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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좋은 걸 어떻해'/오노주카 카오리- 성애물의 미학, 성애물의 미덕
여성만화프로젝트 - NO.03 04/07/19 06:50 메리메리

[좋은걸 어떡해](완결) / 오노주카 카오리
단행본 : 닉스미디어(1-완) 1999



오노주카 카오리의 만화처럼 여자가 그렸음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게다가 지극히 쾌락적인 성애물을 만나면 반갑다. 작가는 흔한 포르노적인 도식에서 벗어나서, 섹스를 하는 여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 장면들을 묘사한다. 다양한 각도를 잡아가며 사진을 찍듯 몸의 부분 부분을 포착한 장면들은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흐르는 감정에 맞게 자연스러운 묘사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실력이 필요할 텐데, 이만하면 가히 수준급이다.

보통 순정만화는 장르의 특징 상 아직 소녀인 여자 주인공에게 성性이 너무 겁을 주어서는 안 되므로, 키스신 및 약간의 상황 전개를 덧붙인 후 다음날 아침으로 슬쩍 끝나버린다(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나중에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오노주카 카오리의 만화를 비롯해서, 일본의 여성성인용 만화 - 통칭 레이디스 코믹스는 주 내용이 성과 사랑이므로 섹스와 관련된 묘사가 마구 쏟아진다. 일본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만화 장르가 바로 레이디스 코믹스다. 영화 [인어공주]에 대해 씨네21의 한 필자는 젊은 날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해도 정작 성 이야기는 빠져있는 점을 지적, 여성영화가 거세현상을 겪고 있다고 말했는데, 영화만 그런 건 아닌 듯싶다. ‘여성만화’ - 소전제로서의 ‘여성만화’는, 여성의 일상과 감각을 세밀하게 다루는 데는 소수의 작가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만화들에서 성과 욕망, 여성의 쾌락은 빠져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이 그만큼 억압적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독자 연령대의 문제일까? ‘야오이’ 만화를 생각하면, 독자 연령대의 문제는 아니고 여성들이 만화를 보면서 성적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문제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것이다. 즉 여성의 욕망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만화가 없다는 것.

물론 모든 레이디스 코믹스들이 여성의 욕망을 리얼하게 묘사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단지 여성성인용이라는 특징 때문에, 가능성이 순정만화보다는 많다는 소리다. 오노주카 카오리는 레이디스 코믹스 작가 중 한명으로 분류되기에 별 무리가 없지만 여타 레이디스코믹스 작품들보다 돋보이는 성취를 이루고 있는데, 주인공들은 성에 대해 일종의 탐구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물들은 섹스에서 넓게는 성정체성까지 섹슈얼리티에 대해 지독히도 궁금해 한다. 그리고 이 탐구는 인물의 성장과 상처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결코 가볍지 않다.

이들의 탐구는 쾌락 감각의 역치가 어디까지인가, 라는 극한적인 상태를 실험하는 것은 아니며 도덕적 금기를 드러내놓고 위반하지도 않는다. 카오리의 만화는, 레이디스 코믹스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에 지극히 여성문화적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친밀함, 섹슈얼리티 - 이 삼각형을 고민한다. 사랑하는데 왜 섹스는 하고 싶지 않을까? 친한 사이였는데 왜 갑자기 사랑하게 될까? 왜 남자는 섹스를 하고 싶어 하지? 사랑이란 뭘까? 등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종류의 질문들이 카오리의 만화를 가득 뒤덮고 있기 때문에 단편들 하나하나가 그다지 차별성이 없으며, 작가가 장르의 특성을 넘으려는 작가적인 자의식이 없음을 시사한다.

[담 너머에]의 요우카는,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왜 거부감이 생기는지 궁금해 한다. 그래서 그녀는 담을 넘는데, 이는 어떤 도움닫기 같은, 한 단계 뛰어 오르는 성장을 의미한다. 요우카는 능숙한 남자 성인으로 대변되는 이웃의 포르노 작가와 섹스를 하면서 섹스의 감각을 익힐 뿐만 아니라, 성인의 성숙함과 현 애인의 미숙함을 비교하면서 애인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요우카처럼 첫 섹스의 시작을 쾌락에 대한 감각에 익숙해지기라는, 초보자에 대한 배려로서 경험하는 여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좋은 걸 어떡해]에서 사토코는, 생리할 때 억지로 섹스를 강요하면서 사랑한다고 말만 늘어놓는 요우에게 화를 버럭 내고 깨고 만다. 아직도 많은 여자들의 첫 성관계에는 수동성과 피해의 정서가 묶여있다. 이건 성차별적인 문화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한국 여성만화들을 떠올려보면 문흥미의 [상처]나 정송희의 [신체적 접촉에 대한 짧은 회상]이 수동성과 피해의 감수성에 공명한다. 오노주카 카오리의 경우에도 상당히 강하다.

