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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를 직업으로 알고 10년을 살아왔으면서 최근 들어서야 "나는 만화 그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규정을 할 수 있었던 내가 이런 글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느 것 하나 확신하거나 확언할 엄두가 나지 않는 처지에 만화의 추상적인 범주 안에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작업이 곤욕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과를 두고 보자면 <소년중앙> 78년 5월호를 기억의 시작으로 오래도 만화를 보아왔고(편식 취향이긴 하지만) 알량한 재주를 밑천으로 어렵지 않게 만화를 그리게 되었으며(빛을 못보고 있긴 하지만) 호기심에 만화 비평까지 지분거리게 되었다. 만화비평의 경우 97년, 활발한 활동을 하던 한 만화비평 모임의 2기에 참여하는 것으로 거창한 출발을 알렸으나 스스로의 한계와 무능만 뼈저리게 실감하고는 모임이 와해되는 것을 구경해야 했다. 기본적인 이론도 제대로 몰라 쩔쩔매야 했던 쪽팔렸던 기억은 그 이론(시모어 채트먼의 내러티브 이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것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어주긴 했다.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기대어 만화를 수용하는 쪽인 나로서는 무리한 도전이었지만 소박한 차원에서의 비평, 다시 말해 텍스트의 정교한 분석과 소통이 나와 같은 유형(그러니까 머리 쓰는걸 싫어하는;;::;)에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론 공부를 시작하게 되니 <무식해서 쪽팔리는 순간들>이 오히려 정기적이며 당연한 것들이 되면서 절망해버린 나는 결국 신경질 속에 타락해 버렸다.-_-
그렇게 헐렁헐렁, 만화와 삽화 그리는데 더 주력하면서 공부한 결과로 작년에 소설과 만화의 내러티브를 비교 연구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일부는 안쓰느니만 못했다"고 친한 친구가 충고했던 엉터리 논문은 신선한 성격 덕분에 과분한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악의적인 비난이 있기도 했다. 후자의 영향이 더 컸던 까닭으로 만화를 쳐다보기도 싫어졌던 시기에 만난 공간과 사람이 <두고보자>다.(정확하게는 <강의를 땜방하게 되어 급하게 소개받고 커리큘럼을 얻어간 것>이 인연이지만 아픈 경험과 연결한 쪽이 더 그럴듯해 약간 각색하기로 한다) 워낙에 과학적이고 감각적인 글에 대한 호의도 있었지만 밥을 같이 먹어보니 필진들의 먹성이 쓸만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만화관련 스터디가 있으면 참여하면 좋겠지, 싶은 관심 정도로 바라보고 있다가 1기가 단체로 퇴진하면서 순식간에 포섭되었다. <두고보자>는 만화 텍스트를 구조 속의 개체로 다루는 경향이 강한 만큼 만화 텍스트의 구조를 주로 분석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적은 공간이다. 전공이라고 문학 이론에 정통한건 또 아니면서 나이까지 많아 비빌 언덕도 없다. 만화를 많이 보지도 않고 컴퓨터에 익숙하지도 못해 편집 작업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만화친목모임 <피플>에서 일찌감치 친분을 텄던 하림님은 <회의에 반드시 출석하거나 편집에 반드시 참여하거나 글을 반드시 쓰지 않더라도> 모임의 진행 방향에 동참할 수 있으면 된다는! 복음으로 설득을 해주셨다. 정신적인 동조를 아끼지 않으면서 물리적으로는 가능한 적은 부담을 안고 함께 가자는 얄팍한 비전으로(짱구를 굴린 끝에;;) 참여를 결정할 수 있었다.
나와 만화에 대한 관계의 고민으로 비평작업을 해야겠다는 욕심은 좋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열망 뒤의 순서이긴 하지만 <쓰지 않을 때보단 쓸 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을> 결과를 희망한다.
1기 필진의 글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만큼 많은 분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물러나시는 것이 못내 아쉽다. 편집진은 아니더라도 필진으로 계속 좋은 글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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