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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하대02_1]만화의 개념정의와 그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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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
!@#...[인하대02_1]라는 말머리를 달고 올라오는 일련의 글들은, 제가 이번 2002년도 1학기에 인하대 온라인 강좌를 운영하면서 진행한 강의록입니다(팀티칭으로 진행하는 인하대 교양강좌 '만화의 이해'와는 다른 강좌입니다). 만화에 관한 여러 개념정리라든지, 더 생각해봐야할 화두라든지 하는 이 코너의 목적에 부합하는 여러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진행했던 강의인 만큼, 여기에 기사화해볼까 합니다. 정답을 주기보다는 문제를 주는 내용인 만큼, 많은 후속 토론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내용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사실, 이것을 올리는 것에는 개인적으로는 다른 목적도 있습니다: 2학기 강좌에는 강제적으로라도 이것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내용으로 새로운 자료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배수의 진입니다...-_-;
!@#...읽는 방법: 중심교재로 사용한 맥클루드의 '만화의 이해', '만화의 미래', 성완경 저 '세계만화탐사' 등의 책들을 옆에 펼쳐놓고 참조해가며 읽으면 좋습니다. ^^;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서, 아주 쓸모없는 공지사항(성적 평가 관련이라든지...-_-;)를 제외하고는, 무수정 그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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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화의 개념 정의 + 만화의 뿌리/ 만화의 이해 제1장
by capcold
...만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TV를 켜고 ‘만화’를 보며,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며, 신문의 시사 ‘만화’를 보며, 황당한 영화를 보면서 ‘이건 숫제 만화군’을 외치고, 광고 포스터나 벽위의 낙서를 보며 ‘야~ 만화다’라고 합니다. 만화는 여러모로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입니다; 만화에 관한 이론이든, 감상이든, 역사든, 제대로 된 논의를 전개해나가려면 우선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만화”가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획을 긋고 넘어가야만 합니다. 만화에 대한 하나의 공통된 상을 들고 시작하지 않을 경우, 독일어와 일본어로 각각 대화하는 것 만큼이나 서로 뜻이 안통하게 될 것이고, 만화에 관한 여러 오해와 편견들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맥클루드의 <만화의 이해> 1장을 펼치고 같이 넘겨가면서 강의를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우선 한가지 차원을 미리 규정하고 들어가겠습니다.
<만화>: 명백하게 만화로 규정할 수 있는 것.
<만화예술>, 혹은 <만화적 표현요소를 사용한 것>, 혹은 <표현언어로서의 만화>: 작가나 독자가 이것이 만화라고 확고하게 주장, 공유하지 않더라도 만화에서 사용하는 여러 장치들을 중심적으로 활용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즉, 간단하게 말하자면 만화는 아닌데 만화에서 발달시킨 표현을 빌려간 모든 것을 칭하는 것입니다.
만화에 관한 논의를 하려면 특정 만화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만화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규정이 먼저 필요합니다. 특정 작품을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아서 만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작품이 무엇을 이루어냈는가(혹은, ‘성과’)를 이야기하는 부분에는 도움이 되지만, 만화가 과연 무엇을 할 수 / 될 수 있는가(혹은 잠재력, 가능성, 나아가야 할 방향)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개념적인 접근이 중요한 것입니다.
