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가산점: 건설적인 논의를 위하여.]

“억울하면 니네도 군대가라.”
“그럼 니네도 애 낳아봐라.”

군 가산점이라는 제도 자체가 위헌이라는 것은 굳이 대법원 판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다. 생각해보라. 어째서 애초에 기회도 주어진 적이 없는 행위를 안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이 각 과목당 5%씩의 가산점을 더 받는 모습을 묵과하고 있어야 하는가. 어째서 군대를 안 갔다는 이유로 만점을 받고도 시험에 떨어져야만 하는가. 더 나아가서, 어째서 군대에서 한 직무가 실제 시험을 봄으로써 응시하고 있는 직업과 전혀 관계가 없는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경력’처럼 인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가장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보더라도, 군 가산점은 명백한 기회불균등이며, 따라서 위헌이다. 이론의 여지는 전혀 없다.

문제는 애초에 이것이 문제제기가 된 방식이며, 논의의 방향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군가산점제도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그들의 피땀서린 2년 2개월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아니었다는 말, 정당한 보상의 발끝에도 못미친다는 말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해답이 나올리 없는 감정적인 ‘남녀 머리끄뎅이 잡고 서로 잡아당기기’식 싸움에 귀중한 논리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가. 군 가산점 문제에 페미니즘 논쟁이 파고 들어가야 할 틈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노동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군대라는 곳은 신체에 이상이 있지 않는 한 모든 남성 국민들을 징용하는 징병제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것은 국가가 고용주로서, 자국민이라는 노동자 풀 가운데 남성이며 신체건강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인력을 고용해 가는 것이다. 문제는 일반 고용관계와는 달리 징병에는 강력한 강제성이 있다. 즉, 피고용거부권이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것이다, 군대라는 곳은... 이쪽 문제는 결국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문제로 귀결이 되고, 국제적 역학 관계니 국가안보니 하는 거시적 문제들로 넘어가기 때문에 우선 여기서는 잠시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초점은 군복무라는 강력한 노동에 대한 보상이다. 고용주는 국가이고 따라서 보상주체는 국가이어야 한다. 또한 보상 대상은 군 복무를 정당하게 마친 모든 이들이어야 한다. 이미 여기에서 군가산점 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보상 주체의 측면에서, 군가산점 부여는 여성을 포함한 군 미필자의 상대적 희생을 바탕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로서는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상 대상의 차원에서도, 군 가산점 제도는 공무원 시험을 보는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되며, 앞으로 공기업으로 확대를 한다 하더라도 점차 공기업을 줄여나가는 이 시대상황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군대를 마치고 일반 사기업으로 취직하는 사람들은 전혀 군 복무 보상을 받지 못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사기업에 대해서 국가가 군 가산점을 주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코미디일 것이다. 가장 근본적으로, 군 경험이 실제로 자신이 취직하는 곳의 직무에 대해서 직접적인 숙련성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사기업으로서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경력에 대해서 대가를 지불할 이유가 없다. 상식적으로, 300m 밖의 표적을 정확하게 맞춘다고 해서 워드를 잘 친다거나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따라서, 진정한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서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역시 징병기준이다. 그렇게들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남녀문제’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성 여성을 불문하고 ‘남자만이 군대를 간다’는 점에 상당히 동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도 군대나 보내버려라”라는 말에는 실제로 남녀 모두 동일하게 군대생활을 해야한다는 것보다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겪는 ‘고초’를 체험시켜서 남성성에 대한 인정을 하게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물론 여군제도는 모병제이기 때문에 비교대상으로 적합치 않으니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애초에 문제는 페미니즘이니 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군 가산점은 군 제도와 국가의 보상에 관한 문제이지, 남녀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이번 위헌판결이 나오도록 소송을 건 주체들이 이대생들이었고, 위헌판결이 나온 직후 몇몇 여성단체들에서 매우 미숙하고 사려깊지 못한 ‘환영문’을 발표했으며, 그 다음에 하이에나같은 언론들이 이것을 적극적으로 남녀문제로 비화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것을 남녀문제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과 군대라는 문제는 애초에 논의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아직 재래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전시상황에서는 근력을 필요로 하는 보병과 포병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고, 애초에 많은 전법들이 건강한 남성의 신체에 맞도록 고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로서는 징병의 기준을 건강한 남성으로 잡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여성신체에 맞는 임무들에 대해서는 물론 여성들도 고용을 해야한다. 하지만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 상황에서는 매우 작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이스라엘 같은 경우 여성들도 징병을 하지만, 큰 비율이 행정직으로 배치되고, 일반보병이나 포병으로 배치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남성만이 군대에 징병당하는 것이 ‘억울한’ 것이 아니라, 군대에 징병 당하고 2년 2개월 고생하고 나와도 그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즉 문제삼아야 할 것은 징병제도, 군대운영시스템, 그리고 보상의 엄청난 미비이며, 그 주체는 ‘여성’이 아니라, 바로 정부다. 또한 문제삼아야 할 것은 같은 건강한 남성일 경우에도 뒷거래를 통해서 징병을 면제받는 만성적 부패다.

