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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엠마'/모리 카오루 - '엠마'의 조용한 미덕
이 만화 봤어? 04/11/09 00:51 깜악귀
모리 카오루의 첫 장편 [엠마]는 2002년 일본에서 첫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2003년에 한국어 번역본이 (주)북박스에서 출간되었다. 조용히 출간된 작품이고, 만화 자체도 꽤나 조용하다. 작품은 19세기 말 영국을 배경으로 메이드(하녀)와 상류신분 남성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이 사이에서 '액션'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격렬한 사랑의 구애나 밀고 당기기, 폭력과 극단적인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엠마]는 작가의 19세기 영국에 대한 집착(그리고 메이드에 대한 집착)을 옮겨놓은 작품이고 때문에 도리어 풍속을 벗어난 범주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 중에 하나는 순애이고, 다른 하나는 극적인 사건의 난무라고 한다. 눈이 멀거나,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조폭이 개입하거나, 납치, 감금, 폭행 등등 태연히 등장한다. 교통사고는 이제나 싶으면 바로 등장. 기억상실도 번번히 나오며 배다른 오빠이거나, 알고 보니 형제였다. 뚜렷하고 알기 쉬운, 그리고 극단적인 갈등을 배치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다.

주인공들에게 갈등을 겪게 하고 조마조마 지켜보는 것을 일종의 새디스트적인 기질이라고 본다면, 일본인들은 한국인보다는 좀 덜 소란스러운 새디스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면 [캔디]나 [유리가면]처럼 일본의 옛날 만화에는 극단적인 상황의 연속이다. 일단 기억상실은 [캔디]에서 알버트 아저씨가 한 번 겪었던 사건이다. 교통사고? 거긴 전쟁의 한폭판이다. 그렇다면 좀 더 시끄럽고 선정적이고 소란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면 만화든 드라마든 일단 재미있는 것일까.

예전에 TV에서 본 어떤 코미디가 생각나는데, 아마도 70년대에 영화 만들던 장면을 코미디로 꾸미는 것이다. 배우들이 돈을 대주는 스폰서 앞에서 대본을 읽는다. 스폰서가 실망의 표시를 하면서 "좀 더 액션을 첨가할 수 없어?"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면 배우들이 즉석에서 액션을 넣으며 애드리브를 한다. 갑작스럽게 (철썩!) "이제 우리 헤어져!", "남수씨, 책임져요! 나랑 우리 애기를 책임져요!", "OOO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좋았다는 말이냐!?" 이런 이야기가 유치하다 하지만 사실 드라마를 보면 우리가 즐기는 이야기가 이런 양태와 크게 다르진 않다.

결국 저런 것이 대중적이라는 이야기일 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는 "맞다"라는 대답이 나온다. 왜 목소리가 큰 ?다른 사람들의 주의도 끌고, 또 말싸움에서도 항상 이기지 않는가. 하지만 항상, 저렇게 격렬하고 알기 쉬운 사건들이 재미있고 눈길을 끌게 되어 것일까? 대중적이라는 것은 그런 것일까?


[엠마]의 미덕 - 조용한 집중력으로 드라마를 다루는 법 (2권의 사례 : 12, 13화)

p.125. 윌리엄 존스가 공원에서 엠마를 만나려 했으나 늦는다. 한편 엠마는 떠나기 전에 존스를 보려고 하나 서로 엇갈리게 된다. (클릭해서 보세요)

[Scean 1] - 엇갈리는 엠마와 윌리엄 존스

윌리엄 존스는 귀족이다. 자신의 어릴 적 가정교사였던 선생님의 메이드(하녀)인 엠마에게 반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친다.