다행스럽게도, 오노주카 카오리의 여자들은, 고교시절에 당하는 위치가 좋지 않으며, 자기에게 매력적인 대상과 연애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깨닫는다. 그래서 결국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와 헤어지고 행복한 연애를 위해 달려간다(이런 부분은 꽤 진취적이다). [여름이 되면 그들은]에서 마리는 성격 괜찮은 선배를 마다하고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이웃집 남자친구에게 간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과 사랑한다고 해서 행복이 올까? 그것은 미지수이다. 어차피 자신에게 모자라는 그 어떤 것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지만, 사랑이 결핍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결핍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므로 상대가 100% 채울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찾은 행복은 불안하고도 덧없이 달콤한 것이거나 학생신분이기 때문에 아직은 미정된 것이며, 드물게 등장하지만 나이 든 여자들의 경우에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 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욕망, 섹슈얼리티의 성질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로도 괜찮은 이야기가 된다. [소돔]이 보여주는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애매모호한 삼각관계 속에서, 그들은 라이벌로 인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욕망을 깨닫는다. 작품 전반을 흐르는 퇴폐적인 도발성과 물화된 차가움, 그리고 그 차가움 사이에서 스며 나오는 슬픔과 애정 같은 정서는 상당히 대중적이면서도 욕망의 성격을 잘 간파한 어떤 것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피해와 수동성의 정서는 분명 강력한 것이지만(성폭력을 다루는 데 특히 유효하다) 그 정서에 직접적으로 묶여있지 않는 경험도 많다.

섹슈얼리티의 문제에서 보편적인 것은 몸과 감정을 확실하게 건드린다는 것이며, 오노주카 카오리는 레이디스 코믹스라는 장르 안에서 여성의 몸과 감정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장르 안에서’가 중요한 이유는 장르적 특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몸과 감정에 대한 흔치 않은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화분항해]에서 여주인공은 성인이 되어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남자아이들이 어떻게 성인이 되는지 궁금해 한다. 그녀는 이웃집 어린 소년을 가르치면서 성적으로 유혹하고 관계를 강요하는데, 아이가 자신에 의해 남자 성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픔과 아련함을 느낀다. 여성이 섹스에 있어서 선생님으로써 폭압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구도는 상당히 보기 드물다.

[밀크 쉐이크와 포테이토 후라이]는 오노주카의 작품 중에서 미학적인 성취를 가장 잘 이룬 작품이다. 가정교사가 억지로 성관계를 강요하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며 남자에게 ‘똥침’을 가하는 도발적인 소녀시절을 보낸 여주인공의 한켠에는 ‘포테이토 후라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웃음거리가 된 촌스러운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남아있다. 아버지의 냄새는 다시 잡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행복을 상징한다. 사랑을 찾아 나비처럼 떠나라는 젊은 남자의 말에 여자는 정말로 칼로 배를 그어 나비를 뱃속에서 꺼내고 허물로 남는다. 그녀가 허물로 남은 이유는, 아마도 사랑과 욕망의 허망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의 칼이 낸 구멍을 통해 포테이토 후라이가 우수수 쏟아지는 장면은, 작가주의적 성취를 앞세우는 어떤 작가의 작품 못지않게 아름답다.

(여성만화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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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목록
(번역된 것들)
[화분항해] 단편집, 닉스미디어, 1999
[단추]단편집, 닉스미디어, 1999
[좋은 걸 어떡해]단편집, 닉스미디어, 1999
[소돔] 1-미완, 닉스미디어, 1999
[꽃(Flower)] 조은세상 2003
[난 천사가 아냐] 조은세상 2003
[심야소년] 조은세상 2003
[LOGOS] 현대지능개발사 2003
[래글런슬리브] (단) 조은세상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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