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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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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만화와 평론 - 해석공동체에 관하여(2) : 발생과 변화양상, 지리한 각론들
만화는 흐른다 02/01/15 20:15 halim
2. 왜 만화인가

일반인식에 기초하여 이야기하자면 만화는 대중문화이며 양상2에 해당된다. 19세기 이전의 행적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지난 100년에 한정해 볼 때 만화는 대중문학, 대중영화, TV ... 그리고 최근에는 게임과 함께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어온 장르였다. 사실 만화는 대중문화가 아니라고 하면 만화장르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보다는 ‘대중문화’ 개념 자체를 재검토하려는 사람이 - 아직까지는 -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기서 만화에 관해 양상3과 해석곧동체의 역할론을 이야기하는가. 한 마디로 대중문화로서 만화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이 엔터테인먼트의 주류로 떠오르고, 온라인에 기반한 새로운 매체가 급속히 확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출판만화의 대중적 기반은 정체 혹은 감소하고 있다. 그런 대중성 상실의 흐름이 고급문화가 보여주는 전문비평의 성립을 수반하게 될 것인가를 물어본다면 이 역시 의심스럽다. 아니, 이 두 요소는 서로 맞물리는 관계에 있지도 않다. 몰락한 대중문화는 그저 몰락한 대중문화일 뿐이다. 고급문화로서 전문비평의 영역이 자리 잡기 위한 외적 조건들(내적 조건은 물론 이야기할 만한 작가와 수준 높은 텍스트의 존재이다), 향유계층이 사회적으로 상위계급 이며, 사회적 인식의 수준이 높을 것, 대학과 학회를 중심으로 하는 아카데미즘 적 기반이 있을 것 등에서 만화는 매우 부족하며 오히려 그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 만화장르 내에서 해석공동체의 비중이 점차 증가할 것임을 예견하게 하며, 80년대 후반 이후 지난 10여 년 간 한국 만화계는 그러한 관점에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변화양상을 보여주어 왔다.

현재의 만화독자들은 만화를 구입함으로서 작가와 출판사와 관련 종사자에게 경제적 수익을 안겨주는 기본적인 역할을 넘어서서, 좋은 작품 혹은 그렇지 않은 작품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 가치평가를 하며 ... 때로는 전문평론가들이 맡아줘야 할 영역을 침범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으로서 활동한다는 것과 어떤 집단으로서 활동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화독자들 일개인은 여전히 ‘평범한 만화독자’로서 남아있지만, 그런 평범한 독자들의 모임 그리고 구성원들의 활발한 의견교환을 전제로 하는 해석공동체는 명백한 비평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비평적 역할을 하는 해석공동체는 비평집단[주2]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 구성원 하나하나로 환원할 경우 그 개별 독자들이 비평가인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존재하는 만화관련 모임들은 해석공동체의 활동양상에 대한 앞서의 기술에 적잖이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만화에서 전문적인 비평의 영역은 상당히 약화되어 있으며 그 자리를 일반 독자 레벨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해석공동체’라고 불리는 것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전문비평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만화 뿐 아니라 대중문화장르 전반의 특징이긴 하지만, 다른 장르의 경우 이것이 비평부재의 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데 비해 만화의 경우 해석공동체들이 적극적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주위에 전파하는 비평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차별점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정도의 문제이다. 비슷한 활동양상을 보이는 독자집단은 다른 어떤 장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만화고유의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인 관점 하에서도 등장시기라든가 활동상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만화관련 해석공동체들의 면면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예컨대 PC통신과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먼저 생겨난 문화분야의 소통공간이나 resource site는 거의 예외 없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한 것 이었다.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에 이후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되돌아보면 80년대 이전과 2000년대 이후 사이에 놓인 90년대는 특히 해석공동체의 형성과 변화양상을 통해서 본 90년대는 일종의 과도기처럼 느껴진다. 과연 남은 것은 무엇이고, 이후의 방향은 무엇인가. 한국의 상황을 중심으로 그 변화 양상과 성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주2] 이 글에서는 비평과 평론을 엄밀하게 구분하고 있지 않다. 다만 개별적인 평론'글'보다는 비평'작용'에 주목하는 것이 이글의 주된 관점이므로 가급적이면 평론보다는 비평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3. 흐름에 관해 (1) - 어떻게 생겨났고 흘러왔는가.

▶ 세대적 관점

시작은 언제인가? 만화관련 해석공동체들의 자생과 그것의 초창기를 주도했던 만화, 애니메이션 애호가 1세대는 출생년도로 볼 때 60년대 초,중반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보고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던 개인들은 적지 않게 존재했지만 그것이 독자레벨에서 집단화 되거나 흐름을 형성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이후와 구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50년대 혹은 그 이전 세대의 만화애호가들은 자신의 직업으로서 만화가 혹은 애니메이터의 길을 선택한 소수의 경우(하지만 그런 ‘경우’에 관해 논하기도 애매한 것이, 정작 이 세대의 만화가나 애니메이터들에겐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결과적으로 ‘그것’ 이었을 뿐 선택 이전에 ‘자신이 열렬한 만화애호가’이어야 할 당위성 같은 것은 없었다)를 제외하면 단지 ‘어릴 시절 추억의 만화’로서 남을 뿐 이 세계와 소원해졌던 것에 비해 6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세대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공유할 동료를 찾고 자발적으로 모임을 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며 이것은 80년대 초 중반의 일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자생적인 만화창작공동체의 기점이라 할 수 있는 PAC의 창립이 1983년 9월이고 주요 구성원들이 60년대 초,중반 세대였던 것과, 많은 경우 소비는 창작에 따라 나오는 것임을 감안할 때 해석공동체의 발생시기도 80년대 초,중반으로 잡는 견해의 다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역사적인 흐름

