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include_once(/home/hosting_users/dugoboza/www/zboard/outlogin.php): failed to open stream: No such file or directory in /home/capcold/html/dugoboza/dugoboza_net/tt/index.php@pl=34&ct1=-1.htm on line 90

Warning: include_once(): Failed opening '/home/hosting_users/dugoboza/www/zboard/outlogin.php' for inclusion (include_path='.:/opt/alt/php72/usr/share/pear') in /home/capcold/html/dugoboza/dugoboza_net/tt/index.php@pl=34&ct1=-1.htm on line 90

Warning: include_once(/home/hosting_users/dugoboza/www/zboard/ggambo_late.zend): failed to open stream: No such file or directory in /home/capcold/html/dugoboza/dugoboza_net/tt/index.php@pl=34&ct1=-1.htm on line 91

Warning: include_once(): Failed opening '/home/hosting_users/dugoboza/www/zboard/ggambo_late.zend' for inclusion (include_path='.:/opt/alt/php72/usr/share/pear') in /home/capcold/html/dugoboza/dugoboza_net/tt/index.php@pl=34&ct1=-1.htm on line 91
 두고보자
 만화보고 따지는 집단
ADMIN KEYWORD LOCATION RSS PAPER RSS XML
[특집] 어떤 만화를 지지할 것인가 - 불안정한 여성주체의 사회적 상황을 드러내는 순정만화
만화는 흐른다 02/12/02 18:22 그림자춤
1.

순정만화를 볼 때의 편안함이란 참 오묘해서 반동적인 내용이 등장해도(예컨대 강간신화를 조장하거나, 동성애를 비하하는 문장이 나올 때) 그럴 만하다 싶은, 그러나 격한! 거부감이 몰아치는 것이다. 현존하는 순정만화의 스타일에 불편한 독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여성독자의 성적 환타지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로맨스 때문이든, 감정의 주관적 시점을 강조하는 내용전개 때문이든, 미형의 캐릭터 때문이든 이유는 뭐든지 좋다. 마치 여학생 휴게실이나 여직원용 휴게실처럼 여성전용 공간에 들어선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편안함 때문에 순정만화를 귀히 여길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순정만화 말고라도, 귀히 여기는 만화는 많다. 사실 순정만화라는 범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미 다 지나가 버린 소리 같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창 작가주의적 성향과 열혈수용자층으로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화려한 시대 - 그래서 "글로벌 시대 한국 만화의 주요한 경쟁력"이라는 이상한 명찰까지 달았던 시대 - 는 낡은 병풍처럼 서서히 바람에 빌려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순정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비록 순정만화의 주된 흐름이 10대 초중반 여성들의 성적 환타지를 그려내는 것이라 할지라도, 여성주의자라면 끝끝내 털어 버리기 힘든 '여성'(추상적인 여성집단을 가리킴)이 작가와 독자층을 동시에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2.

문학에서의 페미니즘 비평활동을 잠시 언급해볼까. 문학 역시 다른 예술장르와 마찬가지로 중성적인 가면을 쓰고 여성집단을 배제해왔지만, 소설이라는 대중적 장르의 탄생 및 막 교육받기 시작한 여성지식인의 등장은 여성작가의 글쓰기를 가능케 했다. 물론 그녀들의 작업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삶과 분리된 '고급의 예술'로서 평가받지 못했으며 통속문학과 유사하게 취급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70-80년대 영미 문학 비평가들이 '여성시' '여성소설'이란 명명을 통해 여성작가들의 전통을 발굴하고 여성적 양식feminine mode을 규명하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후대에 이 작업은 '또 다른 남근 중심적 정전 만들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통속문학과 순수문학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지금은 어설프게 보이지만, 어쨋든 간에 여성작가라는 이유로 하찮은 평가를 받는 것은 열 받는 일이다.

그나마 여성적인 장르라고 평가되는 문학의 상황이 이러한데, 내가 순정만화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굳이 여성적 전통을 찾아내지 않아도 이야기할 거리들이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성차 자체가 부각되지 않고 암묵적으로 '남성적'임을 면면히 드러내 보인 그 많은 작업들과는 달리 남성 작가와 여성작가, 남성 독자와 여성독자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르는 거의 없다. 박무직이 아무리 순정만화 작가라고 우겨도, 그의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은 뭔가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이는 황미나가 의도적으로 스포츠 신문 등에 만화를 연재하면서 그림체 자체가 여성의 신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과 유사하다.

