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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 '공포의 외인구단', 그리고 이현세 다시보기
작가론 04/09/01 02:57 깜악귀
얼마 전에, 남들보다 훨씬 늦은 셈이지만 [실미도]를 보았다. 사형수들로 선발된 이 특공대원들이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서, 특수훈련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외줄 타기, 암벽 기어오르기. 아, 저거 참 어디에서 본 장면이네. 그래,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지 [실미도]와 [공포의 외인구단]이 오버랩되기 시작한다. 공통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두 작품 다, 사회적으로 하층민으로 낙인찍히고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인간들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선발되어 특수훈련을 받는다.

이 '목적'이란 국가적 사명과 관계가 있다. 실미도에서는 김일성의 목을 '따'서 통일을 하는 것. 공포의 외인구단에서는 50연승으로서, 국가적 발전의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발된 '멤버'들은 외부세계와 유리된 '섬'에서 훈련을 받는다.

특수훈련은 물론 비인간적이며 폭력적이고 잔인한 것이다. 총을 쏜다는 것과 공을 던지고 때린다는 것 외에 이들이 받는 훈련은 거의 비슷하다. 예를 들어 외줄타기, 암벽타기 등. 이러한 특수훈련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다.

임원희(극중 원회)는 권총으로 사격을 하는데 오른손이건 왼손이건 조준도 제대로 안 하고 백발백중 맞춘다. 오혜성은 야구공을 "깍아쳐서 회전을 준다"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다. 요컨데 '인간병기'로 거듭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그 목적을 이루는 길목에서 잠재적으로 반사회적 힘을 가지게 되고,사회적으로 백안시되며,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해 좌절, 자멸한다.

[실미도]가 시나리오 단계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을 참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간에 이 두 작품이 비슷한 구조의 원형적 구조를 공유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두 작품 모두 어떤 컴플렉스를 집요하게 자극하는데, 첫째로는 제 3세계 개발도상 분단-열등국가 컴플렉스이고 둘째로는 이러한 열등 국가 안에서도 또 열등한 계급 출신의 남자들 이야기다.

이들은 "사회적 쓰레기"에서 손감독 혹은 김준위에 의해 선발되어 "국가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영웅으로 거듭나는데, 당연하게도 일반대중들에게 이들의 폭력성은 인정해주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인간다운 대접이란 바깥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너희들의 것이 아니다. 너희들의 임무는 그런 훈련을 받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오혜성은 여자친구에게 편지 한 통 보내지 못하여 결국 엄지를 잃게 되고, 설경구는 딱 한 장 남은 어머니 사진을 찢기운다(엄지는 오혜성에게 잃어버린 어머니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는 거의 유사한 설정이다). 좌우간 그들에게 남은 것은 자의든 타의든 오직 '사명' 그 하나 뿐이 되었기 때문에, 죽음을 불사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해내고자 한다. 물론 결국 좌초함으로서 이들의 영웅됨은 비극으로 미학적으로 '완성'된다.

[공포의 실미도], 영화 제목을 그렇게 붙여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혹은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오혜성들이 훈련을 받은 섬의 지명이 '실미도'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한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50연승이 좌절되자 심장마비로 죽는 손감독의 배역을 맡은 배우가 안성기였다는 것, [실미도]에서 부대원들을 인간병기로 훈련시키고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김재현 준위의 배우 역시 안성기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작품에서 안성기는 사실상 설정만 다를 뿐 같은 성격의 배역을 맡고 있는 셈甄? 두 캐릭터 모두 개발도상국가의 독재자로서 국민을 비인간적으로 선발, 동원하다가 죽음으로 좌절한, 아직까지 한국사회의 거대한 아버지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박정희에 대한 애증의 찬미에 가깝다.

그래서 이 만화나 이 영화나 모두 아버지에 대한 갈구이고, 국가 혹은 독재자에 대한 애증의 찬미이며, 그 속에서 쓰레기 같은 인생들이 영웅으로 거듭나고자 하나, 모두 좌절해버리고 마는 영웅주의 비극이다. *

2.

