은 단행본의 단편 [스즈끼씨]는 [딸기쇼트케이크]의 스즈키와 동일한 인물이다. 역시 같은 단행본,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밤의 한조각]의 인물은 [호박과 마요네즈]의 인물(세이, 미호)을 연상케 하는데, 둘 사이 대화의 매개로서 고양이가 공통적으로 등장하여 마치 [호박과 마요네즈]의 후일담인 듯 여겨진다.



비교적 명백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나나난의 단편들은 인물의 이름이나 생김새를 바꾸거나, 상황설정을 조금 바꾸거나 하면 하나의 장편에서 부분만을 뜯어낸 서로 다른 장면과 같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장편들 간에는 이야기 하나의 서로 다른 변주라는 관계가 성립한다. 예를 들어 장편 [BLUE]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키리시마는 [딸기쇼트케이크]에서 둘로 갈라져 '시골에서 상경한 치히로'가 되고,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인 토우코'가 된다. 나나난이 반복하는 이야기는 단 하나이며, 단편들은 그것의 파편이고 장편들은 그것의 재배열인 것이다.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는 나나난이랄까.

나나난이 변주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작가의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쟁이니까) 적어도 일관된 경험의 요소들을 끄집어낼 순 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 고교를 마치고 시골에서 전문대를 다니기 위해 상경한 여자 - 첫 섹스를 통해 느낀 삶의 비루함과 성숙의 자각 - 자신에게 차가운 남자에게 매달리다 버려진 상처 - 남자를 위해 돈을 벌어다준 경험 - 성매매의 경험 - 동년배 여성과의 애증과 유대감 - 룸메이트 여성과의 생활

요약하자면 중심이 되는 것은 과거에 사랑했다가 상처만을 받고 물러나게 된 남자와의 경험과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동년배 룸메이트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 요소들을 국지화하는 것이 그녀의 단편이라면 이 이야기를 종합해서 한 두 인물의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장편이 된다.

상처는 그 자체로 반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머리 속에서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되풀이 된다. 악몽을 통해서 거듭 나타난다. 상처를 입은 사람의 이마에 낙인이라도 찍힌 듯, 그의 주변에서만 비슷한 사건들이 연거푸 일어나기도 한다. 상처입은 사람 자신이 비슷한 사건들을 불러들이는 듯한 태돋?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처는 중독되는 종류의 것이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되풀이될 경우 체념으로 완성된다. 동시에 상처의 반복은 그 상처를 되풀이 겪음으로서 그에 대처하는 힘을 가지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것은 불합리한 방식으로 자신을 가해한 세계에 대한 항변이고, 동시에 그것을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자기 스스로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은 그것을 다루어나가는 방식 중 하나이다. 나나난의 작품 사이에서 일어나는 반복은, 상처를 해명하고 대처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에너지의 표현이다. 나나난이 반복을 통해서 작품을 형상화하는 힘을 늘려 나가는 과정은 그 작품 안의 인물이 자신의 상처를 다루어내는 방법을 깨닫는 것과 동일하다. 결국 그것은 상처에 대한 반복이며 하나의 상처의 경험을 어떻게 하면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전달할 것이냐에 대한 집착이다. 또한 그를 통한 자학과 회복의 몸짓이다.


나나난 월드의 남자와 여자 / 여자와 여자

상처를 마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나난의 작품에서 상처를 준 남자의 얼굴은 대부분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데, 그것은 그녀가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 캐릭터 얼굴의 연출 각도를 보라. 반면 여성캐릭터의 표정은 매우 섬세하게 포착된다. 특히 여주인공이 전에 사귀었다가 비참하게 배제당한 남자의 경우, 거의 예외없이 "그런 인물이 있다"는 정도의 표현으로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하기오의 얼굴은 한번도 정면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딸기쇼트케이크]에서는 아예 "니 전 남자친구 결혼한다더라"라는 식의 대사만이 등장할 뿐이다. [BLUE]에서 토오노가 사귀는 유부남의 얼굴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주1)

그녀의 만화에서 극단적으로 매달리고 매달며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남녀관계에서이다. 나나난은 대체적으로, 상처를 현재형으로 묘사할 때는 파편적인 이미지로서의 단편이 된다. 반면 장편에서는 이성과의 사건 이후 그것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최근으로 올수록 장편의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에서, 그녀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상처를 치유해가고 전의 상처를 좀 더 구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는 이야기인 듯 하다. 그러나

여성과의 관계는, 그것이 겉으로는 웃으며서 서로 상처입히는 관계라도 해도, 관계는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그녀들이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할 때는 - 반드시 이해한다([하루칭], [Blue], [딸기쇼트케이크]). - [딸기쇼트케이크]의 경우를 보자. 그녀(치히로)는 농촌에서 올라와서 의지할 곳 없는 도쿄에서의 생활에 지쳤다. 어떤 남자에게 의존하고 싶지만 그 남자는 여자가 의존하려 하자 부담스러워한다. 혹은, 그 남자에게 그렇게 잘 해주면 어떻게든 사랑받을 수 있을줄 알았지만, 결국은 이용당할 대로 이용당하고 차였을 뿐이다. 그렇게 남자에 치이다가 집에 들어가면 전문성을 인정받는 자신의 룸메이트가 일을 하고 있다. "넌 인정도 받고 좋겠다. 너 아니? 니가 전에 사귀었던 그 사람 말야, 결혼한데.." 남자에게 상처입고 온 여자들은 또 친한 척 하면서 은근한 말로 서로를 상처입히고, 그 때문에 화나 나서 상대를 더욱 목조른다.