차이의 부각이 언제나 대안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는 오히려 확실하게 부각시키는 것도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는 여성 집단 자체가 억압적 질서 아래 남성과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며, 다르게 역사와 조응한다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부분을 꼼꼼하게 포착하는 것은 소수자의 시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순정만화들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제기들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차이를 어떻게 그려내는가 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 만화의 효시로 평가받는 (아닌가?^^)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경우 나는 좋아한다고 말하기 주저한다. 물론 보기 드물었던 파격적인 여성주체 서사의 등장은 그 자체로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르미안이라는 공간이 가진 여
성적인 성격과 네 딸들의 서로 다른 성격들은 결국 사랑과 포용이라는 반성 없는 '여성적' 가치의 구현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여성들의 서사가 개별여성의 카리스마 혹은 마력에 의존해서 이루어졌기에, 그녀들을 질곡으로 몰아넣었던 질서 자체에 대한 문제는 드러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라고닌가 라고 고개를 갸웃한다.


3.

그래서 나는 남성적인 문화 질서에서 배제된 불안정한 주체의 상황을 드러낸 순정만화가 낫지 않을까 라고 감히 말해보는 것이다. 닉스미디어에서 출간된 일련의 시리즈들을 보면 진부하리만큼 연애 관계에서 흔들리는 여성주체들이 등장한다. 카오리 오노주카의 작품은 여성이 사랑과 호기심, 폭력과 섹스의 관계를 탐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전경린과 꽤 비슷하다) 사회와 전통에서 소외된 강한 자의식과 수동적인 면모가 결합된 그녀들은 상대 남성에 대해, 가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좋은 걸 어떡해>의 '밀크 쉐이크와 포테이토 후라이'는 아마도 그녀의 문제의식이 농축되어 나타난 단편이 아닌가 싶다. 한편 소리소문 없이 알라딘 만화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던 키리코 나나난의 <호박과 마요네즈>는 20대 초반 주변부 젊은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포착했다는 점 이외에도 여러 강점을 가지고 있다. 주로 여주인공 츠치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연애 관계에서 여성주체가 어떠한 위치에 서게 되는지, 그 수동적인 상황에서 왜 불안에 처하는가에 대해 조용하게 그려낸다.  




4.

한편 수동적인 여성의 면모, 연애만이 여성 주체의 전부는 아니겠지. 여성이 문화적 질서에서 배제되었다면, 나름의 대안을 찾아 나서는 것 역시 작가들의 몫이다. 순정만화에서 여성주의 작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이진경이다. 이진경의 작업이 여타 만화와 달리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소수자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의식 아래 풍부한 대안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업에는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정치적 의식이 드러난다. <사춘기>는 주변부 여성주체들이 나름 의 역사와 조응하며 타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지 않는 고유한 자아를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진경 못지 않게 손이 많이 가는 작가가 한혜연인데, 한혜연의 만화를 보다보면 '여자만화'라는 명칭이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비록 만화에 등장하는 조용조용한 캐릭터들에 맞지 않는 여성들이 꽤 많겠지만, 그 분위기 자체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한혜연이 나인에 연재한 단편들 및 <금지된 사랑><아.마.존>등은 여고생 문화를 기원으로 이어지는 20대 여성들의 문화에 거의 최초로 꼼꼼하고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마치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부재한 여성문화가 현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녀의 여주인공들은 사랑과 결혼에서 안정적으로 안착하기보다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고민하다가 주변부에서 어영부영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금지된 사랑>의 지이와 희성, <후르츠칵테일>의 재영과 재영언니의 모습은 다름에 대해 일상적 차원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회에 하나의 대안적인 윤리로 제시될 법하다. 이들의 작업은 여성 고유의 주체성과 문화적 재현을 긍정할 수 있게 한다.



5.

쥬디스 페털리는 "페미니즘 문학비평은 세계에 대한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인 활동이다"라고 규정한 바 있다. 서구 문학과 한국 순정 만화를 끼워 맞출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바, 순정만화를 여성주의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위에서 내가 언급한 작업들은 거대 서사에서 배제된 특정한 여성집단의 현실에서 출발한, 자의식과 감정이입이 뚜렷한 미시적 텍스트들이며 이와 같은 방향으로 순정만화의 흐름을 단정지을 이유는 없다는 점이다.(사실 나는 공선옥 소설처럼 한국에서 살아가는 고단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순정만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문득 <나인>에 연재되었던 손소정의 여성버디 '피쉬'가 보고싶어졌다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34 (copy)
PATTERN DESIGN BY STORE NORSKE DESIGN KOMPAGNI
SKIN BY WHANGUN
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Fatal error: Uncaught Error: Call to undefined function print_late_ggambo() in /home/capcold/html/dugoboza/dugoboza_net/tt/index.php@pl=34&ct1=-1.htm:490 Stack trace: #0 {main} thrown in /home/capcold/html/dugoboza/dugoboza_net/tt/index.php@pl=34&ct1=-1.htm on line 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