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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훈만화의 프린스 - [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을 만나다
인터뷰 04/04/18 03:29 깜악귀
김태권의 만화를 처음 본 것은 1999년 서울대 앞 서점 "그날이 오면"에서 발간되었던 소량 발간된 서평지 [그날에서 책읽기]에서였다. 그는 [남수와 주영의 책장]이라는 만화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이 만화는 대학의 운동권 학생을 대표하는 '남수'라는 캐릭터와 비운동권 학생을 대표하는 '주영'가 등장하는 일종의 캐릭터물을 빙자한 교훈만화였다.

이 만화는 특징적인 캐릭터와 학생운동과 관계 있는 대학 주변 문화의 진솔하고 해학적인 반영으로 읽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군대에 간 선배가 자취방에 나타나면 누워 있던 후배들이 팔로 눈을 슬쩍 가리고 자는 척하는 풍경들(휴가도 한 두 번이지)이 여기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완성도가 높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만화에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독자적인 개성이 있었다. "이 만화는 무슨 장르의 변형이다" 같은 것이 아닌 자기만의 뚜렷한 목적으로 만화를 그리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독자성이었다.

그의 작품은 점점 발전하고 있었고, 그는 대학 주변의 여러 잡지에 자신의 만화를 더 많이 연재하기 시작했다. 아마 대체로 청탁을 받는 대로 응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나 그것들이 엄밀하게 말해서 "보편대중"에게 보여지는 그런 작품들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는 그 시절 서울대학의 로컬 아마츄어 만화가이거나, 대학가(학생운동)의 만화가이거나 혹은 종종 진보운동진영의 만화가였다. 적어도 [십자군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꽤 오랬동안 그랬다.

그는 대학 내에 "아직도 남아 있던" 진보적 담론을 고수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인" 강박을 만족시키면서도 독특한 자극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적어도 '학생만화가'로서 이러한 부분에서 그는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무슨 이야기든 끝에 가서는 "자, 그럼 독재정권 물리치고 자본주의 타파하자"로 끝맺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병리적인 강박에 짙눌리지 않는 듯이 보였다.

충분히 여유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안에서 독자에게 충분한 쾌락을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과 같은 클래식 철학서에서 [멋지다 마사루] 같은 매니악한 컬트 일본만화까지 섭렵한 후 그것들 하나하나를 자신의 생각을 담아 발췌하고 인용하며 조합한다. 그것을 자기 스타일로 작품 안에 녹여내며 그 인용과 조합의 의도를 독자 스스로 파악하게 배려한다.

나는 그의 만화를 "교훈이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지적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곤 한다. 진정한 교훈이나 깨달음은 그 안에서 쾌감을 배제할 수 없이 아닐까. 사실 생각해보면 대학이나 진보진영은 쾌락을 도구화함으로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교훈' 역시 가볍고 천하게 취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태권은 쾌락을 존중함으로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의 가치를 높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만화는 그 때까지 지면에 따라서 그 용도가 명확한 편이었다. 말하자면 정치선전만화 같지 않은 특이한 만화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그 용도가 정치선전만화였던 것이다. 지면 자체가 그것을 위해서 그에게 할애된 것이니까. 하지만 그가 보편대중에게 보여줄 단행본 만화를 그린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까. 지적이면서 컬트적인 그의 스타일은 단순히 대학의 운동권 주변에서만 통용될 그런 것인가. 혹은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세상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그 대답으로 작년 11월 [십자군 이야기]를 내놓았다. 이 만화는 교보-영풍 교양서적부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인터뷰어 : 깜악귀
* 사진, 정리 : 나영(스누나우 편집위원)
* 인터넷 신문 스누나우(snunow.com)의 청탁으로 기고한 인터뷰를 정리/수정한 것임.


*   *  * 출생에서 [십자군 이야기]를 그리기 직전까지


= 그림을, 혹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그냥 일단 본인의 개인사를 좀 정리해서 말씀해주세요.

74년 서울생입니다. 만화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는 애니메이션 쪽을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만화를 그리고자 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학습만화" 였습니다. 예를 들어 동네에서 베이직 프로그래밍 학습을 위한 만화를 몇 회에 걸쳐 그린 적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컴퓨터를 못해서 제대로 못하고 말았지만.

= 태권님의 세대 정도면(제 세대도 그렇지만) 보통은 일본 만화를 베끼는 걸로 그림을 시작하는 경우게 많지 않습니까. 드래곤 볼의 캐릭터들을 따라 그려보는 식으로. 상당히 특이한데요?

'드래곤볼'은 제 중학교 때 나왔죠. 저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제게는 놀랍지는 않았고 따라 그린 기억은 없습니다. 제 중학교 때는 전교조(전국교원노동조합)가 한참 떠들썩할 때였습니다. 선생님들 해직되고. 그 때가 87, 88년이었죠. 저는 그 때 있었던 일들이나 생각하던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소위 열혈청년이었죠. 그런 걸 전형적인 말로 하거나 글로 해서는 안 읽을 테구, 말주변이 없어서 말은 안 되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화형식을 빌려서 만화로 그리면 어떨까, 싶어서 연습장에 그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즐겨 보더라고요. 초등학교 때 한거는 아무것도 아니고 이 때부터 내가 이걸로 뭔가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하자면 이 때가 시작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뭐랄까 보통 장르만화를 따라하는 데에서 시작을 하는데 태권님은 정치선전만화나 학습만화로 시작하신거 같네요. 별종으로 보입니다. ^^

노신이 했던 얘기를 만화로 그린다든가.. 그때가 그런 시기 였어요. 87년 88년이.

= 중학교때부터 노신 등을 읽으셨다니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 보통 대학교 때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저는 자기 혼자서 찾아보게 된 타입이었습니다. 보통 형이나 누나의 영향, 선배의 영향.. 동아리 등등 영향을 받지만 저는 본래 책을 많이 보다보면 자연히 그 쪽으로 가지 않나 평소 그렇게 생각해요.

=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부모님이나 친척이 있었나요? 뭐. 그림을 잘 그리는 삼촌이 있었다든가

그런건 나하고 상관이 없었어요. 만화가가 타고 나는 것도 아니고. 그런게 아니라, 학교에서 할 일이 없으니까 그냥 그린 거예요.

