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 [꽃]; 낭만주의적 소격의 미완성

 

만화 [꽃]

; 낭만주의적 소격의 미완성

                               - Nufgirl

 

 

1. 겁부터 나는 존재의 무거움

사람은 죽을 때 자신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을 본다고 한다.

어떤 인생인들 더 무겁고 더 가볍다 하겠느냐마는,[꽃]에서 보여주는 한 비전향 장기수의 마지막 회상은 여느 주마등과는 사뭇 틀린 무게를 가진다. 그의 인생역정이 가지는 민중사적 전형성 때문이다. 그리고 금기시되던 역사속의 한 부분-빨갱이를 다루기 때문이다. 또, 그 비극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 때문이다.

나는 이 대단히 무거운 주마등을 앞에 놓고 싱숭생숭하다. 죄책감이 섞인 주눅, 혹은 과거에 대한 무관심, 아니면 비극에 대한 불감증,, 그래서 금은 누군가 그을 필요도 없이, 내  속에서 그어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안절부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화 [꽃]은 이렇게 선언한다.

'여기 죽음이 삶보다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2.죽음이 삶보다 아름다운 순간

[꽃]에서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색채로 표현된다.

대부분의 색채는 계절에 따른 풍경-자연의 색채에 집중되지만,[꽃]의 경우, 풍경은 그 속에 사람이 서있으므로 해서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배경 안에 사람이 들어있지 않을 때조차도, 그것은 보는 이의 감정이나 상태에 따라 묘사되어 그에 따라 아름다움을 부여받는다. 즉, 아름다움은 사람 자체이다.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보며, 그 속에 들어가 그 일부가 되는 사람.그 삶. 그러나 사람과 삶은 끔찍하고 추한 것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난폭한 정복자(일본군이든, 미군이든, 토벌군이든)들과 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모든 아름다운 색채는 일그러지고, 오염되며 찢어지고 뒤섞이며 제 모습을 잃다가, 마침내는 없어진다. 수감생활의 흑색과 백색은 말하자면 '삶에서 쫓겨난 삶'의 색깔이다.

두 사람의 하늘, 혹은 나무 밑 수감생활

삶 아닌 삶의 높은 벽 안에서 죽음이 찾아오고, 죽음은 그의 영혼에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색채를 되돌려준다. 죽을 때 본다는 주마등, 혹은 꽃으로, 새로, 그래서 그의 죽음은 '흑백의 삶'보다 아름답다. [꽃]은 그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돌려받은 색채를 펼쳐보며, 그것은 반추되고, 변증된다. 그리하여 그 안에 있던 모든 추함이 용서와 화해의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응시될 때, 그 순간은 진정 '삶보다 아름다운 죽음'의 시간이다. 그는 이제야말로 가장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작가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들어낸 바로 그 순간과 같은 시간이다. 그 때, 가상과 현실, 지면, 그리고 주인공의 회상과 꿈과 현실이, 시간과 공간을 새처럼 넘나들어 뒤섞여버린다.

 

3.  

보통은 겁부터 나는 존재, 혹은 역사의 무거움 앞에서, 그것을 초월한 절대적 아름다움을 꿈꾸는 이 작가는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자인 듯 하다.  그는 거리를 두지 않고, 감정과 직관에 복종하며, 상징과 환상에 의존하여 '느낀다'. 이 작품의 낭만주의적인 인상은 그 우직한 끈기, 놀라운 양 - 1000페이지에 달하는(제1권은 400페이지, 전 4권) 칼라 원고-안에서  헤엄쳐 다닌 근4년여의 시간에서도 나타난다.

특별한 구성적 반전도, 특별히 파고든 캐릭터나 사건도, 혹은 특별히 다양한 소주제들을 직접 제시하지도 않은 채 오직 앞서 지적한 한 순간-그것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순간이라 주장한다 해도-만을 향하여 바쳐진 그 노력은, 이성적이기보다는 낭만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그러나 [꽃]은 보통의 도취적 작품들 중 하나로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꽃]의 비주얼 연출이 보여주는 성실함과 세심함은 낭만주의계열의 작품들이 흔히 보여주는  얼토당토않음-혹은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 모를, 붕 뜬, 애매한 존재감과 크게 대비된다. 일단은 소재 자체의  존재감에서 연유하리라고 보여지기도 하지만, 대사나 지문이 없는 [꽃]1부의  경우 특히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은  '표현의 구체성'이다.

