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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드래곤볼' 이후, 소년만화는 어떤 길을 택했는가
만화는 흐른다 05/01/25 03:59 깜악귀
- 1화 : [드래곤볼]의 성공과 그 금단의 열매


1. [드래곤볼] 이야기

[드래곤볼]의 성공은 한국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쳤거니와, 거의 '한국 소년만화의 탄생'을 이 일본만화 한 편(그리고 뒤이은 [슬램덩크])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의 거의 모든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소년들이 노트에 에네르기파를 발사하는 손오공이나 꼬리잘린 후리자를 그리고 있었다. 파워의 표현에 있어서 드래곤볼의 참신하고 완성된 스타일은 강한 매력으로 독자를 끌어당겼다. 당연히 만화잡지 편집부에서도 신인작가들에게 '저런 스타일'을 요구했다. 물론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이것은 일본에서도, 아니 세계적인 대작이었다.

[드래곤볼]의 무엇이 그들을 끌어당겼을까? "물론 모든 점에서 걸작이기 때문에"라고 대답하는 것은 애정을 가진 팬으로서는 진심이겠지만 사실 [드래곤볼]의 줄거리는 신통치 않다. 그 줄거리의 핵심부만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앙상한 플롯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드래곤볼]에는 드라마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주인공이 강해지기 위한 구실이 주어질 뿐이다. 그러나 [드래곤볼]은 소년만화의 이야기 구조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다름 아니라 주인공과 그 주인공이 전투력을 올려야만 하는 구실만 대략 제시한다면 그것이 드라마의 역할을 자연히 수행한다는 것이다. 소년들에게는 주인공이 강해진다는 것이 충분한 드라마가 되고 남기 때문이다. 사실 후리자 이후의 드래곤볼의 줄거리에서 '인조인간', '마인 부우' 등은 단지 새로운 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왔다는 것을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드래곤볼]의 매력은 도라에몽에서 영향받은 듯한 '호이포이 캡슐' 등 기기묘묘한 아이템의 출현(이것은 작가의 다른 [닥터 슬럼프]에서 더욱 돋보이는 매력이지만)과 예측하기 어려운 발상과 캐릭터 디자인이 튀어나오는 제한 없는 상상력이었다. 신계에 가서 수련한다는 발상이 나오는가 하면, 적들의 묘사에는 더욱 제한이 없어서 베지타의 변신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숨이 멎을 지경이었고, 파충류를 닮은 후리자의 디자인과 그 변신 이후의 디자인 등은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이것들이 드라마를 대체하고도 남을 정도로 풍성했다. 이러한 다양한 아이템과 기기묘묘한 디자인의 등장 역시 이후의 만화들이 [드래곤볼] 이후 명시적으로 강화하며 나아가게 된 부분이다.

그러나 [드래곤볼]의 가장 핵심부이며 이후의 소년만화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소년만화에서 파워를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에 있어서의 완성이었다.


2. 파워를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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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거의 모든 일본소년만화(혹은 한국소년만화) 잡지에서 드래곤볼에서 '에네르기파'를 쏘는 구도와 거의 동일한 원근 구도를 그 유산으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힘이 온 몸에 넘쳐흐를 때 기가 몸 밖으로 치고 나오는 등의 표현은, [드래곤볼]에 와서 완성태가 되었고 이후에는 사실 단순한 변형에 불과하다.

'힘의 디자인'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드래곤볼]은 당대 최고였다. [드래곤볼]에서는 소년지에 어울리는 적절한 인체의 생략과 함께 파워의 역학에 있어서는 충분히 자세하고 구체적인 표현이 이루어졌다. 즉, 격투에 필요한 근육의 움직임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지만, 그것이 성인물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스타일도 이후의 소년만화들이 모두 떠안은 그림 스타일이기도 하다. ([나루토]의 작가후기에서는 이와 같은 스타일에 있어서 자신이 [드래곤볼]에 영향받은 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드래곤볼]은 하나의 금단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것은 '전투력의 수량화'이다. 지금까지의 만화는 "누가 누구보다 셀까, 세지 않을까?"라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싸워봐야 안다"라고 말해왔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상대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맞붙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설정이 [드래곤볼] 이전이었다면, [드래곤볼]이 도입한 것은 '힘의 물량주의'이다. 스카우터로 측정해서 손오공의 전투력이 40000이고 후리자의 전투력은 100000이라면, 이대로는 후리자가 이긴다. 굳이 피터지게 맞붙어서 싸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투력의 차이는, 반드시 요행이 통하지 않는 압도적인 격차로 벌어져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설정은 양날의 칼이었는데 장점으로는 독자들에게 '저 놈은 너보다 100배가 세다'라고 아주 쉽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구체적인 수치의 전달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넌 언젠가는 죽어"와 "넌 569일 후에 죽는다"의 전달력 차이와 같다. 혹은 다음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남자 : (여자의 옷깃을 잡고 흔들며) "넌 나를 사랑하니? 아니면 X를 사랑하니! 확실히 대답해!"
여자 : (정색을 하고) "난 너를 532만큼 사랑하는데 X는 644만큼 사랑해"


