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스타들- 내일의 죠,그리고 까치와 강토
                   
    새로운 만화의 창작과 비평 Studio Nuf(원종우/Nufgirl)
    (두고보자 창간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1.

모든 인기리의 대중문화들은 대중의 열광 속에서 스타를 만들어낸다. 이때 그 스타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생산되는 경향이 있으며,그것이 현대 대중문화 산업의 특징적 모습이다.

그리하여 위치는 전도된다. 이미 스타는 드라마,혹은 노래와 분리되어,그자체로서 상품이 되며, 이때부터 드라마나 노래는 그 스타에 부가되는 옵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즉, 드라마나 노래는 스타가 내뿜는 어떤 종류의 이미지-그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바로 그 상품성-을 최대치로 올려주고 선전하기위해 만들어진다.

대중문화로서 만화와 만화속 스타들 역시 이 논리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것이다.

오래전 있었던 코주부와 고바우, 내가 초등학생 무렵 꾸러기나 꺼벙이,굼봉이, 좀 더 후에는 까치와 강토, 그들이 출현하는 작품들은 그들의 이미지에 종속되어 만들어지곤 했고, 그들 자신은 이미 개별작품을 초월한 시대의 스타들이었다.하물며 요즘처럼 만화가 현저하게 산업적으로 각광받고 있다면야..  예전과 같이 카리스마를 가지고, 원조와 아류가 존재하는 그런 스타는 아니더라도,스타는 아직도 있다. 그것도 많이.  이름은 다 달라도  몇가지 특성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동일한 캐릭터들-결국 한사람의 추상적 스타로 환원되는-이긴 해도 말이다. 

2.

이들 만화속의 스타는 시간에 몹시 민감하다. 과거의 스타들은 현재에는 이미 한물간  전설이 될 뿐, 살아서 숭배받는 스타가 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시대의 욕망과 정신을  대표하므로써 스타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서 그들이 대표하던 가치들은 이미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버리는 것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만화자체를 초월해서 존재한 스타-캐릭터-를 읽어내므로써, 그시대에 특유했던 가치와 욕망들을 끄집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발 나가  우리는 이러한 의문도 가질 수 있을것이다. 즉, 만화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스타는 이제 자연발생이 아니라 제조되는 경향을 띠고 있는데, 그렇다면 현대의 스타들이 대표하는 시대적 가치와 욕망-시대정신-은 조작되어 거꾸로 대중에게 퍼뜨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3.

얼마전 라이센스판으로 완간된 [내일의 죠]를 보면서, 같은 권투만화의 주인공인 우리 80년대의 까치와 최강타, 그리고 강토를 생각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내일의 죠]는 그작품이 진행되던 당시 일본사회를 뒤흔들고 있던 전공투에게 바이블처럼 읽혔다고 한다. 과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주인공 죠가 권투를 대하는 자세가 마치  68세대의 학생운동이 가질법한 철학과 겹쳐져 보인다.

당시 일본의 전후세대는 물질적 풍요속에서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런 생의 에너지, 니체적 의미의 권력의지-즉 활력을 찾아볼길 없는 무미건조한 사회. 철벽처럼 안정되게 그들을 둘러싸고 그들의 앞날을  규제하고 있는  일본적 질서,권위.이에 해한 거부와 파괴욕망은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대안적 질문에 관해서는 파괴자체가 모든것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문제가 된 것중의 하나는 바로 열정적 삶 자체다. 어떤가? 죠가 자신을 활활 불태우고 재가 되고싶다고 읊조리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태도는 비단 죠 뿐만이 아니라 [하록선장]같은 만화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 만화들은 조금 후에 모두 우리사회로 수입되고 있었다.


4.

수입된 이 만화들속에서 그들의 시대정신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는가?

우리사회는 일본사회와는 딴판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 사회가 개인적 자유와 열정적 삶을 때로는 극단적이고 파괴적으로까지 열망하고 있을때,  우리사회는 정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분단상태와 개발독재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그당연한 결과로서 집단적 가치가 숭상되고, 민족과 국가가 강조되고, 안정과 질서가 강조되고, 즉 우리모두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한 우리앞에 죠나 은하철도 999의 시대정신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권투에 미친 개인적 삶에 지나지 않았으며, 지구를 쳐부수려는 외계인(=북괴,쪽바리,나쁜놈들)에 대항해 싸우는 영웅 환타지일 뿐이었다.

5.