= 성장하면서 무슨 만화를 접하셨나요.

애들 보는거 봤죠.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운아의 만화(용소야 등) 같은 걸 물론 봤죠. 개인적으로는 [쿤타맨]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다이나믹 콩콩 시리즈들을 봤죠.

중학교때 읽고 충격을 받았던 만화가.. 중고등학교 때는 멕시코의 리오스 있잖아요? 그걸 읽고 어딘지 모르게 경도되었습니다. 제목도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였는데. 집에서는 제가 그런거 보는걸 너무 싫어해서 책을 버린것 같아요. 아 중학교 때 한겨레 신문도 그때 시작했죠. 박재동 화백 만평 같은것도요.

고등학교 때 제일 인상깊게 본 책은 중3 때 산 책인데 이두 시리즈 있죠. [for the beinners]시리즈(한국에서는 '이두아이콘총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 책들 중에 제일 인상적이었던게 프로이드 편이었어요. 시리즈 중에도 프로이드는 흑백대조가 매우 강렬한 그림으로 그려졌는데, 그런 스타일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표현적인 면이 만화의 설명력에 강한 원천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리우스 것도 강렬한 흑백대비가 좋았던 거 같고. 물론 한켠에서는 [북두신권]도 보고 했지만.

왼쪽 도판은 멕시코의 만화가 리우스의 [쿠바혁명과 카스트로] 중 일부이다. 한국에서 1988년, '리우스의 현대사상학교' 라는 시리즈가 도서출판 오월에서 발간된 바 있다. 이를 통해 [쿠바혁명과 카스트로], [산디니스타, 니카라구아], [체 게바라]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현재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현재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리우스의 만화는 이두아이콘 총서의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가 : 마오쩌뚱]이다.


= 재수를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시시콜콜하게 다 물어보려는거 아니지만, 대학의 전공을 미학과로 오셨습니다. 그림을 그리셨기 때문에 미학과를 지원하셨나요?

그림 때문은 아닙니다.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얼마 안됐어요. 원래 혼자서는 계속 그렸지만 그걸 직업으로 하겠다고 생각한 건 전혀 아니었죠. 재수할 때 국사 교과서 옆에 빈칸들에 만화로 관련한 내용을 채워넣는다거나, 수업시간에 골때리는 이야기 나오면 그걸로 말장난해서 연습장에 만화로 그리고 하는 건 했었지만. 그건 그냥 혼자 재미로 하는 거였죠.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 와서 생각한 겁니다. 뭐랄까 저는 애니메이션 쪽에 더 흥미가 있었죠. 유리 놀스타인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중학교 때 오타쿠 친구가 보여주는 바람에. 좌우간 미학과에 간 건 공부하고 싶어서였어요. 철학에 관심이 있었고 철학과 예술에 다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재수할 때 플라톤, 특히 [파이돈]을 아주 좋아했거든요. 사실 고등학교 때와 재수할 때는 만화보다는 책을 많이 본 편이었죠.

= 대학때부터 만화가가 될 생각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중학교때 문제의식 그대로죠. 정치선전이란건 좀 지나친 얘기고,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가장 좋은 수단으로서 만화를 생각합니다.

= 초등학교 때 그렸다는 베이직(Basic) 프로그램 학습만화도 그렇고, 말하자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태권님은 장르만화가가 아닌 '계몽주의 만화가'로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무척 특이하네요.

그렇죠. 중학교 때 볼테르 같은 사람 보고 훌륭하다고 생각했으니까(웃음)

= 저는 대학 때 태권님의 만화를 대학 주변의 학생자치잡지들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그 때는 그런 잡지들에 몇 페이지 식의 청탁을 받아서 그리곤 하던 시기였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대학 때는 어떤 만화들을 그리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대학 땐 정말 조용히 공부할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고요. 대학 때 사람들에게 처음 그림을 보여준 게, 처음 보여준 게. 1학년 계절학기 때 맑스 경제학 수업을 들었는데. 그 때 정운영 선생님 수업이었어요. 농땡이 치느라 열심히 안 했지만, 리포트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하라고 해서 만화로 그려서 냈어요. 정운영 선생님도 등자앟고 맑스도 등장하고, 저도 나오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도 나오고 뭐 그런 거였죠. 선배들에게 보여줬더니 낄낄거리면서 똑같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학점은 시험을 망쳐서 B+이었나 A-였던가 그랬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선배들이 어디에 만화가 필요할 때 저한테 연락하기 시작했던거죠.

교지 만평이라든가 기고 형식으로 몇가지 하다가 학생회 선거에 차출돼서 올인 됐다가, 그리고 2학년 때 단대 학생회 집행부를 하게 됐어요. 그 때 사회적 현황 가지고 대자보를 만화로 그려서 붙이고 했었죠. 그건 만평말고, 옛날부터 꿈꾸던 리우스식이었어요. 그런 식으로 3학년때까지 하면서 4학년 올라가면서도 계속 대자보 만화 하고 싶었는데.

= 3학년 말에 단대 학생회 선거에 후보로 나가셨었죠.

맞아요. 근데 다행인지 선거에서는 떨어졌고.. 사실은 만화 자보를 그리는 걸 많이 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선전만화'라기 보다는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고민했거든요. 선거에 나간 것도 그런 일환이었겠죠. 중학교 때 만화 그리면서도 마찬가지지만 학생회 일을 하면서 제일 크게 느낀 게 소통 문제 였어요. '임금 가이드라인 철폐하라' 라는 구호가 대학생들의 생활, 그러니까 책을 옆에 끼고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집에 가서 빈둥대는 생활에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이게 관련이 있다는 걸 설명을 할 수 없다면 안 된다.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을 했지만 설명이 됐는지는 알 수 없죠.

