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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고보자에 들어온 것은, 상당히 우연한 일이었다. 당시 나우누리 앙끄에서 그럭저럭한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내가 기획했던 좀더 '이론적'이고 '고급스런' 게시판 활동 계획이 1년정도의 활동을 접고 끝을 내면서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렸고, (그 시절은 한달에 글 2개는 썼다. 그때는 왜 그렇게 성실했을까...-_-;) 그때 게시판을 보고 있던 하림님이 나를 픽업을 했다. 혹시 '만화 비평웹진'에 동참하지 않겠냐고. 그시절, 서울에 막 올라오면서 무언가 만화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찾고 싶었던 나로서는 곧바로 OK! 했는데, 그게 이어져서 지금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_-;;
사실, 나름대로 많은 기대와 활동을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의 적응문제와 지향점, 생각하는 바의 차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맨 처음 쓴 글이 너무 많이 유명(?)해 지는 바람에 글 쓸 엄두가 안났다. 그리고, 나는 에너지가 모자랐다.
처음에 몇가지 생각했던 아이디어들, 그리고 그이후로 발전해 나갔단 아이디어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맨 처음 쓴 글인 '만화 보는 기계들을 위한 변명'의 경우, 내 나름대로 상당히 고심해서 고치고 고친 글이었다. 만화 보는 기계라는 개념은, 현대 모더니즘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따왔다. 즉, 집은 주거를 위한 기계이고, 자동차는 이동을 위한 기계, 그리고 도시는 생산을 위한 기계라는 개념하에, 인간이 설 자리가 없는 모더니즘 디자인의 특징을 이야기 한 것인데, 사람들은 이 다음에 올 말을 인간은 기계 사이에 낀 오렌지라는 말로 표현했었다. 그렇지만, 문화 산업에 있어서 이런 기계 문명의 자가 발전이라는 개념은 그다지 '냉정한' 발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소비를 위한 또하나의 기계로서, 문화산업이라는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부속품으로 명확하게 간주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특히 만화 소비자들에게 있어서 이들이 자기 자신의 자아 주체와 작품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독자적인 단위로서 무언가를 향유한다고 보기 보다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서 참여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점에서 쓴 것이 '만화 보는 기계, 또는 만화 관람 기계'라는 개념이었은데, 쩝, 차라리 누군가가 '어디서 풍월은 주워 들어서리..'라는 개념하에 날 깠다면 할 말이 없었겠지만, 슬프게도 내가 수집한 정보내에서 그런 반응은 찾아낼 수 없었다.
일본 만화를 수용하는 우리나라 독자의 문제에 대한 것도 상당히 곤란 했었다. 과연 한국의 만화들은 자기들끼리 연결되어 있는 정도와, 일본의 만화장르에 연결되어 있는 정도는 어느쪽이 더 강할까? 물론 당연히 장르 자체의 파워가 더 강할 것이다. 라고 생각해 버리면 간단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 만화'를 개념화 한다는 것은 미친짓이 될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무형의 실체로서 우리앞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에 대하는 한국 만화의 특징, 또는 느낌은 무엇인가. 라는 개념하에서 일반적인 팬들이 한국만화라고 할때는 경멸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다. 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었는데, 역시나 이 부분도 그다지 이해받지 못한 것 같다. 이 부분은 너무 줄여서 표현한 것일지도.