맥클루드의 경우 만화에 강력하게 포함되어 있는 속성 가운데 하나인 ‘연속성’에 주목하는 윌 아이스너의 정의를 계승, 발전시켜서 위와 같이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우선 우리는 좀 더 다각적인 측면에서 ‘만화스러움’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다음의 3가지 축은 만화에 관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요소들을 범주화시켜본 것입니다:
1. 카툰화법(cartooning)
카툰화법이라는 용어가 다소 낮설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매체적, 혹은 장르적 규정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 그리는 방식’(화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저는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이것은 다음 강의인 ‘만화의 어휘’편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될 것입니다). 카툰화법은 상의 객관적 재현보다는 주관적 왜곡을 통해서 전달 효과를 높이는 화법으로, 특정부분을 초점을 맞추어 과장, 왜곡하고 그것 이외의 세부묘사를 간략화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구현합니다. 사실 이 말도 약간 모호하군요...‘작가’가 개입되는 모든 화법들, 사진묘사술이 좋거나 싫거나 이런 것들이 정도는 다르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과정이 개입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카툰화(化)의 정도라는 것은, 묘사하고자 하는 상을 얼마나 적은 표현요소만으로 특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가의 정도입니다. 특정한 모습에 대한 같은 정도의 연상력을 지니고 있는 예술작품들의 경우, 사진에 묘사된 상보다는 세밀한 수채화에 묘사된 같은 상이 더 표현요소가 적게(그러나 더 특징적으로) 드러나 있고, 크로키/스케치는 앞의 수채화보다도 더 같은 상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표현요소가 더 적지만 특징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카툰이라는 말의 어원은 14세기 유럽의 태피스트리 밑그림으로 대강 그린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만화다’라고 부르고 있는 카툰화법으로 묘사된 그림은 많은 경우 크로키와 세부묘사 가운데에 분포하는 범주를 지칭하고 있는 편입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카툰 화법에 관한 더 깊은 이야기들은 따로 수업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그만큼 흥미롭고 중요한 요소입니다)
카툰화법은 만화에 있어서 분명히 많이 연결점을 지니고 있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흔히 오해하듯이 카툰화법으로 되어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만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부분은 대단한 용어의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는 부분인데, 만화(漫畵)라는 단어 자체에 ‘그림’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만화에 들어가는 그림도 만화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는 식의 사고를 낳게 했습니다. 즉, 카툰화법으로 그린 모든 그림마저도 ‘만화’라는 말로 규정함으로써 만화라는 말이 지칭하는 것의 범주가 지나치게 - 심도 깊은 연구접근이나 고민이 불가능할 정도로 -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카툰화법은 만화를 특징짓는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지만, 만화에 대한 하나의 ‘정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만화의 본연적인 속성인 것은 아닙니다. 만화라고 쉽게 인정받을수 있으면서도 카툰화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만화’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정반대로, 카툰화법으로 그렸지만 ‘만화’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아트 등까지도 모두 ‘만화’라고 부르기는 무리가 따르게 됩니다. 카툰화법을 사용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만화’라는 범주에 넣기 시작하다 보면, 동서양의 각종 미술을 비롯한 시각 미디어 역사의 절반 이상이 만화라는 범주로 묶여야 할 텐데, 그것은 진지한 접근을 하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안됩니다. 특히 이런 측면에서 ‘만화’의 범주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외시켜야 할 것이 바로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애니메이션 가운데 상당수인 셀 애니메이션은 카툰화법을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다른 종류의 애니메이션 역시 크고 작게 카툰화법 혹은 카툰화법의 기본 구성요소들과 유사효과들을 활용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은 스크린에 투사되는 동영상의 문법을 따르며, ‘영화’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만화’라고 흔히 부르는 것은, ‘만화영화’라는 (비록 정겹기는 하지만...^^) 오해의 여지가 많은 용어사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카툰화법으로 그려진 그림’(즉, 흔히 ‘만화’라고 불러재껴버린)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뜻이죠; 그런데 만화영화 네글자를 이야기하기 귀찮아서 ‘만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또다시 ‘만화’의 범주가 더 넓어져서, 만화 속에 영화까지도 포섭이 되어버리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카툰화법의 매력 덕분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또한 둘 사이에서 많은 컨텐츠의 교환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미디어 이식에 관해서 역시 강의 후반부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둘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사실 영어권에서도 이런 비슷한 용어 혼동현상이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cartoon이라는 단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하튼. 카툰화법은 만화의 특징적 요소 가운데 하나지만, 만화를 통째로 정의/규정지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2. 글과 그림의 결합
만화는 분명히, 글과 그림의 결합을 가장 활발하게 실험해온 매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글과 그림의 결합을 통한 메시지와 이미지의 전달에 있어서 만화형식이 이루어낸 성과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예를 들어서 ‘말풍선’이라는 장치는 시각을 통한 메시지 전달력에 있어서 항상 저평가 당해오면서도 가장 활발하게 응용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만화를 정의내리는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글과 그림의 결합이 만화에서 가장 멋지게 이루어진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반드시 만화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인쇄물, 인터넷 게시물, 컴퓨터 화면들은 모두 그림과 그림이 상호적으로 결합되어,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이 글과 그림을 결합하는 방식이나 기술은 만화에서 만들어진 것을 응용한 경우가 많지만, 여하튼 결과적으로 글과 그림이 결합된 모든 것을 만화로 넣어버리면 우리가 감당 못할 정도의 거대한 덩어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더욱이, 저는 글과 그림이 만화에 본연적으로 결합되어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글이 없이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만화의 존재를(다나카 마사시의 ‘곤’ 등) 설명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3. 내러티브성(‘이야기가 담긴 그림’)
- 만화(명) 1. 수용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미학적 반응을 일으키기 위하여, 의도된 순서로 병렬된 그림 및 기타 형상들.