좀더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이야기로 들어와 보자.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첫째,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남녀 싸움을 끝내야 한다. 여성들이 군 가산점 제도의 위헌성을 주장할 줄 알면서도 군대라는 제도적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 현재의 모습은 매우 모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군대문제를 남성의 고유영역으로 인정해버리는 것은 이 사회에서 남성의 권위를 인정해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닳아야 한다. 군대는 제도화된 무력이고, 아직 인류문명은 무력이 만들어내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체계적 이론적 기둥 없이 여성으로서의 피해의식만을 강조하는 일부 여성단체들의 주장들이야말로 더욱 모든 문제를 남녀문제라는 모호한 틀로 끌고 가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에 남녀싸움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남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너네도 군대한번 가봐라’라는 식의 감정적 대응을 그만두고, 군 복무 보상에 대한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시작해야 할 때다. 애초에 문제는 군 복무기간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는 것이지,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지 않았던가.

둘째, 정부에 대해서 구체적인 군 복무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그 보상은 정부에 의해서 전적으로 이루어져야하며, 그 수혜대상은 군 징집 복무를 마친 모든 이들이어야 한다. 가장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군필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들 수 있다. 국민연금, 소득세 등에 대해서 일정액을 장기간 공제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또한 공공기관에 대한 사용 및 교육에서의 혜택을 줄 수도 있다. 주택 융자 혜택도 생각할 수 있고, 군 복무자가 학업을 계속 하려 할 경우 학비의 무상 융자 등도 충분히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군복무자가 국민으로서 생활해나가는 만큼, 정부로서는 그들의 생활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일부 실행하고 있지만, 사기업에서 군 복무자의 군 복무기간을 호봉으로 인정해 줄 경우 해당 기업에 그에 상응하는 세제혜택을 줌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사기업이 아닌 정부에서 군 복무 기간에 대한 금전적 대우를 해주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사실 사기업 자체로서는 군복무 기간을 호봉으로 인정해 줘야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 호봉은 경력, 즉 해당업무에 대한 숙련도에 대한 보수이기 때문이다).

입사시의 가산점 제도는 어디에서 어느쪽으로 적용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정부나 언론쪽에서 인용하기 좋아하는 미국의 경우, 실제로 군 경력 2년 이상인 경우는 공기업에 입사하려 할 때 점수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모병제이기 때문에 실제로 해당인이 군인이라는 공무원 신분으로서 활동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공무원 경력으로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장교들이 군 복무경력을 경력으로서 인정받는 것과 비교해야 할 일이지, 징병제로 뽑는 일반 사병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사시험에서의 가산점은 고용주가 주는 보상이 아닌, 입사 경쟁자로부터 일정량의 기회를 박탈해가는 ‘보상을 가장한 눈속임’이라는 점을 이제는 깨닳아야 한다.

셋째, 군대제도 자체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아직도 한국의 군대는 금단의 영역이다. 누구나 그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비난하고 있고, 군대를 다녀온 사람일수록 ‘개같은 꼴을 보고 왔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그것이 건설적인 제도개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사병복지 등 비전투 부문에서 군 경영의 투명화와, 전투부문에 있어서도 민간 군사 전문가들을 경영자로 고용하여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군대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군대 경영기술 부족의 가장 단적인 예로는 휴가 및 외박제도를 꼽을 수 있다. 원활한 인력확보 및 순환, 그리고 부당한 조치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안되기 때문에 사병들이 그들에게 규정상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조차 못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군 복무에 대한 감정적인 피해의식은 필연적으로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경영선진화와 구조정리가 이루어져야 하는 가장 급한 곳은 모 재벌들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 국군 주식회사’다. 비대한 조직, 방망한 경영, 기형적으로 커다란 중간관리층, 만성화된 부패... 이런 곳에 억지로 끌려갔다가 나오는 사람이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지금도 군 가산점 제도 문제를 남녀문제, 페미니즘 차원에서 이야기하려고 귀중한 뇌세포를 소모하고 있는 많은 분들은 이제 초점을 정부정책으로 돌려야 한다. 현실적인 금전적 보상을 위한 구체적 제도와 수치를 산출해내는 것이 중요한 때다. 더 활발한 토론, 더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방안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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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2000.1.8. (나우누리 snupsy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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