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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UF] 꼭두각시 서커스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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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이 글이 바로 '가토의 왼팔'입니다. 두고보자 대백과를 참조하세요.
'꼭두각시 서커스'라고 보셨는지요. 별 생각없이 집었는데 걸작이더라고요. 편향적인 만화의 틀거리를 벗어나, 서커스의 줄타기처럼 균형을 잡아가려는 만화라 생각이 들어, 이 생각 저 생각 든 것을 글로 옮겨봤습니다.
새로운 만화의 창작과 비평 Studio Nuf(원종우/nufgirl) (두고보자 창간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만화속 전투(액션)와 꼭두각시 서커스의 미덕
오랜만에 보는 재미있는 만화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한다. 제목은 [꼭둑각시 서커스]소년의 집안은 대대로 인형을 제작하고 부리는 가업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극한까지 발전한 인형제작과 그 조종술은 결국 로봇과 거신의 이미지가 뒤섞인 거인인형 아를르캥과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부리며 그 인형을 마치 자신의 분신인양 부리는 인형술사 시로가네에 이른다.
아를르캥과 시로가네는 돈을 둘러싼 어른들의 싸움속에서 다른 거대인형과 인형사무리와 전투를 치뤄가며 소년을 보호한다. 끔찍한 전투와 희생속에서 나약했던 소년은 용감하고 저항할줄 아는 존재로 성장한다.
성장한 소년은 마치 삼장법사가 손오공과 저팔계들의 거친 폭력을 선하게 다스리는 것처럼 시로가네와 인형들을 바른 길로 이끈다. 여기서 바른 길이란 '인형과 인형사의 본분은 사람을 웃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들은 서커스팀에 합류해서 세상으로 나아간다. 세상사람들의 얼굴을 행복한 웃음으로 물들이기 위해서.
1. 누가봐도 그 설정의 독특함에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인형술사가 거인인형을 부리며 싸운다, 더구나 설정만큼이나 그림솜씨가 따라주었던 것이다. 인형술사 시로가네가 적의 공격을 날렵하게 피해가면서 인형을 부리는 프로포션은 정말이지 '그림된다'라고나 할까.
어떻든 독자가 보기에 인형과 로봇,혹은 거신, 혹은 드래곤, 혹은 천만갑자의 내공을 갖춘 협객등은 별 차이가 없는 존재들이다. 그것들의 공통된 의미는 우선적으로 거대한 힘을 지닌 초월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경우 일단은 환타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초인은 현실에 없는 존재로서 창조된다.(그것이 왜 하필 초인이어야 하는가는 뒤에 다루겠다)물론 그것을 얼마나 멋있게 표현하느냐는 또 하나의 환타지 흥행요소라 하겠다.
따라서 대부분의 환타지 독자들이 환타지에서 우선적으로 관심가지는 것은 어떤 초인이 등장하고 그 초인은 어떤 설정을 가지는가 하는데 있다. 여기서 미덕은 얼마나 새롭고 독특하며 설득력있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갖는가 하는 점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환타지의 드라마자체가 현실을 다룬 타 쟝르에 비해 더 다채롭고 리얼하며 디테일할 수는 없는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는 그 모든 것이 아직 베일에 싸인채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앞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지만 환타지의 세계는 반대로 앙상하게 만들어진 어떤 것이며 거기에 현실에서 추려내어 가공한 재료로 살을 붙이고 피를 흘려넣는 과정이니까 그렇다. 결국 현실세계는 발굴되고 재 해석되므로써 재미를 주지만, 환타지의 세계는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므로써 재미를 주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톨킨류 환타지의 고정된 코드, 늘상 등장하는 드래곤이라는 존재조차도 각 작품마다 그 드래곤의 설정내용과,그 이미지는 각각 독특하게 추구되고 있다. 새로울것,기발할것,그리고 그 자체논리안에서 정합성을 갖추어 그럴듯하게 보일것. 그리고 멋있는 이미지를 갖출것!
2.그런데 왜 하필 초인이어야 하는가?
무엇인가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면 그것은 왜 요정, 신,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어떤 존재가 아닌가? 왜 그것은 놀라운 전투력을 지닌 존재여야 하는가? 비록 톨킨류를 포함한 ( 소설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톨킨에서 유래한 설정을 갖춘 환타지 만화) 여러 환타지가 초인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을 설정하고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타당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환타지자체의 내용성의 취약함과 그런 약점을 둘러싼 상황맥락의 소산이다.
