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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장판, 기사회생의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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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계에 불고 있는 애장판 붐은, 얼핏 보면 만화계의 고급화 전략이나 시장의 확대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시장 축소로 한계에 부딪친 만화 출판사들의 자구책이자 동시에, 만화 출판계의 후진적인 유통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한국에서 발간된 애장판은,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크게 3500~5000원대의 저가 애장판과 7000~10000원대의 고가 애장판으로 나뉘고 독자의 연령으로는 30~60대를 겨냥한 복고지향의 애장판과 20~30대를 겨냥하는 매니아용 애장판으로 나뉜다. 크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1) 대여점용 애장판, 가격 3500~5000원 3500~5000원 대의 애장판은 애장판이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실은 재판이라 불리는 쪽이 옳을 듯하다. "애정을 가지고 소장하"는 독자를 위해 나온 책이 아니라 대여점 구비용으로 나온 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초밥왕》, 《오늘부터 우리는》, 《유리가면》등 인기는 있지만 사서 볼만큼의 애정 깊은 독자가 많지 않은 대중적인 만화책, 그 중에서도 일본 만화가 주류를 이룬다.
(2) 매니아용 애장판, 가격 7000~10000원 10년 내에 나왔던 작품을 새단장하여 고급스럽게 재발간하는 애장판은 《불의 검》,《마니》,《테르미도르》,《먹통X》 등으로, 한국 순정만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3) 복고지향 애장판, 가격 7000~10000원 엄밀히 말하면 복간에 해당되는 책으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는 책을 구할 수도 없고, 원고조차 사라진 작품을 새롭게 발굴하여 출판된 책들이다. 대부분 《철인 캉타우》,《로보트 킹》, 《로보트 태권 V》등의 로봇물이나 《라이파이》,《20세기 기사단》과 같은 모험물로서, 주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자 하는 30~4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수십 년 전의 책을 복간하거나 고급스럽게 재출간하는 애장판은 그렇다치고, 3500원짜리 애장판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째서 출판사는 예전에 나온 초판본을 계속 팔지 않고, 똑같은 책을 수고스럽게 새로 편집하고, 디자인도 새롭게 해서 내는 것일까. 만화책은 발간 후 2개월 이내에 품절되기 때문이다. 2개월 동안 총판을 통해 대여점에 뿌려지고, 곧바로 품절된다. 6개월 안에 만화전문매장에 책이 덤핑으로 풀리고, 그 이후에는 출판사 창고에서도 책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대여점에 뿌려진 만화책은 1, 2년 이내에 서가에서 사라지게 된다. 한달에도 수백 권의 만화책이 들어오기 때문에, 기존의 만화책은 서가에서 뽑히고, 바닥에 쌓이다가, 창고로 가서 이윽고 폐기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책에 애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아야 할 출판사가 어째서 2개월 내에 절판을 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한국 만화 산업의 기반이 "만화종수경쟁"이기 때문이다. 한국 만화 출판계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큰 출판사의 경우 1년에 나오는 만화책의 종수는 1500여종. 1종당 판매부수는 2000부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한마디로 말하라면, "소품종 대량생산"이다. 수천 종의 만화책은 똑같은 디자인에 똑같은 판형으로 찍혀져 나와. 아무런 개별 마케팅도 없이 한꺼번에 총판으로 실려가서 일괄적으로 대여점으로 뿌려진다. 수천 종의 만화가 같은 만화로 취급되는 것이다. 매일매일 수십 권씩 책이 나오는데 출판사 직원의 뇌용량과 창고의 넓이는 한정되어 있으니 최소한 매일매일 5권을 (뇌에서도 창고에서도)없애야 한다. 문제는, 물량공세에 한계가 왔다는 점이다. 단행본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만화가 문제이다. 10년 동안 이미 수입할 만한 일본 만화는 거의 다 수입해 더 이상 수입할 만화가 없다. 재료가 없는데 어떻게 생산을 할 수 있겠는가. 만화 출판사의 최대 고객인 대여점의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도 종수경쟁 시스템을 위협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미 사업 규모가 클만큼 커버린 대형 출판사에게 산업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중장기적 계획을 실천할 배짱이 있을 리도 없다. 결국 대형 출판사는 기존의 대여점 시장에 "재탕"을 밀어넣게 되었다. 재탕은 두가지 장점을 가지는데, 하나가 작품의 질이 보장되어 대부분의 대여점이 책을 사기 때문에 안전한 수익이 보장된다는 점이고, 또 하나가 종수경쟁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재탕된 책이 애장판이라 불리우는 저가 만화책들이다. 반면, 소수의 매니아를 위한 애장판의 출간도 잇따르고 있는데, 환영할 만한 일이기는 하나 만화 시장 축소와 만화 출판사의 안이한 자세를 반증하는 현상이기에 씁쓸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매니아용 애장판에 한국 순정만화가 유난히 많은 것은 순정만화 독자들이 상대적으로 작가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지속적으로 작품에 대해 애정을 가지기 때문이다. 대형 출판사의 대량생산 시스템은 일본 만화의 수입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일본 만화가 정식으로 수입되기 전부터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한국 순정만화는 대형출판사-총판-대여점의 생산/유통 시스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대형 출판사들이 소수의 매니아를 위해 책을 낸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매니아를 제외하고는 만화책을 살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8000원짜리 고급 사양의 애장판이 인기가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 가격, 그 사양으로 나왔어야 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5, 6권짜리 한국 순정만화가 2, 30권이나 되는 일본 만화와 같은 사양으로 출간되어 왔다는 것은, 출판계가 얼마나 안이하게 만화를 출간해왔는가를 보여준다. 물론 늦었지만 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애장판 러시는 반가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복고지향 애장판의 발간은 과거 만화를 좋아하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만화에 멀어지게 된 성인들을 추억을 매개로 만화 구매층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복간본은 군소 출판사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대형 출판사처럼 종수 경쟁이 불가능한 군소 출판사들이 새로운 시장과 아이템을 개척하려는 시도로 보여지고 있다. 복간본은 원고가 없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만화책은 예전에 발행된 조악한 판본을 취합해서 수정, 재발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가능한 시도이다. 이런 책들은 가격 부담이 상당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구매력이 있는 중장년 남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상업적으로도 일정 정도의 수익이 보장된다. 그러나 복고지향 애장판은 어디까지나 추억과 향수를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있기 때문에 구매층의 저변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
애장판 붐은, 한국 만화계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현상이지만, 만화계가 나름대로 이 현실을 타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도 되기에 희망을 갖게 해준다. 출판계의 다양한 시도는 만화=저급한 저가문화라는 공식을 불식시키고 만화에서 멀어진 대중의 관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만화 출판계가 애장판 출간에 그치지 않고, 더 다양한 기획과 마케팅으로 노력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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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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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05 |
등록: 2003/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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