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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창작의 사회적/산업적인 측면
!@#...오늘은
역사 이야기나 작품 소개는 잠깐 그만하고 다시 약간 거시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만화
산업의 사회적/산업적인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만화의 예술적 성취, 내용적인 방향
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매체의 '당위'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혹은 보다 명확하게 개념들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형식과
내용을 억지로라도 분리해놓고 이야기를 전개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맥클루드의
'만화의 이해'에서 했던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분리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실제 세계에서는 특정한 산업 양식 속에서 특정한 형식이 만들어지며, 특정한 수용방식이
반복되며 특정한 내용들이 많들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형식과 내용은 다시금 연결이
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억지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많은
가능성들 가운데 현재는 왜 하필이면
바로 이런 형식, 이런 내용의 만화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러한 현재의 모습이 불만일 경우 어떤
다른 가능성들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이루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음. 말이 복잡하군요.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세계 만화사 수업들에서 서구나 미국, 일본등의
사례를 보신 당신! 다른 사회에서 다른 만화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현재의 만화는, 한국의 현재라는 상황을 어떻게든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반영하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용물이나
그 내용물의 수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산업적, 사회적 측면은 비단 만화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화는 역사적으로, '대중'이라는 영역에 걸쳐있는 지분이 큰
매체에 속한 만큼, 이러한 요소들에 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죠. "그나마 영화나 연극의
경우보다는 더 작가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주장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모든 산업적인
'주류'의 기준이나 사회적인 시선과는 독립적으로 자가 출판을 하겠다는 가장 전위적인
작가들마저도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심지어 시스템으로부터의
자유나 독립을 목표하는 것 자체도 시스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작가가
만화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개입되는 '방해요소'들은 대단히
많은 영향을 발휘하며, 만화가 독자에게 가는 과정에서도 그 이상의 변인들이 개입하기
마련입니다. 나아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에도 만화라는 매체와 그것을
둘러싼 현실적인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때로는 작가의 시각이 너무나도
부차적인 것으로 떨어지는 경지까지 이를수도 있는 것이 바로 '현실'속의 만화와 만화환경입니다.
만화생산과 수용의 물리적 조건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사회적
측면...은, 지난번까지 이야기한 만화사적인 부분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문화권에서
만화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성장해왔는가, 라는 측면이죠. 오늘 이야기는 산업적인
측면, 그것도 가능하면 '현재'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미국의
경우, 만화는 신문만화의 전통에서 시작했고 그것이 'comic
book'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습니다.
comic book은 보통 2-30페이지짜리 얇은 중앙 철침 방식으로 제본된 책자로, 현재까지도
미국만화의 가장 주류적인 발간형태이며, 흔히 'issue'(호)
라는 단위상의 개념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 호 안에 끝나도록 만화 스토리의 호흡을
짧게 끊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만화의 작품성과 스토리성을 위하여 점차 장편을 회수
단위로 분절하여 연재하는 방식들도 등장했죠. 하지만 짧은 지면상, comic book 한권에는
하나의 만화만이 실리는 것이 보통인데, 일본만화에서 세운 '만화잡지' 개념 -
즉, 한 잡지 내에 여러 만화작품들이 계속 호수 단위로 연재가 되는 것 - 은 주류 만화계에서는
그다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닙니다(물론 출판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독립만화, 혹은 기타
비주류 진영에서는 이런 형식을 취할 때가 더러 있죠...돈없으면 달리 어쩌겠습니까...--;).
물론
보다 '단행본'의 개념에 가까운 'Graphic Novel'이라는 형식도 있지만, 여전히 산업의
절대적인 주류는 comic book 입니다. comic book 의 가격은 보통 한 호당 3달러 내외이며,
단행본 형식의 두꺼운 책들은 두께에 따라서 10-20달러 사이를 호가하고, 30달러 이상
하는 책들도 여럿 있습니다(100-150페이지 짜리 컬러책이면 보통 20달러). 일반 판매시장에서는
comic book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가장 큰데, 한 호가 나오려면 적어도 한달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에서, 당연한 이치이겠죠(동아시아권 만화처럼 기계처럼 찍어내지
않는다면야); 또한 가격 부담의 차이가 너무나 확실하다는 이유도 이러한 시장구조를
만드는 근본 이유입니다.