그리고 나서 4학년 때쯤 [그날에서 책읽기]라는 서울대 근처 서점 '그날이 오면'의 서평지에 [만화서평] 시리지를 연재하기 시작했죠. 같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 [세계화의 덪]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만화로 풀어서 전달하는 지면이었고. 그 다음에 5학년 때 [남수의 주영의 책장]이라는 걸 시작했어요. 군대를 병역특례로 가서,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만화를 그려서 보냈습니다. (이 만화들의 일부는 김태권의 홈페이지, kimtae.com에서 볼 수 있다)

= [남수와 주영의 책장]은 서평지의 성격상 읽은 사람은 소수였지만 읽은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저도 이 때 태권님의 만화를 접하고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 같고요. 뭐랄까, [멋지다 마사루] 식의 만담식 유머와 사회과학적인 지식의 성실한 전달, 그리고 캐릭터나 플롯 등 극형식의 활용 같은 것이 결합된, 미숙하지만 지금의 스타일이 그 때부터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어린왕자] 같은 소설이나 브레히트의 극을 만화 내로 끌어들여서 학습만화의 전달효과를 색다른 방식으로 가져가기도 했었고요. 이런 시도들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인가요?

시작은 전부터 했었는데- 중학교 때도 원래 시작은 그렇게 했었어요. 그래서 우화집으로. 볼테르가 한 게 그거거든요. 볼테르 방식이, 팜플렛처럼 쓰지 않고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 캐릭터들이 나와서 자기들끼리 떠들게 하는 방식을 사용하잖아요. 아, 생각해보니 중학교 3학년 때 성당 회지에서 70p짜리 만화를 그린 적이 있었어요. 그때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었어요. 이게 지금의 [십자군 이야기]의 프로토타입 같은 거랄까. 두편짜리 였는데. 신앙에 대한 내용이라기 보다 사회적인 문제와 신앙에 대한 문제가 같이 있는 그런 거였어요. 몇 명정도 사람을 잡아서 이 캐릭터가 우리나라로 치자면 사회의 어떤 위치에 있는데, 어떻게 행동을 했다..하는 식으로. 사회적인 면으로 접근을 한거죠. 스토리 만화였죠.

= 제가 느끼기에, 이 때 [남수와 주영의 책장] 이전과 이후의 작업들을 보면 차이가 이때부터 어느 정도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좋은 말로 하자면 읽기 쉬워진 면이 있고. 완성도랄까, 이야기라는 것이 좀 더 완결된 형태로 안정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건 솔직히 말씀드리면 순전히 지면 때문이에요. 테크니컬한 부분인데, 캐릭터가 나오면 분량이 늘어요. 근데 [남수와 주영의 책장] 같은 경우는 2년간 그날에서 책읽기에서 3,4p짜리 만화서평을 했었기 때문에 6페이지를 따낸거구요. 따내서 반년 만에 8페이지로 늘린거고.

만화 쪽에는 만화가 내용을 담으려면 어느정도 적정한 분량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보통 만화 쪽에 지면을 많이 안줘요. 공간을 많이 차지하니까. 그래놓고 "왜 이렇게 내용이 없어!"라고 말들 하는 경우가 많죠. 신문에 나오는 만화들이 대체로 내용을 담는 것 보다 재미있게 보고 넘기는, 이른바 촌철살인이라는 미명하에 메시지 부분이 점점 탈색하게 되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지면을 많이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요. 만약 메시지를 살리다겠다고 보면 지면이 없어져 버리고. 캐릭터가 하나 나와서 이 캐릭터가 어떤 성격이라고 알리는데 만도 한참 걸리는데.. [남수와 주영의 책장] 처음 여섯페이지 할 때 그 때 한 페이지에 스무컷, 스물 다섯 컷 까지도 넣었거든요. 그렇게 했는데도 캐릭터 소개에 네 페이지가 나갔다구요. 캐릭터물도 아닌데. 네페이지에 캐릭터 소개 하고 내용이 없어지거든요. 그렇다고 캐릭터를 줄이고 내용으로만 가자면 답답해지죠. 이런 게 있죠.

= 말하자면 이때부터 잡지에 안정적인 분량을, 긴호흡으로 연재하기 시작해서 변화가 있었다는 거군요.

옛날 중학교 때 했던 것이나 보면 페이지에 신경을 안쓰고 그릴 때는 인물이 나와서 하고싶은 대로 다해요. 다양한 서브 인물들도 나오고. 그러니까 이때부터 바뀐 건 환경이라고 해야겠죠.

= 본래 정보량이 많은 만화를 그리시는 편이신 듯 합니다. 각각의 사상이나 성격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백과사전적인 전개를 펼치는. 그럼 다른 질문으로, 그림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림에 대한 수련이랄까, 연구랄까 그런 것은 집중적으로 하시는 편이신가요?

저는 만화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림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좀 둔감한 편이었습니다. 그림 무서운 걸 안 건 대학 졸업할 때 쯤 해서 였어요. "만화를 그려야겠다"/"만화가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다음에는 그릴 때마다 죽는 줄 알았죠. 그 때부터 데생도 따로 배우고. 배워도 안 늘고. 입시 미술학원을 다닐 생각을 해도 다니진 않았고. 한겨레 일러스트 학교 가서도 배우고. 숙제를 제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죠. '배운' 건 그런 정도입니다.

= 회사를 다니실 때 그림 그리셨던 건가요?

회사 다니면서 기획과 디자인 일을 다 했었거든요. 병특이 원래 시키면 한다기 때문에. [남수와 주영의 책장] 이외에도 민노당 쪽에 연재를 하려다가 팀이 깨지고 '대학생신문' 일러스트나 만평도 하고. 그 다음에 여러 대학의 교지에 청탁받아서 원고를 하고. 사회당 오김숙이 후보 선거 만화를 보궐선거 때 했었고 이건 만화 괜찮게 나왔었죠. 노동자 신문 만화 연재도 했었고요. 3년째인가 4년째인가 부산대 교지 일을 계속 하고 있기도 해요.

= 이후에 몇 가지 만화를 준비 하시다가 2003년에 문화일보 쪽에 장정일의 삼국지의 삽화로 추천이 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를 같은 연도에 프레시안에 연재하시다가 단행본으로 출간하셨고요. 궤적을 보면 문제의식이라는 게 제 생각엔 일단 사람들이 알기 어려워하거나 살면서 관심 기울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쉽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느냐 라는 부분에 초점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십자군 이야기]는 말하자면 공식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 * * 십자군 이야기에 대해.