교과서에서 맥클루드가 다듬어서 내린 정의입니다. 그림의 연속을 통해서 생기는 '내러티브성'에 주목하는 정의지요... 아, 여기서 물론 제가 사용하고 싶은 '내러티브성'이란 개념은, 반드시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묘사된 이미지가 단순한 ‘심상’이 아닌 하나의 상황이며, 어떤 특정한 ‘사건’(앞칸의 삼각형이 뒷칸의 사각형으로 바뀐다든지 하는 것도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으로 인지된다는 것입니다. 그림( 및 기타 형상)들을 가지고 이야기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만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두 개 이상의 칸을 병렬시키는 것입니다. 두 칸은 하나의 사건 속에 있는 두 개의 상황인 셈입니다. 흔히는 (꼭 그런 것만은 물론 아닙니다) 한 사건의 서로 다른 두 시간 에서의 상황이죠. 눈을 감고 있는 그림(상황)과 눈을 뜨고 있는 그림(상황)을 병렬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앞의 눈이 뒤의 눈과 같은 것이라고 인지하고, ‘눈을 감았다가 뜬다’는 ‘사건’을 봅니다.
하지만 칸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연속적으로 병렬시키는 것만이 내러티브성, 혹은 연속성을 담지하는 유일한 방식은 아닙니다(그 부분에 있어서 맥클루드의 정의 역시 보완이 되어야 합니다). 길다란 하나의 칸 안에서도 충분히 그런 것들이 표현될 수 있으며, 이것에 대해서는 맥클루드 자신도 4장, ‘시간틀’의 초반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칸 몫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한칸짜리 만화’(흔히 그냥 ‘카툰’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 용어의 일대혼란이란!)를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만화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만화를 절대적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필요충분명제는 아닙니다.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의 경우, 분명히 하나의 사건으로서 읽혀지고 긴 칸 속에서 여러 상황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속적으로 읽히도록 가로로 길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화풍이 카툰화법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만화’라고 규정짓기에는 망설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사전적으로 정의내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특징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만화로 규정지어지기 위해서는 위 3가지 큰 요소들의 교집합이면 가장 확실한 듯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즉, 카툰화법으로 그려졌으며 글과 그림이 결합되어 있고, 연속성(아니, 아예 두 칸 이상이 병렬되어 있다고 해봅시다)을 이용한 내러티브성을 담지하는 작품. 흔히 우리가 ‘만화’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여기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교적 뚜렷한 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합집합 전체를 ‘만화’라는 모호한 말로 뭉뚱그려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실제로 4가지 축의 어느 한 쪽에서만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서 만화로 인식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즉, 3가지 요소의 교집합은 거의(!) 확실하게 ‘만화’이며, 합집합에는 속하지만 교집합에는 속하지 않는 이외의 창작물들 중에도 만화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들이 일부 분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사실은 애매한 문제이며, 모든 것은 흑/백 - 즉, ‘만화다/아니다’의 문제가 아닌, 스펙트럼 상의 문제입니다. 명백한 만화가 있고, 명백한 비만화가 있고, 그 사이에 있는 ‘만화같기도, 만화같지 않기도 한’ 여러 층위들이 분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노파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만화의 정의: 3가지 요소의 교집합'은 결코 아.닙.니.다. 만화는 그렇게 형편없이 좁은 범주가 아닙니다.
