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공포를 느껴보기.
사실 대부분의 진부한 공식은, 그렇게 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즉, 모든 사람들이 진부해질때까지라도 반복해서 우려먹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조합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진부한 공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름이면 공포물'이다. 사실 더운 여름일수록 사람들이 들뜨고 미쳐 날뛰기 쉽고, 한국에서는 여름이 습도까지 높은지라 서로에게 짜증도 잘난다. 장마철은 우울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주며, 젊은 사람들끼리 어디 낮선 곳으로 놀러가서 참변을 당하기도 참 좋다. 게다가 덤으로 여름에는 시체도 빨리 썩는다. 이 얼마나 공포물에 적함한 분위기인가. 그래서 이번 회는, 그 진부한 공식 속으로 만화를 끌고들어와 보려고 한다. 단, 설명과 소개라는 것이 자칫하면 (어쩌면 해당 작품의 핵심일수도 있는) 내용누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특정한 하나의 작품이나 작가를 깊게 파고들어가기보다는 공포만화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몇가지 포인트 위주로 소개하면서 들어갈까 한다.
공포물하면, 많은 사람들이 낮선 생물, 다른 세계, 기괴한 존재들의 이야기들이 먼저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르다'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자체로서 이미 공포인 셈이다. 특히 실제 생태계 상의 천적을 제거해버림으로써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처해있는 인간이라는 종족은, 자신들이 아직 모르는 '바깥에서 온 무엇인가가' 자신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파멸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공포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진정한 공포다. 이와아키 사토시의 '기생수'(학산문화사)라는 만화가 그 주제를 가장 모범적으로 제시해주는 만화일 듯 하다.
하지만, 낮선 존재들을 바탕으로 하는 공포물이라고 꼭 무서워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말에 어폐가 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시기를); 오히려 유머가 듬뿍 담길 수도 있다(주로 '기담'들에서 이런 현상들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당혹스러운 상황이 도를 넘으면, 그리고 자신이 그 속에 이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는 입장이라면 그 속에서 생기는 것은 가학적인 즐거움이다... 물론 '역겨움'과 '가학적 즐거움' 사이의 경계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개인차가 있지만 말이다. 이러한 기담의 경우, 만화로 표현하는 것이 특히 강점을 지닐 수 있다. 시각적 이야기로서 공포와 과장, 유머를 버무려버리는 것에 있어서 우수한 소통체계인데다가, 기본적으로 그러한 '괴이한 형상'들을 가장 생생하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시공사), 특히 작가후기의 내용 정도쯤 되면, 우스움과 무서움이 얼마나 가깝게 맞닿아 있는 것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즐거운 가학성의 '기담'을 보고 싶다면, '시오리와 시미코의 독서일기 연작' (시공사. '살육시집', '푸른 말' 등이 나와있다)등의 더욱 좋을 것이다. 뭐 만화가 기담에 능하다고는 했지만, 다시금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다. 일본 같은 경우 워낙에 민속신앙, 토테미즘 등이 발달해서 기담이 넘쳐나고, 중국은 사람들이 많고 뻥을 잘치다 보니 기담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유럽 등 서양도 워낙 현대 이전까지만해도 험하고 야만스럽게 살아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기묘하고 잔인한 민담들이 많다. 한국 만화가 상대적으로 기담에서는 밀리는 분위기다.
비록 만화의 강점이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기는 하지만, 공포만화의 또다른 축은 역시 '있음직한 분위기' 속에서 죽음과의 대면이다. 이러한 '현실성 있는 스릴러'의 경우는, 독자의 주변 현실을 잘 자극시켜주는 것이 재미의 핵심이다. 그리고 스토리는 소재중심이라기보다는, 반전 등의 스토리상의 장치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서 필자의 지론은 이것이다: "반전이 있는 작품에 대한 가장 악질의 내용누설는, 바로 반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자체다!". 반전은 그만큼, 무방비상태에서 뒤통수를 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즐거움의 핵심이고, 반전이야말로 모든 스릴러성 공포만화의 꽃이다. 강경옥의 '두사람이다'(또! 시공사)같이, 끊임없이 주변사람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시나리오가 그런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단지 '시나리오가 좋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좋은' 공포만화라면, 단순히 소재나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만화의 표현과 연출 방식까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 중, 공포의 분위기를 연출력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모범사례는 역시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세주문화사)일 것이다. 이 작품은 여기저기 (가끔은, '쓸데없이') 끼어들어서 늘어지는 휴머니즘적인 부분을 떼놓고 생각하면(중간에 12-16권의 분량을 통째로 도려내버리면 좋을텐데...), 멋진 공포물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권인 18권 에필로그의 연출(쉬리의 엔딩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그 병원 장면 말고, 요한과 덴마의 대화 말이다)은 만화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들 - 즉, 칸과 페이지의 구도 분할을 통해서, 이웃(?)매체인 공포영화에서 철벽처럼 따르는 규칙인 '마지막 한 방'(One last scare)를 충실히 따라주고 있기까지 하다.
...한때 한국에서도 공포순정만화지 '아디'가 창간되는 등, 공포붐이 일어났던 때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여기는 '격월간 네무키'같은 잡지가 용납되는 일본같은 거대시장이 아닌지라, 금방 망했지만 말이다. 사실 요새 필자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진짜 괜찮은 공포만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중이다. 단지 잔인한 장면을 많이 보여주거나, 기이한 존재들을 잔뜩 몰고다니는 것은 점점 사람들로 하여금 둔감해지도록 하기 마련이다. 한가로이 길을 거닐다가 뒤에서 미군 장갑차가 나를 덥쳐버리고도 별다른 문제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상속의 공포가 만연한 2002년의 한국에서는, 사람들은 모두 강심장이다. 더 '현실의 폐부를 찌르는', 따라서 '섬뜩한' 만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게임이나 영화의 캐릭터들을 열심히 따라 그려보면서 그림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생활 속의 모순들'을 돌아보는 고통스러운 창작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좋은 공포만화이기 이전에, 좋은 만화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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