[실미도]의 경우 이러한 영화의 성격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행해졌지만 실화라는 컨셉이 비판을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묵살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뜻밖에 순수극화인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러한 방어책이 거의 부재한데도 불구하고 '불후의 명작'이라는 평가 이외의 비판은 거의 이루어진 바가 없다. "완성도가 높다", "감동적이다"라는 정도의 수사적 평가만 가지고 "불후의 명작"이라는 위상을 부여받는 것은 아마 만화판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한국에서 최로로 '작품'으로 범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만화다. 적어도 당시에 [공포의 외인구단]과 이현세는 한국만화 전체를 대변했었다. 당시 이현세로 인해 "만화가"가 유망직종으로 떠오르는 현상조차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평가가 위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위상이 평가를 대체해버린 것이다. 어쩌면 작품이나 작가를 비평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지금 우뚝 서 있는 한국만화의 프론트맨을 보다 숭앙하는 것이 한국만화의 파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건 일리 있는 말이다. 요컨데 이현세는 한국만화계의 위상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를 비판하는 것은 한국만화의 위상을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되어갈수록 척박함 자체는 계속 강화될 뿐이다.

같은 이야기로, [천국의 신화]가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서 포르노로 판정받고 작가인 이현세가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사회적으로 일어났던 거대한 옹호의 물결을 다시 평가하고 싶다. 미리 이야기해두지만 필자는 그것이 순수예술이건 대중예술이건 모든 종류의 검열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신화]가 만약 실제로 포르노였더라도, 그것은 검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좀 더 급진적으로 필자는, 그것이 미성년자에게 보여진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즉, 필자는 당시 이현세의 유죄판결에 여전히 반대한다.

그러나 [천국의 신화]의 검열에 반대하는 것 =[천국의 신화]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옹호하는 것

으로 이루어진 논의구도에는 심히 불만이 있다. 당시 법원의 판결문을 보자.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인이 이 사건 만화의 전편을 통하여 미성년자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피고인의 주장과 같은 교훈을 준 목적으로 이 사건 만화를 그리고 편집하였다 하더라도 이 사건 만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야만적인 원시인의 모습 그대로 표현하면서 여자들은 대부분 현대의 미인으로서 매우 세련된 누드로 표현하고, 여자들의 자세나 얼굴 표정 등을 필요이상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한 점, 이 사건 만화의 신화적이고 교훈적인 의도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남자가 한 여자를 집단강간 하거나 인간과 짐승들간의 정사를 현실속에 가능한 것처럼 묘사하는 등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성과 관련된 장면과 정사장면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솔직히 맞는 말이다.

요컨데 원시의 생활을 묘사하기 위한 만화가 저렇게 긴장감 넘치는 강간장면으로 넘쳐야 할 필연성은 전혀 없다. 아니 백번양보해서 원시생활이 실제로 저랬다 치자.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페티쉬로 가득한 구도와 묘사가 행해져야 할 하등의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한국만화의 대가 이현세의 야심작"임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부분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포르노적 감성의 상고사를 그렸다.

더하여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 마치,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강간, 윤간, 근친상간만이 존재하는 혼돈의 시기였고, 그리하여 '지도자'가 등장하여 '국가'가 생기고 나자 그제야 바람직한 질서가 잡히기 시작하였다는 내러티브는 너무나도 보수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을 거둘 수 없다.

... 이것이 실제 역사, 실제 원시사회와 관계가 있을까? 그렇다기 보다는 원시사회에 대한 일종의 포르노적, 국가주의적 환타지라고 보는 것이 차라리 사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작품을 범죄사실로 구성하려는 법의 기능에 의해, 작품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로 대체되었다. 더 나쁜 것은 그러한 이슈가 없었다면 이 작품에 대해서 과연 풍부한 논의가 일어났을까 하는 것인데,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불후의 명작 리스트에 하나가 더 추가될 뿐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필자는 [천국의 신화]를 미성년자가 읽는 것이 "범죄"라는 사실에 전적으로 반대하지만, 다만 법원의 미학적인 판단에는 사실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법원의 미학적인 판단"이라니 우스운 용어라는 것은 알지만.

이 사건 당시 소위 '진보적인 인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현세와 [천국의 신화]를 옹호했지만, 사실상 그들은 작품의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청소년 보호법에 반대하는 것과 작품을 옹호하는 것을 동일시해버렸다. 검열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야한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수준의 작품을 포르노로 몰아부치고 있다"는 내용의, 대중적이고 명쾌한 시나리오가 필요했던 것 뿐이다. 여기에서 [천국의 신화]가 '높은 수준의 작품'이라는 근거는 '한국만화의 프론트맨 이현세의 거대 야심작이다'라는 정도 외에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검열에는 관심이 있었지 만화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미학적인 판단에 있어서는 '진보적인 지식인' 분들의 판단보다 법원의 판단이 더욱 정치하고 성의있는 것이었다.

