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O] 90년대의 순정만화, 무표정한 캐릭터들 - 강경옥의 사례

91년 「미르」에 연재되다가 잡지폐간과 함께 중단된 강경옥의 환타지 「퍼플하트」가 케이크에 재연재되고 있다. 강경옥은 종종 감정결핍증에 걸린 무표정한 주인공을 다루어왔는데, 이 컨셉으로 완결된 가장 지명도 높은 작품은 아마도 「라비헴 폴리스」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압축적이고 은유적이며 또한 야심차게 그려진 작품은 연재중단과 함께 미완의 대작이라고 불린 이 「퍼플하트」일 것이다. 마녀에게 빼앗긴 심장을 찾아나서는 시릴공주의 이야기는 강경옥의 오래된 주제, ‘상처받는 마음의 문제’를 중세동화톤의 환타지로 집약한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꼭 가져야만 하는 것인가? 이러한 독백은 실상 마음을 가진 사람의, 그것도 매우 섬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세기말에 연재를 시작한 강경옥의 공포만화 「두 사람이다」에서 주인공은 가족과 친구들이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을 살해하게 된다는 저주에 시달린다. 이처럼 친한 사람일수록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으로 더 많은 고통을 준다면, 그들에게 마음을 허용할 필요가 있는가,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고 평상심을 가장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마음이 없기를 바라는 것. 물론 무표정한 얼굴 속에 감추어진 감정들은 어느 순간에 분출되어 나오기 마련이다. 강경옥의 만화들은 항상 「퍼플하트」처럼 ‘심장(마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받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상처 때문에 다른 이들을 상처입히고 좌절하는 이야기, 그러나 종국에는 마음을 나누어가질 소중한 대상을 찾아내고야 마는 이야기다.





물론 이러한 테마가 강경옥에게 고유한 것은 아니다. 무표정하고 자폐적인 캐릭터는, 예를 들어 사실 동시대의 탁월한 작가인 김진에게서도 중요한 소재이다. 김진 만화의 캐릭터에게서 자페적인 마음의 원인은 가족 내의 아버지(가부장)에 의한 것이다. 형제자매들은 그에게 상처받고 억눌려있다. 「바람의 나라」에서 해명태자는 아버지인 유리왕에게서 죽음을 하명받고 자결한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 살아남은 가부장의 후손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명한다. 마치 그에게 인간의 마음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속에서 비참해진 인간의 내면이 캐릭터의 무표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전달된다. 강경옥이 상처받은 마음의 어둠 속에서 공감을 통해 자신과 함께 해줄 그 누군가를 갈구하듯이, 김진 역시 마음 깊숙히 형성된 어둠으로부터 몸을 일으키고 행복에 자신을 내어맡기고 싶어한다. 김진의 밝은 가족만화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가족형태는 상처받은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필사적으로 행복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모카커피 마시기」, 「레모네이드처럼」)