지금 주인공들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감정과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를 확실히 말하기 위해서 충분한 지면과 느린 연출법을(때로는 과도하게 보이기조차 할 만큼)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루함을 경계하여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도모한다. 전통적인 만화 연출법에 제한받지 아니하는 파격성, 노골적인 감정표현을 주저하지 않는 적나라함. 거기다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현실장면(흑백의; 장기수의) 의 수시 교차 편집.      

이러한 시도의 결과로서 [꽃]은 탐미적 시도가 빠지기 쉬운 난해함, 혹은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라는 함정을 거뜬히 통과했고, 나아가  구체적 존재감을 작품전체에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심리표현; 천천히 변하는 말없는 표정, (그러나 확실히 너무 자주 사용된 감이 있다)

한 화면속에 이루어지는 꼴라쥬,혹은 파노라마식 연출; 노역장 폭파씬(물론, 민중미술 걸개그림의 전통적인 표현방식이지만 만화안에서는 상대적으로 생소하고, 그리고 너무나 강렬한...)

 

두번째로, 구성상의 집중과 소격

워낙 많은 양이고, 긴시간과 다양한 공간, 많은 사건,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게다가 매 사건마다 그에 대한 감정표현에 크게 주력하므로써, 사실상 [꽃]은 산만해질 위험이 큰 시도였다. 그러나 [꽃]의 구성은 장기수의 현재와 과거의 추억을 교차편집-이는 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데, 처음과 끝의 커다란 맥락, 그리고 회상중의 수시교차-하므로써 이 이야기의 줄기를 온존히 다잡아내고 집중시켜 낸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 교차편집이 줄지도 모르는 어색함이나 생뚱맞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차되는 신 사이의, 그림의 터치나 형태의 근접성, 혹은 상황논리적 근접성, 감정적 근접성등을 잘 뽑아내어 자연스러운 교차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세련됨을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이루어진 집중은 단지 지금 이 이야기가 무슨 맥락이며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환기시키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집중은  작가가 말하고픈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시련과 투쟁과 사랑과 역사를  갈무리하는 죽음-의 '설득'을 향해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즉,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그 노인의 죽음을 목격하게 하고, 꽃이나 새의 시점과 동일시하여 회상에 동참하도록 이끌면서도 매 에피소드 사이에 갑자기 교차하는 감옥 속 죽음의 환기로서  이 죽음의 의미에 대해  집요한 '질문'을 계속 시도한다.

'설득'이니 '질문'이니 하는 어휘를 굳이 따옴표까지 쳐가며 쓴 이유는, 그것이 하나의 소격효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순간의 공감, 혹은 경험같은 감정적 목적은 일반적으로 '동일시'의 결과물로서 얻어지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이 사용하는 구성방식은 독자의 동일시 과정을 방해하고 있다. 즉 [꽃]은 그 주제의 낭만성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에서 지극히 이성적이다.      

 

4.

낭만성과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 [꽃]의 두 지점, 구체성과 소격을 사용하면서 [꽃]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과연, [꽃]1부 맨 뒷페이지에 부록삼아 실린 초기원고 (**년 홍대영자신문에 실린 두쪽짜리 흑백만화, 역시 목판화 느낌의 터치와 화면구성, 파격 없는 균일한 연출, 시,공간상으로 장기수가 감옥속에서 죽어가며 꽃의 환상을 보는 장면에 한정된 상태)를 지금의 [꽃]과 비교해보면,  후자가 전자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나오고, 더 긴 시간의 사연이 다뤄지며, 극화적인 연출과 대사가 첨가되고(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전시되었던 중,후반부) , 여러가지 상징을 묻어두어 교묘한 구성적 알고리즘으로 각 에피소드를  연관 지어냈고, (가령, 남녀주인공이 강아지 무덤을 만들었던 나무밑 동산의 시대별 반복적인 등장, 새와 꽃을 이용한 현실과 꿈의 교차편집, 인상파적인 점묘법을 사용한 색채전환을 통해 시간을 이동한다든가..) 무엇보다도 이 만화의 핵심적인 언어로서  목판화 터치에 채색화와 흑백화를 대비적으로 사용했고 ( 이 터치-목판화같은-는 이미 7,80년대 민중미술을 통해서,  작가가 스스로 밝힌 대로, '어둠에서 빛을 파내는' 상징성을 사회화한 표현방식이다. 여기에 채색을 더하고 흑백의 공간과 적극적으로 대비시킨 시도),  그래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전달하는데 더 세련되고 정교한 면모를 더하여 더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옛날 원고

