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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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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람의 나라'/김진 - 마음은 어찌하여 쉬지를 못하는가
여성만화프로젝트 - NO.01 04/06/03 07:43 두고보자
[바람의 나라] (미완) / 김진
연재 : 댕기(격주간) 1996, 모션(월간) 1997-1998
단행본 : 육영재단(1-10) 1992-1996, 시공사(1-24) 1999-??  




80년대를 정의할 때 광기의 시대라는 부분을 빼놓기는 힘들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엄지는 미치고 오혜성은 장님이 되어 그녀를 끌어안고 부르주아 스포츠맨 마동탁은 씁쓸하게 휘파람을 불며 떠나는 것이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어놓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게 시대의 진정성을 건드리는 장르의 방식이었다. 치명적인 사건으로 넘쳐 흐르는 드라마와 서사의 시대였다. 드라마틱하게 질주하는 하이 톤의 고음 같은 사랑이 난무하였다. 웅장하고 장엄한 펜타토닉 스케일의 기타 애드립과 프레이즈는 종종 신파로까지 서슴없이 치닫는 역사와 가족사에 공명한다. '헤비메탈 로크'의 시기였던 것이다. 김혜린의 [북해의 별]이나, [테르미도르]니 미친 인물은 역시 등장한다. 미쳐버린 케이스는 미쳐버릴 거 같은 심정을 반영한 산물에 다름 아니다.

드라마와 서사하면 역사와 가족, 미칠 듯한 금단의 사랑, 그리고 야망으로 가득찬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드라마 '야망의 세월' 같은 케이스다. 대하만화들은 거의 모두 이러한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특히나, 일본의 대하서사물과 뚜렷이 구분되는 한국 대하서사물의 차이점은, '가족'에 대한 집착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올훼스의 창' 등 일본의 케이스에서 등장하는 것이 주로 가족보다는 '가문'에 집중되어 있으며 가문에 대한 의무와 문제와 사랑과 반목한다. 그래서 사랑은 금단의 사랑이 되고, 실패한 사랑은 허무주의와 탐미로 흐른다. 반면 한국의 대하서사물의 가족에 대한 감정은 애증의 그것이다. 가족에 대한 애증과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증은 서로 충돌하며, 사랑 역시도 가족을 지항하기에 (결혼하고 싶어하니까) 서로 얽혀들며 감정을 증폭시킨다. 가족을 지향하는 금단의 사랑은 가족의 비극사와 맞물려 그 좌절이 더욱 애절하다. 역사는 군림하는 초자아처럼 끊임없이 잔혹한 사건들을 바람 잘 날 없는 가지 사이에 던져 넣는다.



김진의 대하서사물, [바람의 나라] 역시도 이러한 특성을 고루 만족시키는 대하순정물이다. 가족을 지향하는 작품의 초반에 무휼과 결혼하려는 연이가 죽음으로서 사랑과 그 좌절은 작품 전체에 미리부터 지속적인 그림자를 남긴다. 연이의 캐릭터는 김진의 다른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여동생의 그것과 겹치기에 이는 근친상간의 뉘앙스도 가지고 있다. 가족에 대한 애증은 왕가라는 특수성 속에서 국가 혹은 역사와 겹쳐서 형상화되고 있다. 아버지는 왕이다. 아버지는 고구려의 유리왕이며 동시에 자신의 출신과 계급에 대하 컴플렉스를 가득히 가지고 자식들을 괴롭히는 어떤 나라, 어떤 시대의 아버지 상과 겹쳐든다. 가족에 대한 애증은 역사에 대한 애증과 떼어낼 수 없으다. 그리고 자신 역시도 성장하여 아들을 살해할 것이라는 점에서 (유리왕은 장남을 살해하고 그 차남인 무휼은 호동왕자를 살해한다) 역사와 가족에 대한 애증은 '나'에 대한 애증과 겹쳐든다. 김진의 작품들이 보통 심리적인 면에 치중하듯이, 이러한 인물의 설정과 표현은 당대의 가족상, 역사상과 집요하게 공명하는 내성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의 현대사를 사건으로 반영한다기 보다 마음의 묘사로서 반영한다. 김진의 작품은 SF가 되었던 명랑한 가족물이 되었건, 고대사를 배경으로 했던, 언제나 다음과 같이 독자에게 질문한다. "어째서 그들의 마음은 쉬지를 못하는가" - "어째서 그들은 저렇게 지치면서도 그 짓을 그만두질 못하는가"