처음에 준비 하신 건 언제부터 이셨나요?

부산대에 2003년 초에 연재를 했어요. 부산대에 1년에 네 번 그림을 보내는데 작년 봄호에 십자군을 보냈어요. 그리고 주위에 보였더니 확장해서 책으로 내보면 재밌겠다는 얘기가 나와서 이때까지 준비하고 있던 여러 가지를 접고 십자군을 하게 됐죠. 그리고 [프레시안]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반응이 좋은 걸 보고 책으로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 십자군 이야기를 그리면서 스스로 가장 고민하신 건 뭐죠?

가장 고민했던 건 악당을 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거였어요. 독자들에게서 정서적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죽이는 쪽도 죽는 쪽도. 독자하고 어느 정도의 정서적 거리가 있으면서 어느 한 쪽에 쓸려가지 않도록. 그러면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동일시를 막으면서 재미를 느끼게 하는 거죠. 물론 보다 보면 어느 한 쪽을 편들게 되는 게 당연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 그러니까 ‘똘이장군’처럼 만들고 싶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우익에서 하는 똘이장군을 보고 자라오다가 80년대에선 반대쪽에서 만든 똘이장군을 보다가. 독자들이 어느 쪽도 믿지 않게 되어버렸으니까요. 하지만 거리가 너무 일정하면 재미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너무 재미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 동일시를 막으면서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면 그걸 위해서 도입한 장치라든가 이런 것이 있다면?

장치도 장치지만 항상 이분처럼 위대한 분은 없다고 생각했던 게 고우영씨 만화에서 많이 배웠어요.

= 태권님의 작품을 보면서 동일시를 막는다는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브레히트의 영향이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레히트 식 ‘낯설게 하기’가 만화에 그대로 도입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에선 고우영 특유의 재담 쏟아 그리기랄까, 인물 등장 방법들이 보이는 것 같거든요? 초기부터 고우영 만화의 영향이 있었던가요 아니면 [십자군 이야기]를 위해 도입한 방법론이었나요?

고우영 스타일은 이번에 많이 한거고요. 사실 고우영 뿐 아니라 중학교 때 마당극 대본들을 많이 봤어요. 중학교 때 열렬한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에(웃음). 탈춤하고 가면극하고 꼭두각시 놀음하고. 다른 나라에도 이런 게 다 있다는 걸 알면서 탈출을 하게 됐는데.. 뭐. 그래서 거기 나오는 입담들이 아주 끝내주잖아요. 동일시를 안하면서도 재미있게 가려면 만담이다 라는 게 처음 생각이었죠.

= 고우영 만화나 마당극의 요소를 도입했을 때의 장점은 뭐였을까요. 동일시를 막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학습만화적인 선례랄까. 그런걸 거기서 보셨던게 아닌가요? 재담있게 이야기를 전달해 나아가면서 교훈적인 부분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고우영 아저씨의 동일시를 시키려는 것들은 재미가 없고. 최근작 보다 옛날 삼국지가 만배쯤 재미있어요. 그거는 정말 동일시가 안돼요. 좋고 나쁜 사람도 따로 없고. 누가 어떻게 되느냐 보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되느냐가 더 궁금하죠. 사람들에게 감정의 소모를 많이 요구하지 않는 거죠. 교과서적인 소년만화나 순정만화는 반대죠. 이런 쪽은 제가 원하는 방향하고 맞지 않아요. 이번에 십자군 이야기에서도 다루어야 하는 문제인데, 예를 들어 부시가 이라크 쳐들어가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 이건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후세인은 이라크의 무고한 사람들을 안죽이느냐 하는 거죠. 그렇다면 부시에 반대하는 사람은 다 우리편인가? 이런 건 애매하다는 문제의식인거죠. 이럴 땐 부시건 후세인이건 웃기는 놈들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여줘야 되는데 그런 민중들의 목소리란 건 좋은 놈, 나쁜 놈 하는 식으로는 잘 나오지 않죠. 요즘 연구하고 있는 건. ‘적벽가’가 정말 특이하거든요. 적벽가 판소리 자체가 삼국지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얘기인데 유비나 조조가 특별히 좋다는 얘기는 없고 조조 병사들이 모여서 신세 한탄하는게 나와요. 판소리 특유의 과장 뭐 이런 게 더해져서. 병사사설 등이 있고. 그런 거에 가까울 수도 있어요.

= 태권님 만화에는 만담의 재미도 느낄 수 있지만 캐릭터들의 포즈나 표정들을 보면 보통 만화를 그릴 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물을 조각을 묘사하듯이 표현한다든가, 기형적인 오버액션의 정지형태를 구사한다든가. 일본만화 쪽의 영향인 거 같기도 하고, 혹은 십자군 이야기에서 밝힌 것처럼 중세 태피스트리 같기도 하고. 양쪽 다 걸쳐 있는 거 같은데, 그런 건 스스로의 재미나 스타일의 문제인가요, 혹은 위에서 말씀하신 ‘낯설게 하기’를 염두에 둔 건가요? 저는 그런 것들이 이렇게 쭉 넘어가지 않고 생각하면서 읽히게 하는 효과를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서적인 거리도 도움이 되고요.

스스로의 재미로 시작을 했는데 후자에 연관이 되어서 계속 쓰는 거죠. 전 그렇게 낯설게 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낯설어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그건 의도하는 부분이 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구요. 잘 맞는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해요. 그리고 독자 입장으로 생각하면서 만화를 봤을 때 그런 게 재미요소가 될 수 있거든요. ‘낯설게 하기’ 쪽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남자는 불끈불끈] 같은 만화처럼 아예 과잉 감정을 넣어버리는 것도 가능하겠죠. 나중에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어쩌면 오히려 벤야민이 말한 "인용으로만 만든 책" 같은 걸 하고 싶은 면도 있어요. 특히 그 조각같은 포즈나 표정들이 이런 효과들이 있는 거죠. ‘그림으로서의 인용’이라고 볼 수 있겠죠.

= 그림으로서의 인용이라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서 따온 것 같은 느낌을 보여주는 건가요? 십자군 이야기를 보면 실제 중세 시대의 그림 같은 풍을 재현하는 씬이 많은데요.

