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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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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만화의 평론 - 만화평론가의 정체? 만화 평론가의 정체성?
만화는 흐른다 02/01/15 13:41 깜악귀
근데 말이야. 상대가 없는데 말을 두고 있는지도 몰라.
혼자 체스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구.
(깜악귀 / 12월 19일 두고보자 내부채팅토론 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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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보자는 만화평론웹진(혹은 만화비평웹진, 어쨌든)이다. 싫든 좋든 이곳의 편집위원인 나는 그 '만화평론가'라는 호칭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의 직위라면 월급없는 '명예직' 정도 될 법한 이 호칭에는 아직 예상되는 '역할 모델'이 없다. 만화평론가라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그런 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만화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활동할 때 그 사람이 만화평론가라고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평가할 잣대도 합의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가 그렇게 불러주거나 본인이 자칭하면 그런가부다 할 뿐이다. 말하자면 내가 만화평론가라고 자칭하고 다닌다 해도, 그렇다라든가, 아니다라든가 하고 누군가가 딴지를 걸지도 않으며, 걸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은 만화평론의 상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평론가'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리가 없는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주변 사람들에게 만화평론웹진을 한다는 말이 퍼지면, 이런 반응에 직면하게 된다.

"너 만화평론한다며? 재미있는 만화 좀 가르쳐줘."

그래서 몇 권 재미있을 법한 만화들을 추천해주면, 나중에 재미가 없었다면서 실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이런 것은 평론의 역할을 '재미있는 만화추천(리뷰)"로 국한시키는 대체로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가끔 만화에 대한 글을 청탁하는 잡지의 메일은, 다짜고짜 신간만화 리뷰를 부탁하기도 한다. 으레 당연히 신간만화 정도는 체크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소위 '만화평론가'에는 이 만화 저 만화에 대한 모든 정보와 식견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식의, '만화박사'라는 역할모델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는 이 만화와 저 만화의 정보들을 서로 비교분석하는 기존의 만화매니아의 분석적 글쓰기가 아직까지는 만화평론의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평론을 쓰는 '평론가'는 '만화광'이라는 이미지다. '영화광', 영화정보수집가'를 영화평론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좀 더 지성적인 단어다. 소설 매니아를 문학평론가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만화평론가는 독자에게 재미있는 만화에 대한 정보를 서비스해주어야 하는 그런 존재로 인식된다.

이런 현상들, '만화평론가'의 역할모델은 그대로 현 사회에서 만화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신간서적이나 신간영화소개는 당연히 그 언론사의 담당기자가 한다. 단지 만화만은 그것을 하는 사람이 만화평론가라는 직함을 다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렇다면 만화에서 평론가란 다른 예술장르에서의 '담당기자' 정도의 수준인가? "만화에서의 걸작은 다른 예술장르에서의 수작이나 범작인가?"라는 문제제기에 이어서 이렇게 말을 하면 무지 욕을 먹을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만화평론가'라는 이름을 달고 책을 쓴다거나 한 사람들의 활동은 담당기자의 리뷰 정도의 활동이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다른 예술장르에서는 담당기자가 왠만한 전문적인 수준의 논평은 다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것. 물론 재미있는 만화추천, 즉 리뷰도 평론의 일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평론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작업이 단지 그것 뿐만이라면, 그것은 매우 척박한 문화적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리뷰는 평론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평론가가 하는 주된 작업이라고 하면 불행한 일이다.

