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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고보자
 만화보고 따지는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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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만화와 평론 - 오규원 선생과의 대담 : 한국에서 만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그리고, 그것의 시작에 관해
만화는 흐른다 02/01/15 23:02 대담&정리 : halim, capc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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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그것이 누구의 수식어가 되어있든 간에, ‘1호’라는 호칭은 항상 미묘한 울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평론가 1호’라고 누군가를 지칭하고자 할 때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고보자가 마련한 나름의 기준에 따라서 한국의 만화평론가를 구분할 때, 1세대로 꼽히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뿌리깊은 나무>의 대중문화 비평란에서 만화란을 맡아 활동했던 오규원 선생이다.

☞ 만화평론에 대한 기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고보자는 오규원 선생과 함께 한국의 만화평론, 평론한다는 것의 기본 원칙과, 그것의 시작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고, 선생의 호의에 힘입어 기대이상의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의 깊이가 일천하여 혹은 손가락의 빠르지 않음으로 인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그 날 주고받은 이야기를 옮겨본다.

☞ 선생은 일산의 호젓한 주택가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찾아가는 길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는데 **아파트 *동 **호 식의 것이 아니라 어디서 돌아서 1km쯤 가다보면 **가 있고 다시 300m쯤 가다가 횡단보도 전에 멈춰서 오른쪽을 보면 **가 있고 그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100m **골목으로 들어가서 몇 번째 집 ... 이런 식으로 찾아가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 길눈이 밝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halim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30여분 지체하고 말았다. 어렵게 찾은 선생의 집은 노교수, 시인, 문학이론가에 대한 두고보者들의 고정관념과는 조금 다른 현대적인 디자인의 회색 목조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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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im : 안녕하세요. 잠시 빙빙도느라 늦었습니다. 저는 전에 연락드렸던 두고보자의 halim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편집장인 capcold ...

capcold : 안녕하세요. capcold 입니다.

halim : 귀한 시간 내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 반갑군요. 길어질지도 모르니 서재로 좀 갈까요? 길게 이야기하기엔 거기가 좋을 듯하니 ...

(세 사람은 서재로 자리를 옮겨서 선생의 책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다. 곧 옅은 커피 세잔이 놓였다. 따스한 갈색조의 서재는 손대면 스르르 미끄러질 듯 깔끔하면서도 조용했다)

: (명함을 들여다보며) 음 ... 두고보자라고 하셨는데 어떤 곳이지요?

halim : 좀 거창합니다만, 두고보자는 창작과 비평을 함께 아우를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연발생적인 모임입니다. 구성원도 학생에서 작가까지 다양하구요. 여러 분야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만화계에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천하지요.

capcold : 현재는 주로 만화비평 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운영하는 웹진 ‘두고보자’의 1주년 기획인 만화평론특집을 준비하면서, 그 일환으로 이렇게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러 왔습니다.

: 젊은 사람들이 만화에 관심을 갖는다니 고무적입니다. 어떤 분야가 잘되려면 분야를 전공할 인력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예전엔 하려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

halim : 저희들이 보기에 70년대가 오히려 만화 작품 자체와 작품 내적 가치에 집중했던 시기로 보입니다. 지금은 뭐랄까. 산업적인 가치 혹은 대중문화로서 오락적인 가치 이런 것에 대한 관심만 증폭된 느낌입니다.

capcold : 먼저 ... 당시 만화에 대한 비평활동을 시작하시던 때의 정황을 듣고 싶습니다.

: 내가 만화비평활동을 시작한 게 79년이었습니다. 월간 <뿌리깊은 나무>에 대중문화 비평란이 생기면서이지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박수동의 『고인돌』, 고우영의 『삼국지』 등의 만화집이 상당히 호평을 받았지요, 그리고, 그 전까지는 대본소와 가판대에서만 유통되던 만화가, 일반출판사에서 출판되어 서점 판매대에 올라온 것도 사실상 이 무렵이 처음이었어요.