그 당시라기 보다도…. 옛날에 실험을 해본 적이 있는데 맑스의 [독일이데올로기]를 그리다가 중간에 조선 민화를 넣었어요. 그런 것이 기초적인 시도라고 얘기 할 수가 있겠죠. 이질적인 것이 인용이 되면서 어떤 효과를 낳는 것.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 십자군 이야기는 작년 말에 1권이 나왔습니다. 2권은 언제쯤?

파병 전까지는 마칠 생각이에요. 예정은 3월로 알고 있지만. 총 6권? 6, 7권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제가 듣기로 1권의 판매량이 괜찮다고 들은 바 있는데. 교보문고 베스트에 진입하셨다구요. 인문베스트에 5, 6주던가. 어둠의 지하 민중계몽만화가에서 약간 양지의 인물이 되셨다고 할까? 보통 단행본을 내야 공인된 만화가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제 작가로서 공인되신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스스로 변한 게 있다거나. 그런 거 없나요? 스스로 부담감이 생기실 수도 있을테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는데 "더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스트레스 받아요. 책도 더 많이 보게 되고. 관련자료 구입하는 비용이 두 배에서 세 배로 늘었어요. 틀린 얘기를 하면 안되니까. 스트레스 많이받죠.


* * * 만화를 '조직화'하는 것은 소통을 위해서다

= 제가 보기에 태권님의 만화를 그리기까지의 과정은 다른 작가들이랑 다른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태권님의 수첩을 본 적이 있는데, 읽은 것에서 중요한 것을 메모하신다거나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주석으로 달아놓으신 것들로 두꺼운 수첩들을 가득 채우시더라고요. 대단한 분량으로 체계적으로 말이죠. 자료 수집이라든가 그런 걸 어떻게 하시죠? 관련 서적을 다 읽어보는 걸로 시작을 하나요?

옛날에, 학부 때. 인문대 선거 끝나고. 그 다음에 하려던 학생회 사업이 잘 안되고. 주머니에 돈은 없고. 용돈을 벌어보자라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대학신문에서 하는 대학논문상- 그걸 하려고 준비를 했어요. 논문하려고 공부했던 건 포스트 포드주의에 대한 거였는데 준비하면서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다가 하도 재미있어서 논문은 뒷전이고 그거에 대한 노트를 한권을 만들었어요.

자료를 조직화 하는게 어떤 거다 라는 걸 배웠죠. 제일 중요한 게 1차 문헌과 2차 문헌을 구분하는 거고. 거기서부터 시작을 한건데. 해봤더니 상당히 좋더라구요. 그 다음에 2001년부터는 좀 필요한 내용이다 싶은 걸 노트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레닌이 공부한 방식이 그렇다고 하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만화 자체가 특별한 만화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겠죠. 에코 논문 작성법에 나와있는 순서를 따라요. 비블리오 그라피(참고 문헌 목록)을 만들고 그 안에서 표준사를 잡고. 1차, 2차문헌을 나누고. 그걸 하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개요를 짜죠. 그러면서 플롯을 사전 조사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걸 시작하기 전에 먼저 문제의식이 잡혀야 하는 거죠. 물론 문제의식이 중간에 변하기도 하지만.

=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수도사의 이미지입니다. 거대한 도서관에서 책 읽으면서 주석 달고 필사하고 그 속에 삽화도 그리고 하는 수도사 말이예요.

[장미의 이름] 수도사보다는 [베르세르크]의 수도사 같은데요. (웃음) 정말로 재미있다 싶은 책은 책 옆 빈칸에다 줄을 쳐놓고 거기에 써요. 이런식으로 주석을 달아놓죠.

= 이렇게 자료를 조직화하는 방식은 나중에 활용할 때는 편하다고 하더라도 직접 하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이걸 하기 시작한 건 나중에 활용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셨는지 아니면 체계화하고 정리하는 데 취미가 있으신 건지.

생각들 좀 정리하고 하느라고 그랬죠. 기본이 되는. 이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정리를 해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플롯을 대략 구상한 다음에 그 플롯에 그 내용을 어떻게 풀어낼지를 고민하고 그에 따라 플롯을 다시 조직하는 방식을 쓰시나요? 책의 내용으로 조직해 나가는 방식이랄까.

이건 평소의 지론인데. 사람들이 감동을 받거나 좋아하는 것은 플롯이라고 생각해요. 만화나 영화나 어떤 이야기에서라도 잘생긴 배우가 나온다거나 예쁜 캐릭터가 나온다거나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건 캐릭터나 주연의 외모 보다도, - 주제는 더더욱 아니고 - 사람들이 이걸 진지하게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건 플롯이라는 거죠. 플롯이 어느 수준 이상 되어야 사람들이 계속 볼 수 있게 하는거죠.

= 플롯에 대한 공부는 처음부터 시작을 하셨나요? 본격적으로 그림에 대한 수련은 회사 들어간 다음에 하셨다고 했는데.

한겨레 일러스트 학교 끝난 다음에 플롯을 공부하려고 한겨레 시나리오 학교를 다녔어요. 거기서 [비트]와 [태양은 없다]의 시나리오를 쓴 심산 선생의 강의를 들었어요. 그 분이 항상 하는 말씀이 자료와 사전 조사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여기서는 어떤 걸 했냐면 숙제로 그런 걸 줘요. 영화를 보고 영화 시나리오를 다시 써보는 것. 영화를 보면서 그걸 시나리오로 다시 적는 거. 실제로 영화 연출 공부하는 사람들은 콘티를 만들잖아요. 소설가들은 소설 보면서 베껴쓰는 걸 하고. 사실 그런 숙제와 훈련들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시나리오 관련된 책들도 구해서 읽었고. 책 고르는 방법은 에코가 가르쳐준 대로.

= 플롯에 있어서도 태권님의 만화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조직화라는 데에 있는 거 같은데. 자료와 이야기를 조직화하고 그것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한다는 데에 말이예요.

