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만화의 어휘/ 만화의 이해 제2장
by capcold
!@#...음. 지난 시간 강의에 이어서, 이번에는 만화의 ‘어휘’라는 제목 하에 ‘카툰화법’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은 가급적 피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고삐가 풀릴 때가 있으니 여러분들의 추후 질문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호학 이야기를 살짝 꺼낼까 합니다. 기호(sign)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간략화된 상징물의 일종입니다. C. S. Pearse는 기호를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 3가지란 바로 도상(圖像; ICON) 기호, 지표(指標; INDEX) 기호, 상징(象徵; SYMBOL) 기호인데, 꽤 유용한 구분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기호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의 의미화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휴양지 지도의 약어표에 물고기 그림 모양의 기표가 나온다면, 그 도상은 낚시가 가능한 지역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유사성에 의한 연관 - 즉 도상기호입니다. 그림이 요리책에서 저칼로리, 저콜레스테롤, 고단백질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된다면 그 그림은 지표적 의미를 띱니다. 이것은 인과(因果)에 의한 연관입니다. 그리고 물고기 그림이 예수를 통한 인간의 죽음과 재생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된다면 그 그림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이것은 자의적인 사회적 합의에 의한 연관입니다(현대문학/문화 비평 용어사전 中).
만화에서 카툰 화법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은 바로 도상기호입니다. 맥클루드가 ‘만화의 이해’에서 사용한 용어들의 범주는 기호학에서 원래 사용하는 용어의 용례들의 기준에서 볼 때 다소 부정확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우실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저는 여기서 이렇게 나눠보도록 하죠: 도상 기호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의미-도상기호인데, 이것은 기호와 대상물이 모양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도상기호’이기는 하지만, 이를 읽을 때에는 기호를 이루고 있는 그림의 개개 속성은 무시되고,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중심 의미만이 전달됩니다.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의 횡단보도 교통표지판이나,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의 신호등 파란불이나, ‘사람이 걸어서 지나간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그림속 사람의 얼굴이나 체형이 어떻게 생겼다든지 하는 것은 관심 밖입니다(‘만화의 이해’에서 맥클루드는 이것과 상징기호, 지표 기호를 느슨하게 뭉뚱그려서 ‘비형상적 아이콘’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 구분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흐르는 감이 있어서 굳이 저는 이런 식으로 새로 구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림-도상기호입니다. 여기에서는 중심의미의 전달만큼이나, 그림 자체로서의 속성이 동시에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서 ‘범생이 천재소년’이라는 중심의미를 전달하려면 다양한 도상기호적인 그림 표현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대 이 경우, 단지 중심의미뿐만 아니라 그림의 다양한 스타일이나 기타 요소들이 우리가 그것을 읽어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기호로서의 작용을 하는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 물론 이 구분 역시 칼로 두부 자르듯이 절대적인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도상기호에서도 미묘한 스타일 차이가 서로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림-도상기호의 경우에도 하나의 전형성이 만들어져서, 별다른 스타일적 감수성 차이가 없어지는 사례들이 없지 않습니다(점차 ‘의미-도상기호’에 가까워 지는 셈이죠). 지금까지 나온 개념이나, 앞으로 나올 개념이나 항상 절대적인 구분선보다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시하시기를 바랍니다(흔히 저는 이것을 무지개에 비유합니다; 무지개는 7색이 아니라, 경계선 없이 흘러가는 무수한 색깔들의 연속입니다). 결국 만화와 카툰화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꺼내고 싶었던 개념은 바로 이 ‘그림-도상기호’인데, 먼 길 돌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꾸벅).