화면이 찢어지는 장면

새가 날아 가며 화면이 펴지는 전환장면

나무밑 동산의 두장면

색채전환

그러나 한편으로, 그 엄청나게 늘어난 페이지에서 [꽃]은 스스로 만든 구체성과 거리두기를 채울 의견 혹은 논의거리 또한 제공해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작품속의 대개의 에피소드들은 아주 전형적인 것들로써, 자세한 연출이 아니라도 충분히 전달될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속의 인물들의 반응이나 감정,행동양태 역시 아주 전형적인 것들이다. 또, 강력한 목판화풍 터치는 작가가 이 주제를  바라보는 기본 입장-지난 십수년 대학가를 풍미한 민중,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단번에 직접 표현하는 요소다. 그자체로서 이미 충분히 사회화된 상징성을 활용한 만큼, 오히려 페이지는 더 절약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무슨 말이냐 하면,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설득된 (무관심이나 불감증에도 불구하고) 상징이나 주제는 그 자체의 의미로서 작품내에서 다시 설득될 필요가 없으며, 한 발 더 나아간 '무엇'인가를 위해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 '무엇'이 앞서 말한 스스로의 대답,혹은 논의로 채워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꽃]1권은 그에 대해 별 풍부함을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속되게 말하자면  너무 뻔했고, 그래서 너무 길게 여겨지며, 그리하여 지루해진다.

작가(특히 낭만주의적인) 는 그 순간 감정에 흠뻑 빠져서 아무리 해도 모자르지 않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느만큼은 모든 작가의 특권이자, 근원적 모순이며. 그리고 투쟁의 대상이리라), 지루함이란 객관적인 작품의 완성도에 치명적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독자에게야.... 이는 앞서 지적한 지루함을 상쇄하기 위한 연출과 표현의 갖은 다양한 실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것을 앞지른다.

(덧붙여서 끝까지 한꺼번에 출판되지 못한 점도 마음에 걸린다. 이런 완결적 구성-앞뒤가 꽉 짜여져 서로 물려있는-을 한권씩 보고 기다려야 하다니,- 이건 한국 출판문화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시회에서 끝까지 보긴 했지만 정독했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1권밖에 안나와서 전체를 다시 정독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쓰는 것도 몹시 찜찜하다. )

 

문제는 세가지다.

하나는 빨치산과 장기수라는 역사적 화두를 가지고 민족사적 '순교'의 아름다움외에는  아무런 탐구도, 접근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제치하의 경험은 그렇다 쳐도, 해방직후의 복잡한 상황이나, 미군의 주민학살등을 경험하는 주인공은, 단지 당하기만 할 뿐,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가 누명을 쓰고 도망쳐서 빨치산으로 재등장했을 때도 사태는 마찬가지다. 뭔가 말해줄 것도 같았던 인물인 '붉은 눈' (징용기차안에서 만났던, 후에 주인공이 빨치산이 되었을 때 그 부대의 대장으로 재등장한다) 역시 끝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2부에서는 대사도 있는데!)