사실 만화 뿐 아니라 대중문화(pop-culture)의 영역에서 '평론'의 수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수준에서 대중이 요구하는 담론이란 '추천' 즉, 리뷰인 것이다. 물론 영화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중문화이면서 상당한 고급평론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요즘 영화가 산업적으로 부흥하고 대중문화로서의 위치를 확립해갈수록 평론의 위상은 하락하는 추세다. 기성의 평론가들은 점점 별점매기는 기술자로 전락하는 실정이고, 그 별점조차도 대중들은 영화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니까. 영화도 그럴진데, 전통적으로 하위문화였으며, 소수문화이며, 대중문화였던 만화, 단 한 번도 양지로 제대로 발돋움해 본 적이 없는 이 예술장르, 만화에 있어서 그 평론의 수준과 평론가의 호칭에 달린 역할의 수준에 과도한 기대치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평론의 수준이 작품의 수준을 앞서나간다는 것도 힘든 일이거니와, 평론의 수준은 항상 그 시대에 존재하는 독자의 수준에서 한 두 걸음 앞서나갈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평론 따위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잡지나 언론에 "재미있는 만화소개" 이상의 평론이 실리는 것을 나는 거의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시네21 창간 초기 정도를 제외하고, 그리고 망해버린 '오즈(OZ)'를 제외하고) 그러니 그것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동호회 등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돌려보다가 끝날 뿐이다. 이런 점에서는 본지 '두고보자'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평론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할 유통경로, 즉 지면이 거의 없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그것을 필요로 하는 독자도 거의 없다. 만화에 대한 진지한 글을 읽으려고 하는 대중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에 필자는 혹독한 회의를 품고 있다. 제대로 된 만화평론이 필요하다 어쩌구 하지만 과연 현재의 한국만화에 만화평론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결국 그래도 평론은 할 수 있고, 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평론이니까. 그것이 웹 사이트에 거의 무자본으로 덩그러니 띄워져 있는 것이든, 질적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든 간에 그것은 평론이다. 그리고 당신이 만화에 대한 글을 쓴다면 당신이 하고 있는 것도 역시 평론이다. 통신동호회에 올라오는 만화에 대한 글도 역시 평론이다. 그 글의 질이 어떻든가 간에. 그러나 그것을 쓰는 나는 만화평론가는 아니다.

유통경로도, 수요도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만화평론가'라는 것은 직업의 이름은 될 수 없다. 그것을 직업으로 택하겠다는 사람은 부자가 아닌 이상 필연코 굶어 죽으리라. 때문에 만화가는 직업의 이름이어도, (그것에 전념하여 먹고 살아야 만화가라고 부르니까) 만화평론가는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막연히 기대되는 '자격', '역할'에 대한 호명일 뿐이다. 허무한 이름이다.

좋아, 직업이 아니라도 그런 평론이라는 행위가 적어도 자신의 '업'이 된다면 (돈이 안 벌리는 짓이라도) '평론가'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만화그리는 행위가 자신의 '업'이라면 어딘가에서 공식데뷔하지 않아도 그 사람은 만화가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니 평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평론가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단지 그렇게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냥 돈도 권리도 제공될 보장이 전혀 없는 작업을 '좋아서 한다'는 사람에게 어떤 의무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아무 보상도 없는 일에 매달리는 그 사람도 역시 평론가라는 허울좋은 호칭 따위는 신경쓰지 않겠지. 그리고 그 사람이 어느 순간 지쳐서 평론행위를 때려치운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쓰거나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누구나 평론을 한다고 해도 아무도 평론가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만화가와, 만화계와 함께 성장해온 만화평론가가 없었다는 것도 이러한 상황의 반증일 것이다.


만화평론가의 역할모델 - 허구적인 기대들에 대해서

결국 만화평론가의 정체, 정체성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겠다.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다.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만화평론가라는 유령이...) 문학평론가, 영화평론가가 있으니까 만화평론가도 있겠지. 다른 예술장르에 다 평론가가 있는데, 만화평론가도 있어야 만화도 대접받지 않을까? 저 사람은 전문가 같아 보이니까 '만화평론가'라고 불러주자.

이런 식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평론가'의 기준은 대충 다른 장르에서 담당기자 정도. 사실 잡지 등에서 글청탁이 가끔 와서 연락을 해 보면 잡지사나 언론사에서 만화관련 지면을 마련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그 지면에 대해서 스스로 기획까지 완료한 경우는 거의 없다. "알아서 그냥 재미있게 써 주세요"라는 것이다. 실제로 담당기자가 해야 할 일까지 알아서 해야 한다. 결국 만화평론가라는 이름에는 '만화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막연한 역할모델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모델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만화평론가가 꼭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인 듯 하다. 만화가들을 위시해서, 만화계 쪽 사람들, 그리고 독자 중 아주 일부. 만화가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만화평론'이 필요하며, 즉 '제대로 된 만화평론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애매한 인식 위에 역시 막연한 소원을 담고 있다. 만화가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서 '평론'이 필요한가 자체가 의문이다. 평론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담론형성'이 필요할 수는 있을 것이다. 평론은 작품을 논하고 평하는 행위이지 담론 그 자체는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형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만화평론가인 것도 역시 아니다.

