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하대02_1] 그림과 글

(5) 보여주기와 말하기 - 그림과 글의 쌍곡선 / 만화의 이해 6장

by capcold

 

!@#...이번 주의 주제는 보여주기와 말하기, 즉 그림과 글이라는 두가지 범주와 만화의 접합점입니다. 자, 그럼 달려볼까요?

!@#...그림과 글의 결합. 만화의 표현적 우수성을 이야기하고자 할때면 지금까지 의례껏 강조되어왔던 부분입니다. 실제로, 그림과 글의 결합이라는 것이 효과적인 표현방식인 것은 분명하며, 다른 어떤 양식보다도 바로 만화에서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왔다는 것 또한 인정받아 마땅한 바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정도 미리 선을 긋고 들어가고 싶은 것은, 그렇다고 해도 그림과 글의 결합이 만화의 '정의'라거나, 만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제 입장이나, 맥클루드의 입장이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꽤 확고한 편입니다). 만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 글 없이 그림으로만 그려진 만화들은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나카 마사시의 '곤' 등이 여러분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겠지요. 제가 이번 강좌 내내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만화라는 양식의 우수성은, 고작(!) 그림과 글을 결합시키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만화는 글이든 아이콘이든 선의 성질이든 필체든 색이든 뭐든, 시각적으로 구현가능한 모든 방식과 기법들을 총동원할 수 있는 대단한 자유도와 표현영역을 가진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아 뭐 여하튼. 그러니까, 이번 강의의 주제는 그림과 글의 결합입니다. 문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지극히 표준화된 일련의 기호들의 조합을 통해서, 대단히 넓은 범위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문자를 '선들의 조합'이 아닌, 하나의 기호화된 문자로서 인식한다는 것 - 즉 literacy라고 부르는 기능은 인류의 문화를 (바람직하든 말든 간에) '다음 단계'로 올려놓았습니다. 정보전달의 효율성이라는 말이 잘 실감이 안나신다면, 아주 거칠게 비약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이 강좌를 보고 계신 컴퓨터에서, 메모장을 열어서 이 강좌 가운데 한 페이지 분량을 복사해서 넣고, 저장해 보십시오. 대략, 5-6KB 정도의 용량의 파일이 생길 것입니다. 이제, 그 똑같은 내용을 출력해서, 그것을 스캐너에 넣고 스캐닝을 하고, 그림 파일로 저장을 하십시오.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아무리 못해도, 5-60KB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훨씬 큰) 파일이 생길 것입니다. 선들의 조합이 아닌, 하나의 기호로서 인식하게 될 때 정보의 전달은 훨씬 표준화되고 효율적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문자가 무슨 완벽한 시각매체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호라는 형식으로) 표준화 시킨다는 것은, 그 만큼 표준화의 과정 속에서 미묘한 차이들은 사라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소녀가 마음이 듬뿍 담긴 예쁜 글씨로 러브레터를 쓴 글도, 제가 원고마감일을 넘기고 담당기자의 바가지긁기에 대한 두려움에 떨면서 긴박하게 악필로 갈겨쓰는 글도, '문자'라는 차원에서는 내용 이상의 차이가 없습니다. 무슨말이냐 하면, 워드로 쳐놓고 보면 남는 것은 그 미묘하고도 풍부한 시각적 의미(글씨체, 색깔, 손떨림...등등등)가 거세된, '글의 내용'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예전부터 '미술'이라는 영역이었고, 글은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글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부분, 즉 추상의 영역이나 수사학 등의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즉 그림과 글은 자신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일종의 '분업관계'로 발전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사례들이나 역사전개에 대한 과정은 교재를 참조하시기를...(사실, 이런 분업은 주로 서양의 '고급예술'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동양의 경우는 '고급예술'의 범주에서도 역시 시화라든지, 서예 같이 항상 글과 그림의 연결고리가 돈독하게 유지되어 왔죠).

  글은 글의 장점만을 보고 한방향으로 달려가며, 그림은 그림의 장점이라는 한 방향만 보고 달려간 분업체제 하에서는, 글과 그림은 점점 더 서로의 연결고리를 잃어 갔습니다;  여하튼, 소위 고급예술들은 각 매체의 가장 미묘한 가능성들이나 미학을 파고 들어가는 것 - 즉, '표현'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에 중독된 나머지, 모든 매체의 원래 목적인 효과적인 공유/교류라는 지점(혹은 다른 말로, 그 표현들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정말로는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을 놓쳐버리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뭐라고 할까, 무술로 치자면, 의미와 형식, 품세에 치우친 나머지 실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실용성'을 갉아먹었다고나 할까요('진짜 싸움은 도장의 다다미 바닥 위에서 이루어지는게 아냐!' - '무한의 주인'에서).