그런 기조아래 개별공동체들의 역사적인 흐름에 대해서 약간씩 일별해보도록 하자. 80년대 중반. 한국에서 소규모 애니메이션 감상회의 형태로 초창기 관련모임들이 생겨나던 시기에 미국과 일본에서는 상용PC통신망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활동을 본격화하게 된다. Compuserve, Niftyserve 등의 상용통신망에선 동호회와 유사한 포럼의 형태로 만화애호가들의 모임이 형성되었으며, 인터넷에서는 usenet과 mailing list 및 몇 군데의 공개 ftp가 주요한 통로가 된다. 이들의 활동은 국내의 동호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93-94년까지만 해도 국내통신망 자료실에 업로드되는 자료나 관련 정보의 상당부분은 Compuserve Comics Forum이나, Venice 등을 원 출처로 하는 것 들 이었다.

이 시기의 활동 중 기억할 만한 것으로는 news group rec.arts.manga를 중심으로 진행된 Manga Guide 작성이 있다. 1990년에 일본만화작가와 작품에 대한 온라인 목록을 구축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이 작업은 이후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현재는 독립적인 홈페이지에서(http://www.geocities.com/~/4996/index.html)에서 1400명 이상의 작가에 대한 정보 및 해당 작가의 작품리스트를 제공하는 방대한 작가인덱스로 발전하였다. rec.arts.manga에서는 Ultimate Manga Guide 외에도 여러 가지 만화관련 guide를 작성하였으며 그 대부분을 현재까지 text version으로 갱신해오고 있다. 만화 뿐 아니라 초기 news group의 성과물 중에는 이후 의외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것들이 여럿 있는데 1989년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는? 이라는 주제의 토론으로 시작된 IMDB는 그 한 예일 것이다.

최근 까지도 대형 통신동호회들의 영향력이 상당한 정도로 유지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90년대 이후 빠르게 인터넷의 비중이 증가하였고, 1995년경에 이르면 만화,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소통공간의 무게중심은 폐쇄적인 상업통신망에서 인터넷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초기 인터넷 홈페이지들은 주로 대학의 관련 애호가 모임에 기초하여 구성되었으며, 1995년부터는 이들 홈페이지에 관한 방대한 indexing 서비스인 Anime web turnpike가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해외의 흐름을 곁눈질 하면서 한국에 눈을 돌려보면. 1989년 10월 천리안 애니메이트가(Animate) 개설되었고, 뒤이어 하이텔 애니메이트, 포스서브 애니동 등 현재와 같은 형태의 통신동호회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한다. 최신의 정보나 자료를 외국의 **ftp, **forum에서 얻어오고, 현물의 입수를 위해 회현과 고속터미널을 분주하게 오가는 시기가 한 동안 지속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각 동호회들은 상당한 정도의 자생력을 갖추고 다양한 활동상을 보여주게 된다.

물론, 천리안 애니동 개설 이전에도 비슷한 성격의 모임들은 존재했다. 80년대의 해석공동체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수준에서 생겨난 소규모 애니메이션 감상모임, 해외자료 구입을 위한 커넥션(?), 창작을 병행하는 아마추어 서클 등의 형태로 활동했다. 다만, 그런 모임들 중에서도 ‘공개리에’ ‘목소리를 높여’ 활동할 수 있었던 쪽은 80년대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듯이 운동지향적인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90년대 해석공동체들의 원류가 되는 흐름들을 더욱 지하로 묻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비슷한 시기에 성립하여 도움과 경쟁의 관계를 유지했던 천리안과 하이텔 애니메이트의 성격은 조금 달랐다. 초기에 더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것은 핵심멤버들의 연령대가 조금 더 높았던 천리안 애니메이트였는데 90년대 중반까지 이 곳에서 주력했던 한 가지는 한국만화를 재평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외(주로 일본이었지만)에 소개하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방향성이 생겨나게 된 밑바닥에는 국내에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유포시킨 주모자(?)로서 부채감 같은 것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순정고전들을 중심으로 한국만화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은 회지를 만들어 일본 코미케에 참가하기도 했고, 김진을 시작으로 한국만화작가 홈페이지를 제작, 운영하기도 하였다. 1996년 3월에는 동호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하였는데 PC통신동호회로서는 최초였다.

하이텔 애니메이트는 천리안에 비하면 좀 더 대중적이고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창작, 번역란을 통해서 일본만화의 번역을 올린다든 가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만화(라비헴폴리스, 별빛속에 등)를 애니메이션화 했을 경우의 가상 시나리오를 제작한다든가 하는 식의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1994년에는 동호회 내의 소모임 상준사(상영회를 준비하는 사람들)를 중심으로 대본/평론집 '愛.畵.夢'을 제작하였는데, 이를 위해 동호회 차원애서 '평론공모전'을 실시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하이텔 애니메이트는 인터넷으로 소통공간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지금도 활력을 잃지 않고 있으며,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출판기획자, 잡지 편집자, 기자, 번역가, PD, 관련필자, 만화관련 상업사이트 운영자 중 상당수가 하이텔 애니메이트 출신이거나 회원일 만큼 통신공간상에서 ‘담론의 메인스트림’을 형성하고 있다.