미국의
주류 만화 시스템은 가장 대형기업화, 자본주의적 마케팅화가 되어있는 영역입니다. 미국의
주류만화계는 DC Comics('슈퍼맨'과 '배트맨'이 아직도 주력상품인), Marvel Comics(스파이더
맨, X-멘 등) 같은 몇몇 대형출판사가 주도하고 있는데, 이들은 개별 작가의 창조적 자유도보다는,
개별 상품 -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작가들을 기술자로서 고용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즉, 만화를 그리는 작가보다 만화 작품 자체가 '슈퍼맨'인지 '배트맨'인지가 중요하고,
아무개의 만화로 팔리기 보다, DC Comics의 '슈퍼맨' 시리즈로 발매된다는 것이죠. 주류만화계에서도
작가가 개인적인 명성을 쌓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주어진 캐릭터, 주어진
설정 내에서 이야기를 냅니다. 이렇듯 만화를 하나의 '기획 문화상품'으로서 다루는 체제이다
보니, 만화 생산 역시 '효율적인' 분업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류 미국 만화에서는 한
작가가 스토리와 그림까지 전부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데, 보통 스토리(script), 데생(penciling),
선화(inking), 채색(coloring) 등의 역할들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죠. 그런 '직인' 개념으로
운영이 되는 만큼,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명성을 쌓을 경우 최고의 '장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의 만화 관련 시상을 할 때는 식자(lettering), 출판 디자인(book
design) 등의 분야까지 세분화해서 상을 수여하는 모습이 보통입니다.
미국의
만화 유통방식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만화 유통과 일반 문자서적의 유통이 상당히 분리되어
있죠. 일반 서점이나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만화책은 그 종수나 양에 있어서 미미하고(일반
서점 유통도 가능하도록 제작되는 두꺼운 단행본들인 'TPB'판본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시장의 1/9 정도에 불과합니다), 보다 제대로 만화를 구할 수 있는 곳은
만화전문점Comic Store입니다(물론 만화전문점에서는 일반 문자서적은 구할 수 없다).
만화전문점은 그 규모가 천차만별이며, 각자 주력으로 다루고 있는 만화의 성향도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만화시장 자체의 역사가 뒷받침해주는 만큼, 작가주의 성향의 작품들, 인디 계열 작품들이
그 속에서 하나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주류에서와
같은 철저한 분업화보다는 작가 개인이 만화 전체를 일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당연히도 이들은 중소규모인 만큼 유통의 측면에서 대형 출판사들에게 계속 불이익을
당하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유통 경로를 모색중입니다. 그중에서 그나마 가장 큰 출판사로는
Fantagraphics 등을 들 수 있겠죠.
유럽도
한번 보죠. 유럽의 주류 형식은, '알붐'이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Album은 약
5-60 페이지짜리 큰 판형(종종 A4나 그 이상)의 만화책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단행본으로,
잡지에 연재되었다가 묶여서 나오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앨범 단위로 곧바로
나옵니다. 마치, '소설'의 생산양식과도 비슷한 셈이며, 연속 시리즈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립된 출판물로서 위치지어져 있는 인상이 강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자유로운 컬러를
사용하여 다양한 표현이 가능합니다(물론, 여기서도 제작비 때문에 흑백을 고수할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은 없을 리가 없죠...--;)...대신에, 서사방식이 개별 칸의
이야기 밀도가 높아지고, 이야기 호흡의 단위가 알붐 단위로 끊어지는 작품 내적인 특성과,
알붐 한권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기간의 길이가 길다는 외적인 특성이 생겨납니다.