강경옥, ‘개인’의 ‘일상’ 이 둘은 상처받은 마음의 페쇄성과 무표정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외형을 지니지만 그것은 사뭇 다른 맥락 속에 놓여지는 것이다. 김진 만화는 언제나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마음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가족의 일상을 그린 가족만화에서도 역시 그렇다. 마음을 닫아버린 무표정한 개인이 아무리 홀로이고자 하더라도,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와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밝은 가족만화에서조차도 캐릭터는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대안적인 공동체 속에 놓인다. 그의 일상은 항상 집단과 집단,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으로 점철된다. 김진 만화에서 캐릭터들(특히, 가부장에게 배척받은 아들들)의 무표정함은 언제나 극적인 맥락 속에, 미스터리의 구조 속에 놓이거나 치열한 전투의 한가운데에, 세계멸망의 한 가운데에 놓여진다. 그 무표정함의 주변에서, 혹은 그것에 의해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평범한 의미에서의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만화는 극적인 분쟁을 표현하는 매체이다. 이것은 김진뿐 아니라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 황미나, 김혜린 등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강경옥에게 만화는 일상을 표현하는 매체로서의 경향이 강하다. 강경옥의 작품 속에서 구현되는 ‘평범한 개인의 일상성’과 그 속에서 흐르는 내면의 독백은 독자에게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공동체나 집단 사이의 분쟁과는 크게 관련하지 않는다. 이미 캐릭터는 단자(monad)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극적인 요소는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다시 「퍼플하트」의 예를 들자면 사실 시릴공주는 심장이 빼앗긴 상태로, 마음이 없는 상태로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이다. 그녀에게 심장을 찾으라고 강요하는 외부적인 요소는 사실 별로 없다. 때문에 시릴공주의 무표정은 ‘일상적인 것’이다. 「라비헴 폴리스」에서 보여지는 SF라는 비일상적 설정도 일상적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인 하이아의 무표정함 역시 그녀의 일상이다. 주인공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도 일상이고 그 속에서 작은 공감을 이루어낼 상대을 찾아나서는 것도 그 ‘개인의 일상’ 속에서이다.

강경옥의 ‘동시대’, 그리고 일상의 ‘표정’ 필자는 강경옥을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분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개인의 일상성’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강경옥이 다음 세대의 작가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80년대가 ‘개인’과 ‘일상’을 그다지 용납하지 못한 시대였다는 점에서 강경옥은 80년대 후반에, 90년대에 등장할 그 이후의 징후들을 예비한 징검다리 같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분기점이란 항상 우리에게 흥미로운 독해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때문에 90년대에 등장한 작가들에게서 강경옥의 만화에서 볼 수 있는 ‘개인의 일상’ 이외의 ‘무표정함’의 경향까지 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80년대의 순정만화가 극적이고 강렬한 감정표현의 시기였다면(감정과잉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이후의 작가들에게 극렬한 감정표현이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공격적으로 굳어진 표정이든(유시진 「쿨핫」) 따뜻한 표정이든(권교정 「Always」), 혹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중립적인 표정이든(한혜연 「후르츠 칵테일」) 멀리서 볼 때 그것은 무표정한 얼굴로 보인다. 대신 직접적이고 극적인 감정표현을 억제하고 대신 일상 속 내면의 소소한 감성을 건져올리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그것은 나름대로 잔잔한 풍요로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80년대를 경과한 이후, 우리에게 일상이란 그렇게 무표정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언제나 담담하고 특별할 것 없는. 어쩌다 생겨난 이벤트도 다시 그 일상 속에 묻혀버리는. 그러나 이 무표정함이 드러난 순정만화들을 잘 보고 있으면 그 무표정 속에 실제로는 ‘표정’, ‘표현’이 묻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일상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상의 감정을 무표정 속에 담아내는 강경옥이, 연재 9년만에 완결한 「노말시티」에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살해하고, 한 도시를 파괴하고, 자신의 유전공학적 아버지를 살해하게 하는 것을 보고서 든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평범한 일상이라지만 캐릭터는 그 무표정함의 뒤편, 자신의 일상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무표정함은 어떤 삶의 태도이거나 그 삶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표정’인 것이다. 그것은 90년대 이후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열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기사:  깜악귀
 ▶ 조회: 5080 | 등록: 2002/08/29 
맞습니다. 미완의 만화를 완성해줘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님 here완성해주시죠. 가을이군 2003/10/18
별로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데요. 옛날 작품으로 승부한다기보단 미완의 작품을 끝까지 완성시키는게 좋지 않을까요. 여러 분들이 노말시티 뒷부분이 날렸다 엉망이다라고 하시는데. 그럴지라도 경옥님의 연출력은 굉장했습니다. Ifreeta★ 2003/03/03
이제 강경옥씨 옛날작품으로 승부하시려는 모양이군요. 하긴 요즘작품은 정말이지 별로- 스토리가 다 떨어지신듯. 200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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