하급장르로 취급하던 만화를 일반 단행본 출판물 혹은 예술작품으로 인정하게 된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지요. 이런 사회적 현상이 나타난 것이 70년대 후반이었는데, 그게 만화만 그랬던 게 아니었지요. 60년대 전후로 해서 한국미술도 이전에는 산수화나 문인화 중심으로 선비, 전문화가의 그림만 관심을 갖다가, 그 무렵에 와서 민화 등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으며, 음악 쪽에서도 판소리가 재평가되던 시기였고 ... 말하자면, 그런 주변장르의 여건과 함께 어울려서 만화가 정식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고.

거기에 더해서 당시는 출판문화가 급격히 변화했던 시기였지요. 언론탄압으로 해직 기자들이 출판사의 경영자나 기획자로 들어오던 때였고,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뿌리깊은 나무>에 대중문화 비평란이 생겼습니다. 그 때 만화란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고,

당시 편집위원 중 한사람이던 김현씨가 나에게 제의했지요. 만화란을 담당해달라고. 그래서, 당분간 내가 맡겠다 그랬었고. 그게 70년대 말의 상황이었습니다. 어쨌든 당시에 출판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던 때, 또 물질적 풍요를 기대하는 낙관적 견해가 조금씩 생겨나던 무렵 ... 그런 사회적 분위기였다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halim : <뿌리깊은 나무>에서 먼저 의뢰해 왔다면 그 이전부터 뭔가 만화에 대해 의견을 표명해오신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만,

: 그건, 내가 김현씨와 가까운 사이었기 때문인데,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고 그랬지. 문학 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를 공유하던 사이라서 김현씨가 내가 만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한국만화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 평가와 개인적인 관점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런 관계로 김현씨와 나는 가끔 만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만화를 예술로서 보고자 했고, 장르가 나쁜 게 아니라 장르에 속하는 개별 작품이 좋고 나쁨이 문제라는 공통적 의견도 갖고 있었고.

참 아까 하나 빠뜨렸는데 그때는 홍콩에서 무협영화가 한참 쏟아져 들어올 때였어요. ‘외팔이’ 시리즈 ... 무협이라는 것이 동양인의 허무주의의 표현이거든. 서부극이 서양의 허무주의고. 사실 서부극이나 무협영화나 마지막은 똑같아. 싸워 이긴 주인공이 홀로 석양 속으로 걸어가는 식으로 끝나지요. 서부극이 총을 먼저 뽑아서 쏘는 녀석이 이기는 거라면, 무협에선 상대방 우두머리랑 내공(장풍)으로 대결하지요. 외공(권총)과 내공의 차이도 지정학적으로 다른 정서의 산물이지요.

무협영화의 등장이 만화의 재평가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무협물은 역사물이 아닙니다. 만화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극단적 상상력의 산물이지요. 즉, 황당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동양적 상상력의 한 극단이 영화 속에 들어와 서부영화와 같은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 내었지요. 무협영화의 새로운 가능성 속에서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지 않나요?

capcold : 그렇게 시작한 만화비평을 얼마나 하셨는지요. 또 같이 활동하시던 분은 ...

: <뿌리깊은 나무>월평은 한 1년가량 했었지. 사실 내가 이것을 계속 할만한 여력이 없었어요. 당시 만화비평을 처음 시작하니까 대학 학보사 쪽에서 대단한 관심을 보이더군. 만화가 주목을 끌면서 대학 학보사와 여러 시사 잡지의 상당한 지면이 만화에 할애되었고, 청탁이 많아서 내가 감당할 수 없었어요. 대부분 거절했지만, 대학 학보사의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받아줬지요.

당시 같이 활동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김현씨도 자기 분야가 바빠서 만화까지는 깊이 관여를 못했어요. 이 방면에 전혀 인프라가 없어서 뭔가 하나 쓰려고 해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것을 찾아보려 해도 그저 몇 편의 글이 있는 정도였죠. 그 이후에 약 3년 정도 더 만화관련 글을 쓰다가 끊었지요.

halim : 1984년에 모 잡지에 실린 것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 마지막으로 한 거라면 아마 <2000년>이라는 잡지가 아닐까 싶네요. 그런 잡지가 있었지요? 그건 신고(新稿)는 아니고 전에 쓴걸 다시 정리해 줬지요.

capcold : 이전의 필자나 이론가들로부터 영향관계 같은 것이 있었는지.