김혜린과 황미나 신일숙 등이 자신만의 대하순정물을 내놓았지만, 그리고 김혜린은 그 중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김진의 [바람의 나라]는 이러한 대하순정물 중 드라이한 심상으로 가득찬, 가장 독특한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인물들은 차갑고 냉혹하며, 왕가의 바깥 산에는 원귀로 가득차 있다. 왕가의 인물들의 내면에도 신수(神獸)를 가장한 원귀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가족과 역사에 대한 김진의 심상 풍경화이다. 당시의 대하서사물이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리얼역사물이거나, 혹은 가상의 세계라도 마치 현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한 언약을 그려내는 반면, [바람의 나라]의 차이점은 이것이 고구려라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환타지임을 숨기지 않는 것에 있다. 물론 이것은 고구려를 소재로 한 가상의 역사이며, 몇몇 실제의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의 사건들은 삼국사기 등에 등장한 몇몇 문장들에 기초한 작가의 상상이다. 이 경우의 환타지는, "가상의 세계"라는 환타지의 전제를 "내면의 세계"로 도치시키고 있다. 김진의 [푸른 포에닉스]나 [라그나로크]에서는 더욱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특성이다. 때문에 대하서사를 표방할수록 실제로는 더욱 내면 세계에 대한 폐쇄적인 집착이 강렬해진다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작품에서 구현되는 커다란 스케일은 실제 역사의 스케일을 빌려왔다기 보다는 자신의 닫혀진 내면 안에서 끌어낸 심상의 세계인 것이다. 그것이 실제 역사의 소재와 사건들을 차용해서 형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특성은 김진의 만화를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의 '대하서사'와 뚜렷하게 차별화시킨다. 또한 90년대에 들어 퍠쇄적인 자아의 환타지를 구현하는 작가들이 꽤 생겨났지만, 김진만한 스케일과 심리적인 파워를 보여주는 작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김진의 환타지를 표방한 작품군은 환타지SF작가 로저 젤라즈니(Roger Zelazny)가 자신의 단편들과 [앰버 연대기] 등에서 구현한 "마음의 형태를 따라 변화하는 세계"라는 심상테마와 맥이 닿아 있다. 이는 90년대로 오면 유시진과 연관된다. (유시진이 92년의 르네상스 공모에서 [유토피아 2030]으로 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으로서 단평을 쓴 사람이 김진이라는 것은 세대교체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설정은, 가부장적인 세계와 관계가 있는데, 젤라즈니와 김진, 유시진이 모두 가부장제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가진 작가임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권위의 가족체계는 커다른 권위에 의해 개인에게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지 못하는 상처를 남기지만, 그러면서도 그러한 권위 자체에 자신을 동일시하게 한다. 남자 작가의 경우 결국 아버지를 용인하고 자신 역시 가부장적 권위의 동일시를 선택하곤 하지만 (물론 이전보다는 개선된 방향으로, 젤라즈니의 경우이다) 여자 작가의 경우에는 보다 복잡한 양상이 되기 쉽다. 아버지의 권위가 보다 높은 것으로 인식될 경우, 환타지에서 구현되는 '권위'의 존재도 점점 높아지곤 한다. 그것은 아버지이거나 왕이거나 신이다. 젤라즈니의 [앰버 연대기]나 유시진 [신명기]의 경우가 셋 다를 겸비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작가의 경우, 이러한 동일시가 남성에 비해 쉽지 않으며 혼란과 균열이 생겨나기 쉽다. 그녀는 배척받은 아들로서의 딸이다. 김진의 세계에서 김진의 자아는 아버지 한 사람과 수많은 아들, 딸들로 형상화된다. 그 하나하나가 김진이다. 이 세계에서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오빠, 남동생, 누나, 여동생들은 모두 하나의 연대감을 가진, 하나의 자아의 균열상이다([숲의 이름]을 보라). 그 중에서 핵심 축이 되는 것은 보통 여동생과 오빠이다. 여동생은 오빠를 연민하며 불쌍히 여긴다. 그러면서 작품의 시선은 오빠의 행위에 대한 동일시를 유도한다. 김진의 작품이 남성적 터치를 가지고 있다면, 작가와 독자가 동일시하는 것은 이러한 남성 주인공(아들)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오빠'는 아버지에 반항하고 거역하며 행동하는 자이다. 김진의 다른 작품인 [신들의 황혼]에 의하면 제우스에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인 것이다.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인 여동생은 그러한 오빠를 집요하게 연민하고, 오빠가 아버지의 자리를 찬탈하는 것을, 그리고 패망하는 것을 관음한다. 이 둘 다가 김진이다. 오빠가 김진이므로, 아버지의 자리를 찬탄하는 오빠도 김진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왕, 혹은 신도 김진이다. 여기에서 자아는 자아의 세계에 갇히고 닫힌(Closer?) 것이 아니라, 무한한 스케일을 전개하며 쉬지 못하고 나선형으로 순환한다. 작가주의의 조건이 작가의 자아와 세계관의 형상화라면, 순정만화가 소년만화 등에 대해서 우위를 점한 것이 장인정신보다 자아와 세계관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에 더 힘을 쏟은 때문이라면, 김진은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작가주의'를 보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람의 나라]가 김진의 작품에서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나'의 존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김진의 작품에서 '세류'와 같은 캐릭터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김진 작품에서 여성캐릭터의 진보이며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허용한 여유이다. [바람의 나라]]에서 연민하는 연민하는 여동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연이가 작품의 초반에 죽어버린 것은 상징적이다. 그리고 세류가 '동생'을 연민하며 바라본다. '오빠'에서 '동생'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며, 이것은 김진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의 성숙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녀의 집착적이고 폐쇄적인 작품 세계에서 일어난 미미한 전환의 기운이다. 이러한 전환의 기운이 [바람의 나라]가 너무 길어지고 연재가 늘어지면서 묻히긴 했지만... (최근 권을 보고 있으며 앞 권 내용이 기억이 안 나니 어쩌란 말인가) 좌우간 말이다.