전술했듯이 환타지의 세계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기반을 가진다. 즉 현실세계는 그 자체로서 충분히 미지의 풍부함을 갖추고 있으며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항상 움직이고 있는 재료다.반면에 환타지는 현실에서 가져온 재료를 가공하고 상상력을 결합해서 만든 세계다. 따라서 그것은 자기 생명력을 갖지 않는다. 그 세계는 스스로 움직이고 독자적인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마치 엄청난 양의 상상력과 정보를 동원해서 아주 디테일하게 만들어낸 디오라마가 단지 디오라마일 뿐인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 섬세하고 살아있는듯한 디오라마는 딱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총쏘는 이는 언제나 총쏘는 그 순간에 멈춰져있고 터지는 수류탄의 연기는 언제나 연기상태로 멈춰져있다.(연기도 묘사가 가능하다면) 이 다음장면을 알고싶다면 다시 만들어줘야 하는것이다. 그 다시 만들어줘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환타지 만화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현실세계와 대등한 -속의 하나의 드라마로써 존재하려면 그만큼의 풍부함을 담아내려면.....그것이 얼마나 가능할 것이며 또 가능하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돈과 기타등등이 들것인가. 또한 그것은 얼마나 '새로운' 모습일 수 있는건가?
환타지만화는 디오라마가 아니다.
디오라마는 멈춰있는 상태에서 완성되지만 환타지만화는 이야기성을 포기할 수 없다. 환타지 만화들은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일단 그것은 자신의 역사를 적극 수용하는것을 대안의 하나로 삼고 있다. 톨킨이 전 생애를 투자해서 반지전쟁시리즈를 만들어냈을 , 그 세계의 언어와 인류학과 지리와 종교와 학문과 생물계 기타등등을 만들어냈을때 그에 감탄하고 매력을 느낀 자들이 또 다른 전혀 다른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는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소설이었지만 이후 많은 환타지만화들 역시 톨킨의 설정을 적극 수용했다는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리얼로봇 건담의 세계가 한번 완성되고 그것이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을때, 이후 다른 리얼로봇세계를 만들어내지 않고 건담 시리즈를 계속해서 낸것 역시 역시 우연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리얼로봇 애니메이션들도 사실상 건담의 설정과 코드들을 적극 수용했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환타지세계는 이전의 설정을 받아안으면서 전체로서 더 새로와지기보다는 디테일에서 더 새로와지고 풍부해지려고 했다.
환타지는 그 속성상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상상이 환타지를 출현하게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설정을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어떤 것을 더 새롭게 만들어야 할것인가?
그것은 다른 모든것들의 존재처럼 평범하고 보편적이면 안된다. 그것은 다른 모든 요소들의 디테일하지 못함과 새롭지 못함을 커버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여야 한다. 물론 그것은 초인-혹은 괴물,혹은 거신,혹은 신 이다.
두번째로, 환타지만화는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야기는 항상 갈등구조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극적 구성의 이야기라면 말이다.
그러나 환타지의 세계는 현실세계처럼 이미 풍부한 내적 갈등을 담고 있지 않다. 필요에 따라 갈등을 주입해야 한다. 어떤 갈등을 짜넣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가. 여기서 가장 쉬운 선택은 어떤 강력한 존재들을 설정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갈등, 그리고 강력한 대립으로 이야기를 풀어넣는 방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창작자는 이러저러한 수많은 작은 갈등요소와 그 담지자들, 그리고 갈등을 풀어내는 수많은 계기들, 그것들 자체의 관계망들,기타등등 너무나 큰 노력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섬세한 비단의 어느 한오라기 실만 삐긋나도 그 비단은 망가지는 위험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초인의 존재는 환타지만화가 이야기를 구성하기위한 가장 쉬운 길의 출발점이다.
초인은 그 강한 존재감으로 인해 갈등을 유발시키며, 그 엄청난 전투력, 혹은 특별한 힘으로 대립의 구체적 양상을 다른 계기적 요소 없이도 충분히 흥미롭게 보여줄 수 있다. 전투 자체만으로는 이야기가 너무 앙상하게 보인다면 이것저것 나머지 재료들을 추려서 초인 주변의 인물들이나 작은 상황설정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초인의 전투기록은 그 주변의 휴머니틱한, 혹은 정의론적인 상황으로 더 반짝이게 되며, 반대로 휴머니틱한 결론등의 주제들은 초인에 의해 위엄과 권위를 확보하게 된다. 어떤 시점으로 사태를 바라보 든, 그 이야기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초인에 있다.