: 이전의 것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은 전혀 없었지요. 논의를 바닥부터 세워나가야 했어요. 영향받을 만한 자료도 거의 없었고.

halim : <뿌리깊은 나무>에서 만화비평을 하시는 동안 두 차례에 걸쳐 ‘한칸만화공모전’을 시행하셨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좀 이야기를 ...

: 대중문화비평 지면을 가진 잡지로서 신인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이 나와서, 한 컷 만화 위주로 신인 공모를 했지요. 근데 한 컷 만화라서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었을 거야. 만화라는 게 크게 보면 해학과 기지와 선으로 구성되는데 한 컷 짜리 만화로는 이 세 가지를 모두 만나게 하기가 힘들거든요. 아마 당시 80여명 안팎의 응모자가 있었지요.

halim : 당시에 정확히 어떤 취지에서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저희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미래를 내다보는 ... 통속적인 표현으로는 적중률 높은 공모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뿌리깊은 나무> 만화비평활동이 남긴 중요한 성과 중 하나 아니었나 싶구요.

capcold : 본선에 오르거나 당선된 작가들만 봐도 ... 카툰 쪽에선 김마정, 강창욱, 일반 극화작가로는 김수정, 이희재, 김형배, 신종봉 ... 등등 상당하고 ... 다들 지금은 한국만화계의 중견입니다.

: 그렇습니까? 뭐 제가 오랫동안 만화계에 관한 관심을 못 갖다보니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군요. (웃음) 당시 심사는, 뭐, 내가 안 했다고 하더라도, 여기 오신 여러분이 했다고 하더라도 뽑은 결과는 거의 비슷할 것 같아요. 만화 특유의 해학, 기지 이런 것은 한꺼번에 와 닿는 그런 것이 있거든. 당시 심사를 박수동, 김현 그리고 내가 했는데, 좋은 작품은 누가 보아도 알게 되어 있습니다.

halim : 지금은 오히려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기본적인 방향성이 없구요. 최근에는 아예 잡지 편집기자들끼리 모여서 자기들이 보기에 그림 좀 그리고, 다루기 쉬울 것 같은 신인들 데뷔시켜서 몇 편 그려보게 하고 인기 얻으면 계속 밀고, 아니면 또 뽑고 하는 식으로 ...

: 당시엔 만화를 예술로 보려는 의도와 욕구가 우리 또는 당시의 몇몇 사람들에게는 강했다고 봅니다. 상업적인 것을 염두에 둘 이유가 없었지요. 여러분도 보면 알겠지만 작품 자체가 갖는 내적 가치, 소구력 그런 것을 중요시했지. 그게 시대적 요청이었고, 또 내 체질상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halim :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글 중에 고바우의 통속성과 한계에 관해 논의한 것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만, 그러한 전세대의 성과들을 토대로 새로운 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90년대에도 여전히 고바우에 대한 칭찬 일변도의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듯 합니다.

: 지금도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데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지. 두 분은 나하고 달리 만화비평을 주업으로 삼겠다고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훨씬 더 나보다 날카로워 져야 돼요.

우리(문학가)들이 보기에는, 내가 비평을 시작하기 이전까지는 70년대 한국의 만화가들에게는 만화가 예술이라는 작가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표절에 대해서도 그렇지 ... 중요 작가들도 표절을 했을 만큼 표절 그 자체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예술가로서의 작가의식이 있었다면 그렇게 표절할 수가 없었을 거 아닌가요?