하이텔 애니메이트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들뜬 - 논쟁을 거절하지 않는 - 분위기를 가진 나우누리 ANC의 활동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같은 해 10월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운영되고 있는 토론장인 듯 하다. ANC 토론장은 7년간 약 50개 이상의 논제로 토론을 진행했으며, 한국만화의 왜색, 통신망 만화자료의 저작권, 대여점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의견교환과 여론형성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그 외에 각 출판사와 잡지별 게시판을 개설하여 만화독자와 출판사간의 의견교환 창구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도 ANC의 특징 중 하나였으며, 2000년에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한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목적으로 ANC연구실을 개설하기도 했다.



4. 해석공동체의 성격과 성과물

▶ 거리낌 없이 일본만화에 집중하기

옛날이나 지금이나 온라인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여러 만화관련 모임들의 주요한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는 - 일종의 업보처럼 끌어안고 있는 - 것은 일본만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비중, 그리고 이에 관한 거리낌 없음 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뭐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정도의 궁색한 변명 혹은 한국만화의 재미없음에 근거한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 사실 자체는 명확하다. 그리고 이 점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는데 해석공동체 구성원 자신들은 YWCA 출판만화모니터모임 같은 외부기관의 왜색, 일본편향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일지언정, 그러한 일본편향성에 관해 그다지 거리낌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관하여 일본만화가 한국만화보다 뛰어나니까. 혹은 적어도 더 재미있으니까 등의 이유를 댈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보통 너무나 당연한 것을 해답으로 제시하다보면 논의가 겉돌기 마련이다. 일본만화 재미있다는 거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이고 ... 해석공동체의 성향에 관해서라면 그 보다는 세대적인 관점에 기초한 다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우선 첫 세대들이 TV를 통해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기 시작한 70년대 초반 이후 일본애니메이션의 국내방영이 본격화 된 것을 외적 요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세대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작가는 나가이 고 였다. 마찬가지로 70년대 초반 출생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작가는 마츠모토 레이지였고, 조금 더 뒤의 세대에게 익숙한 것은 마법소녀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70년대 중반 이후가 되면 일본만화가 한국작가의 표절원본의 형태가 아닌 일본만화 그대로 인 채 유입되기 시작한다.

6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세대들은 ‘일본것’을 의식적으로 - 당시 작가이름이 다르게 표시된 것에 대해 나중에 느끼게 되는 배신감은 사소한 문제이며, 그것 때문에 ‘몰랐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 와서는 별 의미가 없다 어쨌든 그들이 본 것은 일본만화였지 다른 게 아니었으니까 - 또 풍성하게 받아들였던 첫 세대이며, 외적인 면에서는 70년대에 열매 맺기 시작한 한국경제의 양적팽창과 이로 인한 일정한 문화적 혜택을 보기 시작한 첫 세대이기도 했다.

지일적 성향에 대한 다른 설명은 80년대 중반에 생겨나기 시작한 관련 모임들의 ‘목적’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국만화와 미국만화의 경우 평가의 수준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사회적으로 내놓고 즐길 만한 것 이었던 반면, TV에서 애니메이션 - 어째서인지 5공화국이 허용했던 것은 주로 마법소녀물 이었다 - 이 방영되고 있고, 만화가들은 열심히 일본만화를 번안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일본만화 특히 원어가 실린 애니메이션, 일본어가 인쇄된 만화는 음성적으로 향유될 수밖에 없었고, 모임의 생성목적 자체가 그러한 레어 아이템들의 공유와 전파(!)에 있었던 만큼 이들 모임 성격이 일본지향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바꿔 말하면 일본지향적이지 않은 소비자들의 경우엔 그러한 모임을 형성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한 성격은 고스란히 90년대의 통신동호회에 이어졌고,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 순정에 대한 강조