설명을 대신할만한 특수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식의 전개에서 독자는 '나는 누구 누구에게 억울하게 당했고, 그래서 그들과 싸운다'라는 식의 논리밖에 발견할 수 없다. (사실 왜, 어떻게, 그리고 누구란 과연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그리고 싸우는 그들은 또 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뤄지지 못했다)

또 나는 알고싶었다. 그의 '비전향'은 정치적인 성격의 것인가, 계속된 투쟁의 일환인가, 아니면 같이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살아남은 자의 슬픔인가, 고집인가-, 그는 그때 잡혀들어갔지만, 그 이후의 시간동안 시간은 멈춘 것인가,  그 바깥의 시간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의 죽음은 어떤 정치,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가. 그런 문제들에 대해 [꽃]은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야멸차게 말하자면 ,결국 [꽃]에서 역사는 '인식'되고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적 휴머니즘의 아름다움속에서 '해소'되고 있는 것은 아닐른지. 하지만 이것은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노랫말처럼 '다시는 없어야 할 비극' 운운하며 해소되어야 할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토록 무겁고 싱숭생숭 하며 불편한 것이 아닌가.

 

두번째는, 그러면서도 [꽃]의 주인공은 욕망과 갈등,성격이 거의 삭제된채 단지 역사적 전형으로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1부 전체를 통해 드러난 그의 유일한 성격은 겁이 많지만 인내심이 강하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용감해지기도 한다는 정도다.

그 인간적 면모의 부재로 말미암아, 현실감이나 동질감을 주기에는 부족했고,게다가 소격 구성까지 합세하여 독자와의 동일시를 방해하므로써, 결국 작가가 느꼈고 또 함께 공감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의 설득력 역시 일정정도 놓쳐버린것이 아닌가 한다. 비극과 휴머니즘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세번째는, 그리하여 엮어지는 부조화다. 낭만적이고 단순한 주제의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두기와 질문을 되풀이하는 소격, 그것도 지극히 구체적으로. 독자는 어리둥절한 속에서 이윽고 너무 긴 양에 짜증을 내게 된다.

 

4.  

다시 '겁부터 나는 역사의 무거움'으로 말 허리를 돌려보자.