남자는 나머지 112만큼의 수량을 더 얻어내기만 하면 된다.

각설하고, 전투력을 물리적으로 측정하는 '스카우터'라는 물품은 지금은 매우 당연한 듯이 보여도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등장시켜서는 안 되는 금단의 물품인지도 몰랐다. 스카우터는 '전투력의 수량화'를 가져왔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해갔다. 이 속에서 이제 '힘의 개성'은 말살된다. '낭아풍풍권'이나 '태양권' 과 같은 참신한 기술들은 다시는 등장할 수 없다. 결국 천진반들은 영원한 벤치 신세가 되고 만다. 전투력의 차이는 이러한 기술의 차이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색을 맞추려는 듯 크리링만이 한동안 식스맨이었을 뿐이다.

크리링이 '냅퍼'에게 던진 '기원참'의 아쉬운 실패는 바로 그러한 벤치신세들의 운명에 대한 마지막 발악이었을지 모른다.

드래곤볼 19권 71, 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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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원참이 적중했더라면 냅퍼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그것은 빗나갔고, 이후 이런 장면은 다시는 [드래곤볼]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전투력의 차이를 기술의 개성으로 커버할 수 있었던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드래곤볼]의 전투는 일종의 실감나는 주판놀음이 된다. 나중에 후리자가 크리링의 기술을 훔쳐서 이 발악을 똑같이 해보지만 확인하는 것은 역시 초사이언 손오공과의 전투력 차이였을 뿐이다. '힘의 다양성'이 말살되는 순간으로서 크리링이 던진 기원참의 실패는 상징적이다.

크리링은 결국 장가는 잘 갔지만…… 이 서러움에 싯구 하나 지었다 한다.


힘의 개성 따위.
물량 앞에.

- 크리링 作, 기원참을 쏜 직후 망연한 마음에 지은 하이쿠



3. 전투력 수량화와 인플레이션의 종결

결국 스카우터의 등장 이후로 [드래곤볼]에서 캐릭터의 디자인은 있되, 캐릭터의 힘의 개성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손오공의 에네르기파나, 베지타의 에네르기파나 쏘는 폼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싸움의 전략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힘의 수량을 키우면 그만이다. 이러한 사정을 스스로도 알았는지 손오공에게 '순간이동'이라는 발작적인 기술을 붙여서 다시 지구로 데려오지만 그건 그저 '아주 편리한 기술'에 불과하다. 결국 셀을 이기는 것이 손오공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수련을 좀 하고, 스카우터로 다시 재보는 것이다. 그러면 트레이너가 "아직 적에 비해서 1023032 만큼의 전투력이 부족하네, 한달 더 수련하게" 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다시 그 지긋지긋한 100000만배 중력이 가해지는 환경에서 팔굽혀펴기를 가열차게 하면 된다. 근대 스포츠 과학의 역작이다. 그것은 '강해진다는 드라마'의 단순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드라마의 스케일을 무한히 증폭시키지만 동시에 안에서 재미요소를 부식시킨다.