사실 이렇듯, '만화평론가'라는 허상에 투영되는 이미지를 보고 있으려니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한국만화를 더 많은 대중들이 알 수 있도록 평론가들이 힘써주세요."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평론과 광고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평론이 어쩌다 광고효과를 가질 수는 있지만 평론은 광고가 아니다. 그런 것은 근본적으로 출판사가 광고를 해야 하는 일이다. 출판사에 마케팅을 개선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러면 작가가 출판사에 일방적으로 종속적인 만화계의 구조부터 바뀌어야겠지만. 출판사가 좀 더 자신들이 내놓는 작품을 '질 좋은 상품'으로 잘 취급한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다. 그것은 평론이 걸어야 하는 길과는 상당히 다른 길이다.

물론 출판사의 마케팅이나 광고가 아니더라도 좋은 작품은 알려져야 하겠다. 훌륭한 만화의 소개글이 좀 더 풍부하게 쓰여져야 하는 것은 옳다. 신문에서 신간문학의 서평을 소개해주듯이 말이지. 그런데 위에서 '담당기자' 어쩌구 이야기했듯이 그런 것은 각 언론사에서 해야 될 일이다. 물론 평론가도 이런 글을 쓸 수는 있다. 언론사가 지면을 기획해서 청탁한다면 말이다. 문학평론가가 신간서적소개를 멋드러지게 하는 경우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언론사의 의지다. 사실 거의 모든 언론사에 만화담당기자는 커녕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식견을 가진 인력도 없다. 결국 언론사가 만화를 우습게 취급한다는 것, 그리고 독자들도 거기에 대해서 별 불만을 못 느낀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결국 '만화평론가'라는 허상에는 현재 만화에 제공되지 않는 담론들을 모두 책임져달라는 식의 요구가 쏟아부어지는 것이다. 그 담론이란 한국만화와 대중과의 접점을 좀 더 많이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출판사, 언론사 등에게 아주 당연하게 요구되어야 할 것들이, 만화평론가라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몰린다는 것은 만화라는 영역에서 그간 각 영역에서 당연히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 얼마나 당연한 듯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새 이런 시스템에 길들여진 채 막연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만화평론가라는 허상에 쏟아부어지는 요구들은 그런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물론, 대부분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그런 점에서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이들이 더 무섭기도 하지만.


* * * 만화평론의 시스템 인식

지금까지 '만화평론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호칭에 의미가 없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도 만화평론에 대한 인식의 구체화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평론'이라는 말이 가지는 애매함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도 평론이고, 저것도 평론이고, 그럼 이 평론가 저 평론이 같은 것인가? 하는 의문, 그리고 저 평론은 어느 정도의, 어느 영역의 평론인가 하는 의문. 그러한 것에 대한 합의가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으므로. 사실 평론이란 상당히 넓은 영역의 글쓰기를 일컫는 말이 될 수 있지만 좀 더 분화해서 생각하는 것이 생산적인 평론행위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최근 아래의 모델을 사용한다. 이 모델을 말하자면 하나의 비유로서 평론행위와 그 결과물이 어떤 층위로 배열되는가를 모델화한 것이다. 각 평론의 '층위'는 상당히 독립적인 면이 있다. 이를테면 1차 평론이라고 상정한 '연구/이론 작업'과 2차 평론이라고 상정한 리뷰/줄거리 소개 작업'의 영역은 거의 독립적이며 고유한 영역이다. 그러나 '연구/이론 작업'의 경과는 '칼럼/분석/작가론/작품론'의 영역을 거쳐 그 위로 전달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각 영역은 독립적이지만 상호작용하고, 대부분은 아래에서 위로 생산물의 자양분이 전달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모델은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냥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을 나누어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당연한 것을 생각하는 것도 의외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당신이 평론행위를 종종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디 쯤에 위치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사실 이 모델은 '평론'이라기 보다는 '만화담론 피라미드'라고 해도 크게는 상관없을 듯 하다)

1차 평론, 평론활동의 가장 기초가 되는 산물은 (물론 '만화'이겠지만 평론으로 국한시키자면) 1차 평론인 만화이론, 만화연구이다. 만화라는 매체의 물리적, 산업적, 사회문화적, 역사적 특수성에 기반한 이론화작업과 연구작업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론'이라든가 하는 책을 염두에 둘 수 잇을 것이다) 그 성과는 그 위로, 가장 직접적으로는 2차 평론층에 전달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층을 1차 평론으로 놓는 것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현재 이 작업을 전담하는 하는 이들은, 거의 전무하다. '이론/연구' 작업이 척박하면 그 위 층위의 작업들이 풍요로워지기 힘들다.