  그에 비해서 만화라는 것은 '대중문화'로서, 그와는 정반대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발달해 왔습니다. 하나의 그림(장면) 안에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회화의 규율을 벗어던지고 여러 그림들을 연속시켜서 읽도록 만들었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림에 글도 같이 섞어서 활용했습니다. 미적인 아름다움으로서의 표상들이나 기법들보다는 효과적으로 형상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간략화된 카툰화법을 도입했고, 이러한 요소들을 때로는 한꺼번에, 때로는 하나씩 사용해왔습니다.

  그림과 글의 접합 방식은, 현대만화에 이르러서 강력한 새로운 이정표들을 몇가지 맞이 했습니다. 단지 글과 그림이 병렬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문자 기호들이 그림 속으로 적극적으로 파고들어가는 양상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의성어/의태어 삽입입니다. 의성어/ 의태어 삽입은 만화의 극중(diegetic) 공간의 한복판에 문자로 된 기호들을 박아넣는 방식으로, (현실공간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구상(具象)과 상징계의 공존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자들이 만화 속에 나올 때, 독자는 그것을 시각요소가 아닌, 다른 감각에 호소하는 (예를 들어서, 청각) 자극으로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 있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놀라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콰-앙!' 하는 커다란 문자가 공간속을 가로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이 극중에서 '콰-앙'이라는 소리를 내고 있다고 해독해냅니다(가끔은 그런 속성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도리야마 아키라의 걸작 코미디 '닥터 슬럼프'에서 주인공 아라레가 쏘는 '안녕하세요-대포' 등이 하나의 사례입니다). 의성어로 쓰인 문자의 그래픽적인 배치에 따라서 화면상에서 그 소리의 음원과 방향 등을 나타내 줄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글자체, 크기, 크기변화, 필체 변화 등 수많은 시각적 요소들을 통해서 그것이 표상하는 오감의 성질을 다양하게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극중 공간 속으로 들어간 의성어/의태어는 문자이면서도, 필요에 따라서 그림으로서의 속성을 얼마든지 살려낼 수 있는 독특한 만화 표현 장치입니다.

  두 번째는 바로 '말풍선'입니다. 단순한 그림과 글의 병렬 - 예를 들어서 그림 밑에 글이 자막처럼 쓰여져 있는 방식 -을 넘어서서 말풍선이라는 기구가 발명된 이유는, 바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진행 묘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풍선의 발명 덕분에, 만화에서 '화자(話者)의 개념이 태어날 수 있던 것입니다!

  말풍선은 극중 공간 속에, 그 공간과는 분리된 다른 차원의 별도 공간 - 즉, '언어의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의성어/의태어의 경우 역시도 시각 세계와는 다른 것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현상을 만들어 내는 기구입니다. 하지만 말풍선은 아예 현실의 감각영역이 아닌, 추상의 공간을 접합시킵니다. 그리고 그 속에 극중 인물이 말하는 '언어'가 문자로서 표현이 됩니다. 하지만 말풍선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꼬리에 있습니다. 그 꼬리가 특정한 극중 인물을 가리킬 때, 그 공간 속의 '언어'는 바로 그 인물의 것이 됩니다. 즉,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구체적으로 표시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말풍선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말두루마리가 있는데, 그 경우는 입에서 글씨가 쓰여진 두루마기가 주욱 뱉어져 나오는, 대단히 거슬리는 모습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말풍선의 경우는 그것보다 훨씬 산뜻하게, 즉 극중 공간의 흐름을 (비교적) 크게 방해하지 않고 언어의 세계현실세계를 교묘하게 변존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말풍선의 발명 하나만으로도 만화는 예술사와 커뮤니케이션 역사에 길이 남아야 할만한 표현양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어를 끌고들어왔으며, 화자가 명확해질 수 있다는 것 덕분에 만화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은 한없이 넓어졌습니다. 소설 등의 이야기 문학이 지금까지 이루어놓았던 업적들을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말풍선을 만들어냄으로서, 말풍선 바깥에 글자를 배치시키는 것의 의미 또한 더욱 다양해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말풍선 바깥에서 '말'을 한다면 어떤 효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한번 '돌연변이'(세주 문화사. 원제: 사토라레)작품을 직접 찾아 보시고 직접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말풍선의 발명이 더욱 심화된 것은 바로 '생각풍선'입니다. 화자를 향한 꼬리를 일련의 동그라미로 처리함으로써, 만화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가볍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물론 말풍선이 '언어'의 공간이기는 하지만, 만화라는 시각 매체 속에서는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라면 그 규정 역시 절대적이지 않은 것이 됩니다. 말풍선 속에서도 글자체, 글자크기, 크기의 변화에 따라서 말의 크기나 어감, 목소리, 속도 등이 대단히 다양해집니다. 심지어 그림의 요소들을 말풍선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언어의 공간과 그림의 공간의 경계선을 가볍게 허물어버리는 표현들도 등장합니다. 그만큼 만화라는 양식에 있어서는 글과 그림의 혼합, 경계선의 월경 등이 필요에 따라서 자유롭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물론 다양한 방식들이 필요에 따라서 다시금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칸 경계선을  글자로 만들어서 그 칸에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를 잡아주거나, 만화 칸의 배경을 자잘한 글씨의 글로 채워서 잡담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칸 바깥의 공간에 글을 배치시킴으로서 그 페이지 분량에 해당되는 사건 전개 전반 위로 흐르는 거대한 나레이션으로 기능하게 하거나... 뭐 작가의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든지 간에, 만화에서는 주저않고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뭐 여하튼. 지금까지는 그림과 글을 결합시키는 기본적인 도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이제부터는 글과 그림의 결합 방식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까요? 교재를 펼쳐봅시다. 글과그림이 결합하는 방식을 크게 7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글 중심