해석공동체들이 보여준 다른 특징적인 성격은 편애에 가까운 순정만화에 대한 관심이었으며, 그러한 흐름은 초창기부터 일관된 것이었다. 이에 관한 예는 충분히 들 수 있다. 1991년 봄의 하이텔 애니메이트 15번란(당시8번)란의 게시물 리스트를 보면, 일본만화와 함께 잡지 게재작을 중심으로 국내순정만화에 대한 감상이 주로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장르 지위상승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대가만들기 전략’이 구사되었고, 이에 따라 강경옥과 같은 작가는 90년대 초중반 통신공간에서 한국만화 예술성 성취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격상되었다. 그 외에도 한국최초의 만화관련 인터넷 홈페이지 중 하나일 것으로 여겨지는 ‘김형집의 만화세상’에서 다룬 작가들은 모두 순정작가였으며, 같은 위치에 개설된 최초의 만화가 홈페이지는 강경옥의 것이었다. 천리안 애니메이트가 일본 코미케에 참가하면서 제작한 회지에 한국의 고전순정만화를 주로 소개했으며, 특별원고로 게재된 것이 김진의 미발표 단편이었던 것도 그러한 흐름의 한 예가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애니메이션 텍스트가 거의 없었던 관계로 외국 것 일색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반면, 출판만화 쪽에선 한국만화도 충분히 존재했고, 이에 따라 나름대로 한국만화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주로 강조된 분야는 소년만화나 성인극화 보다는 순정만화였으며, 좀 더 적극적으로 비평적 성격을 띄고자 했던 소모임(만풀, 만보기)들의 경우 그러한 순정편향은 더 심화되고 있다. 일본만화의 강조점이 순정만화에 찍힌 것도 아닌데 왜 한국만화에 대한 관심은 순정만화로 쏠리게 되었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야기할 만한 여건이 되어주었던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것은 한국순정만화의 절대적인 작품 수준이 괜찮았다는 의미도 되고, 다르게는 상대적으로 소년만화에 비해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탓도 있다. 예컨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공식화된 해석공동체들의 이야기 공간에서 드래곤볼이나 북두신권의 압도적인 재미를 뿌리치고 한국의 소년만화에 관심을 돌리는 것은 쉽지 않았던 반면, 아직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일본순정만화 대신 한국의 순정만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또한 애니메이션 쪽의 압도적인 일본편향을 보상하는 의미에서 역으로 그 대척점에 있는 순정만화에 관심을 보내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초기 해석공동체들의 지하문화적인 성격이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듯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성인극화 만화와 맞지 않았던 것, 정교한 내러티브와 심리묘사를 강점으로 하는 일본만화에 익숙한 세대로서 여전히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는 남성만화보다는 덜 권위적이고 심리묘사에 익숙한 순정만화에 관심을 돌리게 했을 것이라는 해석을 붙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교하고 매끄러운 일본만화와 무협, 액션 중심의 성인극화 - 현재 일일만화라고 불리는 것 - 를 동시에 향유하는 것은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니까. 설사 그 일본만화가 이케가미 료이치/고이케 카즈오 콤비의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회원 수 몇 만에 달하는 (아무래도 남성회원들이 더 많았던) 대형 동호회 일반 회원들의 성향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프라인이 여전히 그러하듯이 성별구분은 여전했으며, 자유 게시판에 올려지는 게시물의 대부분은 일본만화와 남성취향의 만화에 대한 것이었다. 순정만화에 대한 80년대의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것도 아니었다. 다만 좀 더 많이 읽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를 원했던 열성회원일수록 - 일본만화에 길들여진 그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키는, 이야기할 만한 한국만화 텍스트로서 순정이외의 것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 순정경도의 성향은 짙어졌으며 그 결과는 이후 좀 더 소규모의 정예화된 비평모임들의 생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어쨌든 순정만화에 대한 강조는 해석공동체의 활동에서 비롯된 가장 주목할 만한 비평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는데, 공식적인 지면이 여전히 이현세, 허영만으로 대표하는 성인극화나 김성환, 박수동, 고우영 등 다른 남자작가들을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시기동안 해석공동체들은 끊임없이 프린스4인방(강경옥, 김진, 김혜린, 신일숙)을 중심으로 일본만화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춘 한국만화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순정만화에 대한 재평가 - 제몫 찾아주기 - 를 시도해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기성 평론가 집단이 순정만화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은 적어도 90년대 중반 이후였으며, 1995년 시네 21 창간호(만화리뷰의 첫 번째 소개 작품으로서)에 ‘별빛속에’ 평문이 게재된 것은 그러한 흐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 초기 비평그룹 중 하나인 ‘만보기(만화바로보기)’에서는 시네 21의 만화리뷰 연재물이 보여주는 순정만화에 대한 관점 그리고 기존 평론가들의 불평등한 논의를 겨냥한 조직적으로 반박논리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서 알음알음 진행되었던 몇 차례의 논란을 거쳐 90년대 후반에 이르면 순정만화는 통신공간 뿐 아니라 공식적인 지면에서도 담론의 우위를 점하게 된다.

▶ 비평을 하지만 평론가는 아니다.

만화장르에서 전문비평의 영역이 미약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이하의 세대별 인터뷰를 비롯한 기획기사의 다른 꼭지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만화비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게임이나 대중문학을 비롯한 대중문화의 다른 장르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풍성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민중운동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든 돈벌이가 되는 매체로 보는 것이든 만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태도들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존재해왔다. 그러나 해석공동체와 그들의 이야기 공간에서 ‘기성만화평론’이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최대의 혹평은 아무런 평가도 내리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한국만화비평은 가장 열성적인 만화소비자들에게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해석공동체들은 간판스타가 한국만화의 기념비적 성취라는 주장에 대해, 만화가 캐릭터산업등 관련 산업의 근간이 되는 유망한 매체라는 주장에 대해, 단행본이나 신문잡지 지면에 언급되는 ‘평론가’들의 주장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실제로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간혹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평론가 아무개의 글을 보니 ***의 데뷔작을 잘못 알고 있더라(그 사람 만화를 보기는 하나~), 오늘자 ***신문을 보니 ***기자가 이러저러한 뻘소리를 하더라(기초자료도 안 찾아보는 무식한 기자~)는 식으로 ‘부정확한 사실관계’를 꼬집는 비웃음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기존의 평론과 평론가에 대한 경멸을 내포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자신과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평론 & 평론가의 자의식이 희박하다는 의미이다. 적어도 만화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간단한 것도 모르는 무식한 평론가들이 하고 있는 그런 것을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가볍게 떨쳐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성 평론가들이 연속해서 뻘타를 날리며, 기성만화평론에 별 볼일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입장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읽기를 원하는 만화애호가들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남길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명백히 비평행위를 하고 그에 관한 글쓰기에 열중하면서 이것은 비평이 아니며 나는 비평가가 아니라는 태도를 지속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몇 가지 돌파구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로서 만화에는 고급문화가 영위하는 그런 형식의 비평은 필요 없다는 원천적인 부정, 기성만화평론이 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 혹은 기존의 만화비평을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적극적으로 차별화된 소모임 결성에 나서기 등. 이것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 분석적인 글쓰기