BoDoi,
Echo de Sabanes 등 유명한 잡지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20세기 중후반까지만해도
프랑코-벨기에 만화권에서는 만화잡지의 형식이 꽤 보편적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처럼
한번 나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알붐으로 곧바로 묶여서 나오는 자유는 많았지만 말입니다.
현재도 잡지는 계속 나오고 있으나, 알붐 형식으로 바로 나오는 경우가 더 지배적입니다.
만화의
유통은 프랑스에서도 역시 기본적으로는 전문 유통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프랑스
전역에 약 80여개의 대형 만화전문 서점이 있고, 이외에 FNAC(도매에서 소매, 통신판매까지
모두 담당) 등으로 대표되는 대형 유통 체인이 존재하고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서점에서 만화책을 구하는 것이 일본이나 한국, 미국 등과 같이 어려운 일은 아닌데,
90년대 내내 꾸준히, 일반서점에서도 점차 만화 코너를 강화하는 추세가 기록되고 있다고합니다.
그 이유는 역시 만화의 높은 상품성과 문화적 우수성이 널리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알붐이라는 단위 자체가, 출판물의 전통 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럽이 무슨 만화천국도 아니고, 만화가 100% 모든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니코폴' 시리즈가 그 해 '최고의 출판물' 상을 탔다는 것이
그쪽에서 대단한 화제가 되었을 이유도 없었겠죠... 아 뭐 여하튼. 유럽은 비교적 만화와
일반 서적의 거리가 좁다는 것입니다. 그것만큼은 확실히 부럽습니다.
프랑스
하나만 놓고 전반적인 추세를 보자면, 프랑스에서도 만화가 80년대에 다소 위축되는 듯
했다가, 다시금 90년대 후반에 오면서 호황기로 돌아섰습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일본
망가의 성공적인 프랑스 시장 진입에 따른 것도 있지만(예를 들어서 '드래곤볼'의 경우,
총 800만권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 도대체 이 만화는 세계 어딜 가도 성공하는군요--;),
재판, 히트만화 모음집 발행의 증가, 많은 소규모 독립 출판사의 출현, 중간 규모 출판사의
출판 정책 강화를 그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일본만화의
경우, 뭐 다들 많이 들었듯이 '제작자 시스템'이 확고합니다. 주류 만화에서 작가는 '담당기자'와
실질적으로 한팀을 이루어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작가 중심 제작 시스템이라고 명분은
걸려있지만, 실제로는 편집부의 입김 - 트렌드 분석, 소재설정, 방향 지우기 등까지도
- 이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또한 작가는 원고수요를 채우기 위하여 많은 경우 '스튜디오'를
경영합니다. 여기에서는 소위 '어시스턴트(어시)'들과 함께 원고작업을 하는데, 그 분업의
방식은 미국처럼 엄격한 분업화라기보다는 보다 유기적입니다. 즉 누구는 배경을 담당하고,
누구는 캐릭터 펜선을, 누구는 스크린톤 붙이기... 등의 방식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 자신의 이름이 중심으로 되어 책은 나오게 됩니다.
여하튼
일본만화의 주류 시스템은, 두꺼운 연재모음 잡지가 주류적으로 발행되며, 그 잡지를
통해서 원고가 모이면 170-200 페이지 내외의 단행본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입니다.
잡지 자체는 한국으로 치자면 스포츠신문에 비길 정도로 싼 염가판이며, 주요 수익은
단행본에서 나게 됩니다... 라고는 하지만, 단행본 자체도 일본이 워낙 페이퍼백(문고판)
문화가 발달한지라, 물가 수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싼 편입니다.
일본의
경우, 만화시장 자체가 기형적으로 비대해져 있습니다. 출판 시장 자체도 크지만, 그
속에서도 만화 시장이 너무 비정상적으로 큽니다. 하지만 일본 만화 자체의 산업적 전망은
실제로는 그렇게 밝지 않습니다. 일본 출판월보의 자료에 따르면, 99년도에는 만화시장
규모가 전년대비 7%(171억엔)이라는 초유의 감소폭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판매 부수 역시
약 4억 8000만권으로, 전년대비 6.6%(3400만권)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95년
신년호에서 발행 부수 650만부라는 '전설'을 남겼던 '소년점프'의 경우도 현재는 350-60만부에
'불과'합니다.