그런때 였으니 만큼 <뿌리깊은 나무>의 비평란 파장이 상당히 컸었어요.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잡지의 하나였으니까. 내가 그 때 느꼈던 부담감도 대단했고. 또 만화가 입장에서도 정식으로 비평의 대상이 되어본 경험이 없어서 충격이 상당했을 거고. 나는 그때 만화비평으로서는 첫 시작이고 또 유일한 지면이었으니까 가급적이면 만화의 장르별로 다 흩어보려고 했어요. 어떤 길잡이역할을 하려고 했구요.

capcold : 그런 여건 하에서 이뤄진 만화 비평에 관해 독자들 또 작가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만화도 분석하고 비평하는 작업이 가능하구나 하는 놀라운 반응. 또 뭐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냐 하는 그런 반응 ... 두 가지가 있었지요. 후자는 주로 외부적인 시각이었고, 오히려 만화에 관심 있는 우리로서는 박수동, 고우영, 강철수 등 당대의 작가들과 작품을 보면서 우리의 관심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 하는 자성론이 있었지. 대화를 해보면 고우영이나 박수동 등도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고, 작가로서도 뛰어난 사람들이고 ...

halim : 그때 이미 그런 자성론이 있었군요. 지금은 대체 얼마나 늦은 것인지 ...

halim : 앞에서 당시의 표절풍조에 관해 이야기하셨습니다만 그 점에서는 요새도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듯 합니다. 오히려 더 나빠진 게 아닌가 싶은 것이 예전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것이 밝혀지는 것 -을 문제시하는 풍조가 있었고, 이런 부분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다 비슷해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식의 견해가 제시 되는 것을 보면 ...

: 일본만화는 말이지요. 우리보다 많이 앞서 있지요. 하지만 그 영향이 지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만화비평을 하던 시절, 그리고 그 전에도 일본만화의 영향은 대단히 많았다고 보아야 하지요. 그러니까 지금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숙제로 계속되어온 것이지요.

일본만화의 영향이라니까, 아까 나왔던 것과 관련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할 것 이 있는데 만화가가 되면 지정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해요. 중국은 말이죠, 무협지를 보면 내공을 수련하지. 근데 서양은 외공이지요. 그러니까 권총을 어떻게 빨리 다루느냐에 중점을 두고 수련하지요. 그걸 보면 확실히 서양인들보다는 동양인들이 내면적 성향이 강해. 또 같은 동양이라도 지정학적 특성에 따라 달라지지. 삼국지를 보면 장비라든가 조자룡 이런 장수들이 싸우는 걸 봐요. 대량 살육이 영웅의 조건이야(웃음). 근데 일본은 대량살육이 아니지. 한 놈을 어떻게 빨리 베는가, 어떻게 한 사람을 전문가답게 죽이는가, 기술이 문제지, 중국은 기술보다는 양으로 누가 더 많이 죽이는가의 문제고. 마찬가지로 중국 무협지에 보면 경공이 있지? 그건 땅이 넓어야 생겨날 수 있는 개념이야. 반면, 한국이나 일본엔 경공이 없고 경보(좀 빨리 달리는 정도)만 있지. 다 그렇게 상상의 세계가 달라지는 법이에요.

또 시대에 맞는 상상력도 있어야 하지요. 고우영 극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조정에서 군사를 모집하는 부분을 삼국지의 원본에 구애받지 않고 현대에 맞게 바꾸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이 재미를 얻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지정학적, 문화적, 시대적 상상력이 있어야 돼요. 여기 김천정씨를 보면(한국만화의 현실 표지를 가리키면서) 군계일학이지. 만화에서 이런 시적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때까지 우리나라에는 없었어요.

halim : 김천정씨는 이후 카툰작가로 활동하시다가 최근에는 소식을 못 들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 분의 작품을 선생님의 책을 통해서 처음 접했는데 상당히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작가이고.

capcold : 지정학적 상상력이라 ... 좋은 말씀인 것 같습니다. 현재의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일본의 상상력을 그대로 옮겨와서 만화를 그릴 뿐,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 문화적 특성을 살리려고 하지 않거든요.

: 나는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려고 하진 않아요. 지정학적으로 워낙 인접해있기 때문에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지. 어느 정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해요. 다만 일본만화의 상업적 영향이 지대하더라도, 항상 그 밑에서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욕구가 젊은 계층사이에서 적극적으로 표출되기를 희망해야겠지요? 너무 일본 만화를 겁낼 것도 없고, 무조건 경계할 필요는 없고.