나나난의 뛰어난 점은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해가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미화하거나 변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매애를 강조하는 페미니즘 경향의 흐름에서 여성과 여성과의 자매애를 매우 낙관적으로 표현함으로서 오히려 그 관계를 지나치게 이상화- 박제화 하는 경우가 있다면, 나나난은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의 실태를 매우 현실적으로 잡아내며 손쉬운 낙관론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거식증에 걸려서 매일 토하는 토우코의 상태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토우코는 참 강하구나"하고 비꼬듯이 말하는 치히로처럼. 분명히, 동성이기 때문에 잘 이해하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까다롭고 엄격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난 니가 정말 싫었어"라고 말하며 서로 애정어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두 여자 사이의 관계인 것이다. 이 쪽이 더 사실이고,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나나난은 맨살의 가끌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위해서 자신의 작품 마다 형식미를 갈고 다듬어왔다. 날 것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날 것의 형식만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다(이것은 인디만화 쪽의 잘못된 편향 중 하나일 것이다). 과감한 묘사의 압축과 생략, 디테일의 정밀한 묘사와 동시에 장식의 배제 - 을 통해서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압축을, 생략된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의 상상 속에서 자신의 체험을 반영하도록 장치되어 있다.


형식미의 구축, 스타일의 강화

그녀는 이야기의 변주를 지속하지만, 그것은 이야기를 더 예쁘게 하기 위해서라거나, 더욱 스케일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압축과 생략의 정확한 배분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인 듯 하다. 어떻게 하면 하나의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는가. 형식미-스타일이 발전할수록, 작품의 리얼리티적 효과는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나난의 스타일에 대한 시도는 매체에 대한 실험과는 거리가 있다. 결국 스타일이 곧 이야기이다. 나나난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은 특정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발전된 스타일에 있다.

나나난은 초기부터 구축된 외곽선을 강조하고 면의 묘사를 배제하는 그림체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화면을 소외시키는 내면의 독백과 내면을 소외시키는 화면이 반복교차하는 리듬, 신체 일부의 디테일을 다채롭게 포착하는 연출까지(특히 손의 연출). 그녀는 비타협적으로 자신의 방법론을 발전시켜왔다. 그녀의 작품목록을 대략 살펴본다면 이 '스타일의 강화'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어났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장르의 관습에 기댄 손쉽운 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서 우리는 이 흔하디 흔한 소재를 다룬 만화에서 결코 공식화되지 않은 감정의 생생하고 총체적인 묘사를 본다.

[딸기쇼트케이크]의 또 다른 에피소드 중 하나의 주인공인 아키요가 우연을 가장해서 키쿠치와 섹스를 할 때, 계단을 올라가는 아키요를 그린 장면 간의 간섭이 일어나 몽타쥬를 이루는 장면은 이 만화의 가장 뛰어난 장면이자, 드믄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딸기쇼트케이크]는 아마도, 같은 컨셉에서 이와 같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 다시 나올 수 있을가에 대한 불안감마저 들게 만든다. 또한, 상업만화의 장르관습을 거부하기 위해서 아예 형식미와 내러티브 그 자체를 거부하는 작가들에게 이 만화는 어떤 교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딸기쇼트케이크]는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제대로 알고 있는 작가가 획득하는 형식과 스타일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를 매력적으로 강변한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인 토우코가 화판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장면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작가가 자신에게 보내는 축하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토우코는 작품 중 처음으로 자기 방에서 벗어난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었다. 어느새. 그래서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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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주1) 예외인 것은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미호와 동거하는 세이이겠지만, 사실상 세이는 거세된 남성으로서, 여성캐릭터의 성질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이의 남성성은 한번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으며 성적 접촉 장면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나나난은 "받아주는 남자"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여성 캐릭터로부터 변형하는 것 외에 구체화시킬 방법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 작품폭록

업데이트 예정 ○ 관련 사이트
[호박과 마요네즈] 한국 팬페이지 http://kiriko.co.to/
일본 팬페이지 (업데이트 안 되고 있음) http://www008.upp.so-net.ne.jp/nananan/
(3)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27 (copy)
alfet07/10/31 04:13 
호박과 마요네즈와 딸기 쇼트 케이스를 읽을 때까지는 잘 몰랐어요. 글쎄요, 그래도 여전히 비관적 색채가 강해서 안타깝답니다. 분명히 과정이 만화가 집중하는 부분인데, 어째서 상실감만 남는 걸까요? 분명히 채워지거나...치유받는 부분이 있음에도... 이 작가의 만화를 읽다보면, 데생이나 연출의 공감력이 지나치게 상처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렁요. 더 많은 위로를 줄 수 있는데도, 작가는 상처에만 집중하고 있네요. 위로가 아니라 해집기 위해서 말입니다...
엘리자벧08/02/24 14:39 
호박과 마요네즈, 스트로베리 쇼트 케이크 둘 다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죠. 근데 둘 다 너무 아파요. 특히 나나난 키리코가 그리는 여성상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헌신적이라서 (아니면 멍청해서) 그 상처가 오히려 더 깊게 새겨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녀들의 상처를 미화한다면 여성자신들이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될텐데 기본적으로 그녀들은 자신들에 관해서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죠. 때문에 더 후벼파는겁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혐오가 깔려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상대방에게 욕을 하는 장면에서는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어느정도 추스렸다는 안심이 되더군요. 전 "너가 정말 싫었어"하는 장면을 아주 좋아해요. 거의 유일하게 감정의 해방을 느낀 장면이었거든요. (사실 저는 하루칭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밝고, 귀엽고, 행복하잖아요.)
엘리자벧 08/02/24 14:42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혐오가 깔려있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자기혐오가 깔려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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