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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다음 시대: 언더그라운드, 대안만화 그리고...
!@#...약간씩
업로드가 늦어지고 있는데, 덕분에 한번한번 할때마다 양이 조금씩 어려워지고 늘어나고
있습니다. (진짜로...? --;)
!@#...
앞 강의에서는, 주로 현대만화의 태동과 이들의 초창기 황금기까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주류' 만화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만화 역시 대중과의
접점을 지니고 있는 다른 모든 문화들과도 마찬가지로, 주류의 큰 흐름이 있다면 보다
작지만 다양한 비주류의 흐름이 항상 같이 존재했습니다. 주류는 항상 상업적 성공과
함께 산업과의 타협이라는 경계선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지만, 그런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보다 작지만 보다 자신의 의지를 더 쉽게 관철시킬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비주류의
공간입니다. 사실 비주류라는 말은 너무 넓은 말이죠; 주류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모두가 비주류이기 때문입니다. 주류가 아무리 황금기를 맞이하고 강고하게 산업체제로서
굳어가도 - 아니, 그렇게 되면 될 수록, 그 이외의 '다른 가능성'들 역시 어딘가에서는
나오고 있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많이, 때로는 적게,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주류산업을
버리고 '지하'에서 전위를 꿈꾸는 언더그라운드
진영도 있고(...아, 인디니, 언더니 하는 다양한 용어들의 혼란은, 제가 전에 다른
지면에 썼던 다음 글을 참조하세요: http://www.dugoboza.net/no005/indi2/indi1.htm
...별로 재미없기는 하지만--;), 주류 산업의 내부에서 작품과 산업의 혁신을
꿈꾸는 자들도 있습니다. 아예 칩거하며 스스로 만족할 작품이 나올때까지 그냥 작업을
거듭하는 '은둔예술가'도 있습니다.
굳이 언더그라운드라는 지향점이나 은둔예술가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프로덕션이
아닌 독립 작업을 고집하는 인디
작가들도 있습니다. (아! 물론 위에서 든 예시들은 결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닙니다;
즉 언더이자 인디, 은둔가일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새로운 만화를 꿈꾸는 자들의
때로는 치기어리고, 때로는 용감한 작품활동이 결국 언젠가는 새로운 예술적 돌파구를
발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여하튼, 오늘 이야기의 초점은 이들에게
맞추어 볼 생각입니다...되든 말든.
!@#...우선
미국부터 봅시다. 미국의 경우, 만화의 주류 산업 형태가 4-50년대를 지나면서, 워낙
확고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출판사가 판권을 가지고, 작가를 고용하는 방식의 시스템을
취하며, 슈퍼히어로물 중심의 장르화가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주류 내부에서도 놀라운
시도들은 어느정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40년대부터 이어진 윌 아이스너의 '스피릿'
시리즈는 주류의 모든 코드들을 수용하면서도, 만화의 표현 양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
진중한 메시지 등의 고삐를 놓지 않았습니다; 또한 윌 아이스너의 스튜디오(화실) 출신들
중 나중에 미국만화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도 여럿 배출했고 말입니다(잭 콜(플라스틱맨
등), 잭 커비(마블 계열 슈퍼히어로 만화의 화법을 창시한 사람), 밥 케인(배트맨)...).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점점 장르화, 획일화되어가는 주류의 커다른 흐름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 워담의 '순결의 유혹'을 필두로 하여 당시 유행하던 범죄/공포 만화,
나아가 만화 전반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더욱더 주류 만화는 온순, 획일화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60년대 말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68혁명(...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고^^)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의 본격적인 대두가 꽃피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그것은 유럽같은 경우처럼 정치적인 의미보다는, 호경기('팍스 아메리카나'), 히피이즘,
락음악 등의 형태로 나타났고, 만화 역시 그 몫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주류에서 불가능했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들과 자유로운 메시지는 '언더그라운드'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주류
만화가 온순한 이야기의 슈퍼히어로들과 동물 이야기로 가득차 나아갈 때, 청년들을 위한
메시지와 파격적인 스타일들은 이러한 언더그라운드에서 발현된 것입니다. 미국의 심의
검열('Code of Approval')은 기본적으로 출판사들 간에 약정한 자율 심의라서, 주류시장에의
진입과 제대로 된 상업적 성공을 눈물을 머금고 모조리 포기해버린다면 적어도 원천적으로
출판이 불가능하지는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네 가게에서 'LSD'와 프리츠
더 캣(R.크럼)을 같이 사보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청년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던 것입니다. 당시를 대표하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는 크럼 등이 확고한 대스타였고, 아트 슈피겔만(아주 나중에는
'쥐'로
유명해지는) 등도 이 시기에 전위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만화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인용' 만화에 다가갔던 경향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주류의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여하튼 Kitchen Sink Press, Fantagraphics 등 이들에게 꾸준히
출판의 기회를 주는 출판사도 어렵사리 명맥이 이어지고, 내부에서의 개혁시도들도 조금씩의
결실을 거둡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언더그라운드의 전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럽권의