소재 면에서 해석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이 다루었던 것이 주로 ‘일본만화' 이며 또 '순정만화'였다면,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분석적인 글쓰기'를 주요한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분석적인 글쓰기를 낳은 원인 중 한 가지로 초기전파자로서의 역할을 이야기할 수 있다. 80년대 중반까지 일본만화의 국내도입이 유명작품의 해적판 출간 혹은 개별작가에 의한 표절, 번안작 출간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과도기로서 구호성인만화시대를 거친 90년대 이후의 일본만화도입은 작품을 먼저 접한 독자들의 요구에 출판사가 부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90~91년의 시점에서 (해적) 출판업자들의 앞에 놓여진 일본만화의 물량은 실로 방대했으며, 그 중 좋은 것, 팔릴만한 것을 골라 추천하는 일은 예전부터 일본만화를 보아온 열성독자들의 몫이었다. 열성독자들과 출판사의 관계는 생각이상으로 긴밀해서, 동호회에 올려진 일본만화번역 연재물이 무단으로 해적판 출간에 사용되는 등의 말썽이 있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출판사의 주문을 받아 만화번역을 해주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주요 통신동호회의 게시판을 보면서 아직 출판되지 않은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체크하면서 다음 출간 작품선정에 참고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라이센스판 만으로 연간 일본만화 출간종수가 4천종을 넘어선 지금에야 먼저 본 독자들 의한 선별과 전파의 역할이 많이 희석된 감이 있지만, 주류적이지 않은 여러 영역에서 이러한 기능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만화는 아니지만 1990년 이래 일본 슈에이사 코발트 문고에서 발간되고 있는 구와바라 미즈나(桑原水菜)의 장편소설 ‘불꽃의 미라쥬(炎の蜃氣樓)’가 국내에 소개되고 정식출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주3]은 상기한 상호관계의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열성독자 혹은 그런 독자들의 모임으로서 해석공동체는 이상에 언급한 초기전파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이야기 방법론을 구축하게 된다. ‘정확한 사실관계’ ‘신속한 정보’ ‘텍스트의 방대함’ 등이 기본적인 요건으로 부각되었으며 이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자리 잡은 것이 ‘분석적인 글쓰기’인 것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담보하기 위해서 현지의 만화잡지, 정보지 및 관련 기사들이 인용되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가급적 빨리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미덕이 된다. 글쓰기의 과정에서 해당 작품(하나)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만)을 바탕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작가의 다른 작품, 게재잡지의 성향, 유사한 소재를 취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 등 작품이 놓여있는 맥락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연역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많은 양의 다른 텍스트를 끌어들이게 된다. 다루어지는 텍스트의 양은 많을수록 좋으며 가치판단 보다는 정보전달이 우선한다. 혹 필자의 평가적인 결론을 제시하고자 할 경우에도 해당 작품과 작가에 관계된 텍스트를 가급적 다양하게 섭렵한 이후에 - 혹은 해당 글에 무수하게 인용되는 작가와 작품에 관한 언급들을 독자들이 인정함으로서 - 귀납적으로 도출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분석적인 글쓰기의 예로서 들어둘만한 문헌들의 대부분은 애니메이션에 관한 것인데, 이는 관련필자들에게 제공되었던 지면이 주로 애니메이션 정보지, 게임잡지 등이었던 것(그리고 '기성평론가'들이 만화관련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해당 단행본을 본적이 없는 독자들들 위해서는 N4의 라인업 중 하나로 운영되었던 AZN4(http://azn4.n4.co.kr)의 글들을 예로 들어줄 수 있겠다.

이러한 경향은 상당한 장점(위에 언급한 것 대부분이 그 자체로 장점이다)을 갖지만 그와 더불어 간과하기 힘든 몇 가지 단점도 수반한다. 우선 정확한 사실관계에 대한 강조는 다양한 텍스트와 인용 혹은 믿을 만한 근거의 명시 등으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는 주장들을 가벼이 여기는 일종의 편협함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사실관계의 한 부분이 틀렸을 경우 비록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글의 다른 부분, 필자의 다른 주장들에 대해서도 일괄하여 평가절하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방대한 텍스트의 섭렵에 집착하다보면 작품 하나하나가 가지는 고유의 의미에 대해 깊이 숙고하기 힘들고, 귀납적으로 얻어내기 힘든 - 비평적인 상상력이나 직관에 의존함으로서 나올 수 있는 - 가치 있는 결론들을 밀어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만화이외의 것과 만화를 비교하고, 만화이외의 방법론으로서 만화를 분석하는 것을 거부하는 - 만화고유의 방법론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 경향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상기한 장점과 단점은 항시 같이 나올 수밖에 없는 동전의 양면일까? 기질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상당부분은 필자의 자질에 관련된 문제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이야기하기의 방법론 혹은 깊이 있는 통찰에 필요한 일정정도 이상의 인문학적 소양 같은 것을 체득하고 있느냐의 문제 같은 ... (물론 이에 관해서는 너무나 많은 만화를 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볼 시간이 없다!!! 는 지극히 현실적인 지적이 주어질 수도 있겠다). 변명하자면 해석공동체 초기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이공계 출신이며, 적어도 그것을 염두에 둔 전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그것을 염두에 두고 택할 만한 전공이 있냐면 뭐 그렇지도 않지만). 정보의 수집과 귀납적인 분석에는 능하지만, 그것 자체의 깊이 있는 통찰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다.