무휼은 예정된 수순으로 끝까지 막 나가며 자식을 죽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간다. 아버지를 거역한 자가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이다. 그 속에서 작품의 초반 세류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버지로 인해, 남동생으로 인해, 그리고 사랑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세류는 두 번의 사랑, 사랑받는 경험, 사랑하는 경험을 통해 강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의지하는 신수를 버림으로서 (말이 신수지 사실 사랑하며 죽은 남자의 원념이지) 성숙한다. 이를 통해 세류는 과거의 원념과 왕가의 원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사랑이 계기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이기도 하고 순정만화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 방식은 납득 가능하다. 작품의 후반에서 세류는 보다 넉넉해지고 이러한 질서를 보다 객관화해서 바라본다. 세류는 그들을 연민하지만 집착하지 않으며,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 한 자세를 취한다. 우리는 김진의 자아 중 한 조각이 여유를 챙기고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80년대의 순정작가들에 대한 아쉬움은 그들의 작품 세계가 더 이상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는 늙어가는데, 작가가 작품으로서 맞추어야 하는 취향은 10대의 그것이라는 족쇄의 문제이기도 하겠다. 매너리즘은 거의 대부분 시스템이 강제한 것이다. 그러나 김진의 작품은, 일단 그 작품 자체를 보기가 어렵고 [푸른 포에닉스]는 대체 전개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답답하며 [바람의 나라]는 아직도 안 끝났다. 정권이 몇 번 바뀌었는데도, 만화 하나의 왕가의 이야기는 끝나질 않는다.

(여성만화프로젝트)

메리메리 : 내면의 상처와 외면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동시에 담아내는 작가의 역량은 개인에 대한 눈물어린 연민을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김진만이 그릴 수 있는 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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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참고사항
아래는 이 작품의 연재와 단행본 출간 경로인데,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만화의 운명과 동일하지 않은가 싶다.

1992년 02월 18일자 격주간 [댕기]에서 연재 시작.
1992년 12월부터 1996년까지 댕기 코믹스로 10권까지 출간.
1994년 대만 천하만화사 화여몽에서 1부 연재.
1995년 05월 15일자 댕기 65회에서 잠시 휴재, 12월 15일자에서 연재 재개.
1996년 09월 01일자로 댕기 폐간, 83회로 연재 중단.
1999년 시공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 2001년 12월 19권 까지 출간.
1997년 월간 [모션] 7월호에서 연재 재개.
1998년 02, 03월 합본호까지 8회 연재 중 모션 폐간으로 연재 중단.
2000년 코믹스 투데이(www.comicstoday.com) 웹진 Juno에서 연재 중 현재 중단 상태.
2004년 현재 시공사에서 22권까지 출간

○ 작품목록
[우리들의 데이빗] 1-완, 프린스, 1985
[별의 초상] 9-완, 프린스, 1985-1986
[레모네이드처럼] 9-완, 프린스, 1986
[가브리엘의 숲] 6-완, 프린스, 1987
[1815] 14-완, 프린스, 1988
[모카커피 마시기] 6-완, 프린스, 1989
[SOS, I Love You] 4-완, 대화, 1991-1994
[신들의 황혼] 7-완, 서일, 1991
[달의 신전] 4-완, 서화, 1992
[밀라노 11월] 2-완, 청조, 1993
[러브 메이커](1부) 2-완, 르네상스 코믹스, 1993
[황혼에 지다] 1-완, 대원문화, 1996
[3+1=?] 4-완, 밍크 코믹스, 1996-1997
[Fresh] 2-완, 대원문화, 1997-1998
[조그맣고 조그맣고 조그마한 사랑 이야기] 3-완, 시공사, 1998
[황무지] 1-완, 시공사, 1999
[러브 메이커](1, 2부) 2-완, 시공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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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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