자료를 조직화한다는 데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중요한 얘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조직화한다거나 모든 건 기준이 하나에요. 잡다한 지식들과 주제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것을 잘 전달할 것인가. 결국에는 플롯의 문제도 다 소통의 문제인 것 같아요. 학생회에서 하던 고민하고 다름이 없는 거에요. 예쁜 색지를 대자보 위에 붙이면 사람들이 더 볼 것인가. 신문지에 쓰면 더 잘 읽을까. 어떻게 좀 더 주류적인 물량 공세에 맞서서 소통을 하고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게 항상 문제죠. 플롯도 그걸 위한거고.

=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 혹은 소통에 대한 문제는 묘하게 90년대 대학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통’이라는 단어가 그만큼 많이 쓰인 시기도 없었던 듯 하고요. 물론 그건 이전 시대에 비해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절박함이었겠지만… 80년대에도 민중 만화를 그린 사람들이 있겠지만 전달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의 양상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80년대 민중 만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하나에요. 박재동 화백의 만화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너무 소통에 대해서 생각을 안해요. 자기표현으로서만 작품을 하지. 그게 한국에 들어왔던 옛날 20세기 정치 예술들이 표현주의의 옷을 입고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예를 들어 케테 콜비츠나 보로츠코. 그런 사람들의 그런 점만 보고 하다보니까 소통보다도 표현을 더 우선 생각하게 되고. 진심이 전달되면 반드시 통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눈을 뜰 것이다. 뭐 이런 생각이죠. 나쁘게 말하면 “정의는 이긴다” 뭐 이런 나이브한 태도죠.

= 대중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있다는 말을 학생운동 및 운동진영이 대놓고 하기 시작한게, 그 위기감이 93,94년부터 시작된 듯 한데요.

제 생각엔 탈 권위주의가 되면서 대학생이라는 위상이 약발이 먹히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80년대 말에 농활을 갈 때 못 들어오게 막다가, 들어가면 주민들과 얼싸안고 울다가. 그러다 90년대 말에 농촌 들어가니 “일 잘하는 애로 보내줘-“ 뭐 이런 분위기가 된 거죠.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탈권위화 되는 거죠. 그건 사실 소련의 몰락과는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운동권의 몰락은 그것과 똑같은 상황이거든요. 옛날에 똑똑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특별히 바보가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저 그래- 하고 넘어간다는 거죠.

= 과거의 유산들이 통하지 않는다는 위기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92~94년 쯤에 태권님이 대학에 입학을 하셨고 태권님이 대학시절에 고민한 소통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96 97쯤 되면 과 자보에 소통, 커뮤니케이션 등의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대중과 운동하는 자들 사이의 간극에 대한 과장된 암울한 위기의식 같은 것도 등장하고요. 접근을 다양하게 해보려고 록음악이나 만화에 대해서 얘기도 해보려고 하고. 이런 시점에서 태권님이 맞물리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들어왔다는 점에서. 태권님이 90년대의 대학과 맞물리는(혹은 대변하는?) 특성을 가진 민중만화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뭐랄까, Post-80년대 민중만화라고 할까.

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평가하신다면 감사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어요. 80년대에 제가 가졌던 문제의식으로 그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87년에 강남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문제의식을 전달할 것인가 라고 생각했었어요. 그 때 저 개인적으로는 소통의 위기랄까 하는 것을 대학에서보다 더 많이 경험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바라는 식의 플롯을 갖춰야 하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얘기부터 시작해 해야한다는 고민을 오히려 그 때에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대학 와서는 훨씬 더 편했어요. 90년대의 대학이 소통의 위기라는 인식은 팽배했었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많았던 거예요. 옛날에 비하면 살아난 거죠. 중학교 때는 같은 반에 안기부 차장 아들 있고 그런 학교 였는데 말이죠.

= 한국의 민중만화가들에게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았나요?

제가 영향을 받은 건 민중만화들 보다는 오히려 정채봉씨의 ‘생각하는 동화’ 같은 것이었어요. 거기에 그림이 같이 붙어있었어요. 보면서 그림을 더 생각했고. 그 방법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으니까요.

= 말하자면 태권님은 예전의 민중만화가들의 고민과 연관이 있으면서 그것의 표현 방식이나 스타일은 영향권 아래 있다기 보다는 스스로 꾸준히 개발을 해왔다고 보여집니다.


* * * [대한제국쇠망사]를 연재하기 시작하다

= 이제 문화일보에 러일전쟁을 테마로 한 만화를 연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만화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제목은 [대한제국쇠망사]가 될 예정이구요. 다음 주부터 연재가 시작됩니다. (이 만화는 2월 첫주 연재에 들어갔다. 독자들은 문화일보를 확인해보시라 | http://www.munhwa.com/bbs/view.html?bbs=decline&artcl_id=1)

= [대한제국쇠망사]는 우리가 사는 나라의 얘기기 때문에 오히려 자료조사가 더 꼼꼼하게 될 것 같아요. 많이 힘드시겠네요.

예. 죽을 것 같아요. 자료 조사가 너무 힘들어요.

= [십자군 이야기]는 부시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십자군에 비유한거잖아요? 이 만화는 십자군 이야기와 목표하는 지점이 다르다거나 이런 부분을 노력하고 있다던가 하는 것이 있다면.

딱 그것 보다 [십자군 이야기] 쪽이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만한 서구의 편견과 그로 인한 전쟁, “전쟁과 편견”이라고 할 만한 쪽에 많이 맞춰져 있다면 [대한제국 쇠망사]는 전쟁과 그 전쟁의 뒷이야기들에 대해 다룰 예정이에요. 전쟁을 치르는 개별적인 국가들, 전시체제라고 하는 국가 권력의 문제, 국민국가의 문제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에요.

[대한제국 쇠망사]를 쓸 때 제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그때 우리 민족이 부국강병을 했어야 한다”는 얘기로 흐르는 거예요. 그럼 박정희가 좋은 놈이 되는거 거든요. 항상 생기는 문제에요. 박정희 같은 경우 민족주의자를 표방했고. 강력한 리더십. 근대화. 그런 것이 요구됐다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박정희같은 사람이 또 나와야 한다는 얘기로 가게 되니까요.

= 그 당시의 일들이 근대국가들 사이에 끼었던 근대가 아닌 조선의 문제라고 얘기되기가 쉬운데 그런 걸 피해가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린 아무래도 조선에 감정이입을 하기 쉬울 거고.