환타지안에서 초인과 그들의 전투의 의미는 전술한 바와 같다. 그렇다면 그 바깥의 쟝르에서는 어떨까.
3. 다시 꼭둑각시 서커스로 이야기를 돌이켜보자.
이 작품에서 맨먼저 돋보이는 인형과 인형술사는 과연 3권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그런식으로 몰고가고 있다. 적진영의 인형/인형술사와 싸우는 막강 우리의 시로가네와 그 인형, 그 주변에 배치된 투사 가토가 교훈을 남기며 죽어가고 이윽고 나약한 소년은 더이상 겁쟁이 신세를 떨쳐버렸다. (편집자 주: 가토의 왼팔...)
그런데 제 4편부터 이야기의 방향이 급선회한다.
소년과 시로가네,그녀의 인형은 돈만 밝히는 비겁한 어른들의 세계를 뛰쳐나와서 서커스판에 합류한다.새로운 소녀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맹수조련기술을 가진 곡예사로써 짐승들을 다스린다. 앞부분에서 존재감을 가진것은 투사 가토와 전투주체로서의 인형,인형술사였는데 비해서 4편부터 그들은 더이상 투사요,전투주체가 아니라,'곡예사'다. 곡예사란 무엇이냐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것이 그 본업이며, 그것으로써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지는 '예술가'다.심지어는 인형 아를르캥조차도 곡예사로서 보여지는데, 시로가네가 아를르캥을 가지고 복화술을 하는 장면은 시사적이다.
그에 따라 이야기는 더이상 전투기록이 아니라, 곡예사들이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찌푸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펴주는 일종의 치료기록챠트가 된다.
이시점에서 과연 이 작품을 환타지로 분류할 수 있을까? 없다. 왜냐하면 더이상의 새로운 상상의 산물은 없을 것이며, 앞으로의 이야기는 현실세계에서 추려낸 다양한 갈등기제에 의해 풀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선회가 가능했던 것은 이 작품이 애초에 환타지로서 강박관념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많은 환타지들은 다른 행성, 혹은 지구의 신화시대, 혹은 중세의 어떤 시공간, 혹은 지구의 미래,기타등등의 시공간적 배경에 일단 조작을 가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렇지 않고 현실세계를 그 공간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어떤것을 계속 선보이지 않아도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초인은 마치 여행하면서 그 놀라운 유도솜씨로 이 문제 저문제 해결해주는 유도보이라 해도 상관없어진다. 초인은 더이상의 초인이 아니라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사람과 같다.
4.
그렇다면 파이터와 격투만화인가?
격투만화란 무엇인가? 일단 고전축에 속하는 격투만화로 바람의 파이터, 혹은 쿵후소년 용소야, 혹은 도전자 허리케인이 있다. (이 만화들의 선택기준은 순전히 자의적이지만, 내가 격투일변도의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높은 좋아하고 높이 평가할 정도니까 이단 어느수준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여기서 다뤄지는 격투는 일종의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준다. 싸워야 하는 상대는 악의 세력이라기보다는 격투장 안에서 승부를 내야하는 상대방 선수로 그려진다. 거듭되는 대전과 승부를 통해서 등장인물들은 승리와 패배의 의미를 비롯하여 일종의 내적 성장과정을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수양이랄까. 격투스포츠를 통해서 삶의 의미와 인간에 대한 의미를 가다듬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은 사실 격투뿐 아닌 다른 스포츠물에서도 추구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들작품이 딱히 격투를 선택할 어떤 독자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다시말해 격투로서만 얻어질 수있는 어떤것. 현실에서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평범한 사람에게는 분명 힘든 ' 힘에 대한 동경'이 그것이다.
여기서 힘이란 단지 외적인 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외적인 힘은 타인을 꺾을 수는 있어도 끌어당길수는 없기 때문에 한차원 낮은 수준의 힘에 불과하다. 그래서 격투만화에서 나오는 적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강하지만 그 차원에서 벗어나는 힘을 갖추지 못한다. 물리적인 힘을 뛰어넘어 타인을 감복시키고 자신의곁으로 끌어당기는 여러가지 힘은 일본만화에서는 흔히 '근성''진심''희생을 불사하는 사랑' '낙관성'나아가서 '모든만사에 초연함(초월적인 해탈상태)에서 오는 침착함과 통찰력'등등으로 보여진다.