2차 평론은 만화칼럼과 만화분석, 작가론, 작품론 등이다. 보통 우리가 다른 예술장르의 경우 '평론'이라고 가장 많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층위는 1차 평론 산물의 자양분을 섭취하면서 자신들의 만화에 대한 정보와 취미를 인문/사회적 지식들을 결합, 담론화시켜 나아간다. 따라서 이들부터는 대중들과 보다 직접적으로 만나는 대중담론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만화-칼럼은 만화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요구하기 보다는 만화를 대상으로 해서 인문사회학적 성찰을 담아내는 것을 주로 한다고 하겠다. 만화분석은 취향을 중심으로 한 매니아 층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만화라기 보다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잡지 'New Type'을 생각하면 되겠다) 이들은 보다 정보와 정보의 분석에 의존한다. 칼럼이 좀 계몽적이라면 분석은 좀 쾌락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가론과 작품론은 만화작품과 만화가에 대한 풍부한 통찰과 분석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영역에서의 산물은 3차 평론의 영역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3차 평론은 만화 리뷰, 혹은 줄거리 소개, 단평들이다. 잡지나 일간지 등에서 가장 많이 수요가 있는 부분이다. (물론 그 영역마저도 아주 적지만) 대체로 '대중을 위한 친절한 안내'라는 성격을 갖추고 있다. 만화에 대한 대부분의 글쓰기는 이 영역에 머물러 있으며 그 이상이 행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간지나 주간지 등에서 종종 개설되는 만화코너의 글이 이런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지만 사실은 다른 예술장르의 경우라면 담당기자로도 충분히 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모델이 도식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사실 모델이라는 게 도식적인 거지. 물론 현실은 저렇게 분명하게 나누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만화에 대한 평론행위를 하는 사람이 어느 층위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분류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1차 2차 3차 평론 모두 '평론'이라고 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그럼 이제 다시 평론가 이야기로 돌아가자. 필자는 적어도 평론가라면 2차나 3차 정도를 '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2차를 지향하지만 '업'으로 삼을 자신도, 용기도, 의무감도 없으므로 평론가는 아닌 셈이다. 그냥 2차 평론생산을 종종 하는 인간이겠지. 반면 본지 편집장 c씨는 1차 평론이 가장 필요하다는 독재적 노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평론활동은 어떤 사회적, 예술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향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독자를 설득하고 끌어들여야 한다. 지향이 없는 평론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다. 그것은 만화가 어떤 사회적, 예술적 지향을 가지도록 하는 작업이며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만화를 읽도록 하는 작업 이기도 하다. 단지 소개하고 안내하고 추천하는 것이라면 너무 황폐하고 허무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 이것은 만화평론가라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의 근거로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과연 만화평론가인가? 현재 평론글이 너무나도 필요한데, 평론글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 진지한 평론을 필요로 하는 만화는 1년에 10권이 안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론글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다. (사실 그 수요가 많았다면 언론사들은 좀 더 만화에 신경을 썼을 것이다) 1년에 10권이 안되는 책을 기다렸다가 인터넷 사이트 한 귀퉁이에 몇 줄 써내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평론이 필요하다 어쩌구 하지만 한국만화계에 얼마나 평론이 필요한가조차도 의문이다.

결국 필자는 평론이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평론이 선행한다고 무엇이 바뀔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평론의 역할이 전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상황 속에서 평론으로 해체나갈 수 있는 길의 한계는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만화의 위상과 매력을 상승시키려는 노력들이다. 평론은 그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며, 거기에 매진해야 할 이유는 없다. 평론행위 그 자체는 하나의 자족/자위 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다른 다양한 실천들과 동반되어야 의미가 있다. 창작행위, 출판/기획행위와 평론행위가 함께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현재의 만화계에는 기획자, 사업가, 출판전문가 등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만화가 처해 있는 암울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좀 더 직접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활동과 사업들 말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만화전문담론지 하나 없다. 이런 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평론행위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함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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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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