작가도 이러한 문제를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간제한'이 등장한다. "한 번 패했지만 한달 내에 다시 싸우기로 했으니 그 시간 내에 적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다. (인조인간과의 싸움, 셀과의 싸움) 당연히 시간은 빠듯하다. 하지만 이것이 독자에게 위기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독자는 다만 다음 싸움 장면이 보고 싶을 뿐이다. 이런 설정은 결국 시간만 있으면 전투력은 무한대로 올릴 수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이쯤 되면 전투력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전투력 인플레이션'은 뉴딜정책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드래곤볼]은 소년만화의 가장 중요한 재미인 즉 '힘의 추구'를 가장 잘 보여준 만화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소년만화로서의 재미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자가당착을 보여주었다. 사실 [드래곤볼]에서 후리자 이후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이러한 자가당착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드래곤볼]의 '마인 부우' 이후 [닥터슬럼프] 풍의 분위기로 회귀하려는 노력을 보인 것도 이러한 사실을 작가가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손오천, 트랭크스 등 유치원 꼬마들이 서로 놀다가 초 사이어인으로 변신하는 걸 깨우치는 마당에 회귀해봐야 어쩌겠는가? 손오공과 베지타가 '초초초초×300' 사이어인으로 계속 등급을 올린다고 해봐야 어른들의 자존심지키기 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막을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잠깐박스 : 이 에스컬레이터식 구성에 대한 처절하고도 야심적인 극단의 추구를 '투명드래곤'이라는 한국 자생 환타지 소설의 걸작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그 플롯에 있어서 모든 소년만화의 원형적 구조를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명드래곤' 49화에서 그 장대한 일부를 인용해보자.

(전략) "난존나 너보다439081498041309812340983124980149802341098923908천만배는 더쎈
우주의군주의 군주라고도소개하지 그래 내 이름은 나는 콜밥이라고 한다 ㅋㅋㅋ"

투명드래곤:헉 니가콜밥?

콜밥은 진짜 졸라게쎗다 우주의군주의 군주라고도소개하는 콜밥은
진짜최강이엇고 투명드래곤은 투명햇다 (후략)


..... 만약 [드래곤볼]이 1, 2년 더 끌었다면 [투명 드래곤볼]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드래곤볼]은 소년만화에서 '힘의 표현'에 있어서의 완성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극단으로 추구되었을 때의 모순을 보여주며 자기붕괴에 이르었다. 그 힘에 힘입어 전설적인 히트를 기록하였으나 후반부의 전개는 사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고 더구나 완결 이후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는 만화는 존재할 수 없었다. 결국은 [샤먼킹] 같은 만화에서 "우리와 하오의 전투력 차이는 도저히 수련한다고 해서 넘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라는, 소년만화의 주인공으로서는 절대 해선 안 되는 데카탕한 발언을 내뱉고 마는 것은 이미 [드래곤볼]에서 잠재되어 있었던 경향에 대한 표현이다. 두 번씩 죽었다 살아나면서 지옥에서 수행을 해도, 적의 보스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전투력의 차이는 명백하게 숫자로 제시되어 있는데(이 만화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자). '전투력의 수량화'는 이미 그 허무주의의 끝이 예시되어 있었다.



4. '포스트 드래곤볼'의 소년만화

[드래곤볼]은 어떻게 하면 소년격투물이 인기 있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동시에, 그것을 극단으로 사용할 경우 작품의 생명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이후의 소년격투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살 길을 택해나갔다. 그들은 [드래곤볼]의 요소들을 거의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변형하고 개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스카우터'와 같은 '전투력 수량화'의 설정만 해도 그걸 사용하지 않으려니 이미 증명된 그 효과가 아깝고, 사용하면 전투력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야 만다. 어쩌면 그건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라도 써먹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미 [드래곤볼]을 통해 그 종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해 각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절충점을 찾아나갔다. 일단 대부분의 작품에서 드라마를 다시 도입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아마도 사극의 드라마를 도입한 [바람의 검심]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여기에서 검심은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전투력을 제어해야만 한다. 그 설정 그대로 이 작품은 전투력을 억제하고 드라마를 강화함으로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나루토]는 수량화를 아예 없애고 힘의 개성을 다시 도입한다. [원피스]는 "해적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라는 개념으로 수량화를 절충적으로 도입하면서 힘의 등급을 나누고,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지는 않게 설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에 내재된 한계를 마치 작품의 전체적인 무드에 녹여버리는 [샤먼킹]과 같은 변종도 존재한다. 또한 전투력의 수량만큼이나 힘을 개성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전투에서 생과 사를 좌우하는 [헌터x헌터]와 같은 작품도 있는 것이다.

다음 화에서는 [드래곤볼]이 겪은 자가당착을 피해가되, 그 장점은 살리고자 하는 각각 작품들의 시도를 이어서 살펴보자. 이 글은 그것의 서론이다.

(코믹플러스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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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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