...아아...길고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규범적 정의라기보다, 구성요소에 입각한 범주적 접근을 시도하는 이상, 애매함을 벗어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항상, 모든 진지한 논의 앞에는 하나의 공통된 틀, 즉 ‘규칙’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모든 정의내림은 개념적인 상상들이 난무할 수 밖에 없으니 조금만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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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개념의 <만화>는 어떻게 해서 발전해왔을까요. 만화의 원형들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원형’이라 함은, 굳이 그들이 그것을 창작할 때 만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기 보다, 현재 만화의 원형격되는 표현방식들을 보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살펴보면, 만화에서 사용하는 요소들이 생각보다 오래되었으며, 많은 진화의 과정을 겪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과서(주: 맥클루드 저, '만화의 이해')의 제 1장을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도해들을 살펴보면서 설명을 들으시죠.
>> 멘나의 묘 벽화(BC 12세기) 하나의 이어진 그림으로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칸 구분은 없고, 반드시 앞 상황의 농부가 곧 뒷 상황의 농부와 동일인물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밀 수확이라는 하나의 명확한 ‘사건’이 구체적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주) 이집트 회화와 상형문자는 별개의 것입니다. 교과서에 반드시 밑줄 그어놓으시기를.
>> 마야의 사슴가죽 그림(11세기) 하나의 사건 속에서 서로 구별되어 있는, 상황을 묘사하는 카툰화법에 가까운 그림들의 연속으로 모아져 있습니다. 지그재그라는 ‘독법’이 있으며, 그림이 그려진 길다란 사슴가죽은 접어서 들고 다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림과 글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만화냐고? 빙고!
>>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 11세기) 테피스트리, 즉 벽걸이 천 그림 위에 묘사된 서사시입니다. 노르만왕의 잉글랜드 정복에 대한 이야기를 72장면으로 구분, 70m의 길이의 띠그림으로 기록했죠. 여기서도 글과 그림이 결합되고, 상황의 연속을 통한 사건의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화냐고? 음...-_-; 좀 고민되는군요.
>> 성 에라스무스의 고문(15세기) 이것이 만화로 안보이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말과 글의 결합은 없지만, 카툰화법과 한 사건의 연속그림이라는 점, 특히 ‘칸’을 선으로 명확히 구분했다는 점에 있어서 현대만화와 대단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인쇄물이기까지 하기 때문에 현대의 인쇄만화나 거의 다름없습니다. 이 만화의 용도는...중세 유럽 대중을 위한 기도서의 일부였다고 합니다...-_-;
>> 호가스의 연작그림(Hogarth, William, 18세기) 카툰화법은 아니지만, 글과 그림의 결합도 아니지만, 연속된 그림을 ‘읽어서’ 하나의 사건을 구성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연속그림과 이야기성이라는 만화의 표현요소의 원형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겠지요. 굳이 ‘만화’라고 억지로 규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 우키요에 (浮世繪,14~19세기) 에도시대에 발달한 일본의 목판화로 그려진 풍속화로, 망가(일본만화) 특유의 카툰화법 화풍에 대한 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책 3장(홈통에 흐르는 피)의 중간에 일본만화를 설명하는 부분에 실린 호쿠사이의 그림이 그런 우키요에의 하나입니다. 이 자체로는 만화라고 보기가 대단히 힘들겠지요.
>> 연환화(連環畵)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요점적인 설명과 함께 여러 폭의 그림으로 보여주는 중국 특유의 예술형식으로, 중국 돈황벽화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특히 무술교본, 대중을 위한 도덕경 등에서 많이 사용되었죠. (교과서에는 도해가 없군요...)