경제적 이익이라는 관점은, 적어도 경제학 비스무레 한 것을 배우는 입장에서 생각해 볼때, 생산 - 유통 - 소비라는 이 동적 역학 관계에서 생각해 볼때 과연 누가 움직이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라는 아주 타당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만일 사람들이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소비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지만, 만일 직접 저 동역학을 다룰 수 있는 입장이라면 나는 유통을 소비에 맞추겠다. 그리고 이에 생산을 맞추겠다. 왜냐고? Dymamics라는 것은, 움직일수 있는 것과 움직일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는 법이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혹시라고 변해주면 째수이돼, 아니라면 우리는 움직일 수 있는 변수를 통해서 목적한 상황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누구를 움직일 것인가를 명확하게 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 그것은 무가치 하다. Value focus think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생각할때 '대안은 무엇인가' 부터 시작을 하고, 이 대안에 맞는 어떤 목적이나 가치들을 찾는다. 그러나, 생각은 당연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터 시작을 해야 하고, 그 점에서 보자면 작가들은 '나는 돈이 필요하다' 와 '돈을 보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에서 부터 시작을 해야 하지만, 그들은 반대로 '대여점을 없애자'부터 생각을 시작하여 '대여점을 없애야 하는 이유는?'을 반대로 찾아 나갔다. 그럼으로 인해서 대여점 반대론자들은 끊임없이 이유(절대 '근거'가 아님을 명심하자.)를 찾아나갈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대안으로 주어질 수 있는 어떤 대안을 그들의 '대안'으 하나로 삼지않고 '목적'으로 삼음으로서 나타난 삽질로, 의외로 많은 경영자들 역시 마찬가지의 삽질을 하고 있으니 그들이 딱히 못난 것 만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아이디어들이 몇개 있었다. 가령, 우리나라의 만화 생산 방식은 명백히 가내 수공업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그것이 개인의 생산활동이라면,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 있어서 대량 생산방식을 확립을 해 냈는데, 미국의 경우 한 만화를 여러명이 그리는 '포디즘' 방식을 채택을 했다. 이는 미국의 산업적 지향점과 일치를 한다. 일본의 경우, 생산의 주체는 출판사로서 출판사가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하도급을 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는 출판사가 일본과 같이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한 작품을 그리는 주체가 여러명인 것도 아니고 (미국) 유럽식으로 완전히 개인의 작품이라는 것도 아닌, 도제적 생산을 넘어서서 가내수공업적인 상태로 넘어갔다고 생각을 한다. 집에서 일하면서 몇몇 기술자를 고용하고 이들이 적당히 배우고 데뷔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만화가들이 완전한 시장 장악을 통한 만화가들의 신규진입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도제'라기 보다는 가내수공업자들에 가깝다. 그게 과연 우리에게 어울리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연구가 부족하다. 개인적으로는 대여점에 POS의 도입을 통해서 개개출판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서 개인 사업장 스타일을 확고히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으니.
만화 계량화의 문제가 있다. 한 페이지를 읽는 속도, 인지 속도. 화면을 이해하는 속도같은 기계적 수준의 문제부터, 다양한 작품의 스타일을 어떤 척도를 통해서 측량하고 이를 수치화 내지는 상대적인 스펙트럼상에 위치시키는 것.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_-;;; 능력도 모자란다.-_-;;
현대 만화가 대량 생산을 위한 일련의 장치들을 고루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시도도 했었다. 위의 가내수공업적 생산은 생산 주체가 조금씩 공장에서 출판사로 넘어가는 과정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한 작가의 다작'과 출판사자체의 다작을 위한 일련의 장치들로 넘어간다. 출판사 자체의 다작은 일본의 경우 신인작가의 끊임없는 등용을 통한 비용절감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만화의 끊임없는 수입, 발간을 통해서 이루어 냈고, 작가 자신의 다작은 톤과 컴퓨터등의 다양한 보조도구 외에 미형그림체라는 다작을 위한 표준적인 그림체를 생산해 냄으로서 작품을 많이 그리는 것 - 그런점에서 분명히 공장제 작품은 표준화의 극치를 달린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모든 종류의 장르에서 대부분의 만화들이 표준화에 따른다. 만화 독자들은 한페이지에 10초 이상 보지 않으며, 그 10초안에 충분히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만한 정도로 글의 양을 조절하고, 그림체의 인식률을 높인다. 그럼에도 나름대로의 미학을 찾아서 제공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작가는 1주에 많으면 수십페이지를 그려내야 한다. 이 '대량 생산 - 대량 소비'에 어울리는 만화 그림체로서의 '미형'그림체를 상정하고, 이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한 적도 있었는데, 능력 부족이었다. 이 부분은 나의 감성은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지만, 나의 이성은 아직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어떤 멍청한 녀석들은 이런 말만 하면 코드. 코드 하는 멍청이 들이 있다. 이는, 적어도 코드라는 말로 두리뭉실하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표준화'의 문제인 것이다. 코드라는 말에는 그 것을 뒷받침하는 물질적 토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만화적인 미학은 무엇인지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영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많은 영화작가들이 영화의 경우 '과장'을 이야기 하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만화만큼 과장으로 점철된 장르를 본 일이 없다. 선 하나 두개에 그 사람의 모습을 결정 시킬 수 있다는 것. 강렬한 단순화를 통해 캐릭터를 드러내는 것. 주변의 공간의 강렬한 기호화. 그 강렬한 기호화에 미쳐지낸일도 있었다. 누가 만화를 그림체 - 그림이라고 하더냐. 만화는 '그림'이 아니라 '기호'인 것을. 쿠할할할.그런점에서 만화의 그림과 '글'이라는 가장 막강한 기호와의 관계를 생각해 본 일도 있었다. 자 그림은 없고 말풍선과 대사만으로 된 어떤 화면은 과연 만화일까 아닐까? 그 그림은 생략된 것인가? 아니면 없는 것인가? 말풍선의 경계는 이것이 대사임을 알려주는 공간일까? 기호와 그림을 분리하는 공간? 아니면 그림?
