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보자는 만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집단입니다. 두고보자의 활동을 지속시키는 동인은 예술현상의 기저에 깔린 구조적인 면에 대한 미학이론가적인 관심보다는 만화라는 매체 자체를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에 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향성 면에서 좀 산만합니다. 각론을 다루지만 총론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시스템 차원의 것이기도 하고 미학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개별 텍스트에 집중하기도 하고 방법론의 문제를 다루기도 합니다. 개별 성원의 입장도 조금씩 달라서 본적적인 자세로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있고, 평범한 만화독자 입장에 안주하기를 원하는 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고보자는 만화를 이야기하는 곳 입니다.
그러다보면, 심심치 않게 ‘만화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곤란한 점이나 독특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사회적 인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외적, 내적 조건들이 있지만 만화를 이야기하는 집단으로서 두고보자가 마주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쌓인 것이 없다’는 것이죠. 나름의 방식으로 전개한 논의의 결과물에 붙여줄 적당한 이름이 없습니다. 특정한 상황을 정의할 수 있는 고유의 개념이 없습니다. 글의 분량을 줄여주기 위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부족합니다. 우라사와 나오키나 어슐러 르귄이 탁월하게 묘사했던 것처럼 이름 붙이기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영화인 스스로가 그 개념을 체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몽타쥬라는 개념을 세우지 않고 몽타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곤란한 일입니다. 설사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획득형질과 같아서 일반화 시키고 그 다음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만화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기존의 것들을 우리는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없다면) 새로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논의에서 작가와 작품과 등장인물을 전부 와일드카드 문자로 대치한 후에도 그 것이 ‘만화에 대한 논의’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고민은 두고보자의 지난 1.5년간 단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고민은 좌절감 보다는 멋모르는 하룻강아지에게 바람을 불어넣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만. 개념의 척박함이 주는 폐해(폐혜가 아닙니다)는 자명합니다. 이미 이 글만해도 의미 불명의 대명사가 난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개념정리 시리즈’는 그러한 의문에 대한 두고보자 나름의 대답입니다.
그리고 높임말은 여기까지 입니다.
- 夏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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