>> 도미에(Honore Daumier, 19세기) 현대 정치 풍자만화의 시조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관한 미술책도 한국에서 여러권 나왔으니 낮선 이름은 아닐 겁니다. 현대 서양식 카툰화법과 한칸만화의 이야기문법을 다듬어냈습니다. (교과서에 도해가 없군요...하지만 이 정도는 알아서 찾아보세요...앞부분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굳이 도판을 넣어드리지 않지 않았습니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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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는 마지막으로 만화의 범주에 관해서 한마디하겠습니다. 이렇게 개념적으로 규정한 만화가 우리 일상에서 흔히 어떠한 성격의 저작물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가, 그리고 만화가 차지하는 폭과 규범은 무엇인가를 약간 들추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우리가 흔히 ‘만화’로 이야기할 때, 종종 만화라는 영역 전체가 아닌, ‘주류 대중 만화’만을 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쥐’(아트 슈피겔만)를 보고 감동받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우수성을 칭찬할 때 “만화 같지 않다”라는 나름대로는 신경썼지만 정말로 허접쓰레기같은 멘트를 날릴 때(과격해져서 죄송합니다) 바로 이런 종류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만화와 대중만화의 관계는 문학과 대중문학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만화라는 거대한 영역 속에서 주류 대중만화라는 하나의 하위범주가 있을 뿐입니다. 대중적 어필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만화 고유의 미학적, 자의식적 측면들을 강조할 수도 있고, 비주류적이고 낯선 실험들을 하는 영역들 역시 만화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고, 그들은 간혹 잘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순수문학’이 있다면, ‘순수만화’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학적 견지에서 이들은 대중성의 반대인 ‘전문성’의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2. 일반(극)만화와 실용만화 역시 생각해야할 기준입니다. 일반만화라는 명칭은 사실 부정확하고, 극만화라고 하기도 좀 문제가 있어서 이 용어들은 임시적인 것일 뿐이지만, 어떤 말을 하고싶은지는 전달이 될 것입니다. 즉, 일반(극)만화와 실용만화는 문자서적으로 치환하자면 문학과 일반서적 정도에 해당됩니다. 하나의 기준에서 놓고 평가나 판단을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닌 것은 명확합니다; 전자는 미학적 완성도, 메시지의 진정성 등 예술성의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지만, 후자는 정보전달의 효율성과 효과성으로 평가할 대상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하면 현존하는 다양한 만화들을 포괄적으로 범주화시킬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모델을 제안해 볼 수 있습니다:
만화범주 모델 가설 (가칭)
x축 : 대중성, 전문성 y축 : 실용성, 예술성 실용성 | | | 전문성---------------------대중성 | | | 예술성
...이 모델은 제가 두고보자 편집진들과 현재 만들고 있는 범주모델의 기본 축입니다. 이 공간 속에서 여러 개별적인 작품들(이 작품 내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방향)과 경향성들을 위치시켜볼 수 있습니다...아직 미완성인 만큼, ‘이런 신기한 작업도 가능하구나’하고 넘어가 주십시오; 다른 지면으로의 재인용은 아직은 삼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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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이번 주 수업이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길어졌군요...-_-; 다음 주 수업은 <만화의 어휘>로, 카툰화법이라는 마법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호학적인 이야기들이 약간 나올테니, 미리 긴장한번 해두시는 것도 좋을 듯. (후후후) 그럼, 다음주 일요일 밤/월요일 아침에 강의노트 올라갑니다~!
================================================================ capcold(김낙호), 2002. 3. Copyleft(카피레프트의 기본 전제는, 출처 밝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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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capc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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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986 |
등록: 2002/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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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순수와 비순수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제가 쓴 글의 주제와도 같군요.하지만 예술에 이렇듯 순수와 비순수의 구분이 가능할까요?순수와 비순수를 구분짓는 기준은 바로 `대중성`입니다.대중성이란 곧 `보편성`과도 상통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죠.다시 말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이른바 `절대기준`이 곧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예를 들면 미모에 대한 성형학적 관점이라던가)물론 보편적이라고 해서 완전한 일치는 아니고 어느 정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것들 말이죠.하지만 순수와 비순수의 구분에 대한 기준은 대중성 즉, 보편성의 여부를 묻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순수에는 보편성이 담겨있지 않은 걸까요?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죠.`보편성에 대한 주관적 시각`.반면에 비순수라 지칭되는 것들에는 `보편성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담겨 있겠죠.순수든 비순수든 보편성이 결여된 것은 없습니다.바꿔말하면 대중성이 결여된 예술은 없다는 걸 말하죠.그것이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봅니다.결국 순수만화와 비순수만화의 구분은 잘못된 논리이며 대중성과 전문성의 구분도 잘못이라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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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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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실용성과 예술성이 서로 별개의 상극이라는 말에도 역시...본래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실용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들이 아닙니까?작품을 통해 구현된 메세지가 객관적 지식전달이던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하는 기호와 문자들의 조합이던 그것자체가 하나의 `정보`이고 정보는 곧 `효용성,실용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객관적 지식전달이 목적인 만화는 객관적 지식이 곧 실용성이고 미학을 표현한 만화는 미학전달 자체가 실용성이라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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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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