[주3] 불꽃의 미라쥬 국내전파에 관해서는 비공인팬페이지 'CHOKOMIYA의 紅炎'을 참고할 것.


5. 흐름에 관해 (2) - 변화와 이후의 전개

▶ '비평'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시도 ...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분석적인 글쓰기에 집중했던 필자들이 주로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보였던 반면 초기부터 순정만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켜온 이들은 좀 더 진지한 태도로 '만화비평을 위한 모임'을 구성하기 시작한다. 1995년 10월 기존 하이텔 애니메이트, 만화창작동호회 등에서 순정만화관련 글을 써오던 이들을 중심으로 몇몇 통신동호회멤버들이 모여 결성한 '만풀'은 거의 같은 시기에 결성된 '만보기(만화바로보기)'와 함께 해석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전문적인 비평모임의 첫 번째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보기와 만풀은 주로 순정만화를 다루었고 활동시기가 비슷했을 뿐 아니라 초기 멤버가 다섯 명(그 중 한 명은 겹친다)이었다는 점에서도 같았다. 차이점이라면, 만풀의 주요 멤버가 남성이었던데 비해 만보기의 주요 멤버는 여성이었던 것인데, 이는 만보기가 좀 더 페미니즘적 혹은 여성주의적 성향을 띄었던 것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될 것이다.

만풀은 온라인상에서 정기적인 만화잡지 리뷰 및 만화작가 탐방 등의 활동을 전개했고, 오프라인에서는 정기적인 스터디를 진행했다. 그 외에 1996년 7월 창간된 순정지 '쿠키(Cooky)'는 만풀의 주요한 활동공간이었다. '쿠키'는 3호로 종간되었으나, 단순히 만화만 싣는 잡지이기 이전에 정보지의 성격을 겸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만화관련 논문, 비평문, 만화가 지망생을 위한 만화기법강좌 등을 게재했고, 그 과정에서 만풀은 잡지 전속의 만화비평팀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쿠키에서 처음 선보였던 특정잡지와 연계하는 평론, 리뷰팀은 이후 성인순정지를 모토로 창간된 나인에서도 ‘나인모니터’라는 형식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나인에 대한 리뷰를 잡지에 싣는 외에 ‘신용산타임즈’라는 제하에 웹진 형식의 것을 발간하고자 시도하기도 한다.

1995년 8월 민예총 아카데미의 만화강좌 수강생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만보기(만화바로보기)'는 '만풀'과 달리 오프라인 기반의 모임이었다. 정기적인 회지 발간 외에도 기성 만화평론가들과 교류하면서 논의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도 이 모임의 '본격적인 태도'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1996년 봄에 발간된 회지 Critical 1호는 만보기의 역량을 잘 보여준 평론집으로서, 90년대를 통털어서도 몇 손에 꼽을 만한 좋은 글들이 게재되었다(정규출판물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는 사람은 구해보기를). 만보기는 1997년 2기 회원을 모집한 얼마후 자발적인 해체를 결의했고, 일부 멤버는 온라인으로 활동공간을 옮겨 온라인 소모임인 sg25 출판만화비평모임에 참여하였다.

이후에 등장한 비평모임으로서는 올쏘(also)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About의 첫머리에 1996년의 연도표시를 하고 있는 이 모임은 1998년 첫 번째 회지 유령 0.99를 내놓고 활동을 공식화하였다. 기존의 모임들이 특별히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자생적으로 활동하였던 것에 비해 올쏘는 ACA에 소속된 (유일한 비평)동호회이며, 일반 창작동호회들이 그러하듯이 정기적으로 ACA에 회지를 출품하는 것을 주요한 활동영역으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also.new21.net)를 구축하고 온라인 활동을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 무게중심의 이동

해석공동체들 특히 온라인에 자리한 모임들이 감상과 정보의 교환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이들이 맡았던 다른 중요한 역할은 오프라인에서 쉽게 얻기 힘든 자료들의 교환에 있었다. 평소에 관심있는 작품의 그림파일, 음악파일, 동영상, 대본 등을 찾고자 할 때 수천 명 이상의 회원이 서로의 자료를 공유하는 동호회 자료실은 이에 관한 적절한 해결책이 된다. 그러한 자료창고로서의 역할이 잘 나타난 사례가 것이 자료실 백업시디제작일 것이다. 1995년 천리안 애니메이트에서 첫 선을 보인 동호회 자료실 백업시디는 많은 호응을 얻어 거듭 제작되었고, 나중에는 패키지 용량이 CD 12~18 매에 이를 정도로 확장되었으나 여러 가지 요인(프레스CD로 감당하기 힘든 자료의 대용량화, 저작권문제 등)에 의해 98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로도 통신망자료실의용량은 계속 확장되었고, 압축률이 낮아서 온라인 자료실에 올리기 힘들었던 VCD의 dat 포맷 대신 비슷한 화질에 비약적인 압축률을 보여주는 rm, divx(mpeg4)등 새로운 포맷의 소개는 오프닝, 엔딩 정도를 올리는데 그치던 자료실의 양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더불어 99년에 들어서면 고속통신망의 본격적인 보급이 이뤄졌고, 이에 따라 기존 PC통신 중심의 동호회들의 위상도 크게 달라진다.