막말로 백년 앞선 것을 10년 베껴서 따라잡을 수 있다면 베껴야지. 근데 사실 그렇게 해서 90년이 따라잡혀지지는 않아요. 그게, 그렇게 되지는 않지. (웃음)

halim : 선생님께서 펜을 놓으신 후의 흐름을 조금 정리해보자면, 80년대 초중반 최열씨를 필두로 한 민중미술 진영의 이론가들이 만화 쪽에 유입되었습니다. 만화를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도구로 파악했던 것이죠. 대학학보를 통해서 혹은 노동, 농민운동관계의 지면이 주된 활동공간이 되었구요.

오 : 80년대 중반이 만화 뿐 아니라 모든 장르에서 사회적 시각을 갖도록 일종의 역사적 심리적 억압이 작용하던 시대였으니까. 내가 만약 그 때까지 했더라면, 모르지 ... 없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예술 각 장르가 가지고 있는 독립성 자율성 ... 이런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70년대 노선을 벗어나진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은 있네.

capcold : 90년대에 들어오면 이제는 만화를 산업적, 상업적 가치로서 파악하는 시각이 득세하게 됩니다. 상업적인 시각에 휩쓸리다보니 만화를 작품 자체로서 보는 관점이라든지 하는 것이 상당히 부족하게 되었죠.

halim : 70년대 - 80년대 - 90년대로 이어지는 이런 변화를 저희들은 일종의 퇴보로 보고 있습니다만 ...

오 : 좋게 말하면 파행이고(웃음)

capcold : 또 한가지 문제점은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전세대의 이론가들이 절필하거나 하는 식으로 완전히 활동을 접고, 다시 새로운 인력이 유입되고 하는 식이었다는 것이죠. 어떤 이론적 토양이 세대를 거쳐 축적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halim : 예컨대 90년대 들어와서 당시 새롭게 떠오른 모 평론가를 두고 만화평론가 1호 라는 식의 자칭, 타칭이 이뤄지면서 적잖은 곤혹스러움을 유발하기도 했지요. 단절의 정도를 짐작할 만한 부분입니다.

capcold : 물론 거기에는 ‘정식등단’한 평론가만을 인정해준다는 식의 배제 논리가 있긴 했지만요.

오 : 정식등단? 정식등단 운운하는 것보다 누가 좋은 비평을 하느냐가 문제겠지요. 뭐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가들 중에 정식등단이라는 경로를 거친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halim : 참, 여담입니다만, 먼저 보내드린 책들(주: 90년대에 나온 작가주의 성향의 작품들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했고, 이진경의 ‘사춘기’ 外 일부 책을 사전에 보냈음)은 보시기에 어땠는지요. 90년대 후반에 일정한 비평적, 혹은 예술적 성과를 거둔 작품들이라 생각합니다만 ...

오 : 미안해요. 요새 강의하느라 바쁘고, 사실 내가 이쪽(만화계)을 지원하기가 힘들어요. 12월쯤 종강을 하고 한 번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요. 두 분은 잘 모르시는 내용인데, 내가 건강이 안 좋은지 8년 정도 돼서, 요새는 인터뷰를 잘 안하거든요. 강의 외에 사회활동도 마찬가지이고, 게다가 원래 내가 밖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이번 일도 내가 죄(만화비평집 - 한국만화의 현실 - 출간한 것) 지은 게 있어서 책임감을 느끼고 승낙한 거예요. (웃음)

capcold : 회고조로 흘러온 감이 있는데요. 이제 좀 거창한 혹은 몇 가지 원칙에 관한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우선 만화에서 평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오 : 만화가 갖고 있는 장르적 가치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고, 장르 안에서 호흡하고 있는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데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작가론, 작품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요. 작품이 나오면 그것에 관한 작품론이 나와야 하고, 작품집이 여럿 나오면 그걸 놓고 작가론을 세우고, 이렇게 쌓아야 해요.

halim : 가장 기본적인 점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만, 최근 만화평론의 문제점도 거기에 있는 것 같구요. 그런 기초 쌓기가 충실히 이뤄져야 할텐데, 세대가 지날수록 논의는 가벼워지고, 비판적 시각을 담아서 작품을 논하기보다는 단순히 ‘이 만화가 읽을만하다’는 식으로 대중들 앞에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는 그런 수준 ...