한편 80년대의 우리 권투만화의 까치와 강토,최강타가 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어느누구도 아닌 우리자신의 시대정신을 대변해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투나 그외 프로 스포츠의 의미는 내일의 죠, 혹은 일본의 다른 스포츠만화와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80년대가 들어서면서 분배의 불평등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빈부격차가 심각하게 드러났다. 그속에서 소외와 배신의 기억을 가진 약한 개인으로서 까치와 강토, 강타들은  자신의 복수,신분상승의 도구로 권투며 프로야구 등을 생각한다.

결국 그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권투나 야구의 제왕이 되어 부와 명성을 한손에 되찾지만, 그가 사실 목적했던 것은 부와 명성 그 자체가 아니었다. 복수, 혹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것. 그렇다. 나 여기있소. 당신들이 무시해온 나의 존재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까치는 장님이 되어 (공포의 외인구단) 미쳐버린 엄지를 데리고 조용히 사라져가며, 최강타는 기업을 바르게 개조하여 후임자에 넘겨주고 나쁜 인간들을 지엄하게 심판한 후에 너무 과로한 나머지 불치병에 걸려 죽어간다.(신의 아들)

강토의 경우는 좀 틀린데, 어떻게든 권투로 가난을 면해보려 기를 쓰다가 가족도 다 잃고 애하나 덜렁 남기고 죽어가는 아버지와, 그아버지의 인생을 다시 반복하는 아들의 모습속에서 역시 주인공은 초라한 등을 보인다.(담배한개피) 결국 세 스타 모두 권투를 다른 가치를 향한 무기로 봤으며, 끝에가서는 쓸쓸한 알몸으로 죽어간다는 결론이다.

정말이지 우리의 80년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이 주인공들과  80년대의 정서는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기에, 우리만화사상 초유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스타주인공을 넘어서 스타작가들을 만들어냈고, 그때부터 우리 만화산업은 스타시스템의 적극 도입을 고려하게 된다.


6.

생각해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자생적으로 나타났던 스타가 의도적으로 제조되기 시작하면서, 스타와 대중들의 관계는 오히려 그 스타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의 스타는 참 흔하다.

처음에 그것은 아류의 범람으로 나타났다. 까치와 비슷한 인물들이 까치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만화들이 지천으로 나돌았다.

그 다음엔 일본만화의 스타들이 대거 입성해서 우리의 스타가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특별하다. 그들은 그들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정신을 가지고 들어왔고, 이것의 수용이 반복 확대되면서 우리의 정서와 융합했다. 성욕,물리적 힘에 대한 숭상, 얼굴은 어린애요 몸은 글래머라는 미인의 기준,오로지 승부를 즐기는 영역으로서 스포츠의 의미등등 너무나 많은 일본식 가치들이 자연스럽게 우리것이 되었다. 물론 그것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어차피 문화란 충돌하고 융합하고 다시 구분되는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는 것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식 가치가 우리와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었던 우리의 조건에 관한 문제다.90년대 들어와서 우리사회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그 이전과는 분명 구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성장기를 가질 수 있었던 새로운 세대가 강력한 구매력을 가지고 등장했고, 이에 발맞추어 문화산업이 전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던 것이다. 문화산업은 그 본질상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해외문화로 부터 그 소스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전래없는 개방속에서, 우리문화는 학문분야에서 음식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만화도 당연히 해외로부터의 충격파를 먹게 된다. 그리고 이즈음 해외의 문화는 전세계적으로 동질화된 이른 바'신세대 문화'의 색채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90년대 한국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젊은세대가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적 신세대문화와 만났다라는 사건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새로운 무국적 세대가 즐기는 (일본)만화는 '스타가 아닌 스타'를 선보였다.