출판/유통에서의
노쇠화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는 최근 들어서 일본 만화 유통 구조 속에서 지분을 급격히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고 서적 매매입니다. 만화산업이 오랜동안 호황을 누려온 만큼 작품
물량 자체가 갖추어져 있다 보니,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작품을 구할 수 있는 중고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중고 만화시장은
신간 서적 시장을 심각하게 갉아먹을 정도로 지분이 확대되고 있으며(전체 만화시장의
약 1/3로 추정), 도서정가제 제도를 우회하여 할인 경쟁을 하는 도구로서 악용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노쇠화의 중요한 지표는 작품들의 과도한 매니아 지향성입니다. 일반 대중 가운데
기존 만화독자가 아닌 새로운 독자층을 끌어들여서 만화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확대시켜
나가기 보다는, 이미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매니아 독자층만으로 만족하는 모습이죠.
이런 형식으로 고착되어 버릴 때 산업 시스템은 유동성을 잃게 되고, 변화에 극도로 취약해진다는
일반 상식을 고려할 때, 여타 오락 매체의(게임, 휴대폰 서비스 등) 융성에 따라서 안정적인
매니아층 마저도 빼앗기고 있는 일본 만화가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산업 형태는, 일본 만화시장이 이미 오랜동안 호황을 누려와서 일정
규모 이상의 매니아 경제가 형성이 되어있기 때문에 발생가능했다는 측면에서 노쇠화의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수십년간 굳어온 '표준적'인 만화 제작 방식의 고착화도 분명한 노쇠화 현상입니다. 현재
일본의 주류 만화계에서는, 작가 개개인이 연구하여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내고 일반 대중에게
인기를 얻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대형 출판사들의 경영전략에 의해서 작품의 방향을 거의
공식화 시켜서 제작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대형출판사들이 '히트공식'을 오랜동안의
기간에 걸쳐서 쌓아왔다는 사실은 한쪽으로는 그만큼 정교하고 효과적임과 동시에, 거꾸로
그만큼 정형화되어 있으며 독자들이 이미 식상해 있다는 것이기도 하죠... 일본
만화 출판 시스템의 거대한 규모, 그리고 그로 인한 고정성을 고려할 때, 일본 만화계를
성장시켜줄 혁신적인 대작이 앞으로 탄생할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합니다.
여기에
일본 사회 전반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영향까지 추가되어, 앞으로 일본의 만화시장은
더욱 급속한 시장 축소를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요약하자면 현재 주류 일본만화는
작품면에서도, 산업적 효용성 면에서도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그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적극적인 시스템 변혁이 요원한 상황인 셈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내일 일본만화가 망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서히 가라앉는 징조가 보인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워낙 덩치가 크고, 아직도 가끔 '히트작'이 하나씩은 나오다 보니 눈에
잘 안들어올 뿐이죠. 하지만 '드래곤볼', '슬램덩크'를 그리워 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90년대 이래로는 주류 시스템 측면에서 일본의 시스템을 거의 고스란히 수입해왔습니다.