결국 결과적으로 소위 '진보적인 분'들은 청소년 보호법에 반대한다는 진보적인 정치적 행동을 위해 보수적인 만화를 옹호하고 법원은 그에 대해서 진보적인 미학적 판단을 내놓으며 그 판단을 근거로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참으로 재미있는 연출이었던 것이다.

3.

이현세, 혹은 그가 감독하는 '이현세 프로덕션'(혼자 그린 것이 아니다!)이 눞은 수준의 엔터테인먼트와 감동을 제공하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며, 그가(그의 프로덕션이) 세워놓은 한국만화의 위상이라는 것도 매우 뚜렷한 것이다. 그러니 실리적인 평가와 미학적인 평가, 이데올로기적 평가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검열에 반대하는 것, 그의 작품을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사실로 판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그의 작품에 대한 고민없는 옹호로 이어지는 것은 필자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과 거의 같은 컨셉을 공유하는 [실미도]가 2000년대에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것은 사실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컴플렉스와 정서적 원동력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의 외인구단] 역시 지금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겠군. 혹시나 다시 읽어보았다. 역시나 재미있다.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인물 뎃생과 구도, 연출력 역시 전혀 20년이 넘도록 감퇴하지 않았다. 그가 대가라는 것은 부인할 수도, 부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현세는 적어도 인기를 끌만한 자격이 있는 작가이고, 블록버스터 만화를 생산하는 프로덕션의 감독으로서 그 능력을 항상 증명해왔다. 독자들이 이 작가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고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실은 딱 여기까지이다. 그 이외의 평가들은 모두 재고되어서 꼼꼼히, 훌륭한 부분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도, 꼼꼼히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걸핏하면 알몸을 노출하며 범인을 때려잡는 여성형사(오미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블루엔젤] 등이 "여성의 적극성을 그려내기 위한", "페미니즘적 흐름을 반영하는" 어쩌구라고 설명되는 그런 현실이 여전히 존재한다. 여동생이 일본군 장교에게 겁탈당했다고 해서 자살을 권유하는 오빠를 그리면서, "니가 여동생을 자살하게 한 오빠의 심정을 아느냐" 같은 내레이션을 흩뿌리는 [남벌]도 이현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이다(시나리오는 야설록이지만). 그런데 동시에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는 또 여성의 현실을 진지하게 여성의 입장에서 그린 작품이란다. 이 만화들이 대중적으로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헷갈림에 대해서 아무도 명확하게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지금 필자는 이현세의 여성관을 비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 누구도 명확하고 치밀하게 평가하고 비판한 적이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현세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서 논쟁 한 번 제대로 벌어진 적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명작'이니 '대가'니 하는 평가는 그만큼 막연하기 짝이 없고 사실상 아무 것도 의미하고 있지 않는. 공허한 평가이다.

이현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적절한 비판의 시기는 역시 지난지 오래다. 지금 와서 [공포의 외인구단]이니 [천국의 신화]이니 뭐 하자는 짓인가? 이것은 '한국만화의 대가'라고 별다른 비판없이 인정되고 있는 다른 여러 작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늦더라도 나왔어야 할 이야기는 나오는 것이 좋다. 어쨌거나 거침없는 비판이 행해진다는 것은 그 문화계의 풍요로움을 반증한다. 어떤 작품이 나오면 "그건 정말 명작이야"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편에 "그건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정상적인 구도일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잘된 작품에 대한 주례사격의 리뷰만이 존재하고, 작가들 간에 서로 비판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래, 한국만화는 지위도 낮고 돈도 안 벌린다. 그래서, 한국의 만화인들은 서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음울하고 단결력 없는 공생체 의식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지금까지 가지지 못한 역사를 미래에도 가질 수 없다.

한국만화는 이제 커다란 거목에 한 두 개에 대한 숭앙을 벗어날 시기가 되었다. 아니 훨씬 지나버렸다. 그러나 "명작 리스트" 위상의 재정립, 혹은 풍부한 비판의 담론들은 언제고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 등장하는 작품들과 그것을 읽어내는 시선들에 영향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코믹플러스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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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이 두 작품 모두 군대에 가서 2, 3년 동안 국가적 사명을 위해 비인간적인 삶을 감수해야만 하는 분단국가 한국의 징병제도에 대한 거대한 애증을 정서적인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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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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