나는 이제 갓 30인 작가가 이 무거움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했다는 것에 놀라움과 대견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로부터 아름다움을 끄집어내 '무덤앞에 바치는' (이건 내 말이 아니다. [꽃]의 일부가 실린 작품집 [역류]에서 주완수가 한 말이다. 가버린 이들에 대한 위로라고...) 마음씨도 신선하고 흐믓하다. 하지만 [꽃]은 무덤 뿐 아니라, 우리들을 향한 의사소통의 시도이기도 하다. 장기수의 죽음에 아름다운 감동을 일으키기에 앞서 이 죽음은 역사적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다. 역사 앞에서 느끼는 우리들의 주눅과 죄책감과 무관심과 불감증과 무기력에 대하여 일정정도의 의사소통이 기대되는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면에서 [꽃]은 나의 주의를 환기시키지도, 어떤 사고의 돌파구도 열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낭만주의와 겉멋은 같지 않다. [꽃]은 보기힘든 진정성과 순수함을 갖추고 있고, 이 작품에 투여된 긴 시간과 노력이 자기도취나 감정과잉이라기보다는  그 진정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게다가 진정으로 [꽃]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 작품을 포함한 근현대 민중사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열의가 이 한편으로 끝나지 않을, 항상 진행형이라는데 있다. 그리하여 그는 서둘지 않을 것이다. 단 한편의 작품으로 모든 것을 다 하려 무리하지도 않을 것이며, 한계단씩, 더 깊이, 더 넓게, 그리고 더 냉정하게, 하지만 더 뜨겁게 다가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기사:  nufgirl
 ▶ 조회: 9206 | 등록: 2002/11/16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는 알겠다....정말 열심히 만화책 `꽃`보다도 더 힘들게 읽어야 이해되는 글이라니....눈으로 보이는 꽃의 형상을 글로 표현하려면 그림보다야 어렵겠지만...그래도 같은 표현이라도 더 쉽고 이해하기 쉬운게 있지않나.. 이 비평글을 읽다보면 커다랗고 긴 분량의 `꽃`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드니...글을 읽는 동안에 나도 같이 허우적거리면서도 문맥을 이해하려고 얼마나 나를 다잡았는지 모르겠다...물론...그렇게 간신히 대강 이해는 했지만...다시 읽어보려는 엄두는 잘 나지가 않는다.... 아...만화를 제대로 쉽게 읽어낼수 있는 비평이 어렵기는 하겠지만...이리도 요원한 일일까?? 마나가 2002/11/19
아...아래와 같이 글이 어렵다라고만 쓰다보니...그래도 `꽃`이라는 좋은 만화에 비평글을 쓴 노고와 관심에 박수를 보낸다는 말을 안 썼네...그나마 `꽃`에 대한 비평글을 만날수 있어서 반가웠어요 마나가 2002/11/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냥 가려니...분석한 분에 대해서 미안해서 __;;;;;;; 조금만 쉽게 써달라는 말이고요... 공연히 상처받지는 마세요....잘 읽었고요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다 마나가 2002/11/19
예전부터..이런생각을 했엇습니다.. 논쟁은 소중하다라고... 그러한 위치에 부족한..제..만화가 있다는것이..부끄럽게만..느껴지는건 왜일까요.. 비평 잘 읽었습니다..가끔..이작업에 대해서 기사나온..평들이..장인정신이었느니..새로운..만화형식이다라는 다소 단편적인. 통설속에서..님의..비평은..문제의..핵심을..파고드는..소중한..비평이었습니다..또한 관심에 비례한 세세함에 저조차도 놀랐습니다..감사드립니다.....지적하신..몇가지의..대한..저의..의도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이작업에서.는 왜라는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그것은..리얼리즘적구체성을..드러내지 않음이..오히려..더한 상상의 여지를 줄수 있을것이라는..판단에서였습니다 지루하다라는 지적또한..저역시 통감하는 부분입니다..그러지 않기위해..노력해 보기도 햇구요..하지만..다가오는 방대함과..새로운 구조속에서..단편을 거치지않고..장편을 처음..시도하는지금의박건웅은..한계였다고..인정합니다.. 아마 시각적언어로만..접근한 한계엿다고 생각하시면 될듯 싶습니다..시나리오의 부재지요...(이부분은..제가..보완해내야할..과제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건방진 이야기일수 있겠지만..사실..이만화는 일반독자를 위해서 만든 만화는..아니엿습니다..그냥..잊혀지고 잠든 역사를 위해서..조용히..바친다고 해야하나..아니면 저를위해서 일수도 있구요..그래서..어렵게 만들었습니다..지난날의..예의차원이라면.. 쉽게 가기보단 어렵게 가는길을 택한거지요.. 한가지..이작업은..끝까지 보셔야..모든것들에..대한..의혹이..풀릴것이라 믿어요..사실..답은..칸 사이에 잇지만..한번 봐서는 이해가 힘들수 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지금..후반..원고보정 작업을 하고 있고..또한..새로이 시나리오구상중에 있는데요..아마..내년 봄즈음에..나머지..이야기를 만나보실수 있을겁니다.. 님의 소중한..비평..저에게는..창작의..자극이 되며..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야할,,책임감이..더없이 느껴져 즐겁습니다.. 종종..많은 비평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건웅 2002/11/28
음.. 음.. 거참 따분한 글이다. 뭐 모든 글질이 다 그렇겠지만.. 작가를 낭만주의로 `단정`한다라는 것도 우습고, 그렇지 않게 보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난 그리 단정했으니 이 만화는 그리 보인다.. 라고 말하고 있는 화자의 가벼움도 우습다. 작가에게 `당신 왜 이런만화를 그리느냐?` 라고 물어보는 멍충이는 없다. (이런 글들을 쓰는 평론가들 빼고.) 평론은.. 작가의 시각이 아닌 독자의 시각인것이다. 작가에게 이레라 저레라 토달지 말라~! 아래 박건웅님께는 좋은 작품을 보게 되어서 감사함을 전합니다. 꾸벅. 음.. 2003/01/02
저는 이 책의 지루하다고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군요. 지루함은 그 홈통과 간극사이를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우지 못한 딱딱한 머리의 독자들이나 할 소리로 알고 있는데요. 그걸 `작가의미숙함`으로 치부하다니 안타깝습니다. 독자. 200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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