이 장면은 윌리엄 존스가 엠마와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본의 아니게 시간에 늦은 장면이다. 엠마는 작별인사를 하려고 한 것인데, 존스가 오지 않자 얼굴이라도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존스의 저택으로 떠난 상태다. 결국 두 연인은 엇갈려 엠마는 존스와 만나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여기에서 꽃 파는 걸식소녀가 존스에게 꽃을 내밀지만 존스는 "바쁘다"라고 거절한다. 이 장면은 지금 당장은 그다지 의미하는 것이 없지만 다음 화에서 등장할 엠마의 과거에 대한 복선이다. 다음 화에서 독자는 그것을 알게 된다.


p.165. 꽃묶음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엠마. 거리에서 꽃을 팔아 살아가는 걸식소녀였다. (클릭해서 보세요)

[Scean 2] - 엠마의 과거

엠마의 과거를 듣게 되는 존스. 부모가 죽고 친척 집에서 천대받다가 인신매매 당하던 도중 도피한 엠마이다. 걸식소녀에게서 꽃을 예쁘게 만드는 법을 배운다. "잘만 되면 매일 빵은 먹을 수 있어"

이 장면에 이르러 존스가 앞 장면에서 꽃팔이 소녀의 꽃을 사주지 않은 행위는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된다. 즉, 존스는 "비참했던 과거의 엠마"를 도와주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존스가 엠마를 "진정한 의미로 알지 못하고 단지 지금의 엠마를 좋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성숙한 사랑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윌리엄 존스는 계급에 대한 편견 없이 메이드를 사랑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귀공자이다. 그는 엠마의 계급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지금은 엠마를 만나지 못한 채 그대로 떠나보낼 수 밖에 없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배척한 죄를 치루어야 한다. 즉 사랑이 지연되고, 원치 않는 삶의 배역을 맡아서 감내해야 한다.



[Scean 1, 2] - 겹치는 순간

앞의 두 장면에서 하단의 세로로 세 칸 나누기가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 그 뿐 아니라 두 페이지에서 화면 분할의 리듬이 유사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좌측 페이지, 붉은 테두리 안의 엠마는 과거 꽃팔이 소녀 시절의 엠마이다. 우측 페이지, 붉은 테두리 안의 소녀는 윌리엄 존스가 꽃을 사주지 않는 꽃팔이 소녀이다. 둘은 페이지 내에서 같은 호흡과 리듬을 가진 컷으로, 서로 겹쳐진다. 즉 존스가 꽃을 사주지 않은 소녀가 엠마의 과거를 의미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작가는 그냥 캐릭터 중 누군가의 입으로 설명해버리고 말 테지만.

이러한 복선은 단순한 작가적 잘난체의 기교에 불과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엠마]의 경우에는 존스가 엠마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저변에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복선과 현재의 엠마, 과거의 엠마의 교차는 엠마의 캐릭터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즉, 엠마가 말이 없고 조심스러운 캐릭터인 이유, 자신의 충동을 억누르며 인내심을 발휘하는 성격의 인물이 된 성장배경를 효율적으로 보여준다.

수수하지만 예쁜 미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된 이유는, 어릴 때의 비참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녀는 예쁘장한 얼굴 때문에 인신매매단에 팔릴 뻔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구애하는 남성들에게 모두 거절의 편지를 보낸 이유이기도 하다. [엠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행동에는 모두 이와 같은 설득력 있는 근거가 제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마가 존스 앞에서 사심 없이 밝게 웃을 수 있는 것에서 독자는 그녀에게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릭해서 보세요)

[Scean 3] - 꽃을 사는 엠마

좌우간 다음 장면을 보자. 주인이 죽고, 윌리엄 존스와도 만나지 못한 채 엠마는 런던을 떠난다. 여기에서 다른 꽃파는 소녀가 등장한다. 엠마의 과거와 엠마 앞에 있는 꽃파는 소녀는 서로 교차한다. 독자는 이제 엠마의 과거를 알고 있다. 그리고 엠마가 소녀의 꽃을 사는 행위에 담긴 감정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은 꽃을 사지 않은 윌리엄 존스의 행동과 대비된다.


[Scean 4] - 지붕 쳐다보는 존스



엠마는 떠나고 우리의 귀족 윌리엄 존스는 닭 쫏던 개 전철역 처다보는 격이 된다. 두 사람은 그리 쉽게는 결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존스의 앞에는 다시 꽃파는 소녀가 있다. 바로 앞서 엠마에게 꽃을 판 소녀이다. 그것은 엠마의 대리이다.