1999년 초 리프(leaf)사의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투 하트(To Heart)’ 애니메이션이 제작 방영된다. 1화가 방송을 탄 것은 1999년 4월 1일(물론 일본에서). 1화의 rm 포맷 ‘1화물’이 한국 내 각 통신망 애니동 자료실에 업로드 된 것은 4월 4일. 98년 말 부터 간간이 기존의 대용량 dat 파일 대신 divx나 rm으로 압축한 자료들이 올라오고, OP, ED 데이터들의 고급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투하트 1화물 등록과 실시간에 가까운 빠른 배포는 일종의 분기점 내지 신호탄 역할을 한다. OVA, TV방송망을 탄 컨텐츠들의 encoding, 번역, 자막작업과 각통신망 업로드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이 애호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이에 소요되는 시간은 2-3일. 이 시점부터 각 통신망 자료실은 급속히 성격을 달리하게 되었고, 협소한 동호회 자료실지원 및 저작권 문제로 기존의 PC통신동호회들이 대용량자료의 배포를 제한하게 된 것과 맞물려, 거의 비슷한 시기(두루넷 Aniro 1999년 6월, 하나넷 HAC 8월 등)에 등장한 초고속 통신망 동호회들이 자료교환 공간으로서 통신동호회 활동의 주도권을 상당부분 가져갔다. 물론 최신방영/연재분의 국내 소개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95-95년 당시 슬램덩크는 거의 연재에 가까운 패턴으로 국내통신망에 최신연재분의 번역본이 올라왔으며(역사적으로 보면 드래곤볼 팩스전송본 해적판 출간의 맥을 잇는 것이지만) 만화히트작의 경우 최근까지도 이런 관행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물론 최근에는 최신게재분을 스캔한 이미지가 동호회자료실에 뿌려지는 형식이지만). 그러나 화당 수십, 수백MB에 이르는 대용량 1화물들의 무차별적 업로드와 저작권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는 과감성(물론 국내판권소유자가 없는 최신 방영분 녹화본의 국내통신망 공개는 엄밀히 말하자면 불법이라고 하기 힘들다)은 기존 PC 통신자료실 수준에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99년의 다른 주목할 만한 변화는 고속 통신망의 자료실 동호회와 별개로 프리챌, 클럽포유, 다음카페 등의 커뮤니티 중심 서비스가 본격화 되었다는 점이다. 고속통신망 동호회가 자료창고로서의 기능을 떠맡았다면, 커뮤니티 서비스들은 다양한 취향을 포괄하는 소규모 모임(작은 모임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나우누리(94년)였으나 상대적으로 엄격한 개설조건과 기존 동호회의 활동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 등으로 인해 99년까지 기존 대형동호회의 위상에는 별 흔들림이 없었다)의 개설을 지원하면서, 무료서비스이고 개설이 쉽다는 등의 장점을 바탕으로 PC통신 동호회의 커뮤니티 기능을 떠맡게 된다. 이로 인해 3-4개의 PC통신동호회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만화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오던 근 10여 년 간의 기본틀이 해체되었으며, 더 파편화되고 다양한 인터넷상의 크고 작은 흐름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음을 감안 하더라도 하이텔 애니메이트를 비롯한 전통있는 동호회의 비중은 - 앞서 생겨난 미국과 일본의 관련 포럼들의 그것에 비하면 - 상당한 정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인터넷 공간에서도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커뮤니티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은 상당히 이례적 아니 한국적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수 많은 개인 홈페이지들과 이들을 종횡으로 연결하는 웹링, 메일링리스트, 전문 디렉토리 서비스가 주된 소통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의 경우 홈페이지 대신 커뮤니티 서비스의 소모임 개설이 온라인 활동의 좀 더 보편적인 방식이며, 개인 홈페이지 조차도 gallery나 article대신 게시판 중심으로 움직이는 상황은 한국적인 특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그래도 만화읽기는 여전하다?

자료교환 동호회와 다양한 취향에 따라 세분화된 소모임들의 범람이 최근의 대세라면, 그 다양함 속에 만화읽기와 만화이야기하기에 초점을 맞춘 흐름들도 여전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터넷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99년 이후의 움직임들을 간단히 일별해본다.