편집자 개입에 의한 잡지-단행본 시스템...말입니다. 물론 일본에서는 없어진지 오래인
대본소 만화 방식도 고스란히 살아있고, 자신만의 커다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학습/교양만화라는
커다란 분야도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잡지 시스템을 '주류'라고 하기에는
망설여지지만...음. 역시, '주류'라는 말은 취소하도록 하겠습니다(--;...그럼 뭐라고
부르지?). 여하튼 소위 현재 한국만화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다는 대형 출판사들은
일본식 잡지-단행본 시스템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시'개념보다는
이전의 '문하생'(조수로서 작업하면서 배움도 얻고자 하는...실제로는 과연?) 방식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고, '공장제' 작업도 존재하며, 또한 출판사측의 '일본급' 개입의지에
비해서 투여할 수 있는 담당기자의 숫자나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과도
다소 다른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어째서 한국 특유의 '역동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일본의 노쇠한 시스템을 쫒아가려고 발버둥을 치는가, 라고 한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한국만화는, 아직도 꽤 다양한 방식들이 공존하고 있고, 또한 시스템의
'변화'를 이루어내기가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미국이나 일본 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용이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약간만 더. 망가권의 또 다른 기둥인 중국어권 만화(대만, 홍콩 등이 중심이죠)는
어떨까요. 일본망가식 화풍이나 연출에, 중국 무협지의 전통 위에 서있는 내러티브에,
한국을 연상시키는 '공장제' 작업공정과, 미국식의 출판계약관행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섞여있습니다. 앞으로, 이쪽의 성장도 분명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겠죠.
...다시
한번 되돌아갑시다: 저는 오늘 무슨 산업분석서를 만들고자 이렇게 산업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물론, 산업분석서를 만들고자 제가 이전에 작성했던 자료들을 여럿 다시
인용했지만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산업적 측면들이 실제로 작품의 형식, 내용적인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입니다. 맥클루드의 '만화의 이해'를 다시 펼쳐봅시다. 본문에서
일본만화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서 들었던, '연재 방식'의 예를 인용해볼까요(p.80)?
제가 뒷부분의 '해설편'에서 썼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여기서
맥클루드는 칸 연결의 연출방식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일본만화가 두꺼운 잡지의
한 부분으로 실리기 때문에 한 회에서 '보여줘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양상간 이동'을 포함, 여러 연출방식들을 고루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두꺼운
잡지'라는 형식은 단지 연출방식의 차이 같은 기술적인 부분 이상으로, 만화의 소재,
주제, 등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한 잡지에 여러 작품들의 한 회 씩이 연재되는
이러한 방식은, 단독 타이틀로 월 단위로 나오는 미국식의 코믹북 개념보다도 더욱 치열한
경쟁의 원리가 적용된다. 연재작들 간의 인기순위가, 심지어 '주간'이라는 살인적인 스케쥴까지도
도달하고 있는 발간 단위 속에서 항상 비교되고 있다; 인기가 떨어질 경우 강제로 중도하차되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맥클루드의 설명과는 달리, 미국의 코믹북 개념보다 오히려 더욱
한 회에 '보여줘야 할 것이' 많다. 소위 "적어도 한 회에 필살기 한번, 개그 한번, 갈등과
오해 한번, 그리고 주인공의 위기에서 이번 회를 끝내기"라는 식의 공식이 암암리에 강력
권장되는 것이 일본식 개념의 주류 잡지 연재다. 게다가 주간지라는 상상할 수도 없이
빡빡한 스케쥴 속에 처한 여러 작가들의 경우는 '세상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다; 따라서
출판사 측의 담당 기자가 실질적으로 작가와 공동 창작작업을 하다시피 할 정도로 작품의
소재, 주제의 방향, 연출의 밀고 당기기, 심지어는 화풍에 까지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일본 주류 만화의 '색'은 이렇듯 철저하게 시스템의 영향을 받아가며 만들어진 것이다(한국에서도
'대형' 만화출판사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수용해 들여왔기 때문에 그리 낮선
풍경이 아닐 것이다). 만화 제작의 물리적인 환경조건 자체에 대한 몰이해는, 맥클루드로
하여금 아시아권 만화에 대한 시각에 과도한 환상을 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결코 자신이 처한 사회적/산업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 적응하고, 또한 반항해왔는지의 그 역동적인 흐름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결국, 현재의 만화문화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어떤 위치에서이든지 간에 '만들어'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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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cold(김낙호),
2002. 6. Copyleft(카피레프트의 기본 전제는, 출처 밝히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