대량생산 체제로서의 만화의 또 하나의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강력한 환원주의다. 나는 이를 설정주의라고 이릌 붙였는데, 이는 현대 일본 상업만화가 명백히 무언가 몇가지 '설정'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당연히 그림체는 표준화 되어야 한다. 그림체는 어디가지나 설정을 드러내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므로, 이는 당연히 강력하게 표준화 되어 '고민'의 영역에서 벗어나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현대 일본 SF와 판타지 사이의 공간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이 개념에서 일본 만화에서의 판타지가 강력한 환원주의에 잡혀있고, 이는 본질적으로 건담등의 리얼로봇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의 영향이 아닐까. 그런걸 통해서 나름대로 선정우씨가 이야기 하던 '건담은 거대로봇이다' 라는 개념을 뒤집어서 '설정과 환원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모든 물건은 전부 리얼로봇이다' 라는 개념을 만들어 본 일도 있었다. 굳이 이를 리얼로봇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 한 이유는, 내 입장에서는 이 강력한 환원주의적 경향은, 명백히 플라톤 적인 것으로 보이고, 이는 근대 과학, 심지어는 지금의 현대 과학자들마저도 여전히 여기에 붙잡혀 있고, 아무리 포스트 모던 운운한다고 하더라도 이 환원주의적 관점을 벗어날 현대 사상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나는 설정과 논리, 환원주의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보고, 이 부분을 자극하는 모든 것은 본질상 리얼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유럽, 미국애들이 만드는 환타지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세계 형성보다는 '환상의 Icon'들을 무수히 채용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고, 이는 명백히 일본,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의 환타지와는 좀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물론 일본의 경우도 전통적인 자신들의 환타지는 그렇게 환원적이지 않지만 말이다.
이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식적으로는 2기에는 참여하지 않을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글 쓰라는 협박에 굴하지 않을수는 없겠지만(....) 그간의 활동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어서 왠지 후회가 되는 것도 사실이고, 왠지 기분이 어정쩡 하다.
머릿속에는 이것들 말고도 생각만 하고 정리가 안된 기획들로 가득하다. 스스로 정리하다가 말린 것도 좀 있고, 재미없어서 포기한 것들. 너무 오래되서 폐기한 것들. 말하다 씹힌 것 까지, 여전히 무언가 해야할 것 같은데, 몸이 안따라 주는 것은 도대체 어인 일인지...(어이, 당신은 26세야! 26세라고!)
글 솜씨가 모자라는 것, 아이디어가 정리가 안되는것, 메모하는 습관이 없는 것, 어느것 하나 글 쓰는데는 도움이 안되는 능력 뿐이라서, 센세이셔널로 승부를 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심한 처지는 아니었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수 없는 일. 상처는 의외로 깊은 법이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밀어내고는 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원고 독촉에 시달리지 않아도(누구 맘대로?) 될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좀더 여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좀더 쓸만한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맘 먹기에 달린 문제이니... 좀 신경을 써야 하겠지...
어쨌든 1기를 이제 마친다고 생각하니, 토요일 오후에 뭐 하나 싶다. 그동안 2주에 한번은 일정이 있어서 주말에는 반드시 일이 있다.라고 머릿속에 박고 살았는데, 이제는 여친을 빨리 구해야 할
듯.
@기린아
@참고로, 나는 Son of Kirin 이지 Giraffe가 아니다.-_-; 더군다나 왜 Girina!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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