오 : 만화비평을 하려면 여러 가지를 알아야 해요. 힘들지요. 우선 그림을 알아야 해요. 그림을 모르고 만화를 이야기하기 힘들지. 그 다음에는 문학(언어)을 알아야 하고, 이 두 가지를 알고 그 다음에 사회를 알아야 하지. 미술 하는 사람이 문학(언어)을 함께 하기가 만만치 않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또 만화가 갖고 있는 장르적 특성 기지, 해학, 선의 만남 ... 이 부분이 워낙 뛰어난 상상력을 요구해요. 아무리 해박한 이론가라고 하더라도 뛰어난 상상력을 갖지 않으면 그 작품을 재미있게 분석할 수가 없어요.

이게 상당히 중요한데, 만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장르에서 좋은 비평가라는 것은 감식안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게 무슨 얘기냐 하면 좋은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의 가치를 -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이전에 -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건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러나 이건 좋은 비평가의 한 부분일 뿐이지 전부가 절대 아니야. 한 쪽만 가지고는 안 되지. 여기에 플러스되어야 하는 것이 감식안 즉 예술적 직관력이지. 물론 비평적 상상력과 예술적 직관력도 훈련에 따라서 획득할 수 있어요. 문학도 미술도 끊임없이 읽고 감상하면서 그게 축적되면서 아는 만큼 보이게 되는 거지.

capcold : 최근의 논의를 들어보면, 평론가는 작가와 작품을 옹호해야 하고 사회에 맞서서 같이 싸우는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많습니다. 대가이기 때문에 비평하면 안 된다는 논리도 심심치 않게 보이구요.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 : 비평의 역할에 대해 작가들이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지요. 비평가는 작가의 전위대 혹은 선전담당자가 아니야. 비평가는 만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작품을 사랑하고 작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늘 유지하는 사람이지. 그냥 이 작품이 좋다고 선전해주는 게 비평가의 역할은 아니거든. 70년대 말에는 작가들이 어땠냐면 만화에 논리적 분석이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놀라워했지요. 그런 정도였기 때문에 비평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어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사람의 업적이 많을수록 더 비판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충분히 이루었고 충분히 영광을 얻었기 때문에 더 철저히 연구되고 검증되고 또 욕도 얻어먹어야 해요. 대가는 어쨌든 대가거든. 비판을 한다고 대가가 대가아니게 되는 법은 없어요.

만약에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혹은 비판할 필요가 없다면 그건 대가가 아니지. 많은 사람이 들어가서 칭찬하고 비판하고 얻어먹을 건더기들이 많아야 그게 진정한 대가의 작품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비판할 거리가 없거나 재론할 소지가 없는 작품이라면 그건 좋은 작품이 아니었다는 얘기밖에 안되는 거예요.

대가를 만나게 되면 이야기하세요. “선생님은 이미 대가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어디서 시작하나요, 그렇게 말해요. (웃음)

capcold :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대가라고 생각하는 작가나 높이 평가하는 작품이 있으십니까?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 되겠습니다만 ...

오 : 그건 내가 이야기할 입장이 아니지. 나는 3년하고 끊었으니까. 함부로 그런 의견을 내놓을 자격이 없어요. 그리고 ... 작품에 관해서는 이 책(한국만화의 현실)에 다 있을 거예요.

capcold : 3년이라 ... 짧다면 짧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선구자적 활동가들이 다음 시대에 완전히 물갈이가 되는 게 아쉽더군요.

오 : 그게 안 좋지.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했어요. 만화에 관한 비평집을 내면서 서문에도 그렇게 밝혔을 거요. 나에게는 두 분야를 한다는 게 벅찬 일이었거든.