경우,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은 다소 애매합니다. 비교적 자유롭게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미국처럼 확고하게 두 영역이 분리되지는 않았습니다. 70년대
이전까지는 다만 성인만화의 영역이 그리 넓지 않았고, '7세부터 77세까지' 읽을 수 있는
대형 히트 만화들 - 땡땡, 아스테릭스, 럭키뤼크, 불과 빌, 스머프, 스피루 등등
- 이 확고하게 자기 자리를 굳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70년대들어서는 필로트 등
주요 잡지들이 지면개편을 하면서, 드뤼예, 빌랄, 타르디 등 보다 성인 취향(...무조건
벗긴다는 것도 아니고, 이전의 만화들을 성인들이 특별히 우습게 알고 있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성인들쯤 되야 즐길 수 있는 표현과 메시지가 담긴 만화들이라는 말입니다)
작가 들의 작품들이 지면을 타게 됩니다. 68혁명이니, 청년문화의 발현이니 하는 말을
굳이 다시 되풀이할 필요도 없겠죠... 60년대 말이라는 사회적인 조건이 맞물려서, 만화는
새로운 층에게 다가갔습니다. 미국의 경우 그것이 언더그라운드라는 형태로 분리가 되었다면,
유럽권에서는 보다 자연스럽게 지평이 넓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유럽권에서의 언더그라운드나 인디는, 좀 더 마이너한 취향의 개인 작가들로 내려갔고,
아예 출판사와 손을 잡지 않고 자가출판 발행을 하는 다양화된 시도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판진(동인지)들이 지금도 길거리(!)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부러울 정도로,
만화의 '넓은 지평'이 보장되었던 셈입니다. 성인취향의 방향들은 이후, 작가주의적,
예술지향적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도 합니다(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유머러스한
소통과 풍자를 강조하는 쪽도 있고(브레테셰 등), 주류적 오락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향도 있습니다(반 아므의 'XIII'
등)).
아,
물론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5-60년대 이래로 내내 만화 행사를 만들고자 추진하고,
학술적 연구를 종용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만화를 보며 성장한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때, 그들이 보면서도 여전히 즐거울 수 있는
만화들이 계속 나와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땡땡이나 아스테릭스만 해도 7살 때 볼때
느끼는 모험으로서의 즐거움과, 성인이 되어서 볼 때 느끼는 정치풍자, 성인취향 유머로서의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같이 녹아 들어있습니다. 무엇보다 실제로 그 만화들이 수십년동안
계속 연작으로서 연재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평생 성장과정에 따라서 그 시리즈를
좋아하며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다시 이야기를 돌립시다. 미국은 주류와 언더가 완전히 갈라졌고, 유럽은 비교적 넓은
스펙트럼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동쪽으로 건너와봅시다. 일본에서는 50년대, 전후의 폐혀속에서
데즈카 오사무 등 선구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만화가 점차 주류 대중문화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었습니다. 60년대 극화체의 출현과 함께 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아카혼(한국의
대본소 만화와 비슷한 형식)'과 대본소 문화에서, 주류 출판사들의 잡지 위주의 판매정책이
성공하여 현재의 시스템에 가까운 형식으로 80년대부터는 굳게 됩니다. 일본의 경우는
독서 장려, 산업 활성화 등을 이유로 출판물 전반의 정책이 박리다매(정말, 일본은 책값이
쌉니다! 정확히는, '문고판' 등의 싼 책 시장이 발달해 있는 것입니다)로 추진되었고,
그것과 맞물려서 만화 역시 큰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오늘의 화두인 비주류로
갑시다. 일본의 경우, 데즈카 오사무, 그리고 그 화실 출신의 일련의 거장들(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시노모리 쇼타로, 후지코 F. 후지오, 요코야마 미츠테루...등등)
이 만화의 표현의 폭을 넓히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원래 영향을 받았던 미국, 유럽 등의
대중만화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독창적인 표현방식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상당부분 성공합니다.
그것은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이기도 하고, 인쇄, 판매 방식 등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조건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주류 잡지 위주로 산업 방식이 굳어지면서, 비주류적인 시도들은
작가주의 계열 언더그라운드 잡지로 빠져나갑니다. '가로'나 '콤' 같은 잡지들이 70년대에
생겨나면서, 주류 잡지에서는 더 이상 하기 쉽지 않은 실험적인 표현들이나 과격한 메시지들이
여기서 발현됩니다. 아, 물론 과격한 메시지의 언더그라운드라면 일련의 18금 포르노
만화, 엽기 만화(...문자 그대로의 엽기입니다; 유머러스한 의미가 아닌) 등도 지지 않지만,
여하튼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미국보다도 더 주류와 다른 길을 걷기가 힘든 환경으로 변해갔던 것이,
미국은 그나마 넓은 땅덩어리와 다양한 문화적 토양이라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언더는
진짜로 언더일 수 밖에 없도록 강요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주류 산업 내부에서 그것을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그다지 많을 수도, 성공적일 수도
없었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다보니, 소재나
주제면에 있어서 다양성을 표방하는 일부 작품들이 나오기도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주류
산업화된 의미에서의 다양성이 대부분이며(뭐 굳이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정말로 작가주의적인 입장에서 주류를 등지는 경우의 영역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그러한
경향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다만 80년대 중반 이래로 코미케 행사 등을 중심으로
하는 '동인' 문화가 새로운 마이너한 취향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합니다(비교적 최근의
야오이 스타일 같은...).