이제부터는 좀 더 쉬운 이야기로 가겠습니다. 그림-도상기호(사실, 초현실주의 같이 구체적인 ‘대상’을 지니지 않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그림이 넓은 의미에서 도상기호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경계선이란 항상 애매하기 마련입니다)에서는 시각적 추상화라는 요소가 작용하게 됩니다. 대상을 나타내고자 할 때 그 대상이 지니는 모든 속성을 전부 재현해서 묘사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사진은 물론이거니와, 아무리 정확한 3차원 입체영상이라 할지라도!), 대단히 비효율적입니다. 무엇보다, 굳이 기호를 통해서 표상을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리죠...-_-; 그렇기 때문에 그림-도상기호는 대상 그 자체보다는 적은 특징적인 요소들만으로 대상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을 여기서는 ‘시각적 추상화’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시각적 추상화는 쓸데없는 요소들을 삭제해나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생각해 보십시오...세상에 쓸데없는 특징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장 특징적인 몇가지 요소들을 중심으로 강조를 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단순화를 통한 전달효과 확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시각적 추상화의 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의 그림-도상기호가 나타내주는 대상물의 폭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사례는 교재에 나와있는 ‘추상화되는 얼굴’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단순화를 통한 의미전달력 강화가 능사는 아닙니다. 지나친 단순화가 가져오는 의미의 모호성이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지요. 작대기 인간 하나를 그려놓고, “이것은 갑돌이다”, 똑같은 작대기 인간을 옆에 그려놓고 “이것은 갑순이다”라고 해봅시다. 어느틈에, 둘은 구분이 안가고 이야기는 허공을 맴돌겠지요. 거칠게 말하자면, 시각적 추상화를 통한 단순화는 이미지가 주는 정보를 ‘요점정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요점정리가 지나치면, 너무나 많은 다른 정보들이 사라집니다. 기독교 성경을 ‘예수 나셨네, 인간을 구하셨네’ 한 문장으로 나타내면 어떨까요?
따.라.서. 시각적 추상화에는 이 두가지 요소를 고려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각적 추상화의 폭이라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넓습니다. 그리고 만화는, 이 추상화의 정도를 가장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예술형식입니다. 일반적인 회화는 단 한번의 표현으로 끝나지만, 만화에서는 추상화의 정도를 연속성 있는 그림 혹은 그림들의 연속 속에서 더욱 의미를 공고히 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서 추상화 정도의 완급조절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컷에는 사진을 붙여놓고, 다음 컷에서는 작대기 인간을 그려놓는 식의 극단적인 추상화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영화나 애니메이션 일반보다도 기술적으로 훨씬 용이하게 말입니다!).
우리가 ‘카툰화법’이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추상화의 스펙트럼 가운데 면의 질감에 대한 의존이 거의 사라지고 몇몇 명백한 윤곽선들을 위주로 표현하여 대상을 나타내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카툰화법은, “제작 기술 및 표현적 효율성의 균형점에서 찾아낸, 만화에서 가장 주류적으로 사용되는 추상화 수준”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카툰 화법의 추상화 범위는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작대기 인간부터 이현세식 극화체를 거쳐서 Alex Ross의 사실적 화풍까지, 크고 작은 ‘카툰화법’라 불리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선화=카툰화라는 식의 발상 역시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애매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이것은 ‘좌표 산출하기’라기 보다는 ‘세계지도 위에 굵은 마커펜으로 점 찍어 표시하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맥클루드는 카툰화법을 ‘그림 그리는 방식’이 아닌, ‘읽어내는 방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자꾸 외부 세계의 사물에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찾아내려고 하며, 그 이유는 바로 ‘탈바가지 효과’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눈으로 보는 외부세계가 아닌, 자기 자신을 느낄 때에는 구체적인 세부가 아닌 저밀도의 ‘카툰’으로 느낀다는 이야기인데, 따라서 우리가 카툰화를 볼 때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쉽게 감정이입을 시킨다는 점입니다. 즉 카툰화법으로 된 캐릭터를 볼 때 우리는 그것을 관찰하는 입장이 아닌, 그것에 이입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카툰화는 감각으로 느끼는 영역의 것이 아닌, 개념적으로 포섭되는 영역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인 대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개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나아가 맥루헌의 말을 인용하면서 카툰화로 표현된 물체들이 우리 정체성에 흡수되어, 우리를 확장시킨다고 했습니다. (교재 자체가 제 설명보다 14.6배쯤 더 쉽고 명쾌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를)