2) 그림 중심

3) 이중 결합

4) 첨가 결합

5) 병렬 결합

6) 몽타쥬

7) 상호의존적 결합

  칸은, 사건 속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제 정의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봅시다.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해주기 위해서, 글과 그림은 절묘하게 역할을 나눠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상황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미학적 실험이나 정서의 깊이, 표현적 확장을 하고 싶을 때, 이런 구분은 꽤 실용적일 수 있습니다. 맥클루드가 글과 그림 중 하나가 상황의 의미를 명확히 해줄 때 다른 하나가 더 자유롭게 실험을 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이분법적인 측면이 있어서 다소 불만이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발상입니다. 단, 글과 그림이 서로 결합하면서 하나가 어떤 임무를 맡아서 무언가를 한다는 포디즘적인 분업관계보다는, 글과 그림 역시 서로 결합하면서 원래의 글과 그림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보는 것을 저는 더 선호합니다. 특정한 결합관계 속에서,  글과 그림은 결합하기 전에 원래 그들이 가졌던 의미와는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가 됩니다... 변증법이라는 개념이 싫다면, 담론이니, 맥락이니 하는 기호학적 용어들을 동원해도 좋을 겁니다. (다른 영역의 여러 표현양식들이 하나로 성공적으로 결합될때 일어나는 신비한 결과는 확실히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만화는 그런 것들 투성이입니다).

  아마 제가 약간만 더 모진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수시과제로, 매번 제 강의에서 설명한 내용들에 대한 사례들을 모집해오도록 했을 겁니다...그만큼, 제가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개념들이나 표현양식이 얼마만큼이나 여러분들에게 공유되고 있는지 곧바로 검증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특히 그림과 글의 결합이라는 것은, 현대만화에서는 대단히 세련되게 발달한 표현양식입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일반인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만화 해독능력(Comics literacy)를 지니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림과 글이 병렬 차원 이상으로, '만화적으로' 결합한다는 것은 그만큼 놀랍고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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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cold(김낙호), 2002. 4. Copyleft(카피레프트의 기본 전제는, 출처 밝히기입니다)

 

(이쪽 지면 only) !@#...만화의 구현방식에 관한 거시이론 하나를 만들어 보고자 제가 현재 생각의 중심축에 놓고 있는 개념인, '정보량'의 이야기가 좀 더 전개된 장입니다. 음...읏고 즐기는 사이, 인하대 강좌는 2학기에 돌입. 더 업그레이드된 내용물들을 선보여야 할 순간입니다. 우선 이 지면에서는...계속 지난 1학기때의 미숙하고 허접한 강좌를 계속 끝까지 올려볼 생각이지만. -_-; 이번 2학기에 하는 강좌 내용은, 아마도 그것을 바탕으로 더 다듬고, 이리저리 더 완성판에 가깝게 가공이 된 다음...아마도 적어도 내년... 에야 이쪽 지면에 공개해볼 생각입니다. 그럼, 여전히 재미없는 글이지만 조금이나마 성원을~


 ▶ 기사:  capcold
 ▶ 조회: 4496 | 등록: 200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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