한국의
경우, 언더그라운드고 비주류고 간에, 만화 문화 전체가 6-70년대를 이어오면서 산업적/정치적/문화적/작가적
측면의 이유들 덕분에 심히 망가졌고, 80년대에 그 망가짐을 자연스럽게 체화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굳어버린 상태에서 90년대에 일본 주류 상업만화의 폭격을 받고 다시 한번
망가지고 있는 중이죠(뭐, 대단히 단순화시켜서 말한 것입니다; 사실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주류 자체가 항상 전체 문화의 위상에서 언더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지위였기 때문에, 그
속에서 다시 비주류를 찾기란 거의 무의미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작가주의적 성향과 시도들은
계속 있었고, 그들의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되면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화광장'마저
폐간되고 나서는, 글쎄요. 다들 어디서 뭘 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규모나 유통면에서는
문제가 정말로 많았지만, 그나마 대본소, 만화잡지, 스포츠 신문, 일부의 단행본 등 다양한
경로와 여러 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었던 80년대까지 지나가면서 '아이큐점프'를
필두로 일본식 잡지생산 체계를 억지로 들여오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주류'가 만들어졌고,
덕분에 이야기는 한층 더 암울하고도 복잡해졌습니다.
여하튼.
한국의 경우, 비주류나 언더같은 논의는 80년대의 민중만화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화로서의 수준은 다소 열악한 경우도 많았지만, 당시로서 주류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여러 이데올로기적인 메시지들을 담고, 말 그대로 비주류 출판사를 통해서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나온 이 작품들이 본격적인 언더적인 움직임 중 하나였습니다. 80년대 후반 이후
순정만화계 등에서 나온 동호회/동인 문화 역시 굉장히 중요한 맥이고... 그리고 90년대
초중반에는 드디어 스스로를 언더라고 자의식을 표방한 집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한국사회에서 '대중문화'의 다양성이나 즐거움, 정치적 함의 등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고, 그런 타이밍 속에서 '화끈'과
'봄'(이후
히스테리, 바나나, 코믹스...) 등이 나타났습니다. 이런저런 열거를 계속 해드리고 싶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적당히 접도록 하죠.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는
주류도 휘청거리는 판에, 어설프게 일본 만화산업의 단점들만 잔뜩 수입해와서 언더로
대표되는 다양성 역시 엄청나게 힘든 생존 투쟁을 해야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아무래도
자꾸 작품이나 작가 소개보다 전체적인 흐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군요. 우선,
대표적으로 몇가지 읽어보실만한 작품들을 추천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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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권: 아주 마이너한 판진(동인지)을 구하기는 힘들테고... L'association이라는, 다소
독립적인 취향의 작가들의 작품을 만들어주는 출판사의 책 가운데 하나인 보두앵의 'L'Voyage'를
추천합니다. 글이 별로 없습니다! (^^) 부천 만화정보센터에서 보실수도 있지만, 큰맘먹고
한 권쯤 구입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작품입니다(한권짜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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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권: R.Crumb의 아무 작품이나.
-
일본권: 음. 츠게 요시하루를 추천하고 싶습니다만...구하기 어려우실테니, 마츠모토
타이요의 '핑퐁'으로 추천하죠. 사실 핑퐁은 그나마 꽤 주류적 감수성을 넣어'준' 축에
속하지만, 그 독특한 스타일은 잘 살아있습니다. 아니면 자꾸 언급했던 데즈카 오사무의
'콤' 연재작이었던 '불새' 시리즈도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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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권: 곽상원의 '우리는 무지개를 타고 간다'. 진짜로 휴머니즘...입니다.
!@#...아
뭐 왠지 굉장히 이번에는 중구난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만큼, 주류/비주류를 억지로
나눠보는 것 자체가 때로는 무의미하다는 말일 수도 있고... 여하튼 강조하고 싶은 점은,
다양한 시도들이 있고, 주류/비주류는 항상 당대의 사회적 조건과 맞물려 있고, 비주류는
역시 배고픔은 감수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화가라는 이유만으로 떵떵거리며 잘사는
나라따위는, 적어도 3차원 세계에는 없습니다. 다만 누가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치열하고 더 만화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진지한 노력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겠지요. 그런
것들이 싫으면... 주류로 갈 수 밖에. 그리고 그 곳에서 행여나 체계를 바꾸겠다는 외로운
싸움을 하지 말고, 상업적인 성공을 노리고 나름의 활동들을 해나가는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것도 하나의 길이고, 재밌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저는, 앞에 말한 분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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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cold(김낙호),
2002. 5. Copyleft(카피레프트의 기본 전제는, 출처 밝히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