주인공은 대개 물리적으로 강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내적인 힘을 가지는것이 필수이다.
그리고 적어도 격투만화안에서 그것은 외적인 힘으로 연결되어 실제 전투의 양상으로 이어진다. 실제 전투의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폭력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내적인 힘에 대한 숭배는 주인공을 진정한 힘을 가진 영웅으로 만들어준다. 최배달의 무도인다운 사고방식이나,용소야의 선함이나, 허리케인 죠의 자신을 불태우는 정열이 그들을 적과 구분시켜주고 단순한 파이터에서 영웅으로 승격되게 해준다.
영웅의 존재. 신화가 되리..라는 것이 격투만화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초인 중심의 환타지가 격투만화하고 그리 크게 구분될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영웅 역시 환타지가 어울리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꼭둑각시 서커스의 선회는 어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전투머신 (인형)을 갖추고 인상적인 전투장면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면서도, 작가는 그점을 읅어먹지 않았다. 즉, 보통의 경우 별다른 스토리 없이 계속되는 전투로 몇십권씩 이어나가는데 비해, 이 작품에서 전투신은 스토리상 필요한 만큼만 절제되고 있으며, 즉 물리적인 힘의 사용이 절제되고 있으며, 반면에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므로써 스스로 행복해지는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서 내적인 힘- 영웅적인 면모를 균형있고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5.
그렇다면 또하나의 전투공간인 학원폭력물은 어떨까. 여기서도 역시 전투는 만화의 핵심요소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환타지나 무술격투,혹은 격투스포츠물에 비해서 틀린 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파이터 자신이 그다지 초인적인 힘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즉 전투의 주체들은 엄청난 힘과 외모를 지닌 머신도 아니고,무술의 달인이나,권투의 천재도 아닌 현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싸움꾼에 불과하다.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술한 내적인 힘과 미덕을 갖춘 영웅이냐 하면 그다지 그렇지도 않은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 만화의 전투에 매력을 부여하는 것일까?
몇년전 나는 로꾸데나시 불루스라는 만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참 재미있었고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권투-격투에 재능을 가졌지만 선수로 나설생각은 없는듯, 그 재능을 엉뚱한데 사용한다. 즉 주변의 몇몇 조무라기들 사이에서 골목대장노릇을 하는 껄렁한 양아치 깡패가 된다.깡패가 되어 하는 일은 무엇인고 하니, 엄격한 학교규칙의 위반-술 담배 싸움등을 예사로 (아주 자유롭게) 하고 그에 대한 처벌에 침을 뱉는 것이다.
이쯤되면 짐작이 갈것이다. 그들의 힘은 다름아닌 그 용감한 반항정신에 있다.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면모는 엄격한 권위에 압박당하는 독자들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 깡패가 다행히 힘이 세서 권위를 박살내고 승승장구해도 좋지만, 설사 약골에 근성만 살아가지고 죽도록 얻어터지고 정학을 맞아도 마지막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충분히 영웅이 될 수 있다. 단, 그것이 초인적이고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라 반항의 영웅인 한에서다. 따라서 이 영웅은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반대로 적의 존재에 의해서만 영웅이 된다.
적이 권위와 오만과 일방적 폭력으로 똘똘 뭉칠 수록 그의 줏가는 올라간다. 적이 그렇지않다면 그는 단순무식깡패일 뿐이다. 이러한 맥락은 로꾸데나시 블루스의 작가가 최근에 내놓은 루키에서 정확히 비교된다. 여기서 선생은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면서 더 높은 권위질서-교장군단에 대항한다.그렇게 되자 반항을 일삼던 학생들은 어리고 삐뚤어진 깡패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루키는 블루스에 비해 그다지 인기가 높지는 않은것 같다. 현실속에 그렇게 멋진 선생이 드믄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도 추측하건데 우리의 학생독자들은 그들과 동급의 친구들이 화끈하게 반항할 수 있기를 바라는것 같다.
6.
그러나 최근의 학원폭력물을 보면 사정은 좀 변화된 양상을 보여준다.
가령 블루스에서 중심대립이 아량없는 학칙과 일방적 도덕률등에 대한 학생의 반항에 있었다면, 최근에는 그러한 대립이 거의 모습을 감추었다.