(클릭해서 보세요)
[Scean 5] - 꽃을 사는 존스

이제서야 꽃을 사는 윌리엄 존스. 늦었다, 도련님아. 윌리엄 존스는 엠마가 어디로 떠났는지도 알지 못한다. 가는 곳을 남기지 않았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뜻인 것일까. 하지만 그가 소녀의 꽃을 사는 행위는 엠마와 그를 미약하지만 다시 연결시킨다. 독자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날 것이라는 점을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떤 방식일까? 젠장, 다음 권도 봐야 하잖아.

자, 그래서 이 만화의 미덕은 무엇인가?

"꽃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

꽃타령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엠마]는 조용한 연출이 때로는 독자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할 수 있으며 드라마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란스러운 소재와 직접적이고 드러내는 연출이 드라마를 밖으로 강화한다면, [엠마]와 같은 경우는 드라마를 안으로 강화시킨다.

왜 이렇게 별 사건도 없이 격렬한 연출도 없이 플랫하게 흘러가는 듯한 만화가, 독자의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을 발휘하는가.

[엠마]의 드라마는 결코 [캔디캔디]에 비해 역동성이 덜하지 않다. 이것 역시 신데렐라를 컨셉으로 하는 이야기이며, 엠마는 캔디 못지 않은 고난을 겪을 참이다. 캔디는 적어도 하녀는 아니었다. 캔디는 학교에서 교육받았지만 엠마는 주인의 배려로 약간의 이례적인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그녀가 윌리엄 존스와 맺어지는 것은 캔디가 알버트 아저씨와 맺어지는 것보다 어렵다. 알버트는 자기 가문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지만 윌리엄 존스는 실권이 없는 상속자에 불과하다. [엠마]는 조용한 [캔디캔디]인 것이다.

[엠마]의 고난의 드라마를 평범하고 굴곡없이 보이게 하는 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조용한 연출이다. 이 조용한 연출은 보여주어서 효과적인 장면과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효과적인 장면을 착실하게 파악하는 경제적 원리에 기초한다. 때문에 작품은 19세기 영국 귀족과 하인들의 일상생활을 평범하게 묘사하는 것에 장면을 할애하는 듯 하지만 그 안에 캐릭터들의 감정의 굴곡을 섬세하게 포착하기 위한 장치들을 배열해놓고 있다. 또한 외부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의 개입을 되도록 자제하고 캐릭터의 행동에 필연성을 부여하여, 그들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다.

이것은 조용하지만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연출이란 멋있는 앵글을 잡아서 캐릭터의 머리칼을 휘날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이 용도는 당연히 해야지만). 그것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엠마] 2권의 12, 13화가 보여주는 일련의 시퀀스는 이러한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고가 리듬과 구조를 형성할 때 작품이 어떤 동력을 부여받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연출의 힘이며, 그것이 효과적인 경우에 독자는 반드시 알아본다. 만약 독자가 직관적으로 알아먹지 못했다면 그것은 효과적이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물론 독자의 수준을 탓하는 작가도 있겠고 그것도 나름대로는 효과적인 방법이겠지만.

표현의 경제성이란, 단지 만화의 종이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경제적일수록 함축적으로 표현하게 되고, 한 가지 표현이나 연출이 복합적인 의미를 띄게 된다. 본래 삶이란 복합적인 것이잖아. 캐릭터와 상황은 복합적인 생명력을 얻게 되며 그 만화는 되풀이 읽을 가치가 있는, 사서 꽃아둘 가치가 있는 만화가 된다. 이런 것이 드라마의 내공 강화법일 터이다. 꽃을 예쁘게 꾸미면 팔리는 법. 잘 되면 매일 빵은 먹을 수 있다(그거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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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홈페이지 : http://pine.zero.ad.jp/~zad98677/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37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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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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