이것은 분명히 대단히 매력적인 발상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검증 불가능한 모호한 개념들이 많고, 아직 ‘가설’의 단계에 있을 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정보량’, ‘정보의 요약정리’, ‘추상화에서의 균형점 찾기’ 등의 개념들을 위주로 제 이론을 완성시켜보고 작업중입니다만... 한번 구체적인 예를 들어봅시다. 맥클루드는 ‘탈바가지 효과’에 따라서, 보다 현실화된 이미지는 감정이입을 방해하며 카툰화된 이미지가 감정이입을 촉진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잇습니다; 또한 두 차원이 한 화면 안에 같이 존재할 때 그 효과가 강력해지며, 그것을 탈바가지 효과로 보았습니다(또한 실제로 그러한 지점들을 의식하고 이용하고자 하는 만화작가들도 분명히 여럿 존재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소 다릅니다: 반대의 경우, 즉 카툰화된 그림이 오히려 정체성 이입을 방해하고, 카툰화가 덜 된 그림이 오히려 이입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만화로 대표되는 주류 아시아권의 여러 만화에서 ‘클로즈업’을 사용할 때, 주인공의 얼굴 표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그 반대로 배경을 간략화시키거나 아예 생략해버리는 기법을 자주 사용하죠. 이것은 맥클루드가 이야기하는 방식의 탈바가지 효과와는 정반대의 방식을 통해서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일본의 개그만화 <멋지다 마사루>(우스타 쿄스케作)에서는 일정한 수준의 카툰화법을 유지하다가 특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거의 어린아이 낙서에 가깝도록 과감하게 카툰화(化)된 칸을 배치함으로써, 장면을 극도로 타자화하여 ‘당혹스러운 상황’을 표현, 웃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위의 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카툰化=이입 / 사실化=타자’라는 공식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림의 카툰/사실화 정도나 ‘밀도’(저는 이것을 ‘한 칸이나 한 페이지, 양면 단위 등 하나의 이미지 단위가 얼마나 많은 정보량을 담고있는가’라는 의미로 정의하고자 합니다)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일반적으로는, 극에서 비교적 항상적으로 유지되어온 카툰/사실화 정도, 혹은 ‘밀도’ 등이 순간적으로 변화할 때 타자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며, 기법에 따라서는 그 변화를 오히려 역이용해서 이입의 방향으로 돌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제 주장이지요. 맥클루드가 이야기한 탈바가지 효과는 지각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전경-배경’ 효과의 일종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역시 중요한 것은 카툰화의 정도가 아니라, ‘밀도’의 차이를 비롯한 다양한 기제들이 작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전경(이입의 대상)과 배경(거리두기의 대상)이 동일한 밀도로 섞여들어갈 때 특정 대상에 대한 이입이 방해를 받기까지도 합니다. 이러한 효과를 재미있게 활용한 것이 바로 ‘월리를 찾아라!’ 시리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역시, 제 이론은 맥클루드식 탈바가지 효과보다, 정보량과 밀도라는 설명 쪽으로 완성시키고 싶습니다. 만화뿐만이 아닌, 카툰화법을 사용하는 매체 전반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를 실시할 수 있겠지요.
뭐, 곧바로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은 ‘어째서 카툰화법은 그렇게 쉽게 이입이 되어 다가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까지만 알고 계셔도 될 듯 합니다. ^^;
다시 책으로 돌아옵시다. 맥클루드는 언어와 그림이라는 두 분류를 나누어 놓고는 이들이 모두 ‘아이콘’의 세계에 들어와서 배치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면서, 시각적 추상화 정도를 현실/의미/그림도형 ‘대삼각’으로 도해하고 있습니다. 글과 그림의 문제 자체는 나중에 다시 한 장을 할애하고 있으니 여기서는 대충 넘어가도록 하고, 삼각형 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바로 이 추상화의 방향들과 차원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만화의 ‘어휘’로 규정합니다. 무리하게 언어와 그림을 한 평면 위에 쑤셔넣고 과도하게 뚜렷한 ‘언어경계선’을 그어놓은 점은 확실한 약점이지만, 이 대삼각은 많은 통찰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순수그림 도형이 ‘현실’과도, ‘의미’와도 멀리 떨어진 하나의 별개의 꼭지점이라는 점은 만화의 어휘를 더욱 폭넓게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시각 아이콘 언어(Visual Iconography)’라는 이름을 통해서, 그림-도상기호 영역의 사실상 전부가 만화의 어휘로 사용될 수 있다는 어찌보면 간단한 주장을, ‘만화’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강력한 작업인 셈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언어의 문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교재에는 있는데 왜 설명 안하고 넘어갈까, 궁금해하시지 마시기를^^;)
하지만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는 지점은 그림의 ‘범세계성’입니다. 맥클루드는 언어와 그림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언어가 사전학습이 필요한 ‘인지’의 대상이며, 그에 반해서 그림은 즉각적으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것이라고 단순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론 이것은 경계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림 역시 언어와 마찬가지로 그리 범세계적이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각종 문화적 코드들이 들어가 있는데, 그 외견이 언어보다는 그나마 훨씬 더 ‘알아보기 쉬울 것 같이’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를 범세계적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만큼 자세한 의미전달과 공감을 방해하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언어의 경우에서 ‘그냥’ 봤을 때 10중에서 4를 전달받았다고 가정할 때(다른 나라 말인 경우, 0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림은 여하튼 뭔가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에 10중에 6은 ‘느낌으로’ 알 수 있다고 쳐봅시다. 