박노자씨 같은 경우에는 그런 점을 비판하겠죠. 그 분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 잘 없는데. 훌륭하죠. 저의 경우에는 “그렇다면 일본은 사람들이 행복했느냐”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고토쿠 슈세이 얘기가 나오는데, 그 사람이 그 때 일본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면서 러일전쟁 때 반전을 얘기했었어요. 근데 사형이 됐다구요. 불충분한 근거로 사형이 되고 재심요구도 기각되고 말이죠. 국가가 국민들에게 거짓말하고 그러면서 태평양 전쟁까지 가게 되는. 그러면 러시아는 행복했느냐. 그것도 아니라는 거죠. 결국 부국강병이라는 모델 자체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느냐.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거죠.

= 이걸 다루면서 제3세계로서의 한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주의적 시각을 보여줘야 하는데 상당히 힘들 것 같아요.

그렇죠. 예를 들어서 고종같은 경우도 괜찮은 인간이었다는 얘기를 하게 되고 그래요. 근데 그건 독재자로서 괜찮은 거거든요. 그럼 그것도 아니라고 얘길 해야 하고. 관점을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관점의 밸런스가.

첫째는 “역사의 승자”라는 설정의 매혹에 넘어가기 쉽고. 두 번째로는 식민사관도 극복해야하고 부국강병에 대한 환상도 극복해야 하죠. 그런데 부국강병을 얘기하다 보면 사회진화론이잖아요. 이걸 의외로 잘 극복을 한 사람이 신채호가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더라구요. 신채호가 러일전쟁 직후에 대한사회에 등장을 했을 때 사회진화론을 소개하는 역할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신채호는 나중에 그걸 극복을 했어요. 지금 한국에서는 신채호를 민족주의자로 놓고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요. 근데 그렇지만 뭐 주인공은 민영환이에요. 집단주인공처럼 하고 미국의 문제도 많이 나올 거예요.

=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김에 묻겠습니다. 본인 스스로 어떤 이데올로기 지형에 위치해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자기가 어떤 실천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 될 문제죠.

= 작품 속에서 주장하는 것들도 실천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어느 만큼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작품 속에 반영되고 있는지. 자기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이데올로기 지형이 단순히 합리성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거잖아요.

아직 뭔가 크게 얘기한 적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말이 안되는 게 많으니까. 아직 뭔가 대단한 이데올로기를 얘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그렇게 읽는 것 같고. 의외로 저도 놀란 얘기인데 인터넷에서 구매한 층을 살펴보면 저는 10대가 많이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5-29세가 제일 많고 의외로 그 다음으로 40대 더라구요. 그러니까 제가 제 책에 대해 어떻다고 규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 이데올로기에 있어서 어떤 점을 극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거나.

민족주의라든가…… 음, 딱 그렇게 꼬집어서 말하고 싶은 건 아니구요. 이런 거거든요. 예를들어 장정일 삼국지 삽화 일러스트를 하면서도 한 귀퉁이에 썼던 얘기인데.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들이 서부영화를 보면 기병대들이 인디언을 쏴 죽일 때 박수를 친대요. 인디언 아이들이. 그게 사람들이 플롯을 숭상한다고 했을 때 플롯의 문제인거죠. 그리고 이건 장정일 삼국지에도 나오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되는 거지만 제갈량이 맹획을 잡으러가는 대목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그걸 책에서 나오는 대로 오랑캐 정복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렇게 보자면 한국 사람도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보아 오랑캐인데. 그게 말하자면 프란츠 파농이 말한 ‘하얀 가면’이라는 부분인데. 오리엔트에 사는 사람이 오리엔탈리즘을 가지는 것만큼 비합리적인 것이 없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너무 다른... 그건 일종의 허위의식이죠. 허위의식의 극복이라고 할까. 같이 극복해보자는 거죠. 저도 극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고. 그런 거 있잖아요. 민족해방운동을 하다보니 엄청난 마초가 되어있었다는 식의.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 사회에서 엄청 말이 안되는게. [명성황후] 뮤지컬이 성공한 그 해 후반에 가장 성공한 뮤지컬이 [왕과 나]에요. 그런데 근대화와 자주 독립을 보전한 나라는 태국이지 한국이 아니거든요. 한국사람들이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데. 그런거죠. 합리성이라는게.

=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 좌편향이라든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네요.

전 합리적 보수라는게 한국 사회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실제로 돌아가는 현실을 보고 말이 안되는 것을 따져보면, 일단 따지기 시작하면 상당히 명백하거든요. 그런데 사회에서 그런 게 지켜지지 않는거죠.

= 태권님께서 작품을 보는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싶은게 있다면?

그런거 있잖아요- 만담이 재미없다거나 책이 늦게 나와도 이해해주세요. 라고. 그리고 만화가들이 할 말 없을 때 하는 말 있잖아요. “작품으로 얘기한다”(웃음).

= 태권님 만화가 훈련되어온 과정이나 혹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조직화하는 과정을 볼 때 태권님의 만화를 장르만화라고 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만화라는 매체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체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장르적인 플롯이나 이런 걸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거든요. 고우영의 만화보다 더 극적인 장치들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라고 생각 되고요. 예를 들어 고우영 같은 경우에는 칸이 거의 똑같지만 [십자군 이야기]를 보면 극적인 장면에서 칸의 크기변화나 클로즈업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과도하진 않지만 충분한 정도로 활용이 되거든요. 스스로 극장르적인 건 커뮤니케이션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고 계신 건지 아니면 앞으로 극장르를 해볼 생각도 있으신지 궁굼합니다.

극장르 할거에요. 반드시 할거에요. 생각은 이빠이 있어요.

= 그렇다고 해서 계몽만화적인 특성을, 태권님 만화의 본질을 규정하는 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그걸 버릴 것 같지 않은데요. 혹시 생각해둔 거 있으신가요? 예전에 고흐 이야기도 그려보신다고 했던 것 같고.