'오늘부터 우리는'을 보면 확실히 보이는데, 이제 전선은 그어져 있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전투는 없다. 단지 과거가 남긴 전투와 폭력의 영웅적 이미지만이 잔존해서 주인공들의 동경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리하여 주인공들은 스스로 '오늘부터 우리는 막강힘을 가진 불량학생이 되는거야, 그래서 찬란한 고교생활을 보내겠어!"하고 선언한다. 그들은 각종 불량학생다운 외모와 행동으로 한껏 폼을 잰다. 주변의 친구들은 그들의 모습에 당혹스러움과 함께 곧 깔깔거리며 웃게된다. '어머,쟤네 싸이코 아냐?'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영웅이 된다. 개그의 영웅이.
이 만화에서 각종 학칙위반행동이나 깡패짓은 권위와의 전투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튀기 위한 행동이 되고 우선 튀는데 성공하면 장땡이다. 여기서 격투는 없어졌다. 격투의 패러디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7. 아니, 그래도 격투는 남아있다. 또하나의 최근 학원폭력물을 보자. 김성모의 럭키짱, 여기서도 역시 전선은 권위와의 사이에서 그어져 있지는 않다. 그보다도 패왕전설을 요구하는 전국상태의 싸움터가 있다. 즉 각깡패 패거리들의 패권다툼이다. 튀는것이 지상과제요 영웅의 진실이라면, 개그로 튀기보다는 후까시로 튀고자 하는 셈이다. 불루스에서 역시 패거리들 사이에 전투는 있지만, 그것 역시 일종의 권위에 대한 투쟁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적들은 항상 숫자로 밀어붙여서 강제로 이들을 자신의 휘하에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항아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반면에 럭키짱에서는 영역다툼이 주요 전투의 이유가 된다. 각자가 패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술했듯이 단순한 패왕이 영웅은 아니므로, 그들은 독자에게 영웅으로 사랑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인기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투라기 보다는 (전선이 무의미하므로) 넘치는 폭력의 카니발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하려나. 어떻든 여기서는 폭력장면들이 최소한의 스토리에 의해 연결되어 그야말로 질릴정도로 퍼부어지므로 즐겨지는 바는 단 하나 그 폭력이라고 보는게 옳다. 다만 폭력이 끝없이 복제되어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8.
복제는 쉽다. 창작의 여지를 포기하므로 매 폭력장면의 최소설정만 바꾸가면서 끝없이 생산될 수 있다. 만화시장이 커져가면서 작가들이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작품을 독자에게 제공해야 하게 된 상황, 더우기 우리나라같이 작가에 대한 대우가 원고매수에 비례하는 상황에서 작품자체의 완성도를 뒷 전으로 미룬채 속도전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폭력의 복제라는 물을 만났다.
즉 떨어지는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작품자체는 독자들에게 어필해야 하며 인기를 모아야만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바, 계속되는 전투, 계속 되는 성적 표현, 계속되는 농담들 -1차원적인 흥미요소의 비중을 풀로 해서 프레스가 철판찍어내듯이 꾹 꾹 눌러대 미흡한 완성도의 공백을 메꿔내는 것이다.
그러한 유혹은 1류작가에게도 3류작가에게도 매한가지로 다가온다.
그리고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은 스스로 유혹과 타협한 작가일 것이다. 김성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만화판은 폭력의 일회용품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근래에 본중 제일 좋았던 만화 '꼭뚝각시 서커스'는 분명 유혹을 경계하고 있다. 전선이 없다면 전투도 없다. 드라마가 있을 뿐이다.그래도 한가한 시간이 남으면 캐릭터들은 아름답고 신기한 서커스를 보여준다. (편집자 주 : 이 또한 가토의 왼팔.. 뒤이은 반전에서 이 작품은 격렬한 초인들의 전투로 점철된다)
'멋져' '짝짝짝' 독자의 환호.
서커스패를 대표해서 주인공 소년 마사루가 말한다.
'관객이 있음으로해서 우리는 존재한다.
관객의 얼굴을 환한 웃음으로 물들이고 싶다. 피에로의 바보짓이든, 환상적인 아크로바트든, 난폭한 맹수,혹은 악당들을 다스리든지 그 모든 것으로..그래서 기억되고 싶다. 나를 살리고 죽어갔지만 내 안에 영원히 살아있는 가토처럼.'틀림없다. 작가는 한순간에 소비되고 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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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원종우/Nuf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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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846 |
등록: 2002/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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