이 경우, 나머지 4만큼의 메시지를 자기가 이해를 못하거나, 아니면 아예 오해를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망각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지의 의미가 글 만큼, 아니 글 이상으로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구축되며 그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유/무형의 사회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호학 연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벼운 예를 하나 들자면, 슈피겔만의 만화 ‘쥐’에서 프랑스인이 개구리로 묘사되는 것은 영미권에서 프랑스를 조롱하고자 할 때 (프랑스어의 어감이 개구리 울음소리같이 들린다는 의미에서) 개구리라고 놀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설정이나 혹은 전혀 다른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의미로 읽히게 됩니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미지의 정치학입니다. 이미지와 그것에 부여되는 의미가 본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거나 경시할 경우, 위험한 스테레오타입들을 정당화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아...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맙시다. -_-;
여하튼. 카툰화의 ‘특징 강조법’은 문화적 맥락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100%의(뭐, 80% 정도라도...) 이해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comics literacy'(만화 독서 능력)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죠.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일반인의 만화 독서능력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뭐 이외에도 생각해볼 만한 것은, 카툰화의 정도에는 교재에서 다루고 있는 단순한 미학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여건들(만화산업의 구조, 그림실력 등)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카툰화법에 관한 깊은 이해와 연구에는 이러한 점들까지 고려한 다각적인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맥클루드의 논의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판삼아서 더 높이 도약하는 것이 바로 진지한 논의의 자세인 것입니다.
!@#...아아. 어째 이번 강의는 꽤 어려운 개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읽는 여러분들도 골치아프시겠지만, 말하는 저는 어떻겠습니까...-_-; 아! ‘말하는’이 아닌, ‘쓰는’이군요. 여러분, 제가 말이 들리십니까? 음. 교재 2장의 첫 시작에서 이야기한 그 방식의 효과 역시도, 만화 고유의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벌써 몇번째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지만) 경계선이라는 것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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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cold(김낙호), 2002. 3. Copyleft(카피레프트의 기본 전제는, 출처 밝히기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이 지면 전용의 오리지널입니다)=================
!@#...지난회 내용에 관해서, 뒷부분의 범주화 지도에 대한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읽었다면 충분히 나올법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소의 설명을 더 필요로 할 것 같아서 여기 추가합니다.
우선, 용어 정의와 범주화, 구분 등에 있어서 생기는 소통상의 문제의 가장 보편적인 경우는, ‘범주화의 오류’입니다(예, 고등학교 논술시간에 배우는 바로 그 것입니다). 하나의 범주 용어나 개념은, 그것이 어떤 도표 속에서 어떤 다른 개념들과 대비되어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지칭범주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것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최대한 방지하는 것이 논지를 설명하는 사람의 몫이지만, 때로는 직관적인 설명력을 위해서 이러한 용어들과 논리 장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밥이 먹고싶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먹을 것 일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밥만 먹지 말고 반찬도 먹어라’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밥 먹을까, 빵먹을까?’라고 한다면 또 다른 의미가 생겨납니다. 여기에 대해서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헷갈리지 않게 좀 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먹을 것이면 다 밥 아니냐”(즉, 범주화의 오류)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대중성’이니 하는 개별 용어 하나를 변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이 코너에서 미친 듯이 던져댈 개념들과 범주들을, 건.설.적.으.로. 사고하고 토론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말자, 소용없다, 만화에 대해서 뭐 그리 속물스럽게 잘난체하려고 하느냐가 아니라 (특히 저는, 어차피 모든 것에는 예술성이 있고, 대중성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것을 구분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하는 무용론 주장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경계 긋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스펙트럼 자체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것에 의거한 가치판단 자체를 멈추는 것은 어리석은 - 나아가 위험한 일입니다!), 뭔가 체계를, 큰 그림을 끌어낼 수 있는 길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읽고도 CTRL+F4를 누르지도 않고, 욕설 리플을 달지도 않아주신 여러분이라면, 이미 그 길에 동참하신 것일지도...(정말?)
!@#...아, 참고로 해당 기사에 대한 리플 및 코멘트에 대한 제 의견이나 답변은 (이번처럼) 그 다음 회의 하단에 붙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