다음에 이런걸 한번 할거에요. 히틀러 집권사. 극이 상당히 강조된 형태로요. 그 외에 역사적인 것을 몇 가지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는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라는 것을 다룬 작품도 하고 싶습니다. 고흐 등도 있지만 그걸 그냥 예술의 문제로 다루진 않을거에요. 사회와 관련해서. 그리고.. 추리만화 해보고 싶어요. ‘해방공간 연쇄살인’이라고. 1945년부터 1948년 사이에 벌어진 연쇄살인에 대한 얘기를 다루면서 그 사회의 상황과 인간의 상황을 그려보고 싶은 구상도 있습니다.

= 자기의 만화를 저널이라든가. 저널적인 만화라든가 하는 식의 구분을 하고 계신 건 아니라는 거죠?

조금은 하죠. 이건 저널에 좀 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감히 대가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염상섭이나 톨스토이나 나쓰메 소세키나 훌륭한 극형식의 소설을 보면 당시의 저널로서 어떤 르뽀 보다도 충실합니다. 충실하게 하다 보면 뭔가 나오겠죠. 미리 규정짓고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런 극적인 것과 르포적인 것을 한꺼번에 작품의 수준을 높이는 요소로 끌어가고 싶어요. 완성도를 높임으로서 그런 구분을 해소하고 싶습니다.

= 대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하시는 걸로 들립니다.

그냥 직업이죠. 자기 직업에 만족을 느끼면서 일하고 싶은거죠. 프로의식 같은 건 아니고. 자기작품에 완성도가 낮다면 그거야말로 자본주의적인 노동이죠. 자기 노동에서 스스로 소외되는 거잖아요.

=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만화를 놓치지 않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완성도를 구현해야 한다는..

그건 제가 만화를 그릴 때부터 목적하던 근데 그걸 놓치고 가면 그건 ‘완성’이 아닌 거죠.


* * * 저희 어머니나 이런 데 관심없는 친구들에게도 읽히고 싶어요

= 집에서는 만화가를 한다고 할 때 어느정도 저항이 있었을 것 같은데.

만화그린다고 백수생활을 몇 년 하다가 책이 나온 거니까. 백수생활 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집에서 바라던 게 이런 건 아니지만 그나마 백수를 면했으니 다행이다. 그런 분위기죠.

= 부모님께서 나름대로 작품을 읽기도 하시겠네요.

이건 소통과 관련된 문제인데, 준비를 다 한 다음 그림 그릴 때쯤 해서 스크립트를 어머니께 보여드려요. 먼저 친구들한테 읽혀서 괜찮다 그러면 최종단계로 어머니께 보여드려요. 이걸 보실 때 어머니가 내용이 복잡하다, 거부감이 든다 하시면 다 바꾸죠.

= 말하자면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도 읽히기 위한 샘플로서 이용하시는거군요.

이런데 관심없는 친구들한테도 읽히고 싶으니까요.


* * * 만화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만화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하면 어떻게 훈련하거나 어떤 식으로 경로를 거치는 게 필요한가 라고 묻는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어요.

저는 처음부터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만화가가 된 게 아닌데 나중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몇 년동안 준비를 한 거였어요. 만화가가 되겠다는 것보다 “소통을 해야된다”라는 게 강박관념처럼 있어서 그걸 하다보니 만화를 하게 된건데. 만화를 하다 보니까 이게 직업이니까 더 잘해야겠다 공부도 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거죠.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전제로 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겠죠.
첫째로는 일단 자기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아야 해요. 그런 걸 안하면 중간에 이상한 만화를 그리게 되고 이도 저도 아니게 돼요. 이 업계가 사람을 소진시키는 면이 있끼 때문에 하고 싶지도 않은 거 하다가 몸값이 떨어지고. 그림도 안되고. 만화도 재미없어지고 자기도 일 하고 싶지 않아지고. 그러면 오래 못 하는거죠. 말하자면 자기 관리라는 건데 중요한 건 자기가 하고싶은 얘기가 뭐다 라는 걸 가져야 해요. 그러면 자기관리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이거 정말 중요한데, 만화는 글도 해야 하고 그림도 해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만화의 고전도 봐야 하지만 글 자체의 고전들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미술사를 공부를 해야 해요. 문제는 이렇게 하다 보면 돈이 많이 들거든요. 저는 만화보다도 글과 미술사 쪽을 많이 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펜의 기술 같은 건 오히려 금방 익히거든요. 구도나 아이디어. 그런 발상의 역사들. 기초적인 해부학도 공부해야 하지만 그런 건 저도 열심히 안하고 있고.

= 말하자면 기술보다 컨셉이라는 건가요?

아뇨. 이게 기술이에요. 진정한 기술이라면 얼마나 깊이가 있는데.. 사람들이 기술이나 기교를, 그걸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얄팍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요. 더구나 요즘에 나오는 건 기교 조차 없는 게 많죠. 인물을 그릴 때 일본만화 식의 인물 그리는 설명서 보고 따라 그리는 거 있잖아요. 그걸 하느니 해부학 두상을 공부하는 게 낫다는 거죠. 그걸 가지고 미술사를 보면 미술 양식마다 그걸 구현하기 위해 다양하고 깊이있게 고민한 흔적이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그 아이디어들을 흡수하고 그러면서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 게 나아요. 일본만화의 어디에 나온 주인공 따라 그려봐야 큰 도움이 안되거든요. 그런데 전부 그렇게 하고 있어요.

= 첫째로 자기 내용. 둘째로 글과 그림의 역사, 아이디어, 기술에 대한 섭렵. 셋째는 플롯이 되나요?

플롯이 두 번째에 이미 들어가 있죠. 교양을 늘리기 위해 미술사를 보는 게 아니에요. 그건 기술의 최소 요건이거든요. 만화를 그리면서 자기 지분을 갖고 싶다, 자기만의 입지를 확보하고 싶다 하는 경우에는 특히나 그래요.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만화 스타일은 사람들이 이미 다 알거든요. 그거 지금 따라해서는 먼저 한 사람만큼 앞서 갈 수는 없어요. 그럴 때에는 원래 걸로 돌어가야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해부학이나 미술사를 보거나. 어쩌면 아류가 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일 수가 있어요.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인사말 한 말씀 해주십시오.

연재가 늦어지고 개그가 재미 없더라도 싫어하지 마시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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