우리의 경우엔 까치와 강토, 일본의 경우엔 죠와 하록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는 흘러간 스타가 되버렸고, 이제 새로 등장한 주인공과 그들의 이야기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인간형'에 의한 '일상적 사건'일 경우가 많다. 가령, 현재 그나마 최고의 스타라고 봐줄 수 있는 몇몇 캐릭터를 보자.그들은 특정 직업(마스터 키튼,초밥왕 혹은 요리왕, 각종 닥터들..)을 가지고 있으며, 만화는 그 직업과 관계된 특정 영역과 소재,에피소드들을 엮어나가고 있다. 또 환타지류나 학원폭력류, 청춘로맨스 등등의 경우는  일정하게 전형화되어 거의가 대동소이한  스토리와 설정속에서 역시 대동소이한 캐릭터 전사들이 서로 땅콩 키재기를 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로 대표적인 컬트물로 평판을 얻고 있는 이나중 탁구부의 마에노와 이자와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앞선 예보다 비교적 강력한 스타성을 가진 캐릭터로서  현재 젊은 세대의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대표하는 시대정신이란 것 자체가, 일상과 평범속에서만 표현가능하다는 점에서 과거의 스타들이 내포하던 그것과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죠는 지루한 일상을 거부하고 권투로 인생을 불태웠고, 까치의 인생은 애초부터 지루함과는 상관없다.  그러나 마에노와 이자와는 '지루해''지루해''지루해'하고 말만을 계속하며 지루함속에서 뒹굴 스타일이다. 그들에게 격정적인 인생이란 없다.따라서 격정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가지는 그러한 종류의 스타도 될 수 없다.

그러한 스타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요즈음의 일본만화(와 그와 다를바 없는 우리만화)들의 변화를 살펴보자. 먼저 학원폭력물이나 환타지,퇴마물의 쟝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작품별로 내용적 차별성이나 캐릭터의 차별성같은 것을 그다지 가지지 않는다.그럼에도 이 쟝르가 유행하고 인기를 모으는 것은 이 쟝르자체에 고유한 코드들의 매력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폭력,기사와 공주가 있는 환타지세계의 이미지, 각종 신비주의적 흥미들이 반복 재생되고 또 반복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피카레스크적 구성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엇비슷한 주제를 가진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전체 시리즈물을 구성하는 건데, 이것은 일본만화가 열중하고 있는 소재중심적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세번째로, 그리하여 그것들은 점점 일상성을 심화시켜간다. 상대적으로 드라마틱한 인생, 이른바 거대담론을 주제로 심화시키는 경향따위는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

7.

그러나  이러한  만화계의 변화가  놓치고 있는것은 없는가? 다시 말해서 한국사회는 강한 스타가 더이상 필요없는 사회인가? (일본사회에 대해서야 내 알바 아니다)

이시점에서 새로이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전권 출판한 [내일의 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돌아온 죠는 분명 옛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본소의 인기챠트나 통신상의 감상문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마도, 마에노와 이자와처럼 '지루해''지루해''지루해'하며 지루함속에 뒹굴거리는 것만으로 우리사회의 시대정신을  확정지을 수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사회가 최초에 죠를 맞이했던 시대로부터 벌써 몇십년이나 지난 시대에 살고 있음은 물론이요, 죠의 독자들이 먼저 그의 열정적 삶(삶과의 투쟁)의 모습에 감동하고, 다음엔 죠의 주변에 배치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표하기 때문이다.그런데 하나더, 그들은 죠의 삶에 충분히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가 한국인 복서를 대면하여 취하는 태도에 대해 꺼림직한 반응을 주저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죠는 한국전쟁과 한국인의 경험, 복수나 한으로 채워진 정열(적 인생,혹은 권투)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이해조차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고,그것이 그 꺼림찍함의 원인이다. 결국 죠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의 스타일 뿐인 것이다.사실상 죠가 하필 '권투'라는 것으로 자기 인생을 (비록 격정적이지만) 채워넣었다는 것은 일본만화가 지금 보여주는 소재주의, 장인을 숭상하는 가치의식등을 담고 있지 않는가? 그러한 죠 자신의 권투인생은 사회적 의미성을 가지기보다는 개인적인 의미성-요즘의 일본만화가 강조하는-에 더 치중된 것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사회에 있어서 장인숭상의 가치는 원래 없었고, 지금은 좀 변했다지만 아직도 단지 실용적 측면에서 강조되는 경향이 짙다. 우리사회에서 직업이나 스포츠는 압도적인 경우에 신분상승,혹은 생존의 도구일 뿐이었지 그자체가 인생전체를 의미하지는 않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 스타들에게 기업이건 돈이건 권투건 야구건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사랑조차도 인생 그자체의 목적이 되는 법은 없었다. 그들 스타들은 개인적 복수의 삶을 사는 경우조차도 충분히 사회적 의미성을 내포하는 복수를 행했고,그들 상황을 규정하는 개인적 파산이나 개인적 기업활동은 모두가 사회적 파산과 사회적 기업의 상징물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회적 의미성때문에 그들이 우리사회의 스타로 부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그런 사회적 의미성을 담은 스타를 갈망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지루할 만큼 평안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요, 이전의 문제들 (예를 들어 빈부격차를 포함한 경제적 문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채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사회는 아직도 셋이상 자리에 모이면 정치와 경제를 안주삼는 사회인 것이다.