부킹과 같은 시기에 창간하여 나름의 주목을 받았던 오즈(도서출판 다담)는 지난 호 기획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인디만화에 속하는 흐름이었지만 만화비평과 해석공동체의 차원에서도 작지 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잡지의 색깔로 말하자면 오즈에 게재된 작품들은 인디만화와 순정만화의 경계선을 오가는 것이었지만, 편집자를 비롯해서 잡지를 만들어낸 주요 구성원들은 인디도 순정도 아닌, 출판자본가도 작가도 비평가도 아닌 문자 그대로 ‘만화독자’였으며, 만화 외 일반기사들은 만화독자의 눈높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종이잡지를 접은 이후에도 오즈는 상당기간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의 형태로 웹진을 지속시켰고, 독자와 작가의 거리가 유례없이 가까웠던 이 공간은 해석공동체 고유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99년 8월에 개설된 진보넷 아가툰은 시기적으로 볼 때 VT기반으로 생겨난 마지막 통신동호회일 것이다. 이들이 자리 잡은 진보넷의 성격이나 동호회의 일반취지는 90년대 들어와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만화에 대한 민중주의적 해석을 기대하게 했으나, 실제 나타난 노선은 상당히 래디컬(Radical) 했으며, 이들의 입장표명은 스콧 맥클루드가 말한바 “나는 만화근본주의자 입니다”라는 선언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가툰의 주요 구성원들은 2000년 5월 부천만화정보센터의 지원으로 시작된 웹진 고구마의 창간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정부기관과의 협조라는 행위는 이 동호회의 성격과 어지간히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던 듯 하다. 아가툰이 철저함을 지향한다면 그 반대쪽에서 느슨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클럽 마나마나이다. 다음, 세이클럽, 프리챌 등에 무수히 존재하는 만화관련 모임 중에 ‘만화읽기의 커뮤니티’로서 유난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는 마나마나의 활발한 면모는 운영자의 개인적 지명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비슷한 이유로 앞서 이야기한 ‘일본에 대한 거리낌 없음’을 잘 보여주는 모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언급했던 다양한 모임들과 궤를 달리하면서 친작가적 노선을 걷는 모임인 만화사랑 만화사보기(http://ilovemana.com/)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만화독자들은 한국만화를 읽을 때 어쩔 수 없이 일본만화를 염두에 두게 되며, 그에 따른 상대적인 실망감은 한국만화와 한국만화가에 대한 냉정한 시선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옹호하고 힘을 보태줘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감안할 때 ‘친작가적’이라는 것은 확실히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성향은 아니며, 반대여점 운동과 같은 외적 조건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 그러한 생성배경은 이 모임이 '드물게' 순정편향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이러한 인과관계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앞에 언급했듯이, 한국작가이기 때문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당위없이 시작할 경우 - 보다 진지하게 만화를 이야기하고자 할수록 - 자연히 순정편향이 된다는 점을 상기할 것).


6. (결론이랄 것도 없이) 시니컬하게 에두르기

앞서 분석적 글쓰기의 단점을 논의한 부분에서 제기한 것들의 대부분은 해석공동체의 - 비평적 측면이 가질 수 있는 - 단점으로 확대해석해도 별 무리가 없다.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사기, 만화는 만화자체로만 보려고 하기, 하나가 틀리면 다른 아홉도 별 볼일 없는 주장으로 간주하기, 일본편향 및 순정편향, 목적의식이 생기기 이전에 먼저 모여 있었을 뿐인 생래적 특성, 일정한 구매력을 담보하고서 출판사와 작가에게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지만 그것이 역으로 장르 자체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장르를 게토외 일반독자들의 감수성에서 유리되도록 만들 가능성 ... 기타 등등. 그런 와중에 팬층의 취향에 안주하면서 더 이상의 발전을 기하지 못하는 작가들과, 만화독자들의 취향을 열심히 분석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반문화소비자들을 외면하는 만화잡지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한 한계점들에 더하여 생각해볼 부분은, 글의 테마가 그러한 만큼 주로 소비와 비평의 영역에 관해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실제 적극적으로 나서는 만화소비자들의 활동양상이 소비와 비평의 범주에만 걸쳐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현재 만화소비자들의 활동은 만화읽기, 감상을 교환하기, 적극적으로 작가와 출판사에게 요구를 제기하기의 수준을 넘어 실제로 만화를 창작함으로서 재해석하고, 창작함으로서 소비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ACA와 코믹월드에 출품되는 수백 종의 회지 중에 비평회지는 한 종 뿐 이지만, 창작회지를 표방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지들은 창작이라기보다는 - 그렇다고 창작이 아니라는 것도 아닌 - 기존 만화에 대한 소비이고 재해석이다. 만화읽기와 전문비평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화읽기와 창작의 경계선도 허물어지고 있다. 조금 더 나가 볼 수도 있다. 인터넷의 대중화 이래 다양한 층위에서 생겨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 창작과 비평을 같이 수행할 뿐 아니라, 만화와 함께 영화 문학 등 다른 문화들까지도 동일한 공간에서 향유하려 하기에 더욱 그 성격이 애매하다. 장르자체의 무게중심이 다른 두 가지 범주(창작과 비평)에서 소비로 옮겨가고 있으며, 구성원의 취향에 따라서는 만화자체의 경계선도 가볍게 넘어 버리는 향유자 중심주의(이것은 고전적인 의미의 창작자 관점에서는 성립하기 힘든 것이다) 의 범람이 대중문화장르로서 만화가 처한 기본적인 상황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이제까지 한국의 만화판에서 해석공동체가 어떻게 생겨나고 작용해왔는지, 범위를 넓혀보자면 세 가지 범주의 한가지로서 소비의 영역이 그 위상을 어떤 식으로 강화해오고 있는지에 관해 간략히 일별해 보았다. 만화장르가 범세계적으로 마이너화하고 넓은 대중적 기반 보다는 작은 단위의 열성적인 독자집단에 의존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어떤 의미에서든 해석공동체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이다. 아아~ 그건 다원화시대 대중문화장르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게임이 어떻고 온라인매체들의 상황이 어떤지에 관해서도 이런 비슷한 논의가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런 것이 있다면 기꺼이 귀를 씻고 들을 용의가 있다.

여하튼 중요 한가 중요하지 않은가 혹은 좋다 좋지 않다의 여부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적절 한가 혹은 과도한가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과도하면 나쁜거냐고? 고쳐야 하냐고? 음 ... 그런 것도 아니다. 상황이 그렇고 흐름이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무책임~ 강경옥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흐름은 억지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강물과 해류에 맞추어 방향타를 조절할 수는 있겠지만, 강물을 역류시키고 해류의 방향을 뒤집는 것은 현실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니까.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여기까지 온 독자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 필자는 ‘그러니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저런 흐름들이 만화장르의 미래에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떨까 ...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52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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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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