다만 약간 변명을 하자면 ... 상상력은 그 사람의 몸에 따라가는 겁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상상력이 그 방향으로 발휘된다는 얘기에요. 평론을 하면 평론을 위한 분석적인 자아가 활동하고, 시를 지으면 시적 자아가 활동을 하죠. 그런데 두 자아는 그 성격상 전혀 별개의 것이거든 ... 나로서는 그 두 가지를 같이 하기가 힘들었지요.

halim : 꼭 만화에 국한할 필요 없이 비평을 하는 사람의 입장 혹은 비평하는 자세라는 것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오 :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하면,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만화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한 다음에 체계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시작하라고. 작업에 들어간 다음에는 늦어요.

capcold : 관점을 확립해야 한다 ... 핵심적인 지적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에 대한 기준은 비평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세워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요새 평론가들은 정말 좋은 작품에 대한 명확한 모델이 없이 작업하기 때문에 대부분 칭찬 일변도로 흐르게 되고 ... 나쁜 작품이 있을 때도 거기에 비판적 시선을 실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지면 자체가 ‘나쁘게 이야기하기’를 허용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구요.

오 : 그렇지 비평가도 비평의 대상이거든. 비평가도 스스로에게 철저해야 해요. 스스로의 에너지, 살아남을 원동력이 있어야 하지요. 여러 분야에 많은 비평가들이 있지요. 만화 쪽에도 있게 될 거구요. 독자들의 수준은 날로 높아지는데 높지 않은 수준의 비평이 살아남을 수는 없거든요.

capcold : 선생님께서 갖고 계신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오 : 글쎄요. 내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고 ... 우선 좋은 작품에 대한 기준을 세우세요. 그 다음 나쁜 작품에 대해서는 그 반대로 하시면 되는 겁니다. 진짜 좋은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서면 나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도 서거든.

다만, 내가 두 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숨길 부분은 끝까지 숨기되 만약 그것을 노출시켜야 한다면 많은 부분을 감안해야 할 것이며 감정이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작품 자체에 대한 엄정한 비평은 필요하지만 작가를 그냥 엉터리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지. 그 작품이 나쁜 것이지 그 작가가 나쁜 것이 아니거든요. 만화장르도 마찬가지야. 장르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가치를 수용하는 형식이거든.

halim : 조금 다른 이야깁니다만, 만화장르 자체를 예술로 칭하면서 인위적으로 격상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장르의 지위상승이란 의도적인 호칭에 신경쓰기 이전에, 장기간에 걸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이 누적되고 그런 과정에서 귀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제9의 예술 운운하는 것이 일종의 자격지심의 발로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만.

오 : 음 그건 좀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만화라는 장르는 가치중립적인데 그 동안 좋은 작품이 없었을 뿐이다,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하위문화 취급을 받아온 만화의 경우 기존의 나쁜 평가가 - 나중에 나타날 수도 있었을 -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밀어내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 점에서 만화장르 자체의 예술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할 필요도 있어요.

또, 만화를 문화산업적 논리로 파악하는 논의도 충분히 가능해요. 만화 장르자체에 대한 평가가 산업적으로 흘러가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단지 개별 작품이 상업논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계하면 되는 것이지요. 돈 되는 것을 먼저 찾는 것은 모든 문화장르의 기본적인 속성이에요. 너무 그쪽으로만 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게 비평가의 역할이니까.

halim : 끝으로 저희에게 혹은 새로 이 분야에 뛰어드는 사람에게 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오 : 두 분이 정말 이 일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남의 눈치를 보지마라.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는 일에만 관심을 둬라! 아주, 평범한, 자주 들음직한 이 말이 두 분의 장래를 결정할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일에 미친 자들이 아니었던가요?

capcold & halim : 장시간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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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규원 선생 프로필 ]

본명 : 오규옥(吳圭沃)
1941년 경상남도 삼랑진 출생
1961년 부산사범학교 졸업, 그후 동아대학교 법학과 졸업
1968년 『현대문학』에 <우계(雨季)의 시(詩)>,<몇 개의 현상(現像)>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9년 『뿌리깊은 나무』 대중문화비평 - 만화란 담당
1982년 제27회 현대문학상 및 연암 문학상 수상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사랑의 기교』(1975),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1987), 『마음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 소리』(1995)
평론, 이론관계 저술 : 『현실과 극기』(1976),『한국만화의 현실』(1981),『언어와 삶』(1983), 『현대시작법』(1990)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50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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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 BY WHANGUN
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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