8.

까치와 강토는 80년대의 문제를 80년대의 방식으로 풀었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기를 더이상 지속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 나름의 변신과정을 겪는다. 까치는 이미 한맺힌 가난뱅이가 아니었다. 90년대는 너무 이른 샴페인을 터뜨렸다고 욕먹을 만큼 화려하고 부유한 시대였고 이현세는 이미 국가대표 만화가로 나라안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자가 되었다.그래서 까치는 다른데로 눈을 돌리는데 그것이 바로 민족문제다.

[꿈꾸는 제국](88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시리즈에서 까치는 야구를 사용해서 민족간의 차별이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재일교포를 연기한다. 중간에 잡지가 망해서 연재중단사태를 겪고 끝이 흐지부지 끝나버렸지만 어떻든 까치는 아직도 건재한 스타였다. 그리고 스포츠신문에 연재되어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남벌]은 우리 성인독자층의 관심사가 어디있는지 증명했다. 하지만 [남벌]의 종말은 곧 까치의 종말을 가져왔는데, 그 이유는 [남벌]이 민족문제를 다루는 태도는 80년대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까치는  초인적인 힘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를 무찌르고 그들에게 겁간당한 자기 누이에게 자결을 명하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일관한다)우리사회는 그전과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동일한 태도로 문제를 바라보지는 않았으며, 까치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강토의 경우는 원래가 까치와는 다르게 문제를 내적으로 해결하는 스타일의 캐릭터였다.

[카멜레온의 시]나 [고독한 기타맨]을 통해서 내적인 완성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소한 후,그 유명한 [오한강]으로 사회성을 일단락하고 잠시간 신비주의(화이트 홀등 )에 경도된다. 곧이어  [대머리 감독님][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안온다]등 정치극화와 [아스팔트의 사나이][미스터 큐]등의 일상드라마에 동시출연한다.

무슨 이유일까? 왜 강토가 정치에서 퇴장했는지 모를일이다. 어떻든 한동안 인기를 모으던 허영만의 정치극화는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고,이어서 그는 대본소만화를 그만두고 각종 신문,잡지에 [미스터 마요일][세일즈맨]등의 일상적 소재주의만화의 평범인이 되었다.

까치의 화려한 죽음대신에 강토는 평범한 노인이 되어 평안한 말년을 보내는 셈이다. 한동안 그는 [비트]에서 재기하는듯 했지만, 청소년에게 허락되는
경험은 한계가 있는건지, 그 작품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이상 스타가
아니며, 그만한 인기도 누리지 못하게 되버린다.
.


9.

까치와 강토가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더이상의 스타는 없다. 사회적 의미성을 담는 만화는 아직도 몇 있다.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성인잡지에서 정치평론,시사만화는 언제나 감초처럼 취급되어 명맥은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재미는 없다. 스타는 극화적 재미의 꽃이다. 스타와 극화와 사회적 의미성의 결합-이것이 한국적 만화의 전통이었다.

그런면에서 윤태호의 [수궁별곡]은 스타없이도 재미있을 수 있는 정치물로 주목받는 작품이었지만 잡지사가 망해서 중도하차했다. 그런 와중에 광복절에 일본만화의 스타들을 코스프레 하려다가 작은 전쟁이 났다.

나는 화가 치민다. 왜 우리는 이런 논쟁을  만화내부에서 벌이지 못하고 외부에서 하고 있는지?명색이 만화광이라는 우리들이 말이다. 그건 이 문제를 대변하는 우리의 스타가..그리고 우리의 만화가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일본에 대해 대항논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본과의 민족적 문제가-나아가서는 대동아 공영권이든 파시즘이든 민족주의든 그것자체가 우리들의 관심을 이렇게 모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루는 만화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일본만화는 있지만, 하물며 그 멋진 죠조차도 우리를 이해하는것은 포기한 이상, 우리만화 스스로가 우리의 생각들을 모아보아야 하는게 당연하잖은가? 결국 우린 아직도 스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는 것이다.우리의
스타 말이다.

 ▶ 기사:  원종우/Nufgirl
 ▶ 조회: 2908 | 등록: 2